릴로

"단, 단장님들! 지금 미국에서 긴급 기사가 떴습니다!"

김 기자의 조수가 들이민 태블릿 화면 속 헤드라인은 자극적이다 못해 폭력적이었다.

[속보: 미국 야구협회(MLBPA) 및 사무국, 한국 고교 투수 강태오의 직행 계약에 대한 '특별 제재' 논의 착수. 국제 자유계약 자격(IFA) 영구 박탈 가능성 제기.]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졌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벤 체링턴 단장이 미간을 좁혔고, 뉴욕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들고 있던 만년필을 툭 내려놓았다.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 '신분 자격 박탈'이라는 단어만큼 치명적인 독약은 없다.

이것이 윌리엄 해리슨이 준비한 마지막 더러운 도박이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아예 판 자체를 엎어버리겠다는 악랄한 기회주의자의 본성.

하지만 태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차가운 호선을 그렸다.

"치졸하군. 겨우 이 정도 찌라시로 메이저리그 단장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태오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재이를 바라보았다. 한재이는 이미 태오의 눈빛무늬를 읽고 있었다. 그녀가 태블릿 PC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준비된 법적 분석 패널티 우회 문서를 화면에 띄웠다.

"예상했던 움직임입니다, 단장님들."

한재이의 목소리가 얼음송곳처럼 고요하게 울렸다.

"메이저리그 단체협약(CBA) 제4조 제2항에 따르면, 프로 리그 등록 이력이 없는 순수 아마추어 선수의 국제 자유계약 자격은 사무국의 임의적 제재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해리슨이 흘린 이 기사는 미국 야구협회의 공식 입장이 아닌, 협회 내부의 하위 실행위원을 매수한 일방적인 궤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태오, 사무국이 정식 조사에 착수하기만 해도 계약 승인이 몇 달 동안 동결될 수 있네. 그 리스크를 우리가 감당하란 말인가?"

체링턴 단장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 순간 태오가 테이블을 짚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단장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준비한 게 제3국 영주권 및 에스크로 펀드 우회로입니다. 이미 도미니카 공화국 법무부를 통해 임시 영주권 취득 절차를 마쳤습니다. 계약금은 미국 에스크로 계좌에 신탁되어 법적 공방이 끝날 때까지 투명하게 보관됩니다. 사무국이 어떤 태클을 걸든, 저는 도미니카 국적의 자유계약 선수 신분으로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신분 리스크는 0%입니다."

단장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열여덟 살 고등학생 투수와 젊은 분석가가 메이저리그의 복잡한 국제 계약 규정의 허점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해리슨이 판 구덩이는 이미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 아래에 있었다.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찌라시에 흔들릴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이 방에서 나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일 마운드 위에서 내 가치를 목격한 순간, 계약금의 시초가는 지금 제시한 금액의 두 배가 될 겁니다."

지독한 오만함.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확신이었다. 캐시먼 단장이 마침내 마른침을 삼키며 낮게 웃었다.

"재밌군. 진짜 괴물을 만났어. 내일 고척에서 보지."

***

사흘 뒤, 서울 고척 스카이돔 불펜.

돔구장 특유의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불펜 내부를 감돌았다. 사방이 그물망으로 막힌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용광로보다 뜨거웠다.

*콰아아앙-!*

포수 미트가 터져 나갈 듯한 파열음이 돔구장 내부를 진동시켰다. 공 기둥이 가른 공기가 타는 듯한 냄새를 풍겼다. 송우진은 미트 속에서 부르르 떨리는 공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웠지만, 우진은 이 고통이 차라리 황홀했다.

"나이스 볼! 태오야, 방금 건 진짜 총알이다!"

우진이 흙먼지를 퉤 뱉어내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불펜의 흙바닥을 적셨다.

불펜 그물망 너머에는 수십 명의 국내외 기자들과 KBO 관계자들, 그리고 서울 타이탄즈의 단장이 서 있었다. 그들은 태오의 해외 진출을 '국위 유출'이자 '위법 행위'라 규정하며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기 위해 독기 어린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태오가 던진 단 한 구의 투구가 그들의 주둥이를 물리적으로 틀어막았다. 방금 찍힌 스피드건의 수치는 시속 160.2km. 고등학생이 던졌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한국 야구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의 영역이었다.

"말도 안 돼... 저게 고등학생의 볼 끝이라고?" "소리가 달라. 대포 쏘는 소리가 나잖아."

수군거리는 기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태오는 자신의 망막 위에 떠오른 푸른색 반투명 창을 응시했다.

[피칭 장부 (Pitching Ledger)] - 잔여 내구 자산: 83.12% - 현재 구종 스펙 조정 창 -

태오는 오늘 이 자리에서 메이저리그 단장들의 지갑을 완전히 열어젖힐 무기를 꺼내야 했다. 단순한 강속구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자의 시야에서 마법처럼 사라지는 무중력 낙하 궤적의 마구를 완성해야 했다.

그는 스펙 조정 창에서 '종속(Terminal Velocity)' 슬라이더와 '수평/수직 무브먼트(Horizontal/Vertical Movement)' 슬라이더를 극단적으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종속을 극한으로 높이고, 수직 무브먼트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꺾어 내리는 비대칭 조절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이이이이잉-*

귀가 먹먹해지는 이명과 함께 붉은색 경고등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

[경고: 종속 및 무브먼트의 비대칭 한계 돌파 조절 감지!] [어깨 관절와순 및 회전근개에 과도한 비틀림 토크(Torque) 발생.] [시스템 과열 경고 및 내구 자산 급격 소모 위험성 존재.]

오른쪽 어깨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관절 사이에 밀어 넣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회귀 전, 자신의 어깨를 걸레짝으로 만들었던 그 끔찍한 부상의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타인과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깎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강박이자 갈망이었다.

"장부 자산 재평가. 축적된 포인트를 방어 기재로 즉시 전환한다."

태오의 차가운 의지가 시스템을 강제 제어했다.

[명령 접수 완료. 보유 자산 일부를 물리 방어 기전으로 변환합니다.] [수명 자산 0.4% 영구 차감 적용. 잔여 내구 자산: 82.72%] [특수 보너스 상태: '강철의 회전근개(Steel Rotator Cuff)' 일시 활성화.] [효과: 비대칭 투구 시 발생하는 모든 물리적 충격과 관절 마찰 토크를 100% 흡수 및 상쇄합니다. (유효 투구 수: 50구)]

*파아앗-*

어깨를 짓누르던 붉은 열기가 일순간 차가운 빙하수로 씻겨 내려가는 듯한 극적인 해방감이 찾아왔다. 이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깨 관절은 마치 정밀하게 기름칠을 한 티타늄 기어처럼 매끄럽고 견고하게 맞물렸다.

완벽한 신체 통제력의 확보. 이제 그의 어깨는 그 어떤 초물리적인 궤적의 투구도 버텨낼 수 있는 신의 무기가 되었다.

태오가 다시 공을 쥐었다. 실밥을 움켜쥔 손끝에 터질 듯한 에너지가 응축되었다.

"우진아, 하나 더 간다. 이번엔 제대로 받아라." "언제든 던져라, 태오야! 미트 찢어져도 상관없으니까!"

우진이 가슴팍을 쾅쾅 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자신의 투수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 냉소적인 태오의 심장을 유일하게 덥혀주는 동료의 뜨거운 온기였다.

태오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가 탄력적으로 튕겨 나갔다. 오른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회전하며 공을 뿌렸다.

*슈우우우욱-!*

공은 우진의 바로 앞에서 중력을 거스르듯 뚝 떨어지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90마일 후반대의 속도로 날아가다 홈플레이트 직전에서 45cm 이상 종으로 꺾이는 경이로운 궤적.

*퍽!*

우진이 바닥에 미트를 처박으며 간신히 공을 걷어 올렸다. 불펜 뒤에서 지켜보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입에서 단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방금 그건 슬라이더가 아니야." "체인지업의 낙폭에 패스트볼의 속도라니...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무중력 구종이다!"

그때, 불펜의 그물망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서울 타이탄즈의 송 단장이 기자들을 거느리고 불펜 안으로 난입했다. 그의 손에는 KBO 직인이 찍힌 공문서가 들려 있었다.

"강태오! 당장 투구를 중단해라!"

송 단장의 목소리가 불펜의 열기를 깨뜨렸다. 그 뒤를 따르는 국내 스포츠지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사정없이 터뜨려 댔다.

"협회의 공식 경고장이다. KBO의 드래프트 규정을 무시하고 탬퍼링(사전 접촉)을 시도한 강태오 선수와 관련 구단들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미국 야구협회에서도 너의 계약을 불법으로 규정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어! 얌전히 타이탄즈의 지명을 받아들이고 속죄해라!"

비장한 척 외치는 송 단장의 얼굴에는 비열한 탐욕과 기득권의 거만한 독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고작 열여덟 살짜리 유망주를 언론과 규정이라는 사슬로 묶어 자신들의 발밑에 굴복시키려 하고 있었다.

태오는 투구판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송 단장을 향해 걸어갔다. 지극히 고요하고, 그래서 더 위압적인 걸음걸이였다. 태오의 그림자가 송 단장의 얼굴을 어둡게 덮었다.

"송 단장님."

태오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차가워 불펜의 공기를 얼려버릴 것 같았다.

"당신들이 만든 그 낡아 빠진 규정이라는 울타리, 내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미국 야구협회? 윌리엄 해리슨이 던진 푼돈에 놀아나는 그들이 내 계약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이, 이 건방진 녀석이...! 감히 협회와 구단을 협박하는 거냐!"

"협박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태오가 송 단장의 손에 들린 공문서를 툭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종이 쪼가리가 먼지 묻은 불펜 바닥에 초라하게 뒹굴었다.

"당신들이 언론을 동원해 나를 매장하려 할 때, 나는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이미 법적 우회로를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고척돔 관중석에는 내 투구 하나에 수천만 달러를 던질 준비가 된 진짜 큰손들이 앉아 있지요."

태오가 고개를 들어 메인 마운드 쪽을 가리켰다.

"당신들이 가진 그 하찮은 권력으로 내 재능을 가둘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십시오. 나는 오늘, 당신들이 만든 기득권의 판을 완전히 박살 낼 겁니다."

송 단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태오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엄한 기백과 포식자의 아우라에 짓눌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부르르 떨 뿐이었다.

태오가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아, 장비 챙겨라. 진짜 무대로 올라간다."

"오냐. 저 쓰레기들 눈을 아주 멀게 만들어 버리자고."

우진이 호쾌하게 웃으며 마스크를 썼다. 두 사나이의 심장이 같은 주파수로 뜨겁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척 스카이돔의 메인 마운드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서치라이트가 태오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메이저리그 15개 구단의 단장들과 단장 보좌역들, 그리고 수많은 스카우터가 숨을 죽인 채 마운드로 걸어 나오는 강태오를 주시했다.

태오는 천천히 마운드 경사면을 밟고 올라섰다. 가장 높은 곳. 그곳에 놓인 순백의 투구판(Pitcher's Plate)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단한 가죽 가죽 슈즈의 스파이크가 흙을 깊게 파고들며, 투구판을 질끈 밟았다.

수천만 달러의 자본과 메이저리그의 역사, 그리고 한국 야구계의 구시대적 카르텔을 송두리째 뒤흔들 괴물의 첫 투구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태오가 포수 송우진의 미트를 향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모든 이들의 호흡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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