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방금... 방금 영종도 국제공항으로부터 들어온 속보입니다."

한재이의 목목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자, 목동 야구장 귀빈실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윌리엄 해리슨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150만 달러짜리 가계약서가 힘없이 구겨졌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벤 체링턴 단장과 뉴욕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 그리고 LA 다저스의 사장단 전원이 보낸 전용기 3대가 방금 활주로에 터치다운했습니다. 지금 목동으로 직행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너머 메이저리그의 심장부가 움직였다. 그것도 헐값에 아시아의 유망주를 낚아채려던 해리슨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가장 탐욕스럽고 거대한 자본들이 직접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강태오는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해리슨의 일그러진 안면을 관통했다.

"더러운 자본의 힘으로 내 재능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이제 판은 내가 흔든다."

***

그날 저녁, 인천국제공항 전용기 터미널(SGB) 내부에 마련된 최고급 VIP 컨퍼런스 룸.

인천공항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극비리에 추진된 만남이었다.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메이저리그의 거물들이 서로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은 잘 빠진 네이비 수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창밖을 응시했고, 보스턴의 벤 체링턴은 태블릿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다저스의 사장단 역시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뒤적였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가로 쏠렸다.

문이 열리며 강태오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야구 가방을 어깨에 멘 포수 송우진과 데이터 분석 장비를 든 한재이가 서 있었다. 고등학생 투수 한 명을 영접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의 수뇌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갈망이 서려 있었다.

"웰컴, 미스터 강."

캐시먼 단장이 먼저 손을 내밀며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체링턴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직접 만나게 되어 영광이네. 자네의 쇼케이스 영상은 보스턴 분석팀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어."

세계 야구의 정점에 선 자들이 고작 열여덟 살짜리 동양인 투수에게 머리를 숙이는 기이한 광경. 하지만 태오는 그들의 환대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게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바쁜 분들이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태오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줄의 떨림도 없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영어로 좌중을 압도했다.

"제 계약 조건의 최우선 순위는 돈이 아닙니다. 물론 돈은 제 가치만큼 받아낼 생각이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합의해야 할 조항이 있습니다."

구단주 사절단의 시선이 태오에게 집중되었다. 태오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제 옆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송우진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송우진. 제 전담 포수입니다. 제 마구는 오직 이 녀석만이 온전히 받아낼 수 있습니다. 저를 데려가고 싶다면, 송우진을 제 전담 '배터리 고지' 동반 패키지로 함께 계약서에 등재하십시오. 마이너리그 육성 단계를 거치더라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권과 에이전트 보장을 포함한 정식 계약이어야 합니다."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구단 임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미스터 강, 그건 전례가 없는 요구네. 아무리 천재 투수라 해도 포수까지 묶어서 메이저 계약을 요구하는 건..."

다저스 사절단 중 한 명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송우진은 태오의 폭탄선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채 태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태오가 자신을 단순한 친구가 아닌, 메이저리그라는 거대한 무대에 함께 서야 할 유일한 파트너로 공인해 준 것이다. 뜨거운 무언가 우진의 목구멍을 치받았다.

"전례가 없다면 지금 만드십시오."

태오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우진이가 없는 미국행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 볼을 받지 못하는 포수와는 시너지를 낼 수 없고, 저는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투수니까요. 싫다면 이 자리를 나가셔도 좋습니다. 제 공을 원하는 구단은 널려 있으니까."

지독할 정도의 강박과 확신. 캐시먼과 체링턴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태오의 기세에 눌린 그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강태오라는 괴물을 놓치는 것에 비하면 고교 포수 한 명을 마이너 계약으로 끼워 넣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네. 배터리 동반 계약 조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체링턴의 양보에 우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태오는 우진의 어깨를 툭 치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나이들의 묵직한 신뢰가 눈빛을 통해 교차했다.

그 순간, 태오의 귓가에 이명이 일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막을 찔렀다.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왔고,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지난 쇼케이스에서 145km/h의 속도로 40cm 이상 휘어지는 규격 외의 슬라이더를 던진 대가였다.

망막 위에 피칭 장부의 붉은 경고등이 사정없이 점멸했다.

`[위험: 구종별 '종속' 및 '수평 무브먼트'의 비대칭 강제 조절로 인한 시스템 과열.]` `[어깨 내구 자산 누수율 급증. 현재 수명 자산: 83.12%]` `[과열 상태 지속 시 어깨 관절와순의 영구적 손상 및 시스템 셧다운 위험.]`

이것이 골든핑거의 제약이었다.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마구를 던질 때마다 가해지는 어깨의 비명. 태오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턱을 괴었지만, 이마에 맺히는 식은땀까지 감추기는 어려웠다. 이대로 미국 마운드에 선다면 계약을 맺기도 전에 어깨가 가루가 될 터였다.

그는 즉시 마음속으로 피칭 장부를 열었다.

그동안 청룡기 우승과 서울 쇼케이스를 거치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뇌리에 새겨 넣은 '괴물 투수'의 각인. 그로 인해 축적된 엄청난 양의 인정 마일리지가 장부의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보유 인정 마일리지: 62,000 M]`

태오는 주저 없이 상점 탭을 훑어내렸다.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신규 알고리즘: 데이터 우회 안전 락 (Data Bypass Safety Lock)]` `- 효과: 투구 시 발생하는 물리적 부하를 장부의 인과율 데이터로 우회 흡수. 등록된 주무구의 수명 삭감 누수율을 영구적 0%로 귀속 고정.` `- 소모 마일리지: 60,000 M`

미련은 없었다. 태오는 잔고에 있는 마일리지를 전부 올인하여 버튼을 눌렀다.

두뇌를 관통하던 고주파 소음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오른쪽 어깨 관절 깊은 곳에서 시원한 청량감이 감돌았다. 물리적 한계를 강제로 비틀어도 어깨에는 단 0.01%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완벽한 안전 장치가 장착된 것이다.

`[안전 락 장착 완료.]` `[지정 구종: '초고속 변형 슬라이더' 및 '무중력 낙하구'의 내구도 감쇄율이 0%로 고정됩니다.]`

이제 제약은 사라졌다. 태오는 완벽한 마운드의 포식자로 거듭났다.

그는 한재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재이가 기다렸다는 듯 노트북을 켜고 전면 스크린에 빔프로젝터를 쏘았다.

화면 가득 복잡한 그래프와 숫자들이 들어찼다.

"지금부터 보여드릴 자료는 제가 직접 분석하고 강태오 선수의 투구 매커니즘을 시뮬레이션한 '미래 세이버메트릭스 완투 시연 통계'입니다."

재이의 목소리가 널찍한 컨퍼런스 룸에 맑게 울려 퍼졌다.

화면에는 태오가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할 때의 예상 궤적과 회전수, 그리고 디셉션(투구 숨김 동작)의 각도가 정밀한 3D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강태오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회전수는 2,650rpm에 육박합니다. 여기에 145km/h의 속도로 타자 앞 1.5미터 지점에서 40cm 이상 급격히 꺾이는 변형 슬라이더가 더해집니다. 메이저리그 평균 타자들의 시각 인지 한계 시간은 0.4초. 이 궤적은 인간의 안구 운동 속도로는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재이가 리모컨을 누르자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빠르게 갱신되었다.

"예상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1.48. 첫 시즌 예상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7.5. 투구 수 관리 알고리즘을 적용한 완투 성공률은 82.4%에 달합니다. 저희는 구단에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자네들이 지불할 금액에 걸맞은 확실한 승리를 판매하러 온 겁니다."

미래의 세이버메트릭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철저히 가공된 스스로의 가치.

메이저리그 단장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들은 지금껏 수많은 유망주를 보아왔지만, 고작 열여덟 살짜리 투수가 에이전트도 없이 자신의 가치를 이토록 완벽한 데이터로 증명해 보이는 광경은 생전 처음이었다. 단순한 유망주가 아니었다. 이미 완성이 끝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지배할 준비가 끝난 완성형 괴물이었다.

"미스터 강..."

양키스의 캐시먼 단장이 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원하는 구체적인 계약 규모를 제시하게."

태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연평균 1,500만 달러. 그리고 어깨 부상 발생 시에도 100% 전액을 보장하는 완전 보장 계약(Fully Guaranteed Contract). 이 조건에서 단 1달러도 깎을 생각은 없습니다. 입찰은 지금 이 순간부터 개시됩니다."

방 안의 공기가 뜨겁게 타올랐다. 거대 구단들의 자본 전쟁이 강태오라는 단 한 명의 괴물을 두고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컨퍼런스 룸의 무거운 유리문이 거칠게 열렸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윌리엄 해리슨의 한국 지부 연락책이자, 그와 유착관계에 있던 국내 스포츠지의 김 기자의 조수였다. 그의 손에는 갓 인쇄된 듯한 미국 현지 스포츠 매체의 가판대 출력물이 들려 있었다.

"단, 단장님들! 지금 미국에서 긴급 기사가 떴습니다!"

그의 외침에 방 안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김 기자의 조수가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 화면을 단장들에게 보여주었다.

화면 헤드라인에는 굵은 고딕체로 쓰인 충격적인 문구가 박혀 있었다.

[속보: 미국 야구협회(MLBPA) 및 사무국, 한국 고교 투수 강태오의 직행 계약에 대한 '특별 제재' 논의 착수. 국제 자유계약 자격(IFA) 영구 박탈 가능성 제기.]

방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체링턴과 캐시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해리슨이 마지막으로 던진 더러운 도박성 음모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흔들며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태오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진짜 전쟁의 서막이, 이제 막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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