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야! 레이저 센서가 완전히 튄 게 분명해!"
백네트 뒤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단장들이 레이저 측정 오차가 났다며 미친 듯이 조작 기기를 두드려댔다. 그들의 입에서 불신 가득한 탄성과 거친 영어 욕설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왔다.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는 분명 145km/h였다. 일반적인 고교 투수의 전력 직구에 맞먹는 속도. 하지만 그 속도로 날아오던 공이 홈플레이트 직전에서 좌타자 바깥쪽으로 무려 40센티미터 이상을 횡으로 찢고 나갔다. 그것은 야구 이론과 물리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마구였다.
"기계 고장이 아니라면, 저 녀석 어깨 관절이 고무로 만들어졌다는 뜻밖에 안 돼!" "이봐, 레이저 센서 다시 정렬해! 저 궤적이 인간의 손끝에서 나올 수 있는 각도인가?"
그들의 소란스러운 비명이 목동 야구장의 가을 밤공기를 찢어발겼다.
태오는 마운드 위에서 붉게 상기된 스카우터들의 얼굴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어깨 관절 내부에서 불로 지지는 듯한 미세한 열감이 피어올랐다. 망막 위에 떠오른 푸른색 피칭 장부의 숫자가 깜빡이며 경고음을 울렸다.
[내구 자산: 84.12% (-0.08% 소소폭 감소)] [경고: 슬라이더 수평 무브먼트 임계치 도달. 지속 투구 시 어깨 인대 추가 소모율 상승.]
귓가에 얇은 이명이 스쳤으나, 태오는 어금니를 사려 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이 정도 대가는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다. 거대 자본의 포식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미끼치고는 아주 저렴한 편이었다.
"강태오 선수! 당장 투구를 중단하십시오!"
그때, 백네트 뒤편의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서울 타이탄즈의 단장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기자들을 거느린 채 마운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고인이 찍힌 공문서가 들려 있었다.
"이 쇼케이스는 대한야구협회의 공식 승인을 받지 않은 무단 행사입니다! 고교 선수가 프로 구단의 동의 없이 국외 진출을 타진하며 사설 테스트를 받는 것은 엄연한 규정 위반입니다!"
타이탄즈 단장의 목소리에는 초조함과 분노가 날것 그대로 묻어났다. 한국 야구의 미래를 독점하려는 대기업의 오만한 탐욕이 그의 구두 굽 소리를 통해 마운드 위로 딱딱하게 울려 퍼졌다.
태오는 공을 쥔 손가락 끝의 감각을 유지한 채, 다가오는 단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먹잇감을 사냥하려는 하이에나의 몸짓치고는 지나치게 요란하고 품격이 없었다.
"비켜요, 단장님."
그때, 관중석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윌리엄 해리슨이 재빠르게 마운드로 올라섰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하고 정중한 에이전트의 가면이 쓰여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사냥감을 발견한 매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해리슨은 타이탄즈 단장의 앞을 가로막으며 유창한 한국어로 쐐기를 박았다.
"단장님, 이 쇼케이스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정식 등록된 스카우팅 리포트 작성 과정의 일환입니다. 한국 KBO의 규정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합법적인 관찰 권한보다 우위에 서진 못합니다. 언론 플레이는 그쯤 하시죠."
"당신들 지금 선수를 납치하려는 건가? 아직 드래프트도 거치지 않은 고교생이야!"
"선택은 선수가 하는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룰이죠."
해리슨은 단장을 가볍게 어깨로 밀쳐내며 태오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의 손에는 이미 가죽 바인더에서 꺼낸 영문 계약서 한 부가 들려 있었다. 해리슨의 숨결에서 짙은 시가 향과 탐욕의 냄새가 풍겼다.
"태오. 저들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나?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사전 대리인 계약서에 서명하게. 연간 150만 달러 보장, 그리고 즉시 미국행 비행기 표와 마이너리그 최고 수준의 훈련 시설을 약속하지. 저 얄팍한 KBO 구단의 협박으로부터 자네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겠네."
해리슨의 목소리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양인 유망주라면 눈이 뒤집힐 만한 금액과 조건. 주변의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해리슨이 내민 계약서를 카메라 담기에 바빴다.
태오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해리슨이 내민 종이뭉치를 받아들었다.
해리슨의 입꼬리가 승리감으로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드디어 이 오만한 동양인 천재를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었다고 확신한 비열한 미소였다.
하지만 태오는 서명 펜을 쥐는 대신, 계약서의 첫 장을 넘겼다. 그의 서늘한 눈동자가 빽빽하게 적힌 영문 조항들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회귀 전, 메이저리그의 무자비한 자본 논리에 치여 어깨가 부서진 채 버려졌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정밀한 번역기가 되어 가동되었다.
사각, 사각.
태오의 손가락이 계약서의 특정 페이지를 짚었다.
"윌리엄."
태오의 목소리는 마운드의 흙먼지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독점 대리인 권한 범위 조항에 '국제 유망주 계약 규정(International Amateur Signing Bonus Pool)에 따른 총액 제한 및 슬롯머니 배정 권한 일임'이 적혀 있네. 게다가 메이저리그 승격 시 구단 임의 배정 권한까지 당신에게 귀속된다고 되어 있고."
해리슨의 미소가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그건 전형적인 표준 계약서의 문구일 뿐이네. 자네의 안전한 미국 정착을 위해..."
"안전한 정착?" 태오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이 조항대로 서명하면, 나는 당신이 지정하는 하위 구단에 메이저리그 국제 계약금 상한선인 150만 달러에 묶여 입단해야 해. 그리고 서비스타임 6년 동안 내 몸값이 아무리 폭등해도, 구단이 주는 최저 연봉만 받으며 뼈가 으스러지도록 던져야 하지. 당신은 내 계약금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고, 나를 다른 구단에 트레이드 카드로 팔아넘기며 이중으로 이득을 볼 테고."
태오는 계약서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해리슨의 가슴팍에 거칠게 찔러 넣었다.
"아시아에서 온 풋내기라고 해서 영문 계약서 한 장 제대로 못 읽을 줄 알았나 보지? 이딴 쓰레기 독소조항이 가득한 종이 쪼가리에 내 어깨의 가치를 팔아넘길 생각은 없다."
주변에 있던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터들이 태오의 날카로운 지적을 알아듣고 조용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해리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는 태오가 메이저리그의 복잡한 신인 계약 규정과 국제 보너스 풀 제도의 허점을 이토록 완벽하게 꿰뚫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태... 태오, 오해가 있네! 이건 협상의 시작일 뿐이야!"
"협상은 대등한 파트너끼리 하는 겁니다."
그때, 마운드 아래에서 태오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하던 한재이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태블릿 PC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녀의 냉철한 눈빛이 해리슨을 쏘아보았다.
"해리슨 씨. 태오 선수를 국제 보너스 풀 제한에 묶어두려는 수작은 이미 끝났습니다."
한재이는 태오에게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며 나직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태오 씨, 메이저리그 신인 규정 제4조 3항과 국제 계약 우회 규정을 확인했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임시 거주지를 마련하고 제3국 영주권을 취득하는 루트가 있습니다. 이 경우,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규정한 '해외 아마추어 계약금 제한'을 완전히 우회하여 독립적인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빅마켓 구단들과 직접 협상할 수 있습니다."
태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한재이가 가져온 정보는 회귀 전 자신이 어렴풋이 알고 있던 메이저리그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미회수 복선: 제3국 영주권 및 에스크로 펀드 설계 조건 충족률 상승]
"제3국 에스크로(Escrow) 계좌를 통해 계약금을 분할 지급받으면 한국 국세청의 이중과세와 대한야구협회의 무단 진출 제재금 압류에서도 완벽히 벗어날 수 있어요." 한재이의 추가 설명은 해리슨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비수였다.
해리슨의 얼굴은 이제 흙빛을 넘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작 고교생 투수와 일개 분석가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가장 은밀하고 복잡한 법적 허점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태오에게 넘어갔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제 150만 달러라는 헐값이 아니라, 무제한 입찰 경쟁을 구가하며 백지수표를 들고 태오의 앞에 줄을 서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이 사기꾼 같은 놈들이...!" 타이탄즈 단장이 핏대를 세우며 다시 끼어들었다. "강태오! 네가 미국 법을 얼마나 잘 알든 상관없어! 네 아버지가 일하는 하청업체, 우리 타이탄즈 건설의 계열사인 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고교 야구협회에서도 네 쇼케이스를 징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네가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네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네 가족들은 이 땅에서 매장당할 줄 알아!"
비열한 협박이었다. 자본과 권력을 쥔 대기업이 유망주를 쭘럭거리기 위해 흔히 쓰는 가장 추악한 수법.
저 멀리 관중석 뒤편에서 초조하게 아들의 투구를 지켜보던 태오의 아버지가 사색이 된 채 어깨를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가로막을까 봐 차마 마운드로 오지도 못하고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태오의 눈동자가 극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심장박동이 거칠어졌다. 회귀 전, 자신을 노예처럼 굴리다 버렸던 한국 야구계의 잔인한 카르텔이 다시금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장님."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그 입에서 우리 아버지 이름 한 번만 더 나오면, 당신 그 옷 벗어야 할 겁니다."
"뭐, 뭐라고? 고작 투수 놈이 어디서 감히...!"
"내가 아무 대책도 없이 이 쇼케이스를 열었을 것 같습니까?"
태오가 손가락으로 불펜 입구를 가리켰다.
불펜의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고급 재질의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 세 명이 마운드를 향해 걸어왔다. 그들의 앞에는 태오의 유일한 파트너 포수인 송우진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우진의 아버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형 로펌 '태평'의 파트너 변호사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타이탄즈 단장님." 송우진의 아버지가 품에서 변호사 위임장과 고소 서류를 꺼내 단장의 가슴팍에 툭 쳤다.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부당 권고사직 압박, 그리고 미성년 선수를 상대로 한 공갈 협박 및 직권남용. 이미 단장님이 태오 군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한 통화 녹취록과 협회에 압력을 넣은 공문 발송 기록을 전부 확보했습니다."
"당신들... 당신들 대체 누구야!"
"로펌 태평의 형사소송 전담팀입니다." 변호사가 차가운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명함을 건넸다. "내일부터 타이탄즈 그룹 본사와 대한야구협회를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및 형사 고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언론사에도 이미 자료 배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기업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고교 천재 투수를 협박해 앞길을 막으려 했다는 헤드라인이 내일 아침 조간신문을 도배할 겁니다."
단장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공문서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흙먼지 속으로 굴러갔다.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미친 듯이 눌러댔다. 단장은 자신의 파멸을 직감한 듯, 얼굴을 가린 채 허둥지둥 운동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태오는 멀리서 자신을 보며 안도의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시대의 사슬은 끊어졌다. 자신을 쭘럭거리려던 KBO의 거대 권력도, 자신을 헐값에 후려치려던 메이저리그의 탐욕스러운 에이전트도 마운드 위에서 완벽하게 짓밟혔다.
"우진아." 태오가 빌로우를 향해 공을 던지며 나직하게 불렀다. "준비해라."
"오냐, 태오야. 언제든지 던져라." 송우진이 미트를 단단히 움켜쥐며 포수석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눈빛에는 태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전율이 서려 있었다.
방해꾼들이 모두 정리된 마운드 위로, 쇼케이스의 진짜 막이 오를 시간이었다. 스카우터들은 이제 의심을 거두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태오의 오른팔을 주목했다.
그때, 1루측 덕아웃 뒤편의 배팅 케이지에서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두꺼운 가슴팍과 터질 듯한 팔뚝을 지닌 외국인 타자.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다 최근 트리플A에서 압도적인 홈런왕을 차지했던 거포, 잭슨 밀러였다. 쇼케이스의 최종 단계인 '라이브 피칭'을 위해 특별 초빙된 타자였다.
그는 어깨에 얹은 묵직한 단풍나무 배트를 가볍게 돌리며, 마운드 위의 태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동양인 고교생 투수 따위는 단 한 스윙으로 담장 밖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오만한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잭슨 밀러가 대기 타석에 들어서며 배트를 힘차게 허공에 휘둘렀다.
콰아아앙!
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목동 야구장 전체를 진동시켰다. 밀러가 침을 뱉으며 태오를 향해 배트를 겨누었다. 마운드와 타석 사이, 18.44미터의 공간이 팽팽한 살기로 얼어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