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안은 대패질을 마친 편백나무 고유의 구수한 향기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습니다. 은은한 귤색 전등 빛이 오래된 목재 가구들의 모서리를 둥글고 온화하게 감싸 안으며 포근한 기운을 자아냅니다. 상처 입은 푸른 여우를 달래며 마음을 나누려던 바로 그 순간, 열린 창문 틈으로 기묘하리만큼 시리고 축축한 바람이 훅 불어닥칩니다. 벽난로의 따스한 온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며, 숲의 깊은 어둠이 방 안으로 밀려듭니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튼튼한 참나무 문이 맥없이 뒤틀리며 밤의 장막이 거칠게 찢어집니다.
먼지 뿌연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겨울 산만 한 크기를 가진 사슴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결코 신성하지 않습니다. 한때 에메랄드빛으로 아름답게 빛났을 뿔은 인간들이 쏟아낸 오염된 욕망과 시커먼 매연을 들이마신 듯 검붉게 타들어 가 있고, 온몸에서는 진득하고 차가운 타르 같은 어둠이 뚝뚝 흘러내립니다.
—저 무거운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여기까지 버텨온 것이구나.—
검은 사슴은 고통에 겨워 목을 놓아 울부짖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야수가 내뱉는 탁한 숨결이 닿는 곳마다 공방의 아늑한 온기가 서리를 맞은 듯 차갑게 얼어붙습니다. 녀석의 가슴팍 깊은 곳, 시커멓게 굳어버린 인간들의 탐욕이 가시처럼 박혀 붉은 안광과 함께 위태롭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고통 어린 포효가 공방 천장을 흔들고, 할아버지가 아끼시던 유품들이 선반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사슴의 슬픈 눈망울이 당신을 향합니다. 그 눈 속에는 분노와 원망보다도, 제발 이 숨 막히는 고통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는 애처로운 간청이 눈물처럼 고여 있습니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공방을 채우고 있는 따사로운 온기는 물론, 고통받는 사슴의 영혼마저 검은 먼지가 되어 바스러질 터였습니다. 사슴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이 거센 파도처럼 당신의 발밑까지 밀려드는 일촉즉발의 순간, 당신은 깊은 숨을 들이쉬며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