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지직, 쇳소리가 섞인 노이즈가 붉은 안개 속을 찢고 흘러나왔다. 벽면에 매달린 스피커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 경찰의 진입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압식 주유 통제에 들어갑니다. ]

왜곡된 기계음은 사방의 벽을 타고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유리창 너머에 선 임다혜의 눈동자가 그 소리에 거칠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움켜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간을 겨냥한 총구는 미동도 없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색의 안개로 향하고 있었다.

치익, 치이익.

소독제 공급 라인에서 분사된 가스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시야를 뿌옇게 흐렸다. 차가운 미스트가 백시우의 뺨에 닿았다. 피부를 타고 내리는 액체는 지독하게 차가웠고, 이내 기화하며 기묘한 단내를 풍겼다.

뇌의 가장 깊은 곳, 이성의 마모를 대가로 깨워낸 샤를의 인격이 그의 전두엽을 긁어대며 속삭였다.

‘디메틸 에테르. 그리고…… 달콤한 냄새. 단순한 기화 연료가 아니야, 시우야. 이건 세포를 재우는 냄새지. 아주 깊고 영원한 잠으로 인도하는 향기.’

샤를의 목소리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백시우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귓가를 맴도는 그 끔찍한 조언을 걸러냈다. 붉은 비상등이 기분 나쁜 주기로 깜빡일 때마다 밀실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내려앉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고막이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안구 표면이 메마르다 못해 핏줄이 터질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의 시선이 유리 격벽 바로 아래, 금속 프레임에 부착된 낡은 아크릴판으로 향했다. 붉은 경고등이 점멸할 때마다 아크릴판 위에 새겨진 활자들이 피에 젖은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감압 기밀실 보존 절차: 붉은색 등이 점멸할 시 매 호흡을 3초간 머금을 것. ]

백시우는 그 문장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대신 입안에서 혀끝으로 씹어 삼키듯 논리의 뼈대를 발라냈다.

‘매 호흡을 3초간 머금을 것.’

매우 자비롭고 합리적인 생존 수칙처럼 보였다. 급격한 감압 상태에서 폐의 기압을 유지하고 산소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과학적 조치처럼 위장되어 있었다. 극한의 공포에 질린 자들은 이 정교한 문장을 보는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숨을 들이마신 뒤 허파 가득 공기를 가두고 3초를 세기 시작할 터였다.

하지만 기압계의 바늘은 이미 위험 수치를 가리키며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틀렸어.”

백시우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숨결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약 이 수칙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 기압이 낮아진 상태에서 가슴을 부풀려 숨을 참는 행위는, 팽창하려는 공기를 폐포 안에 억지로 가두는 짓이다. 게다가 천장에서 분사되는 것은 단순한 공기가 아니다. 가연성 디메틸 에테르와 혼합된 신경 마취 가스.

공기를 허파 깊숙이 들이마신 채 3초 동안 머무르는 순간, 독성 물질은 폐 점막을 통해 일반적인 호흡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혈액에 침투한다.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차단되기 전에, 신경계가 먼저 마비되어 스스로 호흡을 멈추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즉, 안전 수칙의 탈을 쓴 이 문장은 희생자의 호흡 기관을 스스로 파괴하도록 유도하는 심리적 덫이었다. 설계자는 인간이 위기 상황에서 활자화된 규칙에 의존하려는 본능적 취약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공포를 동력원으로 삼아 작동하는 기만적인 언어 장치.

백시우는 오히려 가슴에 힘을 뺐다. 기압이 낮아지면 폐 속의 공기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밀려나가야 한다. 그는 입술을 아주 미세하게 벌린 채, 허파에 남은 잔여 공기를 실 한 가닥처럼 가늘게 뿜어냈다. 들어오는 압력을 거스르지 않고, 내부의 압력을 외부와 동조시키는 흐름.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

그것이 이 밀실이 강제하는 규칙의 모순을 깨부수는 유일한 열쇠였다.

‘오, 영리해. 정말 영리해, 내 본체.’

샤를이 머릿속에서 키득거렸다.

‘하지만 저기 있는 멍청한 형사 나리는 어쩌지? 귀여운 단발머리가 붉은 안개 속에서 아주 예쁘게 절여지고 있는데 말이야.’

백시우의 시선이 다시 유리창 너머로 향했다.

임다혜는 방화벽의 비상 제어 콘솔을 조작하려다 말고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정상적인 안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목조르기를 당하는 사람처럼, 그녀의 목줄기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턱 끝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수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벽면에 붙은 경고판을 본 것이 분명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가슴을 잔뜩 부풀린 채 숨을 참는 모습.

그녀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점멸등이 찰나의 순간 그녀의 얼굴을 비출 때마다, 코밑과 입술 경계선으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액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흡……!”

임다혜가 유리를 두드리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힘없이 미끄러졌다. 손톱이 강화유리 표면을 긁으며 끼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남겼다. 허파에 가득 찬 마취 가스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 그녀의 운동 신경을 빠르게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이 꺾였다. 바닥에 주저앉은 임다혜는 가슴을 움켜쥔 채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와 유리창 안쪽에 얼룩을 만들었다. 폐포가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가고 있는 징후였다.

그녀의 시선이 백시우를 향했다. 불신과 원망, 그리고 생존을 향한 처절한 갈망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머릿속에서 샤를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냥 놔둬. 어차피 우리를 살인마로 몰아붙이던 계집년이잖아. 저 여자가 여기서 숨이 끊어지면, 판게아의 비밀도, 우리 손목의 흉터도 전부 묻혀버릴 거야. 가만히 서서 숨을 뱉기만 해. 그럼 우리는 살아서 다음 방으로 갈 수 있어.’

샤를의 말이 옳았다. 손목에 새겨진 ‘P-099’라는 낙인. 이 가학적인 밀실 전체가 백시우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면, 자신을 사법 단죄하려는 형사는 가장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녀가 사라지면 추격자도 사라진다.

하지만.

백시우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기억의 심연, 암흑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아주 미세하고 희미한 빛 조각 하나가 요동치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현장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감각.

차가운 시체들의 숲을 헤치며, 살아있는 인간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달렸던 어떤 밤의 기억.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내면에 도사린 살인마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음의 궤적을 쫓아 산 자를 구해내던 자. 그것이 비록 깨어져 버린 파편일지라도, 지금의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자아의 중심축이었다.

“비켜, 샤를.”

백시우가 마음속으로 차갑게 명령했다.

‘뭐? 미쳤어? 저 여자를 구하겠다고? 네 이성이 얼마나 남았는지 잊은 모양인데……!’

“내가 결정해.”

백시우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감압실 벽면 구석, 액화 가스 배관과 연결된 안전 제어 펌프로 향했다. 굵은 금속 파이프 옆으로 서너 개의 전선과 구리 튜브가 얽혀 있는 구역이었다. 기압계의 바늘은 이제 한계선인 적색 구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백시우는 주머니에서 직전 방에서 챙겨온 무거운 쇠붙이를 꺼내 들었다. 샤를의 손길로 정교하게 다듬어졌던 가공 도구였다. 그는 펌프 제어 장치의 덮개를 조준했다.

깡-!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플라스틱 커버가 깨져 나가며 내부의 배선들이 드러났다. 황동색으로 빛나는 가압 제어 밸브와 그 옆을 지나는 파란색 유압 튜브.

백시우는 주저하지 않고 도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유압 튜브와 전선 뭉치 사이에 밀어 넣었다.

‘그 선을 끊으면 압력이 역류해! 한 번에 터져버릴 수도 있다고!’

샤를의 경고가 뇌리를 때렸지만, 백시우는 오히려 손목에 힘을 주어 도구를 비틀었다.

푸쉬이이익-!

강력한 압축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파란색 튜브가 찢어졌다. 튀어 오른 작동유가 그의 얼굴에 튀었지만, 백시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전선 뭉치를 통째로 뜯어냈다.

파지직!

스파크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밀실 내부의 붉은 경고등이 일시적으로 암전되었다. 동시에 천장의 분사구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쿠구구구궁.

바닥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제어 선이 끊어지자, 시스템은 비상 상황으로 인식하고 감압실과 인접 구역 사이의 압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강제 환기 모드를 가동했다.

유리 격벽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두 방을 가로막고 있던 강화유리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압력 차이를 견디지 못한 유리 표면에 수천 개의 미세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백시우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파앙-!

폭음과 함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기압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거센 바람이 두 방 사이를 휘몰아쳤다. 안개처럼 자욱했던 디메틸 에테르와 마취 가스가 깨진 격벽 너머의 환기구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허억……! 쿨럭! 쿨럭!”

임다혜가 바닥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찢어진 유리 파편이 뺨을 스쳐 지나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미친 듯이 신선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녀의 목덜미와 뺨에 묻은 붉은 피가 차가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백시우는 깨진 유리 더미를 밟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발밑에서 서글픈 소리를 내며 으스러지는 유리 조각들이 붉은 비상등 불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는 임다혜의 앞에 멈춰 섰다. 그녀의 권총은 이미 저 멀리 바닥으로 굴러간 지 오래였다.

임다혜는 젖은 눈으로 백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의문과, 경계,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감정이 번져 있었다.

“왜…… 나를……”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백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찰나에 불과했다.

그들이 서 있는 바닥 아래에서, 그리고 깨진 격벽의 천장 틈새에서, 쇠사슬이 감기는 듯한 기괴한 기계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철컹.

그것은 단순한 환기 시스템의 작동음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서 거대한 윤척 기어들이 완전히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였다. 이성의 마모 속에서도 백시우의 뇌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 규칙적인 균열.

12초의 지연 시간이 끝난 것이었다.

쿠우웅-!

임다혜가 쓰러져 있는 바닥 바로 위, 천장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강철 실린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게 벼려진 가압 피스톤 기어의 날이 붉은 조명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그 무자비한 칼날은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주저앉아 있는 임다혜의 목덜미를 향해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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