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완전히 일치하기 직전, 백시우는 내면에 억눌려 있던 극단적인 사체 청소부 인격 '샤를'의 속삭임이 고막을 타고 흐르는 것을 들으며 손을 문틈에 밀어 넣는다.
단단한 합금 프레임이 손가락 끝을 짓누르는 감각은 비현실적일 만큼 무거웠다. 손가락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기 전, 뇌척수액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전류가 전신을 지배했다. 고통이 통증이 아닌, 단순한 물리적 압박의 수치로 치환되는 기괴한 감각이었다.
‘오른쪽 세 번째 마디에 가해지는 하중, 약 40킬로그램 힘. 10초 내로 유압 실린더의 밸브를 차단하지 않으면 뼈가 박살 나겠네, 시우야.’
샤를의 나긋나긋한 음성이 귓가에서 기어나왔다. 붉은 표시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백시우의 동공은 고양이처럼 수축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시각적 명료함이 시조새의 화석처럼 굳어 있던 뇌의 구석구석을 깨웠다.
코끝을 찌르는 디메틸 에테르의 달콤하고 미미한 가스 냄새가 좁은 틈새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문이 닫히면 방 내부의 밀폐도는 완벽해진다. 가스가 일정 농도 이상 쌓인 상태에서 뒤편 복도에서 다가오는 침입자가 작은 스파크라도 일으킨다면, 이 방은 단 1초 만에 철제 관으로 변할 터였다.
다가오는 질척이는 발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사박, 사박.
젖은 가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 침입자와의 거리는 이제 방화벽 너머 불과 다섯 걸음 남짓이었다. 백시우는 이를 악물고 손끝의 감각을 아래로 뻗었다.
"안전 수칙 제3조……."
백시우의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스템 오류 시 수동 조작 레버를 건드리지 마시오."
설계자 오진우가 남겨둔 기만적인 규칙이었다. 수동 레버를 만지는 즉시 내부에 장치된 고압 전류가 방출되거나, 혹은 더 빠른 속도로 문이 닫히도록 설계되어 있을 터였다. 인간은 위기 상황에서 눈앞에 보이는 붉은색 수동 레버에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다. 오진우는 그 나약한 본기를 비웃으며 덫을 놓았다.
하지만 샤를의 지식은 레버 따위의 얄팍한 호기심을 비웃었다.
‘레버를 움직이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지. 진짜 흐름을 막으려면 심장을 찔러야 해.’
백시우는 골절기의 날카로운 끝부분을 방화벽 하단, 기압계와 연결된 금속 마운트 사이의 틈새로 밀어 넣었다. 목표는 외부로 노출된 기압 제어용 동관과 그것을 고정하는 황동 너트였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골절기의 손잡이를 쥔 오른손에 샤를의 잔혹한 완력이 실렸다. 인간의 근육이 낼 수 있는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힘이 손목 터널을 타고 뿜어져 나왔다.
끼이이익—!
쇠와 쇠가 맞물려 서러운 비명을 질렀다.
"이곳의 유압은 분당 12리터 급이야."
백시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샤를의 목소리가 그의 입을 통해 겹쳐 흘러나왔다.
"동관의 연결 너트를 비틀어 압력을 누출시킨다. 시스템은 배관 파열로 인식하고 비상 잠금 상태로 전환될 수밖에 없어.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온 힘을 다해 골절기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리눌렀다. 황동 너트의 나사산이 뭉개지며 불꽃이 튀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기압 방출음과 함께 회색빛 유압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백시우의 뺨에 뜨겁고 비릿한 기름이 튀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문틈에 끼어 있던 손가락을 짓누르던 우악스러운 힘이 일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10밀리미터도 남지 않았던 방화벽의 철문이 둔중한 철컥 소리와 함께 정지했다. 유압이 완전히 상실된 실린더는 힘을 잃고 덜렁거렸다.
물리적인 문 폐쇄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벽 뒤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멈추었다. 방화벽 너머의 침입자 역시 예상치 못한 고압 분출 소음에 걸음을 멈춘 것이 분명했다.
"하아, 하아……."
백시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거대한 해일이 밀려왔다. 샤를의 인격이 그의 신경망을 잠식하며 남겨둔 지독한 흔적이었다. 뇌의 전두엽 부근이 마치 뜨거운 인두로 지져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엄습했다.
‘어때? 내 솜씨가. 꽤 깔끔하게 표백했지?’
뇌리에서 울리는 샤를의 웃음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유해했다. 백시우의 입꼬리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틀려 올라갔다. 차갑고 잔혹한 미소가 거울도 없는 어둠 속에서 번졌다.
손끝이 제멋대로 까닥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유압유를 찍어 맛보려 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대로 샤를이라는 인격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았다.
"비켜…… 내 몸에서 나와."
백시우는 자신의 허벅지를 손톱이 박히도록 움켜쥐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통증을 통해서야 간신히 오리지널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있었다.
잔여 시간은 이제 8분 남짓.
인격을 교체할 때마다 영혼의 가장자리가 마모되어 나가는 감각이 뚜렷했다. 지우개로 문지른 도화지처럼, 자신의 본래 자아를 지탱하던 기억의 벽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정말로 사람을 죽였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이 두통 속에서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때, 부서진 유압 제어함의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스르릉.
너트가 뜯겨 나간 제어함의 하단 프레임 안쪽에서 낡은 철제 공구함 트레이가 비스듬히 미끄러져 나왔다. 먼지와 찌든 기름때로 뒤덮인 회색 플라스틱 트레이였다.
백시우는 감각적으로 그곳으로 기어갔다. 샤를의 잔류 감각이 그의 시선을 트레이 구석으로 인도했다.
그곳에, 어둠 속에서도 이질적으로 빛나는 작은 금속 조각이 있었다.
그것은 낡은 금속 리셉트 태그였다. 군대의 군인인식표 같기도 하고, 어떠한 자산의 관리 번호를 적어둔 라벨 같기도 한 얇은 알루미늄 판이었다. 백시우는 기름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 올렸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손가락 끝으로 표면에 음각된 글자를 더듬었다.
[ P-099 ]
그 글자를 인지한 순간, 백시우의 왼쪽 손목이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곳에는 거칠고 불규칙한 형태의 흉터 조직(Scar)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리한 메스로 여러 번 절개했다가 엉성하게 봉합한 듯한, 켈로이드성 피부가 흉측하게 튀어나온 자리였다.
백시우는 펜라이트를 켜서 흉터 부위를 비추었다.
빛이 닿자, 흉터의 일그러진 가죽 아래로 희미하게 솟아오른 기하학적인 선들이 드러났다.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피부 밑에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이식했거나, 혹은 살을 지져서 새겨 넣은 듯한 정교한 낙인이었다.
그 굴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백시우의 동공이 지진을 맞은 듯 흔들렸다.
흉터 조직의 미세한 굴곡이 가리키는 글자는 정확히 일치했다.
P. 0. 9. 9.
"이게…… 왜 내 몸에……."
머릿속에서 파편화된 기억이 왜곡된 형태로 솟구쳤다.
하얀 벽. 차가운 수술대.
머리 위에서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무영등의 백색광.
그리고 자신의 머리칼을 거칠게 깎아내던 바리캉 소리와 함께 귓가를 때리던 기계적인 목소리.
‘99호의 인격 분열 상태 양호. 판게아 백도어 이식 준비 완료.’
그것은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간 환영이었지만, 백시우의 전신을 얼어붙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이 단순한 프로파일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자기불신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 밀실의 설계자 오진우와 자신을 묶어주는 끈이 바로 이 기괴한 낙인이라면, 자신은 피해자가 맞는가? 아니면 이 잔혹한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이곳에 기어 들어온 괴물인가.
생각을 더 이어갈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방화벽 너머에서 유압이 상실된 시스템이 강제로 재부팅을 시도하는 기계음이 울렸다. 비상 정지 장치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으면, 잔여 압력으로 인해 문이 다시 닫히거나 가스가 폭발할 위험이 있었다.
백시우는 금속 태그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골절기를 다시 고쳐 잡았다.
"끝내야 해."
벽면에 설치된 비상 정지 장치의 플라스틱 커버를 골절기의 뭉툭한 손잡이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콰직!
투명한 아크릴 커버가 산산조각 나며 내부의 붉은색 와이어와 퓨즈박스가 노출되었다. 백시우는 망설임 없이 손을 집어넣어 배선 뭉치를 한꺼번에 움켜쥐고 바깥으로 뜯어냈다.
파지직!
푸른색 스파크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튀며 가죽장갑을 태웠다. 전선 통로를 타고 흐르던 전류가 끊기자,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합리한 기계 장치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동시에, 백시우가 등지고 있던 방화벽 반대편 벽면이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스스스스스—!
금속제 '지하 감압실'의 입구가 거칠게 개방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 매달린 붉은색 경광등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그러나 위협적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벽면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백시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어둠과 적색광의 교차.
그것은 새로운 심판대로 진입하라는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짓 같았다.
백시우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뒤편 통로에서 침입자의 발소리가 다시금 질척이며 속도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틈 사이로 뻗어 나오던 정체 모를 그림자가 방화벽 바로 앞까지 도달하는 것이 시야 끝에 걸렸다.
타앗.
백시우가 감압실의 차가운 철판 바닥으로 몸을 던지듯 넘어간 순간이었다.
정적을 깨고, 방의 사방에 설치된 노후한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 송출음을 뱉어냈다.
삐이이이—!
노이즈 섞인 금속성 마찰음 끝에, 지독하게 왜곡되고 낮게 가라앉은 기계 마이크 소리가 좁은 감압실 내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경찰의 진입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압식 주유 통제에 들어갑니다. ]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사전에 녹음된, 혹은 인공적으로 합성된 차가운 시스템의 음성이었다.
동시에 백시우가 밟고 선 철판 바닥 아래에서 둔탁한 모터가 돌아가는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시작된 진동이 발목을 타고 무릎까지 올라왔다. 등 뒤의 방화벽이 완전히 맞물려 닫히는 순간, 등 뒤를 지탱하던 공기의 흐름이 단절되었다. 새로 진입한 지하 감압실은 거대한 무덤의 내부처럼 차갑고 습한 원통형 철망 구조였다.
귀가 먹먹해지며 고막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찾아왔다. 침을 삼켜보았지만, 타들어 갈 듯 메마른 목구멍은 아무런 윤활유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허파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팽창하려 부풀어 오르는 감각에 가슴뼈가 조여들었다.
벽면에 걸린 퇴색된 액자가 적색광 아래에서 붉게 젖어 있었다. '감압실 비상 대응 수칙'.
백시우의 시선이 그 기만적인 활자 위에 멈췄다.
'수칙 1. 감압이 시작되면 절대로 숨을 내쉬지 말고 기도가 폐쇄될 때까지 참으시오.'
비열한 덫이었다. 감압 상태에서 숨을 참는 행위는 폐포를 파열시켜 내부에서부터 피를 쏟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백시우는 오히려 입을 반쯤 벌린 채 가늘고 일정하게 숨을 뱉어냈다. 폐 속의 공기가 기압차로 인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머리 위에서 거대한 윤척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끄으윽. 쇠와 쇠가 짓겨지며 내는 마찰음이 천장을 흔들었다. 기어 축의 회전은 매끄럽지 않았다. 일정한 주기로 회전하던 거대한 톱니바퀴가 특정 구간에 도달할 때마다, 약 12초간 무겁게 정지했다가 다시 물려 들어가는 미세한 지연 상태가 관찰되었다. 이성의 마모 속에서도 백시우의 뇌는 그 12초의 균열을 선명하게 기록했다.
그때, 지나온 방화벽의 두꺼운 강화유리 창 너머로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름때와 성에가 뒤엉킨 유리창 너머로 나타난 것은 단정한 단발머리와 날카롭게 날이 선 턱선을 가진 여자였다. 사법 공조 수사관, 임다혜.
그녀의 두 눈은 백시우를 발견한 순간 짐승처럼 번뜩였다.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권총이 강화유리 표면에 단단히 밀착되었다. 총구는 정확히 백시우의 미간을 겨냥하고 있었다. 삼중으로 강화된 유리막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굳게 다문 입술 모양은 명확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녀가 방화벽의 비상 개방 장치로 손을 뻗으려던 찰나, 천장의 스피커가 다시 한번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 감압율 40% 돌파. 기화성 연료 분사를 개시합니다. ]
치익-!
천장의 소독제 공급 라인 노출구에서 무색무취에 가까운 액체 미스트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코를 찌르는 것은 단순한 가스가 아니었다. 샤를의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디메틸 에테르와 원유의 미세한 휘발 성분이 뒤섞인 가연성 분무.
이 좁은 밀실에 가득 찬 정전기 하나만으로도 방 전체가 폭발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임다혜의 검지손가락은 이미 권총의 방아쇠를 절반쯤 당기고 있었다. 유리 너머의 그녀는 이 방이 어떤 폭탄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