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척수액을 타고 흐르는 냉기가 뇌간을 찌를 때, 감겨 있던 눈꺼풀이 경련하듯 떨렸다.

가장 먼저 찾아온 감각은 비린내였다. 쇠붙이가 녹슬어 문드러진 냄새와 단백질이 타들어 간 고약한 잔향이 콧구멍을 짓눌렀다. 들이쉬는 숨끝이 거칠게 갈라졌다. 바닥은 타일이었다. 그것도 수분을 잔뜩 머금어 미끄덩거리는 먼지투성이의 시멘트 타일.

"윽……."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통증에 손을 뻗었다. 손끝에 가장 먼저 걸린 것은 오른쪽 관자놀이 위쪽, 머리카락 사이에 흉측하게 돋아난 딱딱한 절개 흉터였다. 가죽을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실밥 자국이 손가락 끝을 타고 징그럽게 만져졌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고압 호스로 뇌세포 구석구석을 씻어내 버린 것처럼, 이름도, 신분도, 이곳에 오기 직전의 풍경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끈적한 암흑만이 의식의 심해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시야가 서서히 걷히며 회색빛 공간이 윤곽을 드러냈다. 사방이 사선으로 깎인 콘크리트 벽면으로 둘러싸인 좁은 방. 천장 구석에는 붉은색 표시등이 깜빡이며 불규칙한 박자로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철제 책상 하나와 구부러진 캐비닛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독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책상 밑에 흩어진 서류철 사이로 은색으로 빛나는 작은 표식이 보였다. 청소용 도구함의 경첩 부근에 고정된, 아주 일상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알루미늄 태그였다.

[P-099]

그 무미건조한 기호가 왜 눈가에 머물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묘하게도, 왼쪽 손목 안쪽에 새겨진 낡은 칼자국 모양의 흉터와 그 금속 표식의 크기가 일치한다는 착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의문은 더 깊어지지 못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한 액체가 턱끝에 맺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손을 뻗어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 전체가 무언가 축축하고 온도가 낮은 점액질에 젖어들었다.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끝을 눈앞에 가져갔다. 검붉은 점액. 피였다.

그 순간, 온몸의 털끝이 곤두서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기이한 정보들이 뇌 해마를 강타했다.

‘점도가 지나치게 높아. 공기 중에 노출된 지 약 4시간 경과. 응고 과정에서 섬유소원이 그물망을 형성했으나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상태. 이 정도 양이 일정한 궤적 없이 바닥에 흩뿌려졌다면, 동맥 파열이 아니라 횡격막 하부 혹은 대퇴부의 둔기 타격에 의한 유출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정교한 분석이 머릿속에서 물 흐르듯 튀어나왔다.

손가락을 조금 더 눕혀 피의 흔적을 매만졌다.

단순한 분석이 아니었다. 손끝의 미세한 근육들이 움직였다. 피가 묻은 바닥의 궤적을 따라 손을 허공에 휘저을 때마다, 뼈와 가죽을 어떤 각도로 도려내야 가장 깨끗하게 분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리적 감각이 척수를 타고 역류했다.

‘10번 갈비뼈 아래를 비스듬히 절개하고, 대정맥을 한 번에 결찰한 뒤 가죽을 벗겨낸다. 그래야 피가 사방으로 튀지 않고 배수구로 곧장 흘러가지.’

위장이 뒤틀렸다. 목구멍까지 뜨거운 신물이 치밀어 올랐다. 머리를 움켜쥔 채 바닥을 뒹굴었다.

"하아, 하아……!"

이것은 정상적인 프로파일러의 지식이 아니었다. 사체를 해체하고, 도륙하고, 그 흔적을 완벽하게 세척하는 살인마의 신체적 기억이었다. 내 안에 내가 모르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극심한 자기혐오와 공포가 가슴을 옥죄었다. 심박수가 분당 140회를 넘어서며 시야가 붉게 점멸했다.

살인마의 몸뚱이인가, 아니면 그를 쫓던 자의 영혼인가.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불신으로 이가 맞부딪쳤다. 하지만 육체의 공포가 정점에 달했던 순간, 안구 뒤편의 시신경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마치 감정의 스위치를 강제로 차단한 것처럼, 이성이 통증과 혼란을 무감각하게 짓눌렀다.

차가운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설계된 감옥이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벽면을 짚었다. 거친 시멘트 벽면 한가운데, 유독 하얗게 빛나는 아크릴 판 하나가 볼트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인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깨끗한 서체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제1경비초소 안전 행동 강령]

1. 본 초소는 외부 오염 물질 유입을 차단하는 1차 차단 구역이다. 당직자는 근무 중 보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2. 경비초소의 기계식 문은 비상 상황 발생 시 자동으로 폐쇄된다. 3. 당직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문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

"문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

문장을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모순이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기계식 문이 자동으로 폐쇄된다고 적어놓고는, 바로 다음 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문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상충하는 규칙의 틈새에 설계자의 악의적인 덫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만약 문이 닫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으로 폐쇄된다'는 규칙과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는 수칙이 충돌하여 물리적인 파멸을 부를 것이다. 아니면,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 이 방 전체가 밀폐된 무덤으로 변해 질식사하게 만들거나.

그때였다.

철커덕!

천장 위쪽에서 둔중한 기계음이 고막을 찢었다.

먼지 쌓인 배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쇠사슬이 이빨을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벽을 타고 진동했다.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았다.

두께가 최소 1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강철 방화벽 문이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하강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바닥을 향해 내려앉는 철문의 무게감은 압도적이었다. 저 아래에 발이나 손이 끼인다면 뼈가 으스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작됐군."

입술 사이로 마른 한숨이 흘러나왔다.

방화벽 문이 하강하는 속도는 초당 약 5센티미터. 바닥까지 닿는 데 남은 시간은 채 30초도 되지 않았다.

수칙의 문구가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회전했다.

'문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패닉에 빠져 하강하는 문 밑으로 몸을 던져 탈출하려 하거나, 주변의 철제 의자나 캐비닛을 문틈에 끼워 하강을 멈추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무감각한 이성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자? 저 엄청난 하중의 강철 문을 버티지 못하고 찢겨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몸을 던져 밖으로 나간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오히려 수칙을 깨뜨리고 탈출하려는 행동 자체가 설계자가 파놓은 가장 즉각적인 죽음의 함정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문을 닫히게 두어야 하는가?

아니,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방 안을 극도로 빠르게 훑었다. 기계식 방화벽 문의 하단 구석, 그리고 바닥 타일이 맞닿는 모서리 부분에 시선이 멈췄다.

타일의 마감 처리가 유독 그 부분만 매끄럽지 않았다. 미세하게 솟아오른 강철 돌출부. 그리고 방화벽 문 밑바닥에 뚫려 있는 작은 홈.

전형적인 기계식 걸쇠 장치였다.

문이 완전히 내려앉아 바닥의 돌출부와 맞물리는 순간, 내부의 잠금장치가 유압식으로 완전히 고정되어 안쪽에서는 영원히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즉, 문이 1밀리미터의 틈도 없이 바닥에 밀착되는 순간이 바로 '완전히 닫히는 상황'이자, 이 방이 밀실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12초."

하강하는 문과 바닥의 거리는 이제 한 뼘 남짓이었다.

이성을 대가로 내면의 괴물을 불러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자리에 한 사내의 형상이 들어찼다.

‘프랑스식 칼잡이, 사체 청소부, 오염물 정화의 대가 샤를.’

그의 지식과 신체 통제권을 뇌에 동기화하는 순간, 내 본래의 이성은 영구히 깎여 나갈 것이다. 한 번의 각성마다 주어지는 시간은 단 10분. 그 시간을 단 1초라도 초과하면 내 자아는 영원히 소멸하고 샤를의 인격이 이 육체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샤를."

짐승 같은 미소가 내 입꼬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비릿하며, 지독하게 우아한 프랑스식 억양의 속삭임이었다.

[오, 드디어 이 지저분한 곳에서 나를 부르는군, 시우야.]

손가락 끝의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떨림이 멈추고, 극도로 차갑고 정교한 긴장감이 신경망을 지배했다.

남은 높이는 10센티미터.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하강하는 거대한 강철 문틈 사이로 내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가죽과 뼈를 가르는 감각이 손끝을 타고 실시간으로 복제되어 들어왔다. 은색으로 빛나던 P-099 공구함에서 낚아챈 것은, 인간의 대퇴골을 부수어 절단할 때 사용하는 고탄성 탄소강 재질의 골절기였다.

묵직한 철의 감촉이 손바닥에 밀착되는 순간, 내 손은 더 이상 내 의지로 움직이지 않았다.

끼이이이이익!

강철 방화벽의 하단 모서리가 골절기의 날카로운 가공면에 닿자,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불꽃이 어두운 방안을 명멸할 때마다 샤를의 기괴하게 뒤틀린 미소가 콘크리트 벽면에 거대한 그림자로 비쳤다.

10센티미터, 5센티미터, 그리고 단 2센티미터.

골절기는 강철 문의 가공할 만한 하중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단단한 탄소강 몸체가 미세하게 휘어지며 기계식 문을 바닥에서 띄워 올렸다. 잠금 고리가 바닥의 돌출부와 맞물리기 직전, 모든 하강 운동이 일시 정지했다.

과부하가 걸린 천장의 모터가 헛돌며 쇠사슬을 쥐어짜는 금속음이 초소 안을 가득 채웠다.

성공이다. 완전히 닫히지도, 그렇다고 열리지도 않은 불완전한 틈새. 수칙의 모순을 물리적으로 고정해 버린 순간이었다.

[훌륭해, 시우야. 이 정교한 균열을 보라고. 완벽한 세척은 언제나 이 좁은 틈새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샤를의 목소리는 기름진 점액처럼 뇌의 주름 사이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안구 뒤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오른손의 통제권이 내 의지와 샤를의 본능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정확히 느껴졌다.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단편,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나 따뜻했던 기억 한 조각이 이 순간 영구히 마모되어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이 괴물의 힘을 빌린 대가였다.残여 시간은 이제 9분 남짓.

"닥쳐……."

이를 악물며 손을 뒤로 빼냈다. 골절기는 문틈 사이에 단단히 박힌 채 버티고 있었다.

그때, 코끝을 스치는 기묘한 냄새가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저 경비초소의 낡은 배수구에서 올라오는 락스나 소독제 냄새라고 치부했을 흔한 향이었다. 연구소나 병원 복도를 지나갈 때 흔히 마주치는, 제3자가 무심히 뿌려놓은 일상적인 위생의 잔향.

실제로 내 머릿속에 아주 짧은 인서트 씬이 스쳐 갔다. 푸른색 위생복을 입은 청소부가 아무 생각 없이 분무기를 흔들며 복도 바닥에 소독약을 뿌려대던 무의미한 일상의 풍경. 청소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닥의 붉은 얼룩을 문질러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샤를의 후각은 그 일상적인 풍경 밑에 숨겨진 치명적인 불순물을 단번에 분리해 냈다.

‘염소계 소독제가 아니야. 이 달콤하고 미미한 휘발성 향취. 분자 구조식 CH3-O-CH3.’

디메틸 에테르(Dimethyl ether).

무색무취에 가깝지만 극도로 미세한 마취성과 함께, 작은 스파크 하나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고인화성 가스였다. 이 방의 소독제 공급 배관 내부에서 미세하게 누출되고 있는 화학 물질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한 오염 방지용 소독 가스가 아니라, 유사시 방 전체를 거대한 폭탄으로 만들기 위해 설계자가 심어둔 은밀한 기폭제였다.

소름이 돋을 틈도 없이, 방안의 붉은 표시등이 일제히 꺼졌다.

대신 벽면의 좁은 틈새에서 쉭, 하는 기분 나쁜 고압 가스 분출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닫히다 만 방화벽 문 너머, 어두컴컴한 감압실의 통로 쪽에서 질척이는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사박, 사박.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가오는 발소리였다. 이 밀실의 설계자 오진우의 수하인지, 아니면 나를 공범으로 확신하고 추격해 온 사법 수사관 임다혜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 침입자의 손에 들린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가스 분출음은 점점 더 거세어지고, 침입자의 발소리는 방화벽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내 자아를 잠식해 들어오는 샤를의 잔혹한 충동이 척수를 타고 다시금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 걸음만 잘못 내딛는다면, 내면의 괴물에게 육체를 영구히 찬탈당하거나 가스 폭발의 잔해 속에 흔적도 없이 표백될 것이다.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그림자가 문틈 사이로 손을 뻗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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