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앉는 천장의 무게와 전천후 차단 금속판 속에서 마지막 비상 차단벽들이 완전히 내려와 탈출구를 완전히 영구 소실시키기 30초 전의 국면에 함몰된다.
귓가를 찢는 경보음이 붉은 비상등의 점멸과 함께 고막을 후벼팠다. 콘크리트 천장이 자아내는 거대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척추를 타고 올라와 머리뼈를 흔들었다. 공기는 이미 희박해졌고, 사방을 둘러싼 거울 벽면은 굉음 속에서 미세한 균열을 그리며 비명을 질렀다.
"시우 씨! 30초도 없어요! 당장 움직여야 해요!"
임다혜의 다급한 비명이 가래 끓는 기계음 사이로 간신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억센 악력이 내 오른쪽 손목을 쥔 채 바들바들 떨렸다. 손목뼈가 으스러질 듯한 통증 속에서, 검붉은 흉터가 기이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욱신거렸다.
‘P-099.’
피부 아래 이식된 금속 칩이 체온을 흡수해 달아오르며 뇌수로 차가운 전류를 쏟아냈다. 그 차가운 전류는 이내 내면의 가장 깊고 어두운 수조를 뒤흔들었다. 망막 위에 붉은 낙인처럼 번지는 그 식별 번호는, 내 손목에 새겨진 오랜 흉터의 모양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겹쳐졌다.
시체 청소부 샤를의 전용 도구함 귀퉁이에서 발견했던 그 낡은 금속 표식.
결국 나는 판게아의 실험실에서 조립되고 재단된 피조물에 불과했다는 뜻인가. 스스로를 정의하려 몸부림치던 이성적인 프로파일러 백시우라는 껍데기 밑바닥에, 네 명의 살인마를 구겨 넣은 괴물이 살아가고 있었다. 뇌의 연접부마다 스며드는 지독한 자기혐오가 명치를 짓눌렀다.
"비켜봐, 시우야. 이 천박한 쇳덩이들이 감히 나 한스의 기하학을 가로막는 꼴은 눈 뜨고 못 보겠으니까."
머릿속에서 오만한 목소리가 뇌 주름을 긁으며 솟구쳤다.
한스.
다중인격 제어 전이의 대가는 잔인했다. 머릿속 한편이 칼로 도려내어지는 듯한 극통과 함께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본래 자아의 이성이 영구히 마모되는 모래시계의 소리가 귓전에서 쉭쉭거렸다. 남은 시간은 단 10분. 이 선을 넘으면 내 육체는 오롯이 저 광기 어린 덫 설계자의 수중에 떨어지리라.
"정신 차려요, 백시우!"
임다혜가 내 어깨를 흔들었지만, 내 시선은 이미 그녀의 손에 쥐어진 다른 물건에 고정되어 있었다. 송 경사의 싸늘한 시신이 마지막 순간까지 움켜쥐고 있었던 고장 난 경찰용 무전기.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무전기를 빼앗아 쥐었다. 거친 플라스틱 그릴 뒤편, 손끝에 까칠한 요철이 걸려왔다. 미세하게 새겨진 점자의 배열.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임다혜가 남겨둔 이 마이크 그릴 뒤편의 실체적 조언이 뇌리에 번개처럼 내리쳤다.
"안 돼, 거울을 직접 보지 마!"
나는 덮쳐오는 시선 유도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턱을 꺾었다. 사방에 널린 거울의 중심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오직 차가운 금속 프레임의 극단적인 모서리만을 쏘아보았다. 거울 표면이 왜곡해 보여주는 허상의 공포 너머, 프레임 틈새로 감춰져 있던 진짜 물리적 접합부와 배관의 경로가 신경망처럼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이 허접한 오진우 놈의 대가리 수준이란."
한스의 인격이 내 구강을 지배하며 조소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안전 수칙이니 뭐니 떠들며 인간의 공포를 통제한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기계는 정직해. 설계의 틈새는 창작자의 오만만큼 넓어지기 마련이거든."
천장의 전천후 차단 금속판이 지면을 향해 무자비하게 하강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회전 쇠기둥들이 살점과 뼈를 갈아 마시기 위해 회전 반경을 넓혔다. 일정한 진동음.
두우웅― 두우웅―.
뇌수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한스의 기계적 연산은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굴러갔다. 과거 감압실 천장 기어 축을 분석했을 때 포착했던 그 기묘한 물리적 결함이 떠올랐다. 오진우가 설계한 모든 기계적 장치들은 '순지 무조건 반응' 매뉴얼의 절대적 통제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 심각한 유격을 품고 있었다.
12초.
기어 축이 한 바퀴를 완전히 회전하고 다음 압착 행정으로 넘어가기 전, 압력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가며 기계가 정지하는 지연 시간이었다.
"다혜 씨, 수갑 열쇠 내놔."
내 목소리는 이미 백시우의 것이 아니었다. 한스의 차갑고 고압적인 명령조에 임다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라고요? 지금 이 마당에 무슨 수갑을―"
"시간 없어. 당장 내놔!"
나는 그녀의 허리춤에서 금속 수갑 키를 강제로 낚아챘다.
동시에 코끝을 스치는 극도의 미미한 향취가 뇌하수체를 자극했다. 무색무취의 기체. 하지만 내 안의 샤를이 남겨놓은 동물적인 후각 인지력은 그것이 단순한 살균 소독제가 아님을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디메틸 에테르(Dimethyl Ether).
천장의 가열 기화 수조 방향으로 미세하게 흡입되며 흐르는 가연성 가스의 기류가 머릿속 3D 도면 위로 붉은 선을 그리며 입체적으로 시각화되었다. 방 안의 산소 농도가 역압에 직면해 급격히 떨어지는 시점, 이 가스를 임계점까지 한곳에 모아 기폭 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하학적 공간을 파괴하는 건 언제나 가장 약한 연결 고리 한 군데면 충분하지."
내 손가락이 기괴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한스의 손놀림은 마술사의 그것처럼 정교했다. 빼앗은 무전기의 배터리 커버를 뜯어내고 고압 콘덴서 배선을 이빨로 물어뜯어 짓겼다. 구리선이 벌거벗은 속살을 드러내며 흐느적거렸다.
그 끝에 분해한 금속 수갑 키의 가느다란 핀을 결합했다. 순식간에 조잡하지만 확실한 고전압 스파크를 방전할 수 있는 점전 침이 완성되었다.
"미쳤어요? 거기다 대고 불꽃을 튀기겠다는 거예요? 우리까지 통구이가 될 거라고요!"
임다혜가 내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나는 그녀의 몸을 거칠게 바닥으로 밀쳐내며 외쳤다.
"엎드려! 죽고 싶지 않으면 대들보 밑으로 대가리 처박아!"
쇠기둥이 회전하며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정수리 바로 위까지 육박했다.
남은 시간 12초.
천장의 대형 압착 패널이 바닥을 향해 최후의 진하를 개시하는 그 순간, 기어의 회전 주기가 일시적으로 멈추는 지연 시간이 시작되었다. 쿠르릉하는 기계음이 미세하게 잦아들며 쇠기둥의 회전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지금이다.
나는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가 가리켰던 배관의 접합부, 디메틸 에테르 가스가 가장 짙게 뿜어져 나오는 천장 가열 기화 수조의 분출 노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거울 파편이 뺨을 스쳐 지나가며 붉은 선을 그렸지만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타들어 가는 이성의 잔여 시간만이 뇌 속에서 경보를 울릴 뿐이었다.
노즐 구멍 속으로 급조한 점전 침바늘을 정밀하게 기습 삽입했다.
치지직!
무전기 배터리에서 쥔 고압 전류가 구리선을 타고 점전 침 끝단으로 쇄도했다. 극소의 푸른 불꽃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 괴물 자식들아, 다 같이 지옥으로 가자고."
한스의 목소리가 내 목구멍을 타고 광기 어린 웃음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스파크가 튀는 순간, 임다혜의 덜미를 움켜쥐고 정지 격벽 기둥 아래의 가장 깊고 좁은 최후의 엄폐각 속으로 몸을 포복시켰다. 두 사람의 몸이 콘크리트 바닥에 납작하게 밀착되는 것과 동시에, 천장 수조에 고여 있던 디메틸 에테르 배기류가 점화원의 불꽃을 집어삼켰다.
화학적 역습의 시작이었다.
콰아아앙―!
고막을 마비시키는 굉음과 함께 시야가 온통 백색의 화염으로 뒤덮였다. 밀폐된 거울방 내부의 기압이 임계점을 넘으며 발생한 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우리가 숨은 격벽 기둥 위로 엄청난 양의 파편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폭발의 충격파가 등 뒤를 후려쳐 숨이 턱 막혔다. 열기가 피부를 태울 듯이 엄습했지만,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엄폐각은 폭풍의 직사선을 비껴가게 만들었다.
사방을 메우고 있던 수백 개의 거울이 일시에 박살 나며 은빛 모래폭풍처럼 허공에서 휘날렸다.
오진우가 자랑하던 그 견고하고 가학적인 밀실의 규칙이, 그가 남겨둔 사소한 기계적 지연 시간과 화학 가스의 누출이라는 모순에 의해 스스로를 집어삼킨 것이다. 가장 고되고 좁은 절망의 구석에서 일구어낸 완벽한 물리적 반격이었다.
"쿨럭! 쿨럭!"
임다혜가 기침을 토해내며 먼지 구덩이 속에서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렸다.
주변을 가득 채웠던 붉은 비상등은 완전히 소멸했다. 자욱한 회색 연기와 소독제 타는 냄새, 그리고 매캐한 화학 물질의 잔향만이 사방을 표백하듯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먼지 안개 너머로,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완전 봉쇄 상태의 철갑 제어벽 도어 본체가 보였다.
두꺼운 강철판은 폭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힌지가 뜯겨 나간 채, 거칠게 탈거되어 비스듬히 자빠져 있었다. 일그러진 철문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연기 먼지 웅덩이 너머,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주거 연구센터 내부 깊숙한 마지막 방의 풍경이 서서히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의 파란 LED 불빛들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눈동자처럼 우리를 내려다보며 명멸하고 있었다.
속이 뒤틀렸다.
한스의 인격이 뒤로 물러나며 남긴 자리는 끈적하고 차가운 타르를 삼킨 것처럼 불쾌했다. 의식의 경계선이 사정없이 흐려졌다. 뇌를 파고드는 극통과 함께 시야 가장자리에 누런 그을음 같은 환각이 일었다. 10분의 제한 시간은 간신히 넘기지 않았으나, 본래 자아의 이성에 새겨진 마모의 흔적은 복구할 수 없는 흉터로 남았다. 주먹을 쥐려 했으나, 점전 침을 쥐고 있던 왼손가락들이 사후강직이라도 온 것처럼 단단히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하나씩, 강제로 손가락을 부러뜨리듯 펴냈다. 손바닥 가득 검게 그을린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백시우 씨, 정신 들어요?"
임다혜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는 이명 너머에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일그러진 수납장 잔해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온통 재를 뒤집어쓴 몰골이었지만, 총을 쥔 손끝만큼은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며 어둠 속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가 딛고 선 구두 끝에 치여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틱,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먼지 속을 구르는 지극히 사소한 물건. 하지만 내 눈은 본능적으로 그 표면에 인쇄된 붉은 로고를 포착했다.
[판게아 그룹: 행동과학연구소]
그 아래에 반쯤 지워진 글씨로 기재된 직책과 이름이 망막을 찔러왔다.
[수석 연구원: 백시우]
목울대가 뜨겁게 죄어왔다. 심장이 늑골을 사정없이 두드린 것은 가스 폭발의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단순히 통제당하고 조립된 실험체가 아니었다. 이 잔혹한 인격의 분열과 덫을 설계한 최초의 칼날을 쥔 자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인과율의 은유. 거대한 죄책감의 닻이 심해 밑바닥으로 나를 끌어내렸다.
"여긴 대체……."
임다혜가 신음하듯 내뱉으며 부서진 철문 틈새로 발을 디뎠다.
우리가 마주한 공간은 차가운 기계실이 아니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것은 천장까지 닿은 거대한 마호가니 책장들이었다. 수천 권의 가죽 양장본들이 뿜어내는 오래된 종이 냄새와 먼지, 그리고 그 틈새에 미세하게 섞인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과거의 기억이 경계선도 없이 현재의 시야 위로 겹쳐 흘렀다. 비 내리는 창틀, 째깍거리는 괘종시계 소리, 그리고 고풍스러운 카펫 위로 검붉게 번져가던 액체의 점성.
내가 망각했던 첫 번째 살인 사건의 현장이 거울방 너머에 이토록 정교하게 박제되어 있었다.
방 중앙에는 수십 대의 서버 랙이 푸른 불빛을 명멸하며 거대한 콘솔 테이블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심판의 주랑' 전체 도면이 실시간으로 박동하듯 깜빡였다. 그리고 그 콘솔 한가운데, 두꺼운 유리 케이스에 보관된 낡은 일지 한 권이 보였다.
나는 납덩이를 매단 것 같은 다리를 끌며 다가갔다. 유리 표면에 닿은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렸다. 먼지 아래 드러난 일지의 첫 페이지에는, 내 손글씨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날카롭고 강박적인 필체가 박혀 있었다.
[프로젝트 '아바타' - 4단계 동기화 수칙. 법이 심판하지 못하는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 괴물이 되기로 했다. 한스는 이 방을 잠글 것이고, 샤를은 흔적을 지울 것이다. 그리고 백시우는…….]
페이지의 뒷부분은 강제로 찢겨 나가 있었다.
"시우 씨,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이 일을 시작했다는 건가요?"
임다혜의 총구가 천천히 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단순한 불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믿어왔던 사법적 정의의 기초가 통째로 흔들릴 때 발생하는 근원적인 공포였다.
그때, 침묵하던 콘솔 화면이 거친 노이즈를 일으키며 전환되었다.
녹화된 듯한 비디오 화면 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하얀 연구 가운을 입은 채, 등 뒤의 책장을 정리하던 그가 천천히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의 나는 지금의 나처럼 혼란스러워하지도, 스스로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지성만이 그 눈동자 속에서 기괴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화면 너머의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술을 열었다.
"이 기록을 보고 있다면, 오진우는 스스로가 지배자라 믿으며 파멸했을 것이고 내 자아는 임계점에 달했을 거다."
화면 속의 내가 건조하게 웃었다.
"축하한다, 백시우. 마침내 스스로 만든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것을."
틱.
화면이 꺼짐과 동시에, 우리가 서 있는 마호가니 바닥 아래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울렸다. 바닥의 나무 판자들이 연동 기어에 의해 좌우로 가라앉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원형 지하 계단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 흑색의 구멍 밑바닥에서부터, 젖은 비 내음과 함께 째깍거리는 오래된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가 규칙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