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쨍그랑!

고막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사방을 메우고 있던 거울 면의 광선들이 일제히 소멸했다. 어둠이 몰려오기 무섭게, 은빛 거울 유리가 사방으로 폭산했다. 수천 개의 은빛 파편이 허공을 가르며 칼날처럼 흩날렸다.

백시우는 반사적으로 임다혜의 어깨를 밀쳐내며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뺨을 스치고 지나간 유리 조각이 가느다란 붉은 선을 그렸고, 차가운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파편 비가 쏟아지는 장치석 중앙, 자욱한 먼지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오진우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실루엣을 유지한 채, 기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백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아슬아슬했군요, 시우 씨. 하지만 역시 내 기대대로입니다."

오진우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맑고 온화했다. 마치 잘 정돈된 학술회장에서 오랜 동료를 환대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들어찬 것은 타인의 이성이 망가지는 궤적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관음증적 광기였다.

백시우는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머릿속이 깨질 것처럼 울렸다. 뇌 속 깊은 곳에 박힌 제어 장치가 강제로 구동되며, 한스와 샤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머지 인격들의 목소리가 이명의 형태로 고막을 찔러댔다.

'이 가짜 자식의 목을 따버려. 지금 당장!' '아니, 청소해야 해. 이 더러운 거울 조각들과 흩어진 핏자국을 전부 흔적도 없이 지워버려야…….'

머릿속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백시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 통증조차 희미했다.

오진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백시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구두 굽이 깨진 거울 조각을 짓밟으며 서늘한 마찰음을 냈다.

"괴롭겠지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당신의 뇌에 심어진 그 네 명의 악마는 판게아가 강제로 주입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가 그 끔찍한 첫 살인 사건의 죄책감에서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의 영혼을 조각내어 창조해 낸 창작물들이니까요. 나는 그저 판게아의 기술을 빌려 그것들을 완벽하게 조율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에 불과합니다."

그가 백시우의 손목을 가리켰다. 낙인처럼 새겨진 흉터, 그리고 그 아래 흐릿하게 빛나는 금속 표식 'P-099'.

"당신이 발견했던 시체 청소부 전용 도구함의 낡은 금속 표식 'P-099'.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그것이 단순한 장비 일련번호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건 당신 자신의 번호입니다. 판게아 그룹의 마인드 해킹 백도어 실험체 99호. 당신이 바로 그 조작된 껍데기이자, 우리가 완성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입니다."

오진우의 조롱 섞인 환대가 방 안의 차가운 공기를 타고 흘렀다. 백시우는 숨을 죽였다. 머릿속의 폭풍이 한순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극심한 정신적 쇠약 속에서도, 그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본능이 오진우의 목소리 아래 깔린 미세한 균열을 포착해 냈다.

백시우는 바닥에 떨어진 고장 난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임다혜가 남겨두었던, 송 경사의 유품인 무전기였다. 손가락 끝으로 마이크 그릴 뒤편을 더듬었다. 미세하게 돋아난 점자 형태의 흠집들이 지문 끝에 걸렸다.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임다혜가 남긴 실체적 조언. 백시우는 오진우의 광기 어린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깨진 거울의 프레임 가장자리에 남은 기하학적 수평선을 시선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자 왜곡되어 보이던 오진우의 위치와 방의 배치가 단숨에 교정되었다. 오진우가 서 있는 곳은 그가 뿜어내는 푸른 광선이 만들어낸 시각적 착시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그는 실제보다 약 15도 왼쪽, 기계 장치의 동력 축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사각지대를 이용해 자신을 더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포착하게 만들려던 설계자의 얄팍한 시각 트랩이었다.

백시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핏방울이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예술품이라……."

백시우가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안에는 뼈를 깎아내는 듯한 냉소적인 이성이 깃들어 있었다.

"오진우, 네가 설계했다는 그 '첫 살인 사건'의 시나리오. 참 눈물겨울 정도로 정교하더군. 하지만 짝퉁은 아무리 화려하게 가공해도 결국 위작에 불과해."

오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그 우아한 미소 뒤로 아주 순간적인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위작이라니요? 당신의 뇌에 각인된 그 기억의 고통이 아직도 느껴지지 않는 겁니까?"

"그래, 고통스럽지. 하지만 그 고통은 네가 심어놓은 기만적인 규칙 때문이 아니라, 네가 저지른 그 허접한 논리적 모순 때문에 느껴지는 역겨움이다."

백시우는 흔들리는 몸을 벽에 기대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시선은 오진우의 눈을 넘어, 그 뒤편에서 불길하게 박동하고 있는 인공 인격 제어 장치와 기어 시스템으로 향했다.

"네가 방금 말한 첫 살인 사건의 시간대. 너는 내가 자정 직후에 피해자를 살해하고, 샤를의 방식을 모방해 사체를 산성 세제로 표백했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그 증거로 내 손목의 흉터와 P-099 낙인을 제시했고."

"사실이 그러니까요."

"아니, 틀렸어."

백시우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자정 직후의 살인이라면, 피해자의 위장 속 내용물의 소화 정도와 혈액 침강 속도가 일치하지 않아. 네가 보여준 그 '재구성된 밀실'의 온도 제어 장치는 섭씨 18도로 고정되어 있었지. 하지만 샤를의 화학적 표백 공식이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최소 섭씨 24도 이상의 상온이 유지되어야 해. 18도에서는 산성 반응 속도가 지연되어 사체 표면에 기괴한 얼룩이 남을 수밖에 없거든. 샤를처럼 흔적 소멸에 병적인 강박을 가진 존재가 그런 기초적인 온도 계산을 틀렸을 리가 없어."

오진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또 하나."

백시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걸음은 비틀거렸지만, 눈빛만큼은 오진우의 심장을 꿰뚫을 듯 매서웠다.

"살인 도구의 배치다. 피해자의 목에 남은 자흔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지. 그건 범인이 왼손잡이이거나, 혹은 피해자의 등 뒤에서 오른손으로 덮쳤을 때만 가능한 각도야. 하지만 네가 무대 장치처럼 꾸며놓은 그 방의 흉기 거치대는 오직 오른손잡이의 동선에만 맞춰 설계되어 있었어. 동선과 흔적의 충돌. 이건 프로파일링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

백시우는 가슴을 펴고 오진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거울 프레임 모서리를 기준으로 정렬된 시야 속에서, 오진우의 왜소한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너는 천재 설계자가 아니야. 내 뇌 속에 이식된 인격들의 지식과 판게아의 데이터를 훔쳐다가, 그럴싸하게 짜맞춘 삼류 모방범에 불과하지. 내 기억을 지우고 왜곡할 수는 있었을지언정, 내 오리지널 본능이 가진 정체 수사감까지 기만할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백시우……!"

오진우의 이빨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우아한 가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가 감히 내 설계를 모독해? 이 완벽한 심판의 주랑을?"

"완벽하다고?"

백시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 방의 기계 장치만 해도 그래. 네가 자랑스럽게 가동한 그 마멸 장치와 천장 기어 축. '순지 무조건 반응' 매뉴얼에는 미세 오차 없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간다고 적혀 있더군. 하지만 감압실 천장 기어 축에서 이미 증명됐지. 네 기계들은 회전 주기마다 정확히 12초의 빈틈, 즉 물리적 유격을 가지고 돌고 있어. 기어의 톱니가 마모되는 속도를 계산하지 못한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지."

백시우가 손가락으로 제어 장치 상단의 회전 축을 가리켰다.

"지금 저 장치도 마찬가지야. 12초의 지연 시간. 그 유격이 존재하는 한, 네가 말한 10분의 마멸 프로세스는 완성될 수 없어. 기어의 물리적 유격이 누적되면서 실제 마멸 충격파의 타이밍은 매 주기마다 어긋나고 있으니까. 네가 만든 지옥은, 결국 그 12초짜리 고물 톱니바퀴에 발목이 잡힌 삼류 연극에 불과해."

"닥쳐!"

오진우가 마침내 평정심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평생을 '지고한 설계자'로 자처하며 타인의 정신을 조율해 왔다고 믿었던 그의 자존심이, 백시우의 칼날 같은 논리에 의해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것이다.

"네까짓 실험체 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내가 너를 만들었고, 내가 이 방의 규칙을 지배한다!"

오진우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콘솔 위에 설치된, 붉은색 안전 커버가 씌워진 최후의 물리 봉쇄 셧다운 레버를 움켜쥐었다.

"완벽하지 않다면, 아예 흔적도 없이 부숴버리면 그만이야. 너와 그 계집년, 그리고 이 방에 남은 모든 쓰레기들을 함께 짓부수어 주지!"

그가 미친 듯이 레버를 아래로 꺾었다.

쿠구구구구―!

비밀 거울방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거대한 시멘트 가루와 먼지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방의 벽면에서 튀어나온 육중한 강철 쇠기둥들이 기괴한 금속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압착 쇠기둥 모드.

방 전체를 거대한 분쇄기처럼 만들어 내부의 모든 생명체를 납작하게 짓눌러버리는 최후의 물리적 멸균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었다.

"시우 씨!"

임다혜가 비틀거리며 백시우의 팔을 붙잡았다. 차단벽들이 사방에서 내려앉으며 그들이 들어왔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어두운 공급 배관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미미한 냄새가 백시우의 코끝을 스쳤다. 무색무취에 가깝지만, 샤를의 감각을 동기화한 그의 후각은 그것이 단순한 소독제가 아님을 즉각 알아차렸다.

디메틸 에테르.

극도의 가연성을 지닌 가스가 배관을 타고 방 안으로 미세하게 누출되고 있었다. 이 붕괴하는 밀실 속에서, 그것은 파멸의 도화선이 될 수도, 혹은 마지막 탈출의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탈출해야 해요! 이대로 있으면 30초도 못 버티고 깔려 죽어요!"

임다혜의 외침이 붕괴하는 소음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천장의 전천후 차단 금속판들이 차례로 맞물리며 마지막 남은 비상 탈출구의 틈새를 영구히 폐쇄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철문이 내려앉는 굉음이 울릴 때마다 바닥이 요동쳤다. 사방을 둘러싼 거울 파편들이 진동에 흔들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탈출구 소실까지 남은 시간, 단 30초.

백시우는 무너지는 천장과 다가오는 쇠기둥들을 응시하며, 뇌 속에서 흘러넘치는 본래 자아의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 냈다. 그의 눈동자에 차가운 불꽃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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