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굉음과 연기 먼지 속에서 완전 봉쇄였던 철갑 제어벽 도어 본체가 거칠게 탈거되어 나가며 먼지 웅덩이 너머 주거 연구센터 내부 깊숙한 마지막 방이 노출된다.
콰아아앙!
고막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강철 문짝이 힘없이 밀려 나갔다. 매캐한 연기와 백색의 소독 가스가 뒤엉킨 나선형의 소용돌이 너머로, 마침내 심판의 주랑 그 가장 깊고 어두운 심장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가라앉은 초침 소리가 불길하게 고막을 긁어댔다. 째깍, 째깍.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한스 인격의 동기화 제한 시간 10분. 내 이성의 수명은 이제 단 수십 초도 남지 않았다. 신경 서포터가 과부하로 인해 척수 언저리에서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뇌세포가 하나씩 사멸해 가는 감각은 기괴할 정도로 선명했다. 머릿속에서 한스의 오만한 비웃음과 샤를의 서늘한 중얼거림이 날카로운 이명처럼 뒤섞여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흔들리는 시야를 다잡기 위해 짓무른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비린내 나는 붉은 액체가 미각을 자극하자 비로소 희미해지던 현실의 윤곽이 가까스로 고정되었다.
연기가 걷히는 공간 너머, 수십 대의 서버 랙이 푸른 빛을 깜빡이며 거대한 콘솔 테이블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채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사내의 영정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오진우였다.
그는 마치 오래된 연극의 관객처럼, 박수조차 치지 않은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실크 셔츠와 한 올 흐트러짐 없는 머리칼. 그의 온화한 미소는 이 지옥 같은 밀실의 풍경과 지독할 정도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결국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군, 백시우. 아니, 99호라고 불러주어야 하나?"
오진우의 음성이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 위로 내려앉았다.
그의 시선이 내 왼쪽 손목으로 향했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흉측하게 덧난 화상 자국. 그 흉터(Scar) 아래 깊숙이 박혀 있던 금속 표식 'P-099'의 윤곽이 붉은 핏물 사이로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그것은 내가 판게아 연구단체에서 자행된 비윤리적 인격 이식 실험의 99번째 피실험체이자,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조립식 괴물이라는 명백한 낙인이었다. 시체 청소부 전용 도구함에서 발견했던 그 낡은 금속 표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 존재의 시발점이자 저주받은 징표.
"네 안의 괴물들이 네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군."
오진우가 콘솔의 붉은 버튼을 부드럽게 눌렀다.
두두두둥!
사방의 벽면을 감싸고 있던 거울들이 기계음과 함께 미세하게 각도를 틀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거울이 서로의 빛을 반사하며 기괴한 시각적 미로를 만들어냈다. 눈을 두는 곳마다 내 비참하고 일그러진 얼굴만이 무한히 증식되어 다가왔다. 어지러움이 극에 달해 쓰러지려던 찰나, 주머니 속에서 딱딱한 금속의 촉감이 손끝에 걸렸다.
사망한 송 경사의 손에서 거두었던 고장 난 무전기.
그 차가운 마이크 그릴 뒤편, 손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세한 점자들의 배열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임다혜가 남겨두었던 그 찰나의 조언은 단순한 힌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거울방이 가진 기만적인 시선 유도 트랩을 무력화하는 유일한 열쇠였다. 거울의 표면을 보는 순간, 굴절된 레이저 센서와 왜곡된 거리감에 속아 치명적인 덫을 밟게 된다.
나는 눈동자를 극도로 긴장시킨 채, 사방에서 번쩍이는 거울의 중심을 철저히 외면했다. 오직 거울과 거울이 만나는 어둡고 투박한 프레임의 모서리, 그 미세한 경계선만을 끈질기게 쫓으며 발을 내딛었다. 빛의 왜곡이 걷히고, 거울 뒤편에 숨겨진 가느다란 가시광선 센서들의 궤적이 비로소 정직하게 눈에 들어왔다.
"영리하군. 하지만 기계는 인간의 임기응변보다 정직하고 빠르지."
오진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천장에서 무거운 기계음이 울리며, 거대한 반원형의 강철 기어 축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짓 추리실과 감압실에서 나를 압착하려 했던 바로 그 살인적인 기계식 톱니바퀴 장치의 변형체였다. 거대한 강철 이빨이 내 머리 위로 하강하며 공기를 짓눌렀다. 피할 곳은 없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연산 장치는 이미 기동하고 있었다. 감압실 천장에서 관찰했던 그 장치의 치명적인 설계 결함. 매뉴얼에 기재된 '순지 무조건 반응'의 규칙과 달리, 이 거대한 기어 축의 회전 주기에는 미세한 물리적 공백이 존재했다.
12초.
동력 전달 기어가 맞물려 역방향으로 전환되는 찰나의 지연 시간. 한스의 정밀한 역학 분석이 내 신경망을 타고 흐르며 정확한 타이밍을 산출해 냈다.
7, 6, 5……
나는 하강하는 강철 축을 향해 오히려 상체를 들이밀었다. 오진우의 눈동자에 순간적인 경악이 스쳤다.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무모한 돌진이었으니까.
하지만 정확히 12초가 되는 순간, 우웅 하는 모터의 과부하 소음과 함께 기어의 회전이 0.1밀리초 동안 정지했다. 유격이 발생한 그 좁은 틈새로 내 손에 쥐여진 무전기 본체와 부서진 철갑 도어의 파편을 사정없이 쑤셔 넣었다.
콰직! 콰콰쾅!
거대한 힘의 불균형을 이기지 못한 기어 축이 제풀에 겨워 비틀리며, 내부의 톱니들이 서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나를 짓누르려던 거대한 살인 장치는 굉음과 함께 스스로 붕괴하며 멈춰 섰다.
"이런 허접한 기계 장치로 나를 묶어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오진우?"
내가 한스의 오만한 목소리를 빌려 차갑게 뱉어냈다. 연기 자욱한 잔해를 밟고 서서, 나는 천천히 오진우를 향해 다가갔다.
오진우는 잠시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이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하군, 백시우. 하지만 네 뇌는 이미 한계야. 느낄 수 있겠지? 네 오리지널 자아의 영토가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네가 이 방을 벗어난다 한들, 결국 네 육체를 차지하는 것은 한스나 샤를 같은 살인마들일 뿐이다. 너는 결국 파멸한다. 그것이 내가 설계한 이 게임의 진짜 엔딩이니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머릿속의 시계가 마지막 10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성이 마모되어 유기적인 전자기판처럼 타들어 가는 감각이 척수를 지배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확신이 내 발걸음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아니, 틀렸어."
나는 붕괴된 기어 장치 너머로 오진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네가 나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하겠지. 판게아의 기술을 이용해 나에게 살인마들의 인격을 심고, 인공적인 지옥을 만들어 나를 조종하려 했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내 잃어버린 첫 수사의 기억은 다른 이야기를 하더군."
머릿속의 어둠 속에서, 찢겨 나갔던 일지의 마지막 장이 완벽한 활자로 복원되며 내 뇌리에 박혔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주입된 기억이 아닌, 나 스스로가 봉인해 두었던 진짜 진실이었다.
"백시우는…… 괴물들을 담는 그릇이자, 그들을 부리는 사냥꾼이 되기로 했다."
나직한 내 목소리가 거울방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내가 이 수술을 자청한 거다, 오진우."
오진우의 미소가 처음으로 완벽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동자에 낯선 혼란과 공포가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너라는 거대한 괴물, 사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법망을 비웃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사냥하던 너를 잡기 위해선 평범한 프로파일러의 이성으론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 판게아의 실험대에 올랐다. 네가 뿌려놓은 가장 잔혹한 살인마들의 뇌 영역을 내 머릿속에 이식하고, 그들의 기량과 지식을 내 통제하에 두기 위해 내 영혼을 반쯤 팔아넘긴 거지."
이것이 내 사라진 기억의 진짜 전말이었다.
나는 희생자가 아니었다. 나는 이 지독한 사냥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의 가면을 쓴 사냥꾼이었다.
머릿속에서 세차게 진동하던 네 개의 인격들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한스도, 샤를도,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다른 인격들도 내 진짜 의도와 마주하자 거친 폭주를 멈추었다.
나는 내면의 심연을 향해 차갑게 선언했다.
'너희는 내가 창조한 무기다.'
머릿속의 정신적 지분들이 요동쳤다. 그들은 내 육체를 찬탈하려던 탐욕스러운 기생충들이 아니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배치한 나의 소수 지분들일 뿐이었다.
'나를 삼키는 순간, 너희 역시 실체 없는 유령으로 소멸할 뿐이다. 하지만 나와 타협한다면, 내 의도된 사법의 칼날 아래서 너희가 갈망하는 그 정교한 도살과 흔적의 소멸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다. 내 안에서, 나의 도구로서 영원히 살아라.'
이것은 굴복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정신 분석적 자아 통합 기제였다. 영혼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대신, 각 인격이 가진 물리적 스펙과 지식을 내 오리지널 자아의 지배하에 완전히 귀속시키는 극적인 계약.
바스스스.
머릿속을 지배하던 극심한 통증과 과부하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눈앞을 흐리던 붉은 노이즈가 걷히고, 내 눈빛은 이 세상의 어떤 거울보다도 맑고 서늘하게 냉접되었다.
한스의 정교한 기계 분석력, 샤를의 강박적이고 정밀한 신체 제어 능력, 그리고 사체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키는 표백의 감각이 내 하나의 자아 속으로 물 흐르듯 통합되어 들어왔다.
"자아 상태의 마모……? 아니, 그건 너 같은 삼류 설계자가 내 한계를 규정짓기 위해 만든 착각일 뿐이야."
나는 가볍게 발을 내딛었다. 소독제 공급 라인 내부에서 오직 샤를만이 포착할 수 있었던 그 미미한 무색무취의 잔향—디메틸 에테르 가스의 기화 성분을 내 손끝의 감각이 완벽하게 감지해 내고 있었다. 조금 전의 폭발은 단순한 도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거울방 전체를 완벽한 연소 조건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오진우는 휠체어의 제어장치를 조작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그의 등 뒤는 내가 붕괴시킨 기어 축의 잔해로 막혀 있었다.
"너, 너는 대체……!"
오진우의 음성이 사정없이 떨렸다.
나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샤를의 정밀한 신체 역학이 내 근육을 지배했고, 한스의 가학적인 궤적 연산이 내 동선을 그렸다. 단 한 걸음에 오진우의 코앞까지 도달한 내 손틀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척.
오진우의 목덜미를 낚아챈 내 오른손 끝에 차가운 금속 날이 닿았다. 한스가 붕괴된 기어에서 뜯어낸 날카로운 파편 칼날이었다. 동시에 내 왼손은 샤를이 사체를 무력화할 때 사용하는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경동맥 압박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한스의 사나운 함정용 칼날과 샤를의 서늘한 정밀 압살법이 결합된, 기괴하면서도 완벽하게 효율적인 결합 자세가 오진우의 턱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감싸 안았다.
"이제 진짜 심판을 시작해 볼까."
내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서늘하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