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방의 거울 속에서 차가운 유인용 레이저 격발 도선들이 은색 광선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거울의 매끄러운 표면을 타고 굴절된 빛줄기들은 기하학적인 격자무늬를 그리며 탈출용 회전문 앞의 공간을 사정없이 조여 왔다. 붉은 가스가 환기구 슬릿을 타고 기어 나오는 소리가 뱀의 슉슉거리는 숨소리처럼 방 안을 채웠다. 은색 광선 중 몇 가닥이 가스 노즐의 끝부분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갈 때마다 대기 중에 미세한 타는 냄새가 섞여 들었다.

머릿속이 쪼개질 듯이 아팠다. 한스의 인격이 백시우의 전두엽을 장악한 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고작 30초도 남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턱끝에서 툭 떨어졌다.

"비켜, 시우야. 이 허접한 거울 장난감은 내가 직접 부숴버릴 테니까."

내면에서 울리는 한스의 목소리는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오만했다. 하지만 백시우의 신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왼쪽 손목 안쪽, 살가죽을 뚫고 나온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오른 흉터가 불덩이를 얹은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낡은 시체 청소부의 도구함 바닥에서 보았던 녹슨 금속판의 글자, 그리고 자신의 손목에 깊게 새겨진 낙인.

'P-099.'

그것은 단순한 흉터가 아니었다. 판게아 그룹이 자행한 인공 인격 삽입 실험의 피조물, 아흔아홉 번째 실험체에게 부여된 잔혹한 일련번호였다.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살인의 기억과 이 괴물 같은 인격들이 모두 거대한 실험실의 통제 하에 조립된 결과물이라는 자각이 뇌리를 스쳤다. 자아를 잃어버린 프로파일러와 괴물들의 경계가 무너지며, 이성이 모래성처럼 서서히 쓸려 내려갔다.

"백시우! 정신 차려! 가스가 가득 차고 있어!"

임다혜가 그의 옷소매를 세차게 잡아당겼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울 벽에 부딪혀 수십 개의 방향에서 꺾여 들렸다.

백시우는 흐려지는 시야를 가다듬으며 정면의 은색 광선 다발을 노려보았다. 단순한 감지기가 아니었다. 광선들은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아주 느리게 각도를 수정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눈동자가 먹잇감을 쫓아 부지런히 굴러가듯이.

‘아니야.’

한스의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도면을 그리며 속삭였다.

‘저건 단순한 열 감지나 모션 센서가 아니야. 저 광선들이 조준하는 정초점은…….’

백시우는 자신의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거울 너머에서 들리지 않는 미세한 모터 구동음과 함께 레이저 소자의 각도가 정확히 그의 안구 높이로 내려앉았다.

망막 각도 추적 카메라.

거울 뒤편에 숨겨진 렌즈들이 피사체의 안구 운동과 각막의 반사율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레이저의 사출 방향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도망치려 발버둥 치며 빛을 바라볼수록, 함정은 인간의 시선 끝을 따라 더 정밀하게 사선을 좁혀오는 구조였다.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죽이는 방아쇠가 되는 가학적인 심리 트랩이었다.

"보지 마."

백시우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뱉었다.

"네? 뭘 보지 말라는 거예요?"

"거울도, 레이저도, 네 눈앞에 비치는 그 어떤 잔상도 보지 마. 저 기계는 우리의 눈동자가 어딜 향하는지 읽고 있어."

그의 손이 주머니 속으로 파고들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송 경사의 차가운 시신에서 수거했던 고장 난 무전기였다. 마이크 그릴 뒤편, 손톱 끝으로 거칠게 더듬어야만 느껴지는 미세한 돌기들. 그것은 임다혜가 남겨두었던 점자 형태의 구조 정보였다.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비로소 완벽한 답이 뇌세포 사이를 관통했다. 거울의 반사면은 인간의 시선을 유도하는 거대한 미끼다. 하지만 반사율이 제로에 수렴하는 어두운 목조 고정틀의 경첩 결합부, 즉 프레임의 모서리로 시선을 고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망막 추적 장치의 알고리즘은 굴절 각도를 계산하지 못해 표적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다혜 씨,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왼쪽 벽면에 고정된 나무 프레임의 쇠경첩만 봐. 눈동자를 단 1밀리미터도 옆으로 돌리지 마."

"하지만 바로 옆에 레이저가……."

"믿어. 살고 싶다면 눈을 죽여야 해."

백시우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거울 속에 비치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사정없이 돌렸다. 오직 프레임 구석의 어둡고 칙칙한 철제 경첩만을 정초점으로 삼았다. 망막을 자극하는 은색 광선의 잔상이 시야 주변부를 어지럽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눈동자의 축을 흔들지 않았다.

스윽, 스윽.

그의 발걸음이 거울의 맹점을 찾아 기묘한 궤적으로 움직였다. 임다혜 역시 그의 지시에 따라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철제 경첩만을 응시한 채 보폭을 맞췄다.

불안정하게 웅웅거리던 레이저 사출기의 구동음이 조금씩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피사체의 안구 운동 좌표를 잃어버린 추적 프로그램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헛돌았다. 지익, 지이익 하는 신경질적인 소음과 함께 서킷 보드가 과부하로 전율하며 미세한 연기를 토해냈다.

그 틈을 타, 백시우는 회전문 중앙의 기계 장치로 접근했다. 60kg 이하라는 잔혹한 무게 제한. 두 사람이 동시에 통과하는 순간 천장의 압착 판이 낙하하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백시우의 머릿속에 가득 찬 한스의 오만함은 이미 이 기계의 치명적인 결함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과거 감압실 천장에서 보았던 기어 축의 회전 주기. 매뉴얼에는 즉시 반응한다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는 기계식 기어의 마모를 방지하기 위해 설계된 12초의 물리적 유격이 존재했다.

"이 기계는 완벽하지 않아."

백시우가 차갑게 중얼거렸다.

"설계자는 인간의 공포를 신뢰했을 뿐, 기계의 완벽함까지 통제하진 못했어. 12초다."

"무슨 소리예요?"

"무게를 감지하고 기어가 맞물려 고압 판이 떨어지기까지 정확히 12초의 지연 시간이 있어. 내가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부터 12초 안에 너도 이 문을 통과해야 해."

"그게 정말이에요? 만약 틀리면……."

"내 머릿속의 설계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

백시우는 제한 시간 5초를 남겨둔 채, 손목의 통증을 억누르며 회전문을 힘껏 밀었다. 철제 문이 무거운 궤적을 그리며 돌아갔다. 붉은 숫자가 순식간에 요동치며 경고음을 울렸다.

띠리리리릭―!

"지금이야! 뛰어!"

백시우의 외침과 동시에 임다혜가 사선 가드를 파괴하듯 몸을 던져 회전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가 통과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무게가 감지기를 짓눌렀다.

12, 11, 10…….

머릿속에서 초읽기가 시작되었다. 기어 축이 맞물리는 둔탁한 쇠소리가 천장에서 울려 퍼졌다. 거울 너머의 레이저 사출기 소자들이 표적을 소실한 채 붉은 스파크를 뿜으며 완전히 정지했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진우가 심어둔 광학 함정과 무게의 덫을 완전히 농락한 순간이었다.

쿵!

두 사람이 회전문 너머의 어두운 통로로 굴러떨어짐과 동시에, 등 뒤에서 천장의 고압 압착 판이 엄청난 무게로 바닥을 짓눌렀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지만, 이미 그들은 사선을 벗어난 뒤였다.

"헉, 헉……."

임다혜가 먼지와 화약 냄새를 들이켜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백시우를 바라보았다. 오직 시선 처리를 바꾼 것만으로, 그리고 12초의 기계적 오차를 계산해 낸 것만으로 이 완벽한 밀실을 깨뜨린 것이다.

백시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스의 인격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뇌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손목의 P-099 흉터가 기묘하게 욱신거렸다. 자신이 판게아의 실험체였다는 차가운 진실이 가슴속 깊이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철컥.

그들이 서 있는 통로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거울들의 광선이 일제히 전원 꺼짐과 동시에, 기분 나쁜 정적이 주위를 지배했다.

쨍그랑! 콰아아앙!

사방에 붙어 있던 수십 개의 거울 유리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폭산했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은빛 비처럼 허공을 가르며 어둠 속으로 흩뿌려졌다. 백시우는 본능적으로 임다혜를 감싸 안으며 바닥으로 몸을 웅크렸다.

자욱한 먼지와 유리 가루가 가라앉는 통로 끝, 깨진 유리 파편들 사이로 숨겨져 있던 거대한 장치석과 제어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어두운 조명 아래,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단정한 수트 차림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우아한 자태.

남자는 천천히 손뼉을 치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입가에 걸린 기사적인 미소가 공포스러울 만큼 선명하게 빛났다.

"과연 99호답군. 내 완벽한 조각품을 이렇게 천박하게 부숴버릴 줄이야."

이 모든 밀실을 조립하고 그들의 숨통을 조여왔던 진짜 설계자, 오진우였다.

오진우의 구두 굽이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지그시 밟았다. 서걱, 서걱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밀폐된 공간의 침묵을 잘게 쪼갰다. 그는 양복 소매 끝동을 가볍게 털어내더니, 품 안에서 하얀 실크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 손수건을 아주 천천히 가로세로로 정확히 삼등분하여 접기 시작했다. 손 끝의 정밀한 각도가 거울 프레임이 가리키던 특정 모서리의 둔각과 기묘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백 프로파일러. 아니, 시우 씨라고 불러야 할까요."

오진우의 부드러운 음성이 통로의 굴곡을 타고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백시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스의 인격이 빠져나간 자리는 거대한 공동(空洞)이 되어 그의 이성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두통은 이제 두개골을 안쪽에서부터 정으로 정교하게 쪼아대는 물리적인 고통으로 변해 있었다. 왼쪽 손목의 P-099 낙인이 맥박을 칠 때마다 눈앞에 흰빛과 어둠이 교차로 명멸했다.

차갑고 축축한 수술대. 이마를 짓누르던 금속 고정틀의 서늘함. 그리고 귓가에 웅웅거리던 전기톱의 기계음.

경계가 모호해진 기억의 파편이 현재의 거울 방 풍경 위로 겹쳐 흘렀다. 백시우는 자신이 지금 지하 실험실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지, 아니면 무너져 내리는 밀실의 콘크리트 바닥을 딛고 서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의 동공이 초점을 잃고 허공을 부유했다.

"그 손 치워."

임다혜가 앞으로 나서며 백시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오른손이 허리춤의 홀스터로 향했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팍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오진우는 접어 올린 손수건을 가슴 포켓에 꽂아 넣으며 낮게 웃었다.

"형사님은 여전히 거친 손님방식에 익숙하시군요. 하지만 이곳의 규칙을 깨뜨린 건 당신들이 아닙니다. 시우 씨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자'들의 기량이지요."

오진우가 벽면에 매립된 거대한 제어 콘솔로 천천히 걸어가 레버 하나를 움켜쥐었다.

"이 방, '심판의 주랑'은 당신의 첫 번째 실패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어 하던 최초의 살인 사건. 그 피비린내 나는 고택의 침실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모릅니다."

"닥쳐……."

백시우의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금니를 악물자 잇몸 사이로 비릿한 피 맛이 배어났다.

"당신은 스스로를 무고한 희생자를 구하려다 기억을 잃은 정의로운 프로파일러라 믿고 싶겠지요."

오진우가 레버를 아래로 꺾었다.

우우웅―.

바닥 깊은 곳에서 거대한 발전기가 돌아가는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깨진 거울 너머, 어두운 장치석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유리 실린더가 푸른빛을 발하며 깨어났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미세 전선들이 뇌의 신경망처럼 뒤엉킨 인공 인격 제어 장치가 기괴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설계자의 손끝에 있는 법. 시우 씨, 당신의 뇌에 심어진 네 명의 악마는 판게아가 강제로 주입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가 그 끔찍한 첫 사건의 죄책감에서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의 영혼을 조각내어 그들을 창조해 낸 것이지."

오진우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자신이 저지른 참혹한 살인을 망각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겁니다. 당신의 마모된 이성은 그 증거예요."

"거짓말 마!"

임다혜가 소리쳤지만, 오진우는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백시우의 흔들리는 눈동자만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제어 장치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줄기들이 백시우의 손목에 새겨진 P-099 흉터와 공명하듯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뇌 속의 봉인된 구역들이 강제로 열리는 충격에 백시우의 척추가 뻣뻣하게 굳었다.

한스, 샤를, 그리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나머지 두 개의 흉포한 인격들이 한꺼번에 그의 의식 표면으로 솟구쳐 오르려 요동쳤다. 그의 자아가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채 갈가리 찢겨 나가는 감각이었다.

"이제 마지막 심판의 시간입니다."

오진우가 콘솔 위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 시스템 동기화 가동. 마멸 프로세스 개시. 남은 시간 10분. ]

기계적인 음성이 방 안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백시우의 뇌 속에 이식된 백도어 수신기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방의 격벽이 서서히 좁혀오며 그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네 개의 인격 전원을 동시에 소모하게 만드는, 자아의 영구적인 마멸 장치가 완전히 격발된 것이다.

백시우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짚었다. 그의 눈에서 흐른 붉은 피 한 방울이 깨진 거울 파편 위로 떨어져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핏방울이 비친 거울 조각 너머로, 백시우는 마침내 보았다.

기억의 심연 속, 피에 젖은 칼을 쥐고 자신을 향해 기괴하게 웃고 있는 진짜 자기 자신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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