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내 몸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재킷, 먼지 묻은 소맷자락, 심지어 뺨에 그어진 핏자국까지 똑같은 형상이 유리 표면 너머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좌우가 반전되지 않은, 마치 거울이라는 가느다란 틈새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또 다른 백시우가 그곳에 존재하듯 기괴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옆에 서 있던 가짜 임다혜의 입술에서 오진우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발밑을 받치고 있던 거울 바닥이 쩍 갈라지며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와장창!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인력을 거스르듯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 백시우의 뇌리에 깃든 설계자 인격 '한스'의 냉혹한 연산이 불꽃처럼 튀었다.
‘바보 같은 놈들. 중력은 속일 수 있어도, 무게중심의 궤적은 기만하지 못해.’
백시우는 무너지는 거울 조각을 딛는 대신, 가짜 임다혜의 어깨를 디딤판 삼아 강하게 걷어찼다. 강철과 실리콘으로 급조된 마네킹이 허공에서 꺾이며 어두운 심연으로 먼저 떨어졌다. 그 반동을 이용해 백시우는 붕괴하는 바닥 가장자리의 단단한 철제 프레임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배어 나왔으나, 고통은 뇌의 시냅스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이성에 의해 가차 없이 소거되었다.
쿵!
뒤이어 격벽 너머에서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쇠파이프가 휘둘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온 형체는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권총을 꽉 쥐고 있는 진짜 임다혜였다. 그녀는 지하 2층 통제실 앞 통로의 가로막힌 벽을 기어이 부수고 통로를 우회해 이쪽으로 넘어온 참이었다.
"백시우 씨!"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살아 있었군."
백시우는 철제 프레임 위로 몸을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체내에 이식된 수신기 P-099가 피부 밑에서 뜨겁게 요동치고 있었다. 한스의 인격이 전이된 지 벌써 수분이 경과했다. 뇌의 연수 부근이 바늘로 찌르는 듯 찌릿거리는 통증은 자아의 마모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등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방의 벽체가 오직 순수 거울 글라스로만 빈틈없이 배열된 전대미문의 밀실 내부로 발을 디뎠다.
사방이 은빛 반사면이었다. 천장도, 바닥도, 전후좌우의 벽면도 예외는 없었다. 그 어떤 원근감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무한히 굴절되는 거울의 미로 속에서 평형감각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은 아찔한 착시가 시각을 마비시켰다. 수천 명의 백시우와 수천 명의 임다혜가 사방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기괴한 군상을 만들어냈다.
"이게…… 도 대체 무슨 수작이야?"
임다혜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신음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자신의 얼굴이 수백 개로 쪼개져 다가오는 광경은 인간의 전정기관을 사정없이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시선을 바닥에 고정해라. 반사되는 허상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뇌가 거리 감각과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다."
백시우는 단호하게 속삭이며 신중한 보폭으로 나아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거울의 표면이 아니라, 유리가 맞닿은 모서리의 미세한 틈새와 접착 상태를 스캔하고 있었다.
그때, 정면에 위치한 거울 벽 한가운데에 고풍스러운 금장 판넬 하나가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거울의 은색 광택과 대비되어 유독 이질적인 광채를 내뿜는 그 판넬 위에는 서늘한 고딕체로 다음과 같은 수칙이 음각되어 있었다.
[ 내부 이용 준칙 ] - 본 구역은 자아 성찰의 성소이다. - 투영된 자신의 반사 영상이 당신보다 늦게 눈을 감을 시, 신속하게 제어판에 머리를 처박고 사죄하라. - 고개를 숙여 바닥의 거울에 이마가 닿을 때까지 진심 어린 사죄를 표하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어둠의 낙인이 찍힐 것이다.
임다혜가 판넬의 글귀를 소리 내어 읽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소리. 자기 반사 영상이 늦게 눈을 감는다고? 거울 속의 내가 나보다 늦게 움직인다는 게 물리적으로 말이 돼?"
"설계자의 심리 유도다."
백시우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한스의 인격이 그의 지각을 비웃음으로 채웠다.
"이 수칙의 진짜 목적은 공포를 조장하는 게 아니야. '반사 영상이 늦게 움직인다'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제어판과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도록 강제하는 거지."
"그게 왜 함정이 되는데?"
"바닥을 봐라."
백시우가 턱끝으로 발밑을 가리켰다. 미세하게 굴절되는 거울 유리 아래, 아주 얇은 격자무늬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었다.
"바닥의 거울 바로 1밀리미터 아래에 가동식 열감 탑재 와이어 그물이 깔려 있어. 수칙에 적힌 대로 '머리를 처박고 사죄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거나 이마를 바닥에 대는 순간, 안면의 열감을 감지한 와이어가 고속으로 수축하며 목을 올가미처럼 조여 버리겠지. 시선을 한곳에 빼앗아 발밑의 진짜 덫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조잡하고 유치한 하책이다."
백시우는 판넬 아래에 위치한 청동 제어판을 싸늘하게 응시했다. 수칙이 지시하는 '사죄 행동'이야말로 오진우가 설계한 가장 가학적인 안전 수칙의 가짜 맹점이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은 수칙의 기괴함에 압도되어, 살기 위해 스스로 목을 교수대에 밀어 넣는다.
"하, 정말이지 얄팍하군. 오진우, 이 새끼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야."
백시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한스의 뒤틀린 조소였다. 그는 자신의 지적 우월함을 증명하듯 제어판 유리에 손을 뻗었다.
"기다려, 백시우 씨! 함부로 만지지 마!"
임다혜가 소리쳤지만, 백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제어판 주위에 내려앉은 미세한 먼지와 시각적 착란 기법을 역이용하기 시작했다. 거울의 굴절로 인해 제어판의 버튼 위치가 실제보다 약 3센티미터 좌측으로 치우쳐 웅크리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백시우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거울의 무한 굴절이 뇌를 기만한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가 오직 소리와 공기의 흐름, 그리고 촉각으로 재구성되었다.
‘샤를이 도구함에서 찾아냈던 P-099의 금속 표식…….’
백시우는 자신의 왼쪽 손목에 새겨진 깊은 흉터를 매만졌다. 가죽처럼 딱딱하게 굳은 그 상흔의 굴곡은 판게아 그룹이 남긴 실험체의 낙인이자, 그와 이 밀실을 연결하는 열쇠였다. 낡은 금속 표식 P-099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손목의 흉터. 그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뇌 내의 다중인격을 통제하기 위해 신경계에 직접 이식된 생체 수신기의 접합 흔적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들이 나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이제 똑똑히 기억나기 시작했어."
백시우의 나직한 읊조림에 임다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무슨……."
"나는 판게아의 실험체 99호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 끝으로 제어판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거울 유리의 굴절로 인한 오차를 지워내고, 오직 지문과 피부의 감각만으로 진짜 버튼의 위치를 찾아냈다.
딸깍.
손끝에 걸리는 묵직한 기계적 저항감. 동시에 백시우의 머릿속에서 예전 감압실 천장 기어 축을 분석할 때 한스가 발견했던 도면의 한 구절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순지 무조건 반응 매뉴얼의 맹점. 모든 기어 축은 완벽한 동기화를 지향하지만, 기계적 마찰로 인해 반드시 12초의 유격이 발생한다.'
설계자 오진우는 모든 장치를 완벽한 정밀도로 제어한다고 자부했으나, 기계의 물리적 한계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다. 12초의 빈틈. 그것은 이 거대 밀실의 심장부로 통하는 유일한 균열이었다.
"임 형사, 지금이다."
백시우가 눈을 번쩍 뜨며 제어판의 숨겨진 수동 레버를 아래로 꺾었다.
쿠구구궁!
바닥 아래에서 와이어가 작동하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백시우가 계산한 12초의 지연 시간 덕분에, 열감 감지 센서가 작동하기도 전에 기어 축이 먼저 엉겨 붙으며 와이어들이 서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바닥 거울 밑의 열선 그물이 완전히 타버렸다. 자아를 성찰하라며 머리를 숙이게 만들던 공포의 수칙이, 백시우의 정밀한 역연산 앞에서 한낱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돼…… 기계의 오차 범위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임다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진우는 완벽을 연기하는 병자일 뿐이다. 진짜 설계자는 기계의 완벽함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용하지."
백시우는 차갑게 쏘아붙이며, 재킷 안감에 넣어두었던 송 경사의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무전기 그릴 뒤편에 거칠게 새겨진 점자 형태의 구조 정보가 손끝에 까슬하게 걸렸다.
[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
사망한 송 경사가 남긴 목숨값이자, 임다혜가 흘렸던 수사의 실마리. 백시우는 그 조언을 머릿속으로 수회 복기했다. 거울의 표면에 현혹되지 마라. 오직 프레임의 모서리, 즉 진짜 공간과 가짜 공간의 경계선만을 쫓아야 이 무한 굴절의 감옥을 나갈 수 있다.
"정신 차려, 임 형사. 이제 겨우 입구에 섰을 뿐이니까."
백시우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다잡았다. 시각 착란으로 인해 흐려지던 임다혜의 눈빛에 다시금 형사 특유의 독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한 걸음을 더 내딛기도 전이었다.
스우우우―.
사방의 거울 벽면 모서리에서 미세한 틈새가 벌어지며, 붉고 푸른 인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거울의 반사 각도를 따라 기하학적으로 꺾이며 공간을 촘촘하게 가로지르는 은색의 레이저 격발 도선들이었다.
은빛 광선들이 서로 교차하며 그들이 디뎌야 할 바닥과 벽면에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했다. 광선에 아주 살짝만 닿아도 천장에 장착된 고압 압착 장치가 격발되도록 설계된, 또 다른 올가미였다.
탈출을 위해 디뎌야 할 거울의 안전 각도가 사정없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은색의 광선들이 백시우의 뺨 스치듯 지나가며 거울 벽면에 굴절되어 무한한 빛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백시우 씨…… 발을 딛을 틈이 없어."
임다혜의 목소리에 다시금 팽팽한 긴장이 깃들었다.
빛의 그물 한가운데에 갇힌 채, 백시우는 아주 천천히 자신의 손목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3분. 한스의 인격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 한계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은색 광선들이 사방의 거울 표면을 타고 무한히 굴절되며 방 안을 촘촘한 빛의 그물망으로 채워 나갔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광선들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거울에 닿아 산란할 때마다 미세한 열기가 피부를 짓눌렀다.
"움직이지 마라."
백시우가 임다혜의 어깨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쇄골 부근이 잘게 떨리는 것이 손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머릿속에서 타이머가 째깍거렸다. 한스의 인격이 각성한 지 이제 8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턱끝으로 떨어져 발밑의 거울 조각 위로 번졌다. 뇌를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은 이미 한계를 고하고 있었다. 이대로 10분을 넘기면 설계자의 광기가 백시우라는 본질을 완전히 집어삼킬 터였다.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송 경사의 무전기 뒤편에 조각되어 있던 차가운 점자들이 다시 한번 백시우의 지각을 일깨웠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가득 채운 은색 광선들의 교차점을 노려보았다. 눈이 시려오고 눈물이 고였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거울 속의 수천 명의 백시우들이 동시에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마주 보았다.
그때, 유리와 유리가 맞닿은 모서리의 아주 미세한 이음새가 은빛 광선을 흡수하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무반사 코팅 처리된 프레임 마감재.
"빛의 개수는 서른두 개가 아니야."
백시우의 목소리는 쇠가 쓸리는 것처럼 낮게 갈라졌다.
"진짜 광원은 단 네 개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굴절률을 왜곡해 만들어낸 허상이야."
"허상이라고? 하지만 저 열기는……."
임다혜가 마른침을 삼키며 빛이 닿지 않은 좁은 틈새로 발을 디디려 했다.
"속지 마라. 열을 발산하는 건 레이저가 아니야. 아까 우리가 파괴했던 바닥의 열선 잔열과, 저 환기구에서 흘러나오는 가스다."
백시우의 시선이 천장 구석의 환기 슬릿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코끝을 스치던 그 달콤하고 미미한 잔향. 그것은 소독제가 아니었다. 극도의 가연성을 지닌 무색무취의 기체, 디메틸 에테르였다.
설계자 오진우는 이중의 덫을 놓은 것이다. 레이저 격발 도선이라는 시각적 공포로 침입자의 움직임을 제한한 뒤, 실시간으로 유입되는 가스로 밀실 전체를 거대한 폭탄으로 만들고 있었다. 만약 레이저의 진짜 광선이 가스의 임계 온도에 도달하거나, 탈출을 위해 무리하게 기계를 조작하다 작은 스파크라도 튄다면 이 방은 그대로 비극의 화장터가 된다.
"내 발자국만 밟아."
백시우는 임다혜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의 발끝이 공중을 가로지르는 은색 선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임다혜가 짧은 비명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스윽―.
백시우의 발이 레이저 광선을 그대로 통과했다. 아무런 경보음도, 열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 벽면의 곡률을 이용해 쏘아 보낸 무해한 홀로그램 광선이었다. 진짜 광선은 프레임 모서리의 어두운 이음새에서 수직으로 뻗어 나오는 단 한 줄기의 푸른빛뿐이었다.
"모서리의 어둠만 피해라. 거울이 보여주는 빛은 전부 가짜다."
백시우는 미로를 걷듯, 붉게 물든 거울방의 균열을 짚어 나갔다. 허상을 밟고, 실체를 비켜 가는 기묘한 보폭이었다. 머릿속의 한스가 소리 높여 웃어댔다.
‘그래, 시우야. 저 얄팍한 가짜 예술가의 목을 비틀어 버려. 내가 만든 덫에 비하면 이건 어린아이의 장난감에 불과해.’
통증이 극에 달했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손목의 P-099 표식이 있는 살가죽이 타들어 가듯 뜨거워졌다. 제한 시간 9분 15초.
마침내 그들은 사방이 거울로 막힌 방의 가장 안쪽, 탈출구 역할을 하는 철제 회전문 앞에 도달했다.
하지만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백시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회전문 중앙의 유리창 너머, 어두운 반사면 위로 붉은 디지털 숫자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회전문의 잠금장치와 연동된 압력 감지기였다.
[ 허용 중량: 60kg 이하 ]
두 사람의 인원이 동시에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 무게를 감지한 기어가 맞물리며 천장의 고압 압착 판이 그대로 낙하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이곳에 남아야만 한다는, 오진우가 던진 잔혹한 양자택일의 질문이었다.
동시에, 그들이 걸어온 길 뒤편에서 치이익 하는 파열음과 함께 환기구의 가스 분사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거울 모서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짜 레이저의 푸른 광선이 가스 공급 라인의 노즐을 조준하듯 서서히 각도를 바꾸어 가고 있었다.
째깍, 째깍.
백시우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한스의 인격이 완전히 소멸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단 30초였다.
그는 천천히 임다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이미 백시우의 것이 아닌 기괴한 조소를 머금은 낯선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