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박당한 용병의 몸이 활처럼 꺾이며 기괴하게 굳어졌다. 꽉 맞물린 이빨 사이로 푸르스름한 가스가 비어져 나왔고, 소매 깃 아래에서 지지직거리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일었다.
"방 뒤에…… 거울의 미로가 있고…… 큭, 백시우 네놈 또한…… 너와 닮은 설계자 오진우의 정신 복제품에…… 속지 않는다……."
그것은 유언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까운 선언이었다. 용병의 목줄기에 돋아난 핏대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소매 밑줄에 숨겨진 비밀 독극 전기 장치가 탁, 하고 파열음을 냈다. 고전압의 스파크가 그의 손목을 타고 들어가 체내에 이식된 미세 캡슐을 터뜨린 것이었다.
단 1초의 유예도 없었다.
용병의 동공이 순식간에 풀리며 사지가 굳어갔다. 입가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그슬린 바닥을 적셨다. 고약한 단백질 타는 냄새와 정체불명의 약품 향이 밀폐된 공기 속으로 무겁게 흩어졌다.
백시우는 차갑게 식어가는 용병의 시체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시선은 용병의 얼굴이 아닌, 이미 초점을 잃고 꺾여버린 손목으로 향해 있었다.
임다혜가 총구를 겨눈 채 방의 열린 격벽 너머를 경계하는 사이, 백시우는 용병의 전술 조끼 안쪽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질감이 손끝에 걸렸다. 가죽 주머니에서 뜯어낸 것은 붉은 잉크가 번진 기괴한 문서였다.
'거울방 내부 순찰 보초 일지.'
그 아래에는 짓눌린 필체로 단 한 줄의 수칙이 쓰여 있었다.
[중앙 반사경의 각도가 도면에 부합하지 않아도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마라.]
백시우는 그 문장을 읊조리며 손가락으로 글씨를 쓸었다. 오진우가 설계한 왜곡된 규칙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보초 일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이것 역시 인간의 본능적인 시선 흐름을 제어하려는 기만적인 덫이었다.
"이 자의 무기는 완전히 으스러졌어."
임다혜가 시체 옆에 떨어진 돌격소총의 잔해를 발로 차며 낮게 읊조렸다.
총열과 격발 부위가 마치 거대한 프레스에 눌린 것처럼 기괴하게 짓눌려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백시우가 한스의 기계적 계산을 빌려 유도한 결과물이었다.
감압실 천정 기어 축의 회전 주기는 원래 설계자가 남겨둔 수칙에 명시된 '순지 무조건 반응' 매뉴얼과 일치하지 않았다. 한스는 머릿속 도면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그 기어가 아주 미세한 유격, 즉 '12초의 빈틈(지연 시간)'을 두고 불규칙하게 공회전한다는 사실을 포착했었다. 백시우는 자신을 추격해 오던 용병을 정확히 그 12초의 유격 타이밍에 맞춰 기계 작동부로 밀어 넣었고, 거대한 무쇠 기어는 용병의 총기를 물어뜯어 으스러뜨렸다. 치명적인 무기를 무력화하는 완벽한 역함정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백시우는 자신의 왼손 손목을 덮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붉게 짓무른 흉터 아래로 형광빛을 내뿜는 문양이 가늘게 명멸하고 있었다.
[P-099]
그것은 판게아 그룹의 실험체 식별 코드였다. 시체 청소부 인격인 '샤를'이 밀실의 도구함 구석에서 발견했던 낡은 금속 표식의 일련번호와, 그의 뼈에 새겨진 상흔이 자석처럼 맞물렸다. 자신이 잃어버린 첫 사건의 기억, 그리고 자신이 살인마마저 인위적으로 조립해 넣은 '99호 실험체'에 불과하다는 물증이 살갗 아래에서 끔찍한 진실을 뱉어내고 있었다.
"으윽……."
갑작스러운 두통이 백시우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시야가 가파르게 뒤흔들리며 사방의 윤곽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쇠사슬이 바닥을 긁는 듯한 소음이 고막을 찢었다. 남은 자아 마모 한도가 수치상 극도의 소진 구간인 마지막 위험 선으로 하락했음을 알리는 뇌의 비명이었다.
- 거봐, 시우야. 내가 뭐랬어. 결국 넌 우리와 같은 우리에 갇힌 짐승이야.
샤를의 끈적하고 축축한 음성이 귓전을 맴돌았다.
- 비켜봐, 샤를. 이 멍청한 녀석의 대가리를 내가 조금만 더 손보면 이 거울의 미로 따위는 단 3분 만에 분해할 수 있어. 내 지식을 빌려 가라고, 백시우.
오만한 한스의 목소리가 뇌를 찌르고 들어왔다.
두 인격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백시우의 전두엽을 갉아먹고 있었다. 백시우는 턱뼈가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셔츠가 땀으로 완전히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한스, 샤를…… 내 몸에서 손을 떼."
백시우는 목구멍을 찢고 나오는 쇳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걸음이라도 더 선을 넘으면, 내 손으로 이 뇌를 깨부숴버릴 테니까. 너희도 그 잘난 자아와 함께 증발하고 싶지 않다면 닥쳐."
그의 목소리에는 스스로를 파괴하겠다는 극단적인 결의와 광기가 서려 있었다. 살기 위해 악마들과 거래하지만, 결코 지배당하지는 않겠다는 프로파일러의 마지막 오만이었다.
"백시우!"
그때, 거친 손길이 그의 어깨를 낚아채 벽으로 밀쳤다.
임다혜의 억센 손이 그의 멱살을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정신 차려! 네 눈빛이 또 변하고 있어. 내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비웃던 그 괴물들의 눈빛으로 돌아가지 말란 말이야!"
그녀의 숨결이 백시우의 얼굴에 닿았다. 백시우는 흐려지는 초점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간신히 담았다.
임다혜는 군장 주머니를 뒤져 작은 유리 앰플과 초소형 주입기를 꺼내 들었다. 판게아의 실험실 잔해에서 확보했던 특수 최면 수면 약액이었다.
"더 미치지 마라."
그녀가 주입기를 백시우의 손바닥에 억지로 쥐여주며 속삭였다.
"여기서 네가 완전히 망가져 버리면, 내 동료들을 죽인 진짜 설계자의 목을 꺾을 사람이 없어져. 진실을 밝히고 속죄할 자는 오직 너뿐이야. 그러니까…… 제발 버텨."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사법적 단죄를 바라는 형사의 집념이자, 이 미쳐버린 밀실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에 대한 절박한 연대였다.
백시우는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 주입기의 촉감을 느꼈다.
최면 약액. 자아 통제를 잃고 괴물로 변하기 직전, 스스로를 강제로 잠재울 수 있는 마지막 제동 장치였다. 그 주사기가 손에 쥐어지는 순간, 신기하게도 머릿속을 날뛰던 한스와 샤를의 환청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걸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
백시우가 약액 침을 안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으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흐려졌던 눈동자에 다시 차가운 이성이 돌아왔다. 극도의 자기불신 속에서도, 임다혜라는 실체적인 닻이 그의 파멸을 붙잡아 준 순간이었다.
"가자."
백시우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무너진 석고 벽을 지나, 복도 끝의 어두운 아케이드로 진입했다. 공기는 점점 더 차가워졌고, 사방에서 스며드는 기괴한 정적이 그들의 발소리를 집어삼켰다.
아케이드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들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유리 전면이었다.
빛 한 점 통과시키지 않을 것처럼 매끄럽고 어두운 유리.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창문이 아니었다.
백시우는 주머니 속에서 송 경사의 유품인 무전기를 꺼냈다. 마이크 그릴 뒤편, 미세하게 돋아난 점자 형태의 구조 정보가 손끝에 다시 한번 달라붙었다.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그 조언이 가리키는 실체가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유리 전면 너머로, 수백 개의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끝없는 깊이를 만들어내는 '비밀 거울방'의 봉인 입구가 그 웅장하고 기괴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사된 빛들이 얽히고설켜 공간의 경계선을 완전히 지워버린, 설계자 오진우의 최종 무대였다.
백시우는 어두운 유리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때였다.
거대한 유리 프레임 너머, 어두운 미로의 한구석에서 정체불명의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림자가 빛이 닿는 곳으로 들어서는 순간, 백시우의 호흡이 멎었다.
거울 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은, 백시우 자신과 100% 동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이마의 그슬린 상흔, 심지어 왼손 손목을 덮은 소매의 핏자국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 기이한 복제품은 유리벽 너머에서 멈춰 서더니, 백시우를 향해 천천히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찢어발기듯 올리며,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유리 너머의 존재가 짓는 미소는 기어코 백시우의 등줄기를 타고 축축한 한기를 퍼뜨렸다. 목구멍이 바짝 졸아들며 마른침이 넘어갔다. 손끝이 딱딱하게 굳은 채 송 경사의 무전기 표면을 거칠게 문질렀다.
"백시우, 저거……."
옆에 선 임다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총기 방아쇠울을 가볍게 두드렸다. 금속과 손톱이 부딪쳐 내는 자잘한 마찰음이 사방을 뒤덮은 침묵 속에서 유독 날카롭게 튀었다. 그녀의 총구가 거울 너머의 복제품을 향해 가누어졌지만, 조준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두 사람의 발밑, 깨진 유리 파편들 사이로 기묘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하는 이물질 섞인 모터 소리가 바닥판을 타고 올라와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백시우는 붉게 물든 손목의 [P-099] 낙인을 내려다보았다. 흉터 주변의 살갗이 뜨겁게 부풀어 오르며 이식된 칩이 신경을 갉아먹는 듯한 작열감이 일었다. 머릿속의 한스가 사납게 혀를 찼다.
- 저건 단순한 반사가 아니야. 톱니의 각도를 꺾어 빛의 굴절을 지연시키는 장치지. 오진우 그 애송이 녀석, 제법 고전적인 트릭을 썼군.
설계자 인격의 냉소적인 분석이 뇌리를 스쳤다. 백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머릿속의 균열을 비집고 들어오는 광기를 억누르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통증을 자아냈다.
보초 일지의 수칙이 뇌리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중앙 반사경의 각도가 도면에 부합하지 않아도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마라.]
거울 속 복제품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는 순간, 시선 유도 장치와 연동된 또 다른 물리적 덫이 머리 위에서 낙하할 것이 분명했다. 그 기만적인 언어 구조의 맹점을 깨부수어야 했다.
백시우는 고개를 돌리려는 충동을 억누르며, 시선을 오직 한 곳에 고정했다. 송 경사의 무전기 그릴 뒤편에 새겨져 있던 미세한 점자의 조언. '거울의 프레임 모서리를 응시하라.'
그는 눈동자만을 굴려 전면에 우뚝 선 구식 거울의 목재 프레임 우측 상단 모서리를 쏘아보았다. 그곳에는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금이 간 유리 틈새로 소형 광학 프리즘 렌즈가 숨겨져 있었다. 렌즈는 미세한 기어의 회전에 맞춰 반사경의 각도를 변형시키며 백시우의 잔상을 왜곡 투사하고 있었다.
"임 형사, 움직이지 마."
백시우가 낮게 으름장을 놓았다. 턱관절이 딱딱하게 맞물렸다. "거울 너머를 보지 마라.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우리 머리 위의 천장이 내려앉을 거다."
그의 시선이 프레임 모서리의 복잡한 이음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렌즈 아래쪽, 소독제 공급 라인과 겹쳐진 환기구 틈새에서 무색무취에 가까운, 그러나 아주 미미하게 달콤한 잔향이 번져 나왔다. 코끝을 스치는 그 차가운 가스의 감각에 백시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의 냄새가 신경을 자극했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가 렌즈의 구동 주기를 파악해 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던 찰나였다.
치이익―.
백시우의 재킷 포켓 속에서 죽은 줄 알았던 송 경사의 무전기가 갑작스러운 노이즈를 뿜어냈다. 찢어지는 듯한 주파수 마찰음 사이로,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우 수사관님! 백시우 씨! 제 목소리 들려요?
그것은 명백히 임다혜의 목소리였다. 쇠가 긁히는 듯한 잡음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저는 지금…… 지하 2층 통제실 앞 통로로 떨어졌어요! 격벽이 내려앉으면서 통신망이 꼬인 것 같아요. 제 말 똑바로 들으세요. 지금 거울방 입구에 서 있는 건……!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가 비명을 지르듯 갈라졌다.
- 거기 당신 옆에 서 있는 건 내가 아니에요! 당장 떨어져요!
순간, 주위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백시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척수가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존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깨를 맞댄 채 총구를 겨누고 서 있던 '임다혜'가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그녀는 무전기 소리를 들었음에도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서서히, 그녀가 고개를 돌려 백시우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생기가 완전히 거세된, 차가운 유리 구슬처럼 텅 비어 있었다. 입술 표면의 미세한 주름들이 부자연스럽게 늘어나며, 오진우가 즐겨 짓던 특유의 우아하고 잔혹한 호선이 그녀의 얼굴 위로 기괴하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들켰네."
옆에 선 '그녀'의 입술이 열리며, 임다혜의 것이 아닌 낮고 부드운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두 사람이 딛고 서 있던 바닥의 거울 유리가 거대한 싱크홀처럼 아래를 향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