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갑자기 모든 초침 소리가 비명소리와 함께 딱 정지해 버리고 복도 끝 분배기함 안에서 삐걱거리는 피비린내 나는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공기가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복도를 채웠다. 404호 문틈으로 흘러나오던 푸른 빛이 일순간 회색으로 죽어 버렸다. 귀를 찌르던 복잡한 기어의 맞물림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축축한 가죽이 쓸리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만이 남았다.

한강우는 벽에 등을 밀착했다. 콧등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술을 지나 턱끝에 맺혔다.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붉은 격자무늬로 깨어지며 뇌 내부에서 압력이 치솟았다.

복도 중앙의 공기 순환구가 정지했다. 기류의 흐름이 멈추자 분배기함 내부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그것은 부패가 시작된 단백질과 산화된 철이 뒤섞인 냄새였다.

한강우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초침이 정확히 12시 방향에서 멈춰 서 있었다. 태엽의 물리적인 동력이 다한 것이 아니었다. 내부의 탈진기가 강제로 잠긴 형태였다.

이것은 설계자가 심어 놓은 특수 차단 수칙 구역의 활성화를 의미했다.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폐쇄 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한강우는 감은 눈꺼풀 아래로 빛을 모았다. 뇌 세포를 강제로 팽창시키는 인지적 모의실험을 심화 가동했다. 뇌척수액의 온도가 상승하며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이 고동쳤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3년 전 사망한 동료 민태경의 형상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투명하고 푸르스름한 윤곽을 가진 환각이었다.

한강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환각의 방해를 배제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호흡의 템포를 늦췄다.

"이대로 가다간 네 뇌세포가 먼저 녹아내릴 거다. 저 형사가 오기 전에 빠져나가."

민태경의 환각이 한강우의 어깨를 붙잡는 시늉을 했다. 아무런 질량도 느껴지지 않는 허상이었다.

한강우는 환각의 손길을 관통해 앞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체중을 발가락 끝에 실었다. 미세한 마찰음조차 허용되지 않는 구역이었다.

그는 복도 끝에 위치한 금속제 분배기함 앞에 멈춰 섰다. 회색 페인트가 벗겨진 함의 문틈으로 붉은색 점액이 흘러나와 바닥에 고여 있었다.

손끝으로 철판을 밀었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함 내부의 좁은 공간에는 아파트 경비원의 사체가 기괴하게 꺾인 채 처박혀 있었다. 사체의 목은 뒤로 180도 꺾여 등 가죽과 뒤통수가 맞닿은 상태였다.

한강우는 사체의 목 주변을 관찰했다. 경비원의 목뼈 주위로 정교하게 가공된 청동제 시계 톱니바퀴들이 톱날을 드러낸 채 박혀 있었다. 가죽을 뚫고 들어간 기어들이 척추뼈를 축 삼아 고정되어 있었다.

사후 강직의 진행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턱관절을 눌렀다.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사체의 피부 온도는 이미 주변 공기 온도인 16도에 가깝게 하강해 있었다.

"사망 시간은 대략 3시간 전이다."

한강우는 혼잣말을 뱉었다. 그의 손가락이 경비원의 목에 감긴 톱니바퀴의 중심 태엽을 만졌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가죽 장갑을 뚫고 전달되었다. 태엽의 장력은 극도로 팽팽했다. 금속판 스프링이 한계까지 감겨 있는 상태였다.

그는 태엽의 회전 복원력을 측정하기 위해 핀셋으로 기어의 가장자리를 살짝 건드렸다. 기어가 미세하게 회전하려다 이내 멈췄다.

모순이었다.

경비원이 사망한 지 3시간이 지났다면, 사체의 체온 저하와 생리적 수축으로 인해 태엽을 누르고 있는 후두부의 압력도 변했어야 했다. 그러나 태엽은 마치 불과 30분 전에 감긴 것처럼 완벽한 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살인마는 사체의 온도 변화에 따른 물리적 수축을 계산에 넣지 못했다. 혹은 그 오차를 덮기 위해 기계적인 억지 장치를 추가한 것이 분명했다.

"시간을 조작했군."

한강우는 뇌 속의 시뮬레이터 화면을 가동했다. 붉은 기하학의 대칭 오차가 시야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인마가 설계한 시간의 톱니바퀴는 복도 중앙의 메인 시계와 이 사체의 태엽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어야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체의 온도 저하로 인해 생긴 12분의 물리적 시차는 전체 시스템의 균형을 뜨게 만들었다. 이 오차를 바로잡지 않으면 차단 수칙 구역은 해제되지 않고, 뇌의 동기화 상태도 풀리지 않아 뇌사 상태로 직행하게 된다.

한강우는 오른쪽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딱딱하고 평평한 물체가 걸렸다.

과거 푸른 거울 요양원 302호 사물함에서 확보했던 푸른 마그네틱 키카드였다. 요양원의 공간이 좌우 반전된 구조임을 밝혀냈던 바로 그 도구였다.

그는 키카드의 모서리를 바라보았다. 키카드의 내부에는 산화철 입자가 고밀도로 증착되어 있어 강한 자성을 띠고 있었다.

"자성 유도."

한강우는 키카드를 사체의 목 뒤에 박힌 기어 뭉치에 밀착시켰다.

착.

금속성 흡착음과 함께 키카드가 톱니바퀴의 중심축에 달라붙었다. 자력이 기어 내부의 철제 핀을 끌어당기자, 팽팽하게 고정되어 있던 태엽의 제동 장치가 강제로 해제되었다.

드르륵.

기어가 부드럽게 역회전하며 고정되어 있던 장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사체의 목 내부에서 뼈가 맞춰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일었다.

태엽의 회전 속도가 사체의 실제 온도인 16도에 상응하는 물리적 복원력과 일치하는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분배기함 안쪽의 비밀 격벽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동시에 한강우의 시야를 가리던 붉은 노이즈가 한풀 꺾였다. 살인마가 저지른 설계의 오차를 논리적으로 교정해 낸 결과였다.

그러나 안도는 길지 않았다.

뇌 속의 동기화율을 표시하는 가상의 수치가 85%를 돌파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커졌다. 귓구멍을 타고 흘러내린 더운 액체가 뺨을 적셨다.

"윽."

한강우는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방광 부근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했다. 신장 기능의 일시적 마비로 인한 혈뇨의 전조였다.

그의 사지가 통제 불능의 상태로 떨리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른 신경망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강우야, 그만해라. 네가 괴물이 된다고 해서 내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아."

민태경의 환각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한강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린 피맛이 퍼졌다. 그는 떨리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벽면을 굳게 짚었다. 규칙적인 박자로 벽을 두드리며 이성의 끈을 고정했다.

타닥, 타닥, 타닥.

신체는 붕괴하고 있었지만 대가로 얻은 정보는 명확했다. 살인마 백설민의 동선이 뇌 지형도 위에 완벽하게 그려졌다. 그는 이 아파트의 지하 보관실을 통해 이동했다.

그때, 복도 건너편 계단실의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쿵.

"움직이지 마!"

지형섭 형사의 목소리였다. 그의 등 뒤로 경찰관 세 명의 무거운 발소리와 장구류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지형섭은 손전등의 강한 불빛을 복도 끝으로 비췄다. 불빛이 한강우의 얼굴과 분배기함에서 흘러나온 피웅덩이를 차례로 훑었다.

"한강우. 네놈이 왜 여기 있어."

지형섭의 총구가 한강우의 가슴을 겨누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복도의 공기를 흔들었다.

한강우는 손을 들어 올려 빛을 가렸다. 그의 얼굴은 땀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뒤를 보십시오."

한강우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지형섭은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가죽 구두가 바닥의 핏방울을 밟았다.

바닥을 살피던 지형섭의 눈이 굳어졌다. 그가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그것은 반쯤 부서진 라이터의 플라스틱 파편이었다. 한강우가 요양원에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재질의 물건이었다.

"이 새끼가 현장을 오염시켰군."

지형섭이 이빨을 갈며 무전기를 켰다.

"지 형사다. 용의자 한강우가 현장에 침입했다. 아파트 전 출입구를 전면 통제해. 쥐새끼 한 마리도 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대답들이 오갔다. 경찰들의 포위망이 아파트 전체를 조여 오기 시작했다.

한강우는 벽에 기댄 채 멈춰 선 복도의 메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유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부의 기압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순간, 멈춰 있던 시계의 분침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보통의 속도가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태엽이 풀려나가듯, 바늘이 기괴한 회전 속도로 역행했다.

끼이이익.

쇠가 긁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복도 벽 전체를 타고 흘렀다.

동시에 복도 바닥 아래를 지나가는 배관 파이프 라인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울렸다.

딸깍.

그것은 보관실 깊은 곳에 설치되어 있던 비상 가스 밸브의 차단 장치가 기계적으로 해제되는 소리였다.

한강우의 시야에 가득 찬 붉은 격자선들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살인마가 숨겨둔 두 번째 함정이 작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가스의 미세한 압력 변화가 고막을 자극했다. 공기 중으로 희박하게 퍼지는 메탄가스의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지형섭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공기 순환구 쪽을 향했다.

"무슨 냄새야, 이거."

지형섭이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그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당장 대피해야 합니다."

한강우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그는 벽을 짚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상체를 지탱했다.

"지랄하지 마라. 네놈 얄팍한 수작에 넘어갈 것 같으냐."

지형섭은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가죽 구두가 핏방울이 고인 바닥을 밟아 척축하는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복도 양끝의 비상구 방화문이 무거운 마찰음과 함께 동시에 내려앉았다.

쾅.

강철로 제작된 방화문이 바닥틀에 완전히 밀착되며 외부의 소음을 차단했다. 밀폐된 복도 내부의 기압이 순간적으로 상승하며 이명이 한층 더 깊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뒤쪽에 서 있던 젊은 형사가 방화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압식 잠금장치가 외부에서 완전히 고정된 상태였다.

한강우는 메인 시계를 응시했다. 거꾸로 회전하는 분침은 이미 11시 5분을 지나 11시 정각을 향해 빠르게 치닫고 있었다.

뇌 속의 모의실험 장치가 오차 범위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냈다. 역회전하는 기어의 속도는 분당 180회였다. 시계바늘이 11시 정각에 도달하는 순간, 배전반 내부의 릴레이 스위치가 작동하여 고전압 스파크를 발생시키도록 회로가 구성되어 있었다.

가스의 농도는 이미 폭발 하한계인 5%에 육박하고 있었다. 밀폐 구역 내에서 스파크가 튀는 즉시 열압력 폭발이 발생할 것이 확실했다.

"배전반 차단기를 내려야 합니다."

한강우는 경비원의 사체가 처박힌 분배기함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사체의 차가운 경동맥 부근을 지나 손가락 끝이 젖은 전선 더미에 닿았다.

"비켜, 이 새끼야!"

지형섭이 한강우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한강우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쳤다. 붉은 피가 눈꺼풀을 타고 흘러내려 시야를 반쯤 가렸다.

지형섭은 분배기함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톱니바퀴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배선망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뭐야? 경비원 목에 왜 이런 게 박혀 있어?"

지형섭의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그의 거친 호흡이 가스 냄새와 섞여 허공으로 흩어졌다.

"만지지 마십시오."

한강우는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일으켰다. 그의 왼쪽 다리가 감각을 잃고 마비되어 있었다. 뇌세포의 급격한 파괴로 인한 일시적 운동 신경마비 증상이었다.

그는 주머니 속의 수표를 떠올렸다. 붉은 기하학의 문양이 새겨진 5억 원짜리 수표. 설계자가 남긴 모든 수칙은 완벽한 대칭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 폭발 장치 역시 대칭적인 해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의 시선이 복도 천장의 스프링클러 헤드로 향했다.

헤드의 유리 벌브 내부에는 붉은색 액체가 채워져 있었다. 일반적인 소방 설비라면 68도의 열에 반응해 깨지도록 설계된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 벌브의 색상은 붉은색이 아닌, 짙은 보라색에 가까웠다.

"보라색 벌브."

한강우는 낮게 읊조렸다. 그것은 특수 화학 물질로 채워진 감열체였다. 특정 주파수의 음파나 미세한 기압 변화에 반응해 파괴되는 변형된 부품이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흐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메인 시계의 내부에서 기어들이 서로를 갉아먹는 듯한 쇳소리가 나며 불규칙한 박자로 튕겼다.

틱. 틱. 티디딕.

그 음향의 주파수가 복도 벽면을 타고 반사되며 천장의 스프링클러 헤드로 집중되었다.

"형사님, 총을 주십시오."

한강우가 지형섭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멈추지 않고 가늘게 떨렸다.

지형섭은 총구를 한강우의 미간에 고정했다.

"미쳤군. 네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지형섭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길 듯이 팽팽해졌다.

그때, 메인 시계의 바늘이 정확히 11시 정각에 멈추어 섰다. 배전반 내부에서 탁 하는 고전압 접촉음이 울렸다.

동시에 스프링클러 헤드의 보라색 유리 벌브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벌브 내부의 보라색 액체가 끓어오르며 천장 전체가 진동했다.

한강우는 지형섭의 총구를 무시한 채 천장을 가리켰다.

"저것이 터지면 가스가 아니라 화학 작용제가 살포됩니다. 설계자의 진짜 목적은 우리 모두를 이 방에 가두고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한강우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기하학적 계산을 마친 차가운 확신만이 존재했다.

지형섭은 한강우의 시선을 따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보라색 액체가 가득 찬 벌브가 팽창하며 금이 가는 모습이 손전등 불빛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방 내부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강우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호흡을 멈췄다. 그의 이마에 맺힌 핏방울이 바닥의 피웅덩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이윽고 천장의 보라색 유리 벌브가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투명한 액체가 아닌, 끈적이고 어두운 황색의 가스가 살포구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복도 안은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는 탁한 연기로 가득 찼다.

지형섭이 격하게 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부하 형사들도 목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강우는 황색 가스 너머로 메인 시계의 기어 박스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기어의 틈새로 검은색 금속 주화가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기하학의 표식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시계 방향으로 기어갔다. 그의 등 뒤로 지형섭이 바닥을 긁으며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화를 확보해야만 다음 구역의 규칙을 해체할 수 있었다. 한강우의 손가락이 시계 바늘의 축에 닿는 순간, 그의 왼쪽 귀에서 뇌가 찢어지는 듯한 이명이 다시 터져 나왔다.

삐-.

시야가 완벽한 암전 속으로 가라앉았다. '12분간의 기억 상실'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대피할 시간도, 주화를 쥘 손가락의 감각도 사라져 가는 암흑 속에서 한강우의 의식이 흐려졌다.

그 암흑을 뚫고, 차갑게 식어버린 복도의 끝에서 누군가의 가죽 구두 소리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형섭의 발소리도, 쓰러진 형사들의 움직임도 아니었다.

일정한 템포로 바닥을 딛는 우아하고 정교한 발소리였다. 백설민의 구두 소리였다.

암전된 시야 너머로, 가죽 장갑을 낀 손이 한강우의 머리 위에 닿는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다.

"완벽한 대칭이 무너졌군, 강우야."

어둠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우의 호흡이 완전히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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