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형섭 형사의 손전등 불빛이 한강우가 은신한 302호 문고리를 정면으로 비추었다. 낡은 구리색 문고리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복도의 정적을 찢었다.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한강우는 302호 안쪽, 벽면과 사물함 사이의 좁은 틈새에 몸을 밀착했다. 콘크리트 벽면에서 배어 나오는 냉기가 얇은 셔츠를 뚫고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뇌 내부에서 고열이 발생했다. 관자놀이 부근의 모세혈관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귓가에는 고주파의 기계음 같은 이명이 들끓었다.

"거기 누구 있어?"

지형섭의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낮게 밀려들었다. 가죽 구두 밑창이 먼지 쌓인 리놀륨 바닥을 짓밟는 서걱거림이 뒤따랐다.

손전등의 백색 광선이 302호 천장을 훑었다. 먼지 입자들이 빛줄기 속에서 유령처럼 부유했다. 광선은 천장에 매달린 녹슨 낚싯바늘들을 스쳐 지나갔다.

한강우는 숨을 멈추었다. 허파가 쪼그라드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산소를 들이마시지 않았다. 기어코 찾아오는 환각의 징후가 눈앞을 흐렸다.

벽면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익숙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3년 전 죽은 민태경이 사물함 옆에 기대어 선 채 한강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쥐새끼처럼 구석에 처박혔군, 한강우."

민태경의 환각이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목소리는 뇌 신경망을 직접 건드리는 이명과 섞여 뇌리를 때렸다.

한강우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손끝으로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누르며 일정한 박자를 새겼다. 규칙적인 통증이 환각을 흐트러뜨렸다. 지금은 자아를 잃을 때가 아니었다. 24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의 모래시계는 이미 뒤집힌 상태였다. 이 방에서 살아 나가야 수칙의 모순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었다.

지형섭의 발소리가 두 걸음 더 방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한강우가 숨은 사물함의 모서리를 비추기 직전이었다.

한강우의 머릿속에서 요양원의 행동 수칙이 입체적인 활자로 떠올랐다.

['밤 11시 이후 소리를 발생시키는 모든 물체는 보관실에 감추어져야 한다.']

단순히 소음을 내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었다. 설계자 백설민이 구축한 이 공간의 기하학적 규칙은 철저히 물리적인 인과관계에 기반하고 있었다. 밤 11시 이후, 요양원의 모든 음향 센서와 경보 장치는 특정 '보관실'의 주파수에 동조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소리가 발생하는 즉시 감시 체계가 그곳으로 쏠리게 만드는 구조적 맹점이었다.

한강우는 벽면에 설치된 얇은 구리선 전선관을 응시했다. 수축된 동공이 전선관의 경로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인지적 모의실험의 회로가 급격히 회전했다. 뇌 세포가 타들어 가는 열감이 정수리로 몰렸다.

방문 바로 옆에는 청소도구함과 연결된 낡은 배수관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수관은 복도 건너편, 요양원의 구형 보일러와 수압 제어기가 위치한 빈 기계실로 직결되어 있었다.

지형섭이 손전등을 든 손을 천천히 꺾었다. 빛의 궤적이 사물함의 틈새를 향해 다가왔다.

한강우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작은 쇠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끝의 감각을 극대화했다. 그는 몸을 숙여 사물함 밑바닥의 틈새로 쇠못을 밀어 넣었다.

사물함 내부에 연결된 구형 마그네틱 리더기의 전선 뭉치가 감지되었다.

한강우는 쇠못의 끝으로 노출된 구리선 두 개를 동시에 찍어 눌렀다. 합선이 일어났다.

치직 하는 미세한 스파크 소리와 함께, 302호 내부의 전력 계통이 순간적으로 차단되었다.

"어?"

지형섭이 들고 있던 손전등의 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방 안의 미세한 전류 변화를 감지한 기계적 오작동이었다.

그 짧은 암전의 틈을 타 한강우는 사물함 뒤쪽의 점검용 통로로 몸을 날렸다. 소리 없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회전하는 사물함이 그의 등 뒤에서 부드럽게 닫혔다.

먼지와 녹슨 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강우는 어둠 속에서 수직 사다리를 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발바닥에 닿는 철제 디딤판의 감각이 차가웠다.

그가 도달한 곳은 요양원의 지하 배수 통로였다. 머리 위쪽에서 지형섭의 거친 목소리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울렸다.

"이 방에 분명히 흔적이 있었어.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

경찰들의 군화 소리가 302호 바닥을 어지럽게 짓밟았다.

한강우는 지하 통로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벽면에는 푸른 이끼와 습기가 가득했다. 그의 시선은 배수관의 메인 밸브에 멈추었다.

수칙의 역이용을 시작할 차례였다.

그는 메인 밸브 옆에 설치된 수압 경보 장치의 커버를 열었다. 구형 기계식 플로트 밸브가 보였다. 손가락을 밀어 넣어 플로트를 강제로 위로 들어 올렸다.

동시에 배수관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며 역류 현상이 발생했다.

철 수선이 꼬이며 탕 하는 굉음이 지하를 흔들었다. 수압 경보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요양원 복도 건너편, 빈 기계실 내부의 구형 소변기들로 엄청난 양의 물이 뿜어져 나왔다. 물줄기가 타일 바닥을 때리며 발생하는 소음이 요양원 전체로 확산되었다.

삐- 하는 날카로운 경보음이 기계실 스피커를 통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뭐야? 소리가 저쪽에서 나는데!"

지형섭의 부하 형사가 외쳤다.

"기계실이다! 이동해!"

지형섭의 발소리가 302호에서 급박하게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군화 소리가 복도 건너편으로 멀어졌다.

지하 통로의 어둠 속에서 한강우는 벽에 기대어 섰다.

귓가에 들리는 경보음과 경찰들의 다급한 외침 속에서,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심장의 박동수가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뇌세포가 파괴되는 고통을 압도하는 기묘한 해방감이 전신을 감쌌다.

설계자가 구축한 완벽한 통제 구역. 그 안에서 작동하는 물리적 수칙을 역으로 비틀어, 자신을 사냥하려던 공권력의 인지 체계를 완벽하게 기만했다. 그들의 행동 양식은 한강우가 그려낸 심리 지도의 경로를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미친놈이군."

민태경의 환각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중얼거렸다.

한강우는 환각을 무시한 채, 손끝으로 바지를 툭툭 털었다.

그는 요양원 관리 공간 뒷문으로 연결된 지하 비상구를 향해 걸어갔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은 낡은 철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문을 살짝 밀자,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경찰들의 시선이 기계실의 소음과 경보 장치에 완벽히 묶여 있는 사이, 한강우는 요양원 뒤편의 잡목림 속으로 유령처럼 녹아들었다.

어둠과 빗줄기가 그의 흔적을 지워냈다.

***

새벽 3시.

번화가 뒷골목의 음침한 건물 지하. 무허가 민간 프로파일링 사무실 '아페이론'의 철문 앞에 한강우가 섰다.

빗물에 젖은 코트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회색 콘크리트 바닥을 적셨다. 머릿속의 이명은 간신히 가라앉았지만, 관자놀이의 통증은 여전했다.

한강우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자물쇠를 돌리는 금속음이 고요한 복도에 낮게 울렸다.

철컥.

그는 문을 밀고 아페이론 내부로 발을 들였다.

안은 철저하게 어두웠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문 사이로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조차 들지 않았다. 무균실 같은 백색과 회색의 공간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만을 드러냈다.

한강우는 조명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낯선 인기척이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과 함께, 빳빳한 종이 뭉치가 그의 가슴팍을 강하게 압박했다.

"움직이지 마."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윤세희 검사였다.

그녀는 한강우의 젖은 코트 깃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두꺼운 가죽 서류철의 모서리를 그의 목덜미에 바짝 밀어붙이고 있었다. 서류철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푸른 거울 요양원에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지, 한강우?"

윤세희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그녀의 숨결에서 묻어나는 서늘한 긴장감이 한강우의 얼굴에 닿았다.

한강우는 손을 들어 올리지 않은 채, 그녀의 손목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단 침입입니까, 윤 검사님."

그의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은 가죽처럼 건조하고 평온했다.

윤세희는 멱살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서류철을 그의 목덜미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네가 흘리고 간 단서들이 내 책상 위에 쌓여 있어. 더는 민간 컨설턴트라는 핑계로 봐주지 않아."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노가 아닌, 눈앞의 남자가 품은 광기를 마주한 자의 본능적인 경계심이었다.

한강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실루엣을 지켜보았다. 새로운 게임의 판이 그의 아지트 한가운데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한강우는 목덜미를 누르는 서류철의 감촉을 무시했다. 가죽 모서리가 피부를 긁어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비릿한 철분 냄새가 좁은 아페이론의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윤세희의 동공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호흡 주기와 어깨의 기울기는 체포를 목적으로 한 경찰의 표준 자세가 아니었다. 경계와 의심이 뒤섞인 사적인 대치 상태였다.

"영장 없이 민간인의 사무실에 침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한강우가 목소리의 톤을 한 치도 올리지 않고 말했다.

"네놈이 요양원에서 빠져나오는 시간과 이곳에 도착하는 동선이 정확히 일치했다."

윤세희는 멱살을 쥔 손가락에 더욱 아귀힘을 주었다. 그녀의 턱관절이 단단하게 맞물렸다.

한강우는 시선을 내려 그녀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3시 14분이었다. 요양원의 수압 경보가 울린 시각으로부터 정확히 32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지형섭 형사는 아직 요양원 지하 기계실을 뒤지고 있겠군."

한강우의 입술 사이로 건조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는 멍청해서 소리가 나는 곳만 쫓을 뿐이다."

윤세희는 서류철을 거두고 한강우의 가슴을 밀쳤다. 한강우의 몸이 뒤로 두 걸음 밀려나 가죽 의자 모서리에 부딪혔다.

탁 하는 둔탁한 마찰음이 일어났다. 윤세희는 품 안에서 투명한 증거물 봉투를 꺼내 철제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봉투 내부에는 젖은 흙이 묻은 붉은색 기하학 주화가 들어 있었다. 요양원 뒤편, 한강우가 탈출했던 잡목림의 입구에서 수거된 물건이었다.

"이게 왜 네 탈출 경로에 떨어져 있었지?"

윤세희의 검은 눈동자가 송곳처럼 한강우의 미간을 찔렀다.

한강우는 테이블 위의 주화를 내려다보았다. 주화의 표면에는 세 개의 삼각형이 맞물린 대칭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그가 설계자에게 받은 5억 원짜리 수표 뒷면의 문양과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뇌 신경망의 시냅스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요동쳤다. 왼쪽 귀 깊은 곳에서 고주파의 이명이 뚫고 올라왔다. 삐- 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듯이 울렸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기억 상실의 전조 증상이다.'

동기화의 대가가 뇌 세포의 중심부를 갉아먹고 있었다. 정확히 12분간의 공백이 찾아오기 직전의 감각이었다.

한강우는 왼손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 표면을 불규칙하게 두드렸다. 딱, 딱, 딱 하는 마찰음이 어둠 속에서 규칙을 만들었다.

"그건 내가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한강우는 이명을 누르며 차갑게 대답했다.

"거짓말 마라."

윤세희가 테이블을 짚으며 상체를 들이밀었다.

"설계자가 일부러 흘려둔 거다. 내가 주워서 너에게 가져오도록."

한강우는 테이블 밑으로 떨리는 오른손을 감추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귓속의 이명은 이제 뇌 전체를 지배하는 기계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윤세희가 가죽 서류철을 펼쳐 한 장의 사진을 한강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이건 요양원 원장실 금고에서 발견된 문서다."

사진 속에는 푸른 거울 요양원의 환자 명부가 담겨 있었다. 특정 이름 위에 붉은색 색연필로 거친 가위표가 쳐져 있었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한강우의 과거 동료, 민태경이었다.

그리고 그 가위표 바로 옆에는 연필로 갈겨쓴 짧은 주석이 붙어 있었다.

[거울의 뒷면을 보아라. 그곳에 두 번째 수칙이 숨겨져 있다.]

한강우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뇌 내부의 과열된 혈류가 폭발하듯 박동했다. 뇌사 상태로 진입하는 시한장치의 초침이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명해, 한강우. 민태경 형사가 왜 요양원의 행동 수칙 한가운데에 기록되어 있는 거지?"

윤세희의 목소리가 이명 너머로 아득하게 들려왔다.

한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사진 속 민태경의 이름 뒤에 붙은 일련번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번호는 302호 사물함에서 발견한 '푸른 마그네틱 키카드'의 고유 일련번호와 마지막 세 자리가 일치했다.

그 순간, 한강우의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이명이 멈추고 고요가 찾아왔다.

기억의 흐름이 뚝 끊기는 소리가 뇌리에서 울렸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