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온의 열감이 척수를 타고 뇌간으로 치솟았다.
귓구멍 안쪽에서 고주파의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박동할 때마다 안구 뒷근육이 당겼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붉은색 타르를 부은 것처럼 흐려졌다.
"강우야, 당장 멈춰. 더 가면 네 자아는 돌아오지 못해."
민태경의 환각이 정면에 서 있었다.
목의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말라붙은 청색 자켓 차림이었다. 민태경의 손이 한강우의 어깨를 붙잡았으나 아무런 물리적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강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턱뼈가 맞물리며 고통스러운 마찰음이 났다.
"비켜."
한강우는 목구멍을 긁는 소리로 내뱉었다.
이명은 이제 쇠파이프를 콘크리트 바닥에 끄는 소리로 변했다. 뇌 신경망의 과열 수치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한강우는 왼손 검지 손가락 끝으로 오른쪽 손목의 뼈마디를 일정한 박자로 두드렸다. 탁, 탁, 탁. 규칙적인 자극이 이성의 끈을 간신히 고정했다.
인지적 모의실험의 동기화율이 구십 퍼센트에 도달했다.
눈앞의 푸른 거울 요양원 복도가 거대한 설계도로 재구축되었다. 천장의 석고보드 간격, 벽면에 붙은 비상구 유도등의 조도, 바닥 타일의 열전도율이 숫자로 환산되어 머릿속에 박혔다. 살인마가 이 공간을 걸을 때 느꼈을 호흡의 주기가 한강우의 폐부로 그대로 이식되었다.
살인마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피해자의 공포를 통제하는 자의 여유가 보폭 마다 묻어났다. 한강우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른쪽 발바닥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았다. 슬리퍼를 신지 않은 상태였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냉기가 척수를 자극하자 본능적으로 고개가 위로 젖혀지려 했다.
동시에 머릿속의 시뮬레이터가 경고를 보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죽음이다.
한강우는 억지로 목 근육을 수축시켰다. 턱을 가슴 쪽으로 바짝 당긴 채 바닥의 붉은 가이드라인만을 응시했다. 시선을 아래로 고정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복도 모퉁이를 돌자 차가운 공기 사이로 피비린내가 섞여 들었다.
바닥에 거대한 검붉은 얼룩이 늘어져 있었다. 그 끝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푸른 거울 요양원의 야간 경비원 복장을 한 사체였다.
사체는 천장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굳어 있었다.
한강우는 사체 앞에 멈추어 섰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사체의 상태를 관찰했다. 사후 강직은 이미 턱과 목을 지나 상지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각막의 혼탁도로 보아 사망한 지 대략 여섯 시간이 경과했다.
"이 자는 규칙을 믿지 않았군."
한강우의 입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체의 양쪽 안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열되어 있었다. 안구 내부의 초자체와 안화근이 짓이겨져 뺨을 타고 흘러내린 흔적이 역력했다. 천장에 매달린 가느다란 스테인리스 와이어 끝에 매달린 세 갈래의 낚싯바늘이 사체의 안구 중심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살인마의 설계는 오차가 없었다.
요양원의 야간 행동 수칙 제일조는 '슬리퍼를 신지 않은 환자는 천장을 보지 마시오'였다. 경비원은 순찰 도중 슬리퍼를 분실했거나, 누군가에 의해 빼앗겼을 것이다. 차가운 바닥을 맨발로 걷는 순간 발바닥의 통점이 자극되었고, 인간의 생리적 반사에 의해 고개는 자연스럽게 위를 향했다.
그 순간 천장 환기구 틈새에 정교하게 늘어뜨려진 낚싯바늘 트랩이 안구를 관통했다.
놀란 경비원이 뒤로 물러서려 하자, 가늘고 질긴 와이어가 안구를 고정한 채 장력을 가했다. 안구가 뽑혀 나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경비원은 균형을 잃고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부러진 경추와 파열된 안구가 그 결과물이었다.
"멍청한 놈."
한강우는 사체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는 경비원의 주머니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사체의 발끝에 머물렀다. 경비원의 발가락 사이사이에 미세한 푸른색 마이크로 섬유가 묻어 있었다. 302호실의 수입 카펫에서만 나오는 특수 원사였다.
"302호."
한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귓가에서 다시 민태경의 조소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거기 가면 뭐가 있을 것 같아? 또 다른 덫뿐이야. 네 뇌는 이미 반쯤 망가졌어, 강우야."
"시끄러워."
한강우는 환각을 향해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는 서늘한 복도를 지나 302호라는 문패가 붙은 목재 문 앞에 섰다. 문고리는 차가운 금속 재질이었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소매를 끌어당겨 손잡이를 감싸 쥐었다.
천천히 문을 밀었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방 안은 어두웠고, 창문 너머로 흘러드는 가로등 불빛만이 방 안의 사물들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환자용 침대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철제 사물함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습했고, 곰팡이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한강우는 침대를 지나 벽면의 사물함으로 다가갔다. 사물함의 문들은 대부분 열려 있었으나, 오직 하나의 사물함만이 굳게 닫혀 있었다. 환자 이름표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302'라는 숫자가 거칠게 긁혀 있었다.
손끝으로 사물함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철제의 촉감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문을 열자 내부에는 낡은 환자복 몇 벌과 개인 소지품 상자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꺼내어 바닥에 쏟았다.
플라스틱 빗, 낡은 성경책, 그리고 먼지 쌓인 알약 통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강우는 사물함 안쪽 깊은 곳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철판의 이음새 부분에 손톱 끝이 걸렸다. 이중 바닥이었다. 힘을 주어 철판을 들어 올리자, 좁은 틈새가 드러났다.
그 안에서 푸른색 광택을 띠는 마그네틱 플라스틱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드의 앞면에는 기하학적인 선들이 대칭을 이루며 인쇄되어 있었다. 뒷면에는 검은색 마커로 갈겨쓴 글씨가 보였다.
[302호 문에 꽂지 마시오.]
한강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순이군."
이 방은 302호다. 그리고 이 카드는 302호 사물함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수칙은 이 카드를 302호 문에 꽂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카드는 어느 문을 위한 열쇠인가.
"말했잖아. 이건 함정이야."
민태경의 환각이 한강우의 등 뒤에 서서 속삭였다.
"그 살인마는 네가 이 카드를 꽂기를 바라고 있어. 꽂는 순간, 천장에서 뭐가 떨어질지 상상해 봐."
한강우는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이건 함정이 아니라 지도다."
그는 카드의 기하학적 선들을 머릿속의 설계도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요양원의 평면도가 뇌 속에서 좌우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거울. 푸른 거울 요양원이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가 뇌리를 스쳤다.
공간 전체가 거울에 의해 좌우 반전된 구조라면, 이 302호는 실제로는 반대편의 다른 방이어야 했다.
뇌 신경망이 다시 한번 강하게 요동쳤다. 코끝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훔쳐내자 검붉은 피가 묻어났다. 뇌의 과부하가 육체의 한계를 갉아먹고 있었다. 24시간의 제한 시간 중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복도 저편에서 무거운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철벅, 철벅 하는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의 발소리가 섞여 들었다. 불규칙한 발소리 사이로 무전기의 노이즈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상황실, 여기는 지형섭이다. 요양원 내부 진입했다."
거칠고 탁한 목소리였다.
지형섭 형사였다. 구시대적인 수사 방식을 고집하며 한강우를 쓰레기 취급하던 공권력의 괴물이 마침내 이곳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
"각 조, 흩어져서 수색해.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지형섭의 명령이 복도 벽면에 반사되어 웅웅거렸다.
창문 밖으로 붉고 푸른 경광등 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요양원 외곽이 경찰 병력에 의해 포위되는 중이었다. 손전등의 날카로운 백색 광선이 복도의 어둠을 가르며 다가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한강우는 숨을 죽였다. 302호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방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탈출구는 없었다. 오직 창문뿐이었으나, 3층 높이의 창밖은 가파른 절벽과 연결되어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복도 벽면을 훑으며 302호 문 앞까지 도달했다.
"거기 누구 있어?"
지형섭의 목소리가 바로 문밖에서 들렸다.
서서히 다가오는 발소리가 바닥 타일을 울렸다. 한강우는 몸을 낮춰 사물함 뒤편의 음영 속으로 몸을 숨겼다. 주머니 속의 푸른 마그네틱 키카드가 가죽을 통해 차갑게 와닿았다.
서치라이트의 강한 빛줄기가 302호의 문고리를 정면으로 비추었다.
쇠 손잡이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손잡이가 완전히 내려가며 문이 안쪽으로 밀렸다.
문틈 사이로 손전등의 강렬한 백색 광선이 쏟아져 들어왔다. 빛줄기는 방 안의 먼지 입자들을 하얗게 들추어내며 벽면을 빠르게 훑었다. 한강우는 숨을 멈춘 채 사물함과 벽면 사이의 좁은 틈새로 몸을 밀착시켰다.
손가락 끝이 오른쪽 손목의 뼈마디를 거칠게 두드렸다. 탁, 탁, 탁. 뇌 신경의 통증을 지우기 위한 자극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짓밟는 탁한 소리가 방 안으로 진입했다. 지형섭의 거친 호흡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들렸다.
"아무도 없나."
지형섭이 중얼거리며 손전등을 좌우로 흔들었다. 광선이 한강우가 숨어 있는 철제 사물함의 모서리를 스쳐 지나갔다. 가죽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 드는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지형섭은 한 걸음 더 안쪽으로 들어서며 침대 밑을 비추었다.
그의 시선이 한강우의 발끝에 닿기 직전이었다.
치직 하는 날카로운 무전기 소음이 지형섭의 어깨춤에서 터져 나왔다.
[팀장님, 3층 중앙 계단입니다! 야간 경비원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확보했습니다!]
지형섭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그는 손전등 빛을 바닥으로 내리며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손 대지 말고 대기해. 당장 간다."
지형섭은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무거운 발소리가 방 밖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복도 저편에서 다른 형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졌다.
한강우는 사물함 틈새에서 걸어 나왔다. 코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술을 지나 턱 끝으로 떨어졌다. 그는 소매로 피를 닦아낸 뒤 주머니에서 푸른색 마그네틱 카드를 다시 꺼냈다.
"시간이 없어, 강우야. 경찰들이 복도를 봉쇄할 거야."
민태경의 환각이 깨진 창문틀 위에 걸터앉아 손가락질했다. 그의 목에 새겨진 붉은 기하학 문양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한강우는 환각을 무시했다. 그는 문 안쪽에 붙어 있는 비상대피도를 응시했다.
비상대피도에 그려진 요양원의 구조는 현재 그가 서 있는 공간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보통의 건물이라면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이어야 하지만, 이곳은 복도 중앙의 대형 거울들을 경계로 완벽하게 뒤집혀 있었다.
"이 방은 302호가 아니다."
한강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가 서 있는 방의 문에는 '30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꾸어 놓은 표지판에 불과했다. 거울의 반사 축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곳은 실제 설계도상 '305호'였다.
진짜 302호는 복도 반대편, 거울 너머에 존재하는 방이었다.
카드 뒷면에 적힌 '302호 문에 꽂지 마시오'라는 경고는 역설적으로 이 가짜 302호, 즉 305호의 문에 카드를 꽂아야만 정답이 된다는 의미였다. 살인마는 공간의 반전과 수칙의 모순을 교묘하게 결합해 놓았다.
한강우는 가짜 302호의 문틀 안쪽에 설치된 구형 마그네틱 리더기로 다가갔다. 리더기의 좁은 틈새로 푸른색 카드를 밀어 넣었다.
띠릭 하는 기계음과 함께 가죽 마찰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방 안쪽 벽면에 늘어서 있던 철제 사물함 중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강우는 사물함 앞으로 다가갔다. 손끝으로 철판을 밀자, 사물함 전체가 부드럽게 회전하며 벽면 뒤쪽의 어두운 공간을 드러냈다.
건물 벽체 사이에 숨겨진 좁은 점검용 통로였다.
차갑고 습한 지하의 공기가 통로 내부에서 흘러나와 한강우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손전등 대용으로 휴대전화의 액션 라이트를 켰다. 좁은 통로 내부에는 수직으로 내려가는 철제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강우는 망설임 없이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사물함은 그의 등 뒤에서 자동으로 회전하며 다시 벽면을 폐쇄했다.
완벽한 밀실이었다.
통로 내부는 먼지와 녹슨 철 냄새로 가득했다. 사다리를 타고 한 단계씩 내려갈 때마다 뇌의 이명이 심해졌다. 뇌 세포가 사멸해 가는 열감이 머리 전체를 짓눌렀다.
바닥에 발이 닿았다. 먼지 쌓인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한강우는 휴대전화 불빛으로 주변을 비추었다. 가로세로 이 미터 남짓한 좁은 지하실이었다. 배수관들이 복잡하게 얽힌 벽면 한가운데에 낡은 목제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단 하나의 물건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오래된 액자였다. 한강우는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액자 유리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액자 속 사진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굳었다.
사진 속에는 3년 전 사망한 동료 민태경이 활짝 웃고 있었다. 배경은 다름 아닌 이 푸른 거울 요양원의 정원이었다. 민태경의 가슴팍에는 붉은색 기하학 문양이 낙인처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 사진 옆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나의 거울.]
설계자 백설민의 필체였다.
그때, 등 뒤의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성 마찰음이 들렸다.
한강우는 즉시 몸을 돌려 빛을 비추었다. 그가 내려온 사다리 입구의 철제 해치가 위쪽에서 단단히 맞물려 닫히는 소리였다.
철컥.
무거운 자물쇠가 외부에서 채워지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동시에 사방의 벽면에 설치된 작은 환기구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