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쿵, 하는 무거운 타격음이 지하 2층 아페이론의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타고 내려왔다.

철골 구조물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천장에 매달린 백색 형광등이 좌우로 안개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1층 로비의 통유리가 지형섭이 이끄는 돌격대의 대형 해머에 박살 나는 소리였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대리석 바닥에 쏟아지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환기구를 타고 지상에서부터 지하 상담실 내부로 고스란히 흘러들었다.

지하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환기구의 역류 댐퍼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쉭쉭거리는 기계음을 냈다. 차단막 틈새로 비어져 나온 푸른 가스의 잔류물이 백색 타일 바닥을 따라 기어 다니듯 번졌다.

구속 의자에 묶인 백설민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의 왼쪽 가슴팍에 고정된 발광 다이오드가 붉은색으로 아주 빠르게 명멸했다.

"설계가 이렇게 무너질 리가 없어."

백설민이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덜미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려 셔츠 깃을 적셨다.

한강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왼쪽 귀의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린 붉은 혈흔이 턱 끝에서 멈춰 굳어가고 있었다.

고막 안쪽에서 전기 모터가 도는 듯한 고주파 이명이 시작되었다. 주파수 8000헤르츠의 날카로운 기계음이었다. 대뇌 피질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시야의 가장자리가 타들어 가듯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정확히 12분이었다. 뇌 신경망이 과열되어 모든 인지 능력이 정지되는 암전 상태, 즉 뇌사적 기억 상실 트라우마가 발생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강우의 뇌는 이미 현실의 시간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드는 시야 한가운데로 익숙한 실루엣이 떠올랐다. 가슴뼈가 함몰되어 기괴한 각도로 꺾인 민태경의 환각이었다. 민태경은 피 묻은 손가락으로 백설민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 강우야, 저놈의 기하학은 가짜다. 완벽한 대칭 속에는 반드시 숨기고 싶은 오점이 존재해.

환각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한강우는 손끝을 천천히 까딱였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윤세희에게서 넘겨받은 민태경의 유품 수첩이 닿아 있었다.

가죽 표지가 낡아 헤진 수첩이었다. 한강우는 수첩의 찢겨 나간 단면과 백설민의 아지트에서 회수한 원본 조각을 머릿속으로 결합했다.

뇌세포가 연소하며 발생하는 초인지 능력이 발동했다.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진 연필 선들이 입체적인 3D 그래픽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그것은 붉은 기하학의 불완전한 대칭 도형 설계도였다.

"너의 대칭은 무너졌다, 백설민."

한강우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법의학자의 어조였다.

백설민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내 설계는 완벽해. 푸른 거울 요양원도, 톱니바퀴 아파트도 모두 완벽한 대칭의 규칙 아래 통제되었다."

백설민은 묶인 손목을 비틀며 가죽 끈을 잡아당겼다.

한강우는 주머니에서 푸른색 마그네틱 키카드를 꺼냈다. 푸른 거울 요양원 302호 사물함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던 물건이었다.

"규칙 제4조. 절대 302호 문에 푸른 마그네틱 키카드를 꽂지 말 것."

한강우는 키카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가볍게 돌렸다.

"너는 이 카드가 함정을 가동하는 치명적인 트리거라고 주장했지. 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이 카드는 302호의 문을 열기 위한 열쇠가 아니었다."

백설민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요양원 3층은 대칭 구조의 거울 왜곡을 이용해 실제 존재하지 않는 301호의 반사 공간을 302호처럼 보이게 만든 착시 구역이었다. 네가 절대 꽂지 말라고 했던 그 카드는, 사실 거울에 반사된 가짜 문이 아닌 진짜 301호의 비상구를 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한강우의 손끝이 일정한 박자로 책상을 두드렸다. 탁, 탁, 탁.

"너는 피해자가 탈출할 수 있는 진짜 경로를 '금기'라는 규칙으로 묶어두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너의 완벽한 기하학의 실체다."

백설민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건 합리적인 게임의 규칙이었다. 피해자는 자신의 선택으로 죽음을 맞이한 거야."

백설민은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한강우는 수첩을 펼쳐 백설민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민태경이 남긴 불완전한 대칭 도형의 꼭짓점들이 형광등 불빛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민태경의 수첩에 그려진 이 도형의 좌측 하단 꺾임 각도는 87도다. 완벽한 대칭이라면 90도가 되어야 마땅하지. 3도의 오차다."

한강우의 시선이 백설민의 얼굴을 해부하듯 파고들었다.

"너는 모든 범행 현장에 이 3도의 비대칭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다. 그것을 너는 '신의 도피선' 혹은 '우회로'라고 명명했지. 규칙을 이해하는 자만을 위한 구원의 통로라고 포장하면서 말이다."

백설민의 얼굴에서 우아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이 내 예술의 정수다. 완벽함 속에 존재하는 미세한 균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이성을 시험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설계지."

백설민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

한강우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건 예술이 아니다. 비겁한 본능의 배설물일 뿐이지."

지하 상담실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 정적이 감돌았다.

"너는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7년 전, 변두리의 어느 허름한 연립주택 지하였다."

한강우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다.

"너는 피해자의 목을 뒤에서 졸랐다. 하지만 너의 악력은 생각보다 약했고, 질식사하기 직전의 피해자는 발버둥 치며 너의 왼쪽 손가락 두 개를 뒤로 꺾어 부러뜨렸다. 뚝 하는 뼈 꺾이는 소리와 함께 너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지."

백설민의 뺨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 미숙하고 초라했던 첫 살인에서, 너는 피해자의 손가락을 제때 풀어내지 못해 범행 현장에 너의 표피 조직과 혈흔을 남길 뻔했다. 그때 네가 도망치기 위해 억지로 뜯어내듯 꺾어버린 각도가 바로 87도였다."

한강우가 수첩의 꺾인 도형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너는 손가락이 꺾이는 순간의 고통과 공포를 잊지 못했다. 그래서 이후의 모든 살인 현장에 그 '87도의 꺾임'을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복제해 넣은 것이다. 네가 저지른 최초의 오점, 그 비참했던 실패의 기억을 스스로 미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백설민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목에 굵은 핏대가 솟아올랐다.

"닥쳐. 그건 네놈의 한량 같은 망상에 불과해."

"너의 그 거창한 '붉은 기하학'은 고도의 살인 예술이 아니다. 그저 첫 살인의 실수를 들킬까 봐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던 겁쟁이가 만들어낸 방어 기제, 자위 행위에 불과하다."

한강우는 백설민의 눈동자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오만함을 정밀하게 조준해 도려냈다.

"너는 신이 아니다. 그저 이빨이 부러질까 봐 두려워 뼈를 피해 살만 골라 먹는 늙은 하이에나 같은 존재일 뿐이지."

백설민의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고, 눈동자는 분노로 붉게 충혈되었다.

쿠우웅!

철문 밖에서 더 강한 충격음이 울렸다. 지형섭의 돌격대가 마침내 아페이론의 이중 철문 바로 앞까지 도달한 모양이었다. 금속 도끼가 강철 문판을 찍어내리는 날카로운 굉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한강우! 안에 있지? 당장 문 열어! 수색 영장 발부됐다!"

철문 너머에서 지형섭의 걸걸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지하 상담실 내부에 설치된 가스 센서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삐- 삐- 하는 단조로운 경고음이 이명과 겹쳐 한강우의 뇌를 압박했다.

한강우의 왼쪽 귀에서 다시 한번 검붉은 피가 한 방울 떨어져 수첩의 페이지를 적셨다. 12분의 한계 시간 중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남짓이었다.

"아페이론 비밀유지 계약서 제7조 바항."

한강우는 수첩을 덮고 백설민을 똑바로 응시했다.

"의뢰인이 허위의 물증을 제출하여 감정을 기만할 시, 감정인은 의뢰인의 신체적 표식을 즉시 임시 보존 처리할 수 있다."

한강우는 테이블 아래의 스위치를 눌렀다.

백설민이 앉아 있는 강철 의자의 손목과 발목 구속구가 더욱 단단히 조여들며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를 냈다.

"너는 푸른 거울 요양원의 가짜 주화를 내게 의뢰인 자격으로 제출했다. 그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따라서 나는 계약서에 의거해, 너의 신체를 이곳에 합법적으로 구속한다. 경찰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까지 말이다."

백설민의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의 심박 센서는 이미 118을 가리키고 있었다. 120이 되는 순간, 아지트 지하에 매설된 폭약의 기폭 장치가 과부하로 차단되거나 혹은 폭발할 것이었다. 그것은 50퍼센트의 도박이었다.

"네 뇌가 먼저 녹아내릴까, 아니면 이 건물이 먼저 날아갈까?"

백설민이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쿵! 쿵! 쿵!

철문이 찢어지는 소리가 지하의 공기를 메웠다. 문틀이 비틀리며 틈새로 지상층의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한강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눈빛만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너의 게임은 끝났다, 백설민."

백설민의 얼굴 근육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오만함이 완전히 깨져 나가며 추악한 살의만이 남았다.

"닥쳐! 그건 미완성이었을 뿐이야! 내가 실패한 게 아니란 말이다!"

백설민이 구속된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몸을 뒤틀었다. 그의 구두 뒤축이 의자 다리 아래쪽의 숨겨진 금속 판을 강하게 눌렀다.

지지직!

가스 안개가 자욱한 아지트 바닥에서 푸른 불꽃의 고압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바닥을 기던 푸른 가스가 스파크의 열기를 만나며 찰나의 순간 붉은 불꽃으로 변했다.

공기가 팽창하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밀실을 흔들었다. 백설민의 발끝에서 시작된 전류가 구속 의자의 철제 프레임을 타고 올라갔다.

"이 장치는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백설민이 짓이겨진 목소리로 짖어댔다.

한강우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단말기 모니터로 손을 뻗었다. 시야의 사방이 검게 물들어가며 손끝의 감각이 무뎌졌다. 뇌세포가 연소하는 고열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남은 시간은 1분 40초였다.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을 타고 내려와 칼라를 적셨다.

단말기 화면에는 수동 해제 코드를 입력하라는 점멸 신호가 떠 있었다. 잘못된 코드를 입력할 경우, 의자뿐만 아니라 바닥 전체에 2만 볼트의 고전압 전류가 방출되는 구조였다.

민태경의 환각이 한강우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가리켰다. 대칭의 완성은 90도가 아닌, 87도의 결함 속에 존재했다.

한강우는 키패드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백설민이 설계한 완벽한 원형의 각도 계산식에서 정확히 3도를 뺀 값을 입력했다.

*삑.*

기계음과 함께 바닥을 흐르던 스파크가 거짓말처럼 소멸했다. 배출구의 밸브가 역방향으로 회전하며 푸른 가스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백설민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확장되었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그 코드는 내 심박수와 완벽한 대칭 수치로만..."

"너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

한강우는 단말기 옆의 유선 수화기를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12분짜리 루프 녹음 장치의 작동 스위치를 눌렀다. 이 장치는 뇌 발작으로 인한 인격 암전 상태 동안 한강우의 목소리를 복제하여 외부와의 연결을 유지하는 도구였다.

철문이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휘어졌다. 지형섭의 도끼날이 철판을 찢고 틈새로 들이쳤다.

"한강우! 문 열어!"

외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한강우의 복제된 음성이 철문 밖의 지형섭을 향해 송출되었다.

"지 팀장, 12분간 진입을 멈춰라. 지금 문을 열면 백설민의 기폭 장치가 작동한다."

실제 한강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야가 완벽한 암전 속으로 가라앉았다. 귀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의 백색 타일을 붉게 물들였다.

그는 의자에 묶인 백설민을 올려다보았다. 백설민은 굳어버린 얼굴로 허공에서 흘러나오는 한강우의 목소리와 쓰러지는 한강우의 육체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네놈의 설계인가?"

백설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암전이 한강우의 의식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 철문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지형섭이 이끄는 무장 대원들이 먼지 구덩이 속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쓰러진 한강우와 묶인 백설민, 그리고 여전히 차분하게 흘러나오는 한강우의 목소리였다.

"지 팀장,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 순간, 백설민이 구속된 의자 밑에서 붉은 경고등이 다시 한번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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