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내 심장을 여기서 멈추고 나와 함께 폭사할 텐가, 아니면 내 규칙에 굴복하고 네 그 잘난 뇌세포가 완전히 타서 깨질 때까지 기다릴 텐가?"

백설민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벌어졌다. 가죽 재킷 위로 드러난 기계 장치의 붉은 발광 다이오드가 그의 턱밑을 기괴한 핏빛으로 물들였다.

한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왼쪽 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끝에 닿은 귓바퀴가 축축했다. 손가락을 내려 조명에 비추어 보았다. 점성이 높은 검붉은 피가 지문에 묻어 있었다.

동시에 고막 안쪽에서 고주파의 금속성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뇌세포가 고열로 타들어 가며 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정확히 12분. 이 이명이 극점에 달하는 순간 대뇌 피질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전원을 차단할 터였다. 12분간의 완전한 인지 암전.

과거 침묵의 도서실에서 탈출할 때, 한강우는 이 12분의 암전 시간 동안 사전에 동기화해 둔 AI 복제 음성 장치를 유선망에 연결해 지형섭 형사를 기만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했다. 뇌의 치명적인 결함을 역이용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창조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이번에도 시간의 한계는 동일했다.

"자네의 그 표정은 언제 봐도 즐겁군."

백설민이 테이블 위의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손가락이 기폭 장치의 안테나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한강우는 피가 묻은 손가락을 셔츠 깃에 닦아냈다. 그의 눈동자는 백설민의 가슴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박 연동 기폭 유닛. 그리고 이 밀실을 채우던 독가스의 차단. 이 모든 기하학적 데스 매치의 이면에는 백설민의 미학적 교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방을 설계하면서 자네는 한 가지 착각을 했다."

한강우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선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착각이라니? 내 설계는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백설민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자네는 이 게임의 전제 조건으로 기괴한 규칙을 제시했지. 서로 반드시 한 번씩은 속여야만 하며, 동시에 두 사람 모두 이 방에서 살아 나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규칙."

한강우가 철제 테이블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의 손끝이 일정한 박자로 테이블 표면을 두드렸다. 탁, 탁, 탁. 뇌 발작을 억누르기 위한 물리적 자극이었다.

"그건 대수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유희다. 거짓을 전제로 한 생존 확률의 계산은 결국 기하학적 파멸로 수렴하니까."

"아직도 네 그 알량한 논리로 내 예술을 재단하려는군."

백설민이 비웃음을 흘렸다.

"푸른 거울 요양원 302호."

한강우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백설민의 비웃음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곳 사물함에서 발견된 푸른 마그네틱 키카드. 규칙에는 '절대 302호 문에 꽂지 말 것'이라고 되어 있었지. 자네는 그것이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단순한 함정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한강우의 주머니에서 낡은 플라스틱 카드가 흘러나와 철제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푸른색 표면이 백색 형광등 불빛을 반사했다.

"하지만 실제 요양원 3층은 대칭 구조의 거울 왜곡을 이용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301호의 반사체가 바로 302호였지. 즉, 그 푸른 카드는 존재하지 않는 문을 열기 위한 열쇠가 아니라, 거울 뒤에 숨겨진 진짜 통로를 작동시키는 역설의 도구였다. 자네는 일부러 거짓 금기 규칙을 만들어 침입자가 진짜 진실에 도달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 한 것이다."

백설민의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그의 호흡이 한 바늘만큼 거칠어졌다.

"그게 이 방과 무슨 상관이지?"

"자네는 이 아페이론 역시 거울 방과 같은 왜곡 구조로 설계했다. 서로 한 번씩 속여야 한다는 규칙 자체가 가짜다. 자네는 처음부터 나를 속여 이 방에서 죽일 생각이었지. 자네의 심박 신호 수신기와 가스 컨트롤러의 무선 주파수 간섭 역시, 자네가 의도적으로 흘린 가짜 오차였다."

한강우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명이 머릿속을 긁어대며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뇌사 상태로 진입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8분 남짓이었다.

그때, 아지트 구석의 백색 벽면 뒤에서 둔탁한 기계음이 울렸다. 무허가로 가설된 외부 핫라인 장치의 비상 수신 신호였다. 대시보드의 붉은 램프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 한강우! 들려? 한강우!

스피커 너머로 윤세희 검사의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스 격리 시스템에 의한 전파 방해 때문에 음성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지형섭이가 움직였어. 수색 영장이 기각되었는데도 사설 돌격대를 이끌고 그쪽으로 가고 있어. 10분 내로 아지트가 포위될 거야. 당장 피... 치익...

통신이 끊겼다. 지직거리는 소음만이 밀실의 정적을 다시 채웠다.

백설민이 소리가 들려온 벽면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웃었다.

"방해꾼들이 몰려오는군. 하지만 상관없어. 이 밀실의 자폭 코드는 내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경찰들이 오기 전에 네 뇌가 먼저 타버리거나, 아니면 나와 함께 먼지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윤세희 검사가 내게 건넨 수첩이 있지."

한강우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낡은 가죽 수첩을 꺼냈다. 과거 동료였던 민태경의 유품이었다. 윤세희가 건넨 조각과 백설민이 남긴 흔적을 결합해 완성한, 붉은 기하학의 불완전한 대칭 도형 설계도가 그려진 수첩이었다.

"민태경 형사는 죽기 직전 자네의 역설을 이해했다. 자네가 설계한 모든 살인 규칙의 중심에는 치명적인 규격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강우가 수첩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찌그러진 삼각형과 원이 겹쳐진 기괴한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자네는 완벽을 숭배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일체의 잡음도 참지 못하는 극단적인 정신증 환자일 뿐이다. 자네의 기하학은 대칭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붕괴하는 모래성이지."

한강우는 백설민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페이론 비밀유지 계약서 제7조 바항을 기억하나?"

백설민의 눈썹이 좁혀졌다.

"'의뢰인이 허위의 물증을 제출하여 감정을 기만할 시, 감정인은 의뢰인의 신체적 표식을 즉시 임시 보존 처리할 수 있다.' 자네가 내게 수임료랍시고 준 붉은 기하학의 표식 주화. 그것은 가짜 피가 묻은 위조품이었다. 즉, 나는 이 계약서의 조항에 의거해 자네의 신체를 이 공간에 합법적으로 구속할 권리가 있다."

한강우가 테이블 밑의 레버를 당겼다.

철컥, 하는 중중한 금속음과 함께 백설민이 앉아 있던 가죽 의자의 양팔걸이에서 두꺼운 강철 바이스가 튀어나와 그의 손목을 무섭게 조여 사로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백설민이 팔을 움직이려 했으나,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구속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네의 심장이 멈추면 폭탄이 터진다고 했지. 하지만 자네의 심박수가 정상 범위를 유지해도 이 방의 물리적 구조가 파괴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강우가 민태경의 수첩에 그려진 설계도의 중심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네가 설계한 이 건물 지하의 폭약 매설 위치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다. 동쪽 벽면의 하중 지지대가 서쪽보다 12밀리미터 두껍게 설계되어 있어. 즉, 외부에서 강력한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이 건물은 자폭 폭약이 터지기도 전에 한쪽으로 기울며 붕괴하게 된다. 자네의 그 '완벽한 기하학'이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뜻이다."

백설민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의 오만한 얼굴이 난생처음 보는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일체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그의 세계관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설계는 완벽해!"

"완벽이란 집착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한강우의 왼쪽 귀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혈류가 울컥 쏟아져 내렸다. 시야가 완전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뇌사 상태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1분.

바로 그 순간, 아지트 상부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소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쾅! 쾅!

건물 1층 로비의 통유리가 대형 해머에 의해 박살 나는 비명 지르는 소리가 방음벽을 뚫고 지하 밀실까지 진동으로 전해져 왔다. 지형섭 형사가 이끄는 수사대의 강습이 시작된 것이다.

"왔군."

한강우가 피로 물든 입술을 올리며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자, 백설민. 자네의 그 완벽한 기하학이 외부의 난폭한 잡음에 어떻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지켜보자고."

위층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무거운 군화 소리가 지하 아지트의 폐쇄된 철문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었다.

지상에서 들려오는 파쇄음은 지하 2층 아페이론의 두꺼운 철문을 타고 미세한 진동으로 전해졌다. 먼지가 천장 조명 대를 따라 떨어졌다.

백설민은 가죽 의자에 묶인 양손을 비틀어 보았으나 강철 바이스는 유격 없이 그의 손목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솟아올랐다.

"지형섭이가 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 그 충격 진동은 내 기폭 장치를 자극할 걸세."

백설민이 이빨을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기하학적 완결성에 대한 기괴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

한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왼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지나 바닥의 백색 타일 위로 뚝, 뚝 떨어졌다. 시야의 사방이 빠르게 어두워지며 붉은 반점이 번져갔다. 이명이 뇌막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워졌다.

정확히 12분의 암전이 코앞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그의 대뇌 피질은 과부하로 인해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강우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철제 테이블 아래에 숨겨진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쪽에는 소형 무선 중계기와 유선 단말기가 복잡한 배선으로 얽혀 있었다. 3년 전 민태경의 죽음 이후, 자신의 뇌 발작을 대비해 설계해 둔 자동 방어 체계였다.

그는 단말기의 터치스크린을 조작했다. 이미 녹음되고 변조된 그의 음성 데이터가 유선 전화망과 아지트 외부 인터폰 시스템으로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12분."

한강우가 거친 숨을 내쉬며 나직하게 뱉었다.

"그 시간 동안 자네와 나, 그리고 저 문밖의 사냥개들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붕괴할지 지켜보지."

백설민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한강우의 손끝에 닿은 유선 단말기로 향했다.

"무슨 수작이지?"

백설민이 몸을 앞으로 숙이려 했으나 가죽 의자의 구속구가 그의 가슴을 단단히 압박했다.

한강우의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차가운 냉기가 전신을 감쌌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열 속에서 기괴한 환각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가슴 뼈가 함몰된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3년 전 사망한 동료 민태경이었다. 그의 유령 같은 형상은 피로 물든 수첩을 손에 든 채 한강우를 내려다보았다.

- 강우야, 저놈의 기하학은 대칭이 아니라 강박이다.

민태경의 환각이 비선형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뇌의 심층부에 저장된 물리적 데이터의 재조합이었다.

- 저 자폭 장치의 센서는 바닥이 아니라 이 아지트의 중심 기둥에 매설되어 있어. 지형섭이가 유압 기구로 철문을 부수면, 그 횡압력이 기둥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면 우리는 12분도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돼.

한강우는 환각 속에서도 대뇌의 논리 회로를 멈추지 않았다. 민태경의 환각이 제시한 정보는 그가 과거 아페이론을 시공할 때 기록해 둔 구조 설계도의 데이터였다. 백설민은 아지트의 설계도를 입수해 기둥의 비대칭적 하중 밸런스를 역이용한 것이었다.

암전 속에서 한강우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인 근육 기억에 의존해 움직였다. 그는 보이지 않는 단말기의 키패드를 더듬었다.

탁. 탁. 탁.

세 번의 타건음과 함께 아지트 외부 인터폰 스피커가 켜졌다.

동시에 지하 2층 복도에서는 지형섭 형사가 이끄는 기동대가 철문 앞에 거대한 유압식 절단기와 해머를 내려놓고 있었다. 기동대원들의 방탄복에 달린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이 터져 나왔다.

"지형섭 팀장."

철문 위쪽의 스피커에서 한강우의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실시간 목소리가 아닌, 대뇌 셧다운 직전 그가 동기화해 둔 AI 복제 음성이였다.

지형섭이 해머를 들던 동작을 멈추고 스피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아직도 주둥이를 놀리네. 당장 문 부숴!"

지형섭이 대원들에게 손짓했다. 대원들이 유압 호스를 연결하려 하자, 스피커 너머의 음성이 한층 더 낮게 울렸다.

"철문에 10밀리미터 이상의 횡압력이 가해지는 즉시, 중심 기둥에 설치된 압력 감지식 신관이 작동한다. 10킬로그램의 컴포지션 폭약이 폭발하면 이 빌딩 전체가 지하로 침하할 것이다. 나를 잡기 위해 네 대원들의 목숨을 걸 텐가?"

대원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정지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유압 절단기의 작동 스위치에서 손을 떼었다.

"구라 치지 마라, 한강우! 네놈이 살려고 수작 부리는 거 모를 줄 알아?"

지형섭이 철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아지트 내부 철제 테이블 위의 계측기가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경고음을 내뿜었다.

백설민은 묶인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최초로 핏기가 가셨다. 한강우가 자신의 설계를 완벽하게 역추적해 기동대의 진입을 정밀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의자 위의 한강우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귀와 코에서는 얇은 핏줄기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완벽한 가사 상태였다.

"한강우... 이 미친놈이..."

백설민이 이를 갈며 속삭였다.

철문 밖에서는 지형섭의 거친 숨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내부로 흘러들었다. 지형섭은 무전기를 켜고 본청 지원 팀에 폭발물 처리반의 긴급 출동을 요청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강우의 뇌사 제한 시간 12분 중 이미 4분이 경과했다.

그때, 아지트 내부의 환기구에서 스스스 하는 기묘한 마찰음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단되었던 미세한 독가스의 잔류물이 역류 구조를 타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백설민의 기폭 유닛과 연동된 또 다른 안전장치가 외부 충격에 의해 오작동을 일으킨 결과였다.

백설민의 눈동자가 천장의 환기구를 향했다. 그의 구속된 손목 주위로 푸른 가스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안 돼... 설계가 이렇게 무너질 리가 없어..."

백설민의 심박수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팍에 심어진 발광 다이오드가 빠른 속도로 깜빡이며 경고 주파수를 방출했다.

어둠 속에 갇힌 한강우의 대뇌 피질 내부에서는 민태경의 환각이 마지막 연결 고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 놈의 심박수가 120을 넘어가면 기폭 장치의 전압이 과부하로 차단된다. 강우야, 저놈을 더 극한으로 몰아붙여라.

환각의 목소리가 한강우의 멈춘 심장을 강타했다.

철문 밖에서 지형섭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이봐,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가스 새는 소리 같은데?"

그 순간, 아지트 내부의 유선 단말기가 스스로 작동하며 새로운 메시지를 외부 인터폰으로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강우가 뇌사 상태에 빠지기 직전 설정해 둔 최종 패러독스 수칙이었다.

"지형섭 팀장. 철문 오른쪽 하단의 비상 배선반을 열고 파란색 선을 자르면 가스 밸브가 잠긴다. 하지만 그 선은 백설민의 심박 센서 전류선과 연결되어 있다. 선을 자르는 순간 백설민의 심장은 멈추지 않지만, 기폭 장치는 그의 심장이 멈춘 것으로 오인할 것이다."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잔인할 정도로 차분했다.

"선택해라. 가스에 질식해 죽어가는 우리를 볼 텐가, 아니면 선을 자르고 확률 50퍼센트의 도박을 할 텐가?"

철문 밖의 정적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형섭의 손이 비상 배선반 커버 위에서 멈췄다.

백설민은 강철 의자에 묶인 채 가스를 들이마시며 발작적으로 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시선이 허공을 응시하는 한강우의 시체 같은 얼굴에 머물렀다. 한강우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오직 논리의 그물망만을 드리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지하 밀실의 가스 농도가 점차 짙어지는 가운데, 문 뒤에서 지형섭의 펜치가 금속 배선판을 뜯어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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