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백설민이 외투 안주머니에서 소형 가스 자폭 유도 컨트롤러를 꺼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둥근 황동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아페이론의 두꺼운 강철 도어록 장치가 거친 기계음과 함께 붉은 폐쇄 임계 상태로 잠겨버렸다. 철제 테이블 위의 디지털 패널에 잠금장치가 완전히 맞물렸음을 알리는 붉은색 해골 문양이 떠올랐다.

한강우의 오른손 손가락은 여전히 차가운 제어 패널 위에 얹혀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금속의 냉기가 뇌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귓가에서 삐 소리가 가늘게 이어졌다. 이명은 주파수를 바꾸며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문이 닫혔군."

한강우가 손가락 끝으로 키패드를 톡톡 두드렸다. 규칙적인 타격음이 소리를 집어삼키는 방음벽 사이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백설민은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의 시선은 한강우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완벽한 차단이다. 한 소장."

천장 모서리에 숨겨진 네 개의 분사구에서 쉭 하는 마찰음이 발생했다. 보이지 않는 고밀도 마비 독가스가 무색무취의 형태로 아지트 내부에 주입되기 시작했다. 공기의 밀도가 급격히 변하며 호흡기가 팽창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한강우는 자신의 호흡 주기를 늦췄다. 폐부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이 줄어들면서 대뇌 피질이 차갑게 식어갔다. 독가스의 주성분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유기인계 화합물이었다. 체내에 흡수되는 즉시 아세틸콜린에스테라아제의 활성을 저해하여 근육 마비와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물질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강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저음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 둘 다 마찬가지다. 한 소장. 이 방의 공기가 완전히 오염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3시간이다."

백설민이 시계를 보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쓸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먼지 하나 없는 철제 표면을 매끄럽게 미끄러졌다.

"그러니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지. 붉은 기하학의 규칙을 따르는 임무다."

백설민의 눈빛이 기괴한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나와 하나의 규칙을 같이 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짓이 한 개라도 증명되지 않는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 만약 거짓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수동 해제 코드는 영원히 잠기고 가스 배출구는 최대치로 개방된다. 데스 패러독스다."

한강우는 백설민의 안면 근육의 미세한 떨림을 관찰했다. 거짓말 탐지기가 없어도 그의 호흡과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었다. 백설민은 진심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규칙의 감옥에 한강우와 함께 갇히는 것 자체를 극상의 희열로 느끼고 있었다.

"거짓이 증명되지 않는 사실이라."

한강우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나는 살아있다'라는 명제는 사실이지만, 이 방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거짓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죽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지."

백설민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탁, 탁, 탁. 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건조했다.

"역시 이해가 빠르군. 한 소장. 규칙의 모순을 찾는 것이 자네의 특기 아니었나?"

한강우는 머릿속의 기억 저장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뇌세포가 고열로 타들어 가는 감각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인지적 모의실험의 부작용이 이미 대뇌 반구를 잠식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3시간이었다. 그 안에 이 방의 모든 규칙을 해체하고 탈출해야 했다.

한강우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푸른색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플라스틱 표면에 거칠게 긁힌 자국이 선명한 물건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나."

백설민의 시선이 푸른색 마그네틱 카드에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좁아졌다.

"푸른 거울 요양원 302호 사물함에서 나온 카드군."

"그래. 규칙상 '절대 302호 문에 꽂지 말아야 할 푸른 마그네틱 키카드'였지."

한강우는 카드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카드가 철제 테이블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 멈췄다.

"나는 처음에 이 규칙이 단순히 피해자를 가두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양원의 모든 평면도를 뇌 속에서 재조립했을 때, 비로소 모순의 실체가 보였다."

"호오."

백설민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었다.

"요양원 3층의 공간은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인 구조였다. 하지만 실제 건축 대장과 비교했을 때, 302호의 위치는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 즉, 복도 끝의 대형 거울이 시각적 왜곡을 일으켜 301호의 반사 이미지를 302호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었지."

한강우의 목소리는 법의학 보고서를 읽듯 낭독조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302호 문에 푸른 카드를 꽂는 행위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울 속 허상에 열쇠를 밀어 넣는 행위였다. 센서는 거울 너머의 빛 반사율을 감지해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카드를 꽂는 순간 문고리에 흐르는 고전압이 피해자의 손가락을 태우며 천장을 보게 만들었다. 안구에 낚싯바늘이 박히는 트랩의 시작점이었지."

백설민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었다. 한강우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자네가 설계한 요양원의 규칙은 완벽해 보였지만, 거울의 반사 각도가 0.3도 틀어지는 순간 작동 메커니즘 전체가 붕괴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나는 그 모순을 이용해 요양원을 탈출했다. 자네의 첫 번째 실패작이지."

백설민의 입술이 비틀렸다.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얼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오차 범위 내의 변수였을 뿐이다."

"붉은 기하학에 오차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백설민."

한강우는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그의 왼쪽 귀에서 다시 한번 찌르르하는 고열의 이명이 터져 나왔다. 귓구멍에서 미세한 온기가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닦아내자 붉은 혈흔이 묻어났다.

동시에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며 암전의 전조가 찾아왔다. 정확히 12분간의 기억 상실 트라우마. 뇌 신경망이 과부하로 인해 일시적으로 셧다운되는 치명적인 패널티였다.

백설민이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었다.

"뇌가 녹아내리고 있군. 한 소장. 자네의 그 잘난 인지적 모의실험이라는 능력이 자네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어. 12분의 암전이 찾아오면 자네는 이 방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게 될 거다."

"과연 그럴까."

한강우는 피 묻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의 계약서를 가볍게 짚었다. 아페이론 비밀유지 계약서 제7조 바항이었다.

"이미 도서실에서 증명하지 않았나. 내가 12분 동안 기억을 잃었을 때, 자네는 내가 지형섭 형사에게 덜미를 잡힐 것이라 확신했겠지."

"그랬지. 하지만 자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미리 세팅해 둔 복제 음성 장치 덕분이었다."

한강우는 자신의 목소리 톤을 완전히 배제한 채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뇌 발작이 오기 직전, 정확히 12분 동안 작동하는 자동 음성 송출 장치를 아지트와 도서실의 유선 통신망에 동기화해 두었다. 내 목소리 패턴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지형섭 형사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도록 설계한 것이었지. 내가 기억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동안에도, 나의 알리바이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자네가 설계한 시간 왜곡 트릭은 이미 그때 깨진 거다."

백설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강우가 자신의 완벽한 알리바이 파괴 공식을 역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표정이었다.

"허위 물증을 제출해 나를 기만하려 했던 자네의 시도는 실패했다."

한강우는 테이블 위의 붉은 문양이 그려진 5억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가리켰다.

"계약서 제7조 바항에 의거해, 나는 의뢰인인 자네의 신체적 표식을 임시 보존 처리할 권리가 있다. 자네가 준 이 수표는 가짜 피가 묻은 위조품이었지.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진짜 열쇠는 자네의 신체 내부에 있다."

갑자기 한강우의 시야가 번쩍였다.

공기 중의 독가스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뇌세포의 연소 속도가 한계에 달했다. 뇌의 유실을 막기 위해 잠재되어 있던 마지막 이성 세포들이 강제로 연계 활성화되었다.

눈앞의 백색 벽면이 서서히 붉은색 기하학 문양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붉은 선들 사이로, 한 남자의 형상이 구체화되었다.

가슴팍이 뼈가 으스러진 채 함몰되어 있는 사내. 3년 전 사망한 한강우의 유일한 파트너, 민태경이었다.

민태경의 환각은 피를 흘리며 철제 테이블 맞은편, 백설민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며 소리 없는 미소를 지었다.

'강우야.'

민태경의 유령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수첩을 가리켰다. 윤세희 검사에게 받았던 민태경의 유품 수첩이었다.

'그놈의 설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칭에 집착하고 있어. 하지만 진짜 대칭은 중심이 비어 있는 법이지. 저놈의 가슴을 봐라.'

민태경의 환각이 백설민의 왼쪽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 짚었다. 그 손끝에서 붉은빛의 광선이 뻗어 나와 백설민의 심장 부근을 관통하는 듯한 시각적 왜곡이 일어났다.

그것은 환각이 보여주는 단순한 망상이 아니었다. 한강우의 뇌가 인지적 모의실험을 통해 도출해 낸, 백설민의 신체적 모순에 대한 최종 피드백이었다.

한강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두통 속에서도 그의 이성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백설민."

한강우가 부르자, 백설민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네가 말한 데스 패러독스의 규칙을 시작하지."

"말해 봐라. 어떤 사실을 입에 담을 테냐."

"자네는 이 방의 독가스를 제어하는 수동 코드가 자네의 심박수와 동기화되어 있다고 믿고 있겠지."

한강우의 손가락이 마침내 제어 패널의 키패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0과 1, 그리고 민태경의 수첩에서 찾아낸 누락된 소수점 아래의 수치들을 거침없이 입력해 나갔다.

삐빅, 삐빅, 삐빅.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도어록 내부의 콘덴서가 충전되는 날카로운 전기적 고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잘못된 번호를 누르는 순간 2만 볼트의 전류가 철제 테이블을 통해 두 사람의 몸을 관통할 터였다.

하지만 한강우의 손끝은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진짜 모순은 자네의 심장이 아니다."

마지막 엔터 키를 누르기 직전, 한강우가 손을 멈추고 백설민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네가 들고 있는 가스 자폭 컨트롤러의 주파수와, 자네의 심박 신호를 수신하는 안테나는 동일한 대역폭을 사용하고 있다. 즉, 내가 이 제어 패널의 주파수를 800메가헤르츠 대역으로 강제 고정하는 순간, 자네의 심장 신호는 노이즈로 처리되어 차단된다. 자네가 아무리 완벽한 규칙을 세웠어도, 물리적 무선 통신의 간섭 법칙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철제 테이블 위의 제어 패널 화면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스 주입구의 셔터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히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사방을 채우던 독가스의 흐름이 멈췄다. 오직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이 밀실의 적막을 채웠다.

탈출구가 봉쇄된 완벽한 인공 감옥 속에서, 두 남자의 대뇌 신경 신호가 보이지 않는 불꽃을 튀기며 격돌하고 있었다. 오직 논리와 허점만을 파고드는 벼랑 끝의 대결이었다. 한강우의 절대적인 인지 우위가 백설민의 오만한 설계를 완벽하게 해체해 버린 순간이었다.

백설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에 최초로 짙은 당혹감과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백설민은 나직하게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 아지트의 방음벽을 거칠게 때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가슴팍을 검지손가락으로 톡, 톡, 톡 가볍게 건드렸다. 가죽 재킷 너머로 딱딱한 기계 장치의 윤곽이 드러났다.

"대단하군, 한 소장. 정말 대단해. 내 무선 주파수 설계의 맹점을 그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백설민이 한 걸음 다가와 철제 테이블을 두 손으로 짚었다. 그의 얼굴이 한강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 속에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건 몰랐겠지. 내 심장 리듬에는 압력 연동 기폭 유닛이 직접 심어져 있네. 내 심장이 초당 40회 이하로 떨어지거나, 혹은 완전히 멈추는 순간... 이 아지트 지하 바닥에 매설된 10킬로그램의 컴포지션 폭약이 즉시 기폭 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백설민이 이빨을 드러내며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자, 이제 선택해 봐라. 내 심장을 여기서 멈추고 나와 함께 폭사할 텐가, 아니면 내 규칙에 굴복하고 네 그 잘난 뇌세포가 완전히 타서 깨질 때까지 기다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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