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발이 있은 지 사흘이 흘렀다.
명인대학교 병원 지하 1층에 자리한 중환자 전담 응급외과는 여전히 비린내 나는 핏자국과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사이렌 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영동고속도로 15중 추돌 사고의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위중했던 이십 대 초반의 다발성 외상 환자가 방금 전 응급외과로 이송되었다. 간 파열로 인한 대량 출혈과 문맥 혈전증. 이미 간 기능은 정지하기 직전이었고, 생체 징후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응급 간 이식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진태의 무미건조한 선언과 동시에 수술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술실 위편에 위치한 참관실. 서민수는 유리창에 이마를 바짝 밀착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묵직한 VIP 의뢰 차트가 들려 있었지만,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오직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와 그 앞에 선 강진태만을 쫓았다. 서민수의 턱뼈가 단단하게 맞물리며 잘게 떨렸다.
"어디 한번 증명해 봐라, 강진태. 네 그 귀신 같은 손재주가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을 뿐인 사기극인지."
서민수의 혼잣말은 참관실의 차가운 유리를 타고 흐려졌다. 그는 이번 수술을 통해 진태의 밑바닥을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수술실 내부의 작은 움직임 하나, 메스의 각도 1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의 시선이 매섭게 빛났다.
아래쪽 수술실. 진태는 차가운 메스의 감촉을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
그가 속으로 능력을 불러들이는 순간,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통이 밀려왔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것처럼 꿈틀거렸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부정맥의 습격이었다. 이윽고 눈앞의 시야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환자의 복강 내부가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났다.
'젠장, 하필 지금인가.'
진태의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려 마스크를 적셨다. 사신의 장부가 보여주는 붉은색 수술 가이드라인과 환자의 잔여 수명 [00:42:11]이라는 숫자가 허공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두 개로 갈라진 간문맥 중 어느 쪽을 절개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진태의 등 뒤로 서늘하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다가왔다.
마취기를 조율하던 한채아였다. 그녀는 서민수의 매서운 시선이 참관실 유리창 너머에서 쏟아지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태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거침없는 걸음걸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한채아는 진태의 수술복 뒷덜미를 거칠게 낚아채듯 살짝 들추었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엄한 데 찌르니까."
그녀의 손가락 끝에 들려 있던 것은 얇고 투명한 패치였다. 지난번 진태의 심장 발작을 막기 위해 그녀가 건넸던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였다. 채아는 주저 없이 진태의 목덜미 아래, 척추와 가까운 피부에 패치를 강하게 밀착시켰다.
차가운 약효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 순식간에 척추를 타고 뇌로 직행했다. 터질 것처럼 폭주하던 진태의 심박수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두 갈래로 찢어져 흐릿하게 번지던 시야가 자석에 이끌리듯 하나로 선명하게 포개졌다.
"숨 크게 쉬어, 강진태 선생. 죽을 거면 내 수술방 말고 퇴근하고 죽으라고 했을 텐데."
채아가 낮게 읊조리며 다시 마취기 앞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걸걸한 말투 속에는 집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철저한 프로의식과 진태를 향한 묵직한 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시야가 확보되자마저 사신의 장부가 가리키는 붉은색 최적 경로가 진태의 안구에 완벽하게 매핑되었다.
"CUSA(초음파 흡인기) 30%로 올립니다. 미세 정밀 절제 시작합니다."
진태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시릴 정도로 무감각했다. 그는 메스를 내려놓고 CUSA를 잡았다. 간 실질을 세포 단위로 부수어 흡입하면서도, 그 사이에 얽혀 있는 미세한 혈관들은 단 한 가닥도 손상시키지 않는 초정밀 집도가 시작되었다.
참관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서민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속도로 간 실질을 박리하면서 혈관을 하나도 안 건드린다고? 저건 불가능해. 손끝의 감각만으로 저 미세한 저항 차이를 구분해 낸단 말인가?"
서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안경을 치켜올리며 모니터 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듯 몸을 기울였다. 진태의 손놀림은 기계보다 정교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붉은 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
마취기 모니터에서 단조롭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수술실을 찢었다. 환자의 동맥압 라인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Arrest(심정지)!"
한채아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고요를 깨부수었다.
"V-fib(심실세동) 왔어! 재관류 증후군(Reperfusion syndrome)이야. 에피네프린 1앰플 주입해!"
순식간에 수술실 내부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허공에 떠 있던 사신의 생명 장부가 미친 듯이 깜빡거리며 붉은색 경고등을 켰다. 환자의 잔여 수명을 나타내던 숫자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00:03:14] [00:01:05] [00:00:12]
환자의 심장이 멈추면, 이 수술은 실패다. 그리고 계약의 룰에 따라 이 환자가 잃어버릴 수십 년의 수명은 고스란히 진태 자신의 수명에서 차감되어 그를 즉사하게 만들 것이다. 진태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제세동기 준비할까요?"
어시스트를 서던 전공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 늦어."
진태는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 그는 환자의 복강 절개창을 통해 횡격막 아래쪽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에 얇은 막 너머로 미약하게 파르르 떨고 있는 환자의 심장 근육이 만져졌다.
"강진태! 미쳤어? 그 상태에서 다이렉트 마사지를 하겠다고?"
채아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제세동기를 쓰기도 전에 심장을 직접 움켜쥐고 압박하는 것은 극단적인 도박이었다. 잘못하면 심장 벽이 파열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 있었다.
참관실의 서민수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리창을 두드릴 듯 손을 뻗은 그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횡격막 하부 직접 마사지라니! 저건 심장 상태를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심장을 터뜨리는 짓이다! 포기해라, 강진태!"
하지만 진태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신의 장부가 보여주는 실시간 심장 압력 수치만이 가득했다. 장부는 심장의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떤 주기로 눌러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푸른색 수축 그래프를 그려내고 있었다.
진태는 눈을 감았다. 오직 손끝에 전해지는 심장의 미세한 떨림과 장부의 그래프를 일치시켰다.
*쿵. 쿵. 쿵.*
일정한 압력과 정확한 템포. 기계적인 완벽함으로 진태의 손이 환자의 심장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수술포 위로 뚝뚝 떨어졌다. 손등의 힘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돌아와라.'
진태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지 않았다. 그저 사신의 장부가 제시하는 물리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할 뿐이었다. 죽음의 신이 이 환자의 숨통을 쥐고 있다면, 그 손아귀를 메스로 찢어 발겨서라도 빼앗아 오겠다는 집념만이 그의 손끝에 실려 있었다.
그때였다.
*삐. 삐. 쿵- 쿵-*
모니터의 플랫라인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규칙하던 파형이 이내 규칙적이고 단단한 사인파를 그리며 살아났다.
"바이탈 돌아옵니다! sinus rhythm(동방결절 리듬) 회복!"
순간 간호사들과 전공의의 입에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참관실의 서민수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의 압력만으로... 심실세동을 잡았다고? 어떻게 기계적 자극의 주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출 수가 있지? 저건 인간의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정석적인 의학 교육을 받은 서민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신의 영역에 가까운 집도였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던 의구심이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태에게는 감탄할 시간조차 없었다.
"심장 돌아왔으니 바로 담관 박리(Bile duct dissection) 들어갑니다. 7-0 프로렌 준비해 주세요."
이 수술의 가장 까다로운 마지막 관문이자, 서민수가 가장 눈여겨보고 있을 담관 문합의 전 단계였다. 담관은 두께가 수 밀리미터에 불과 기에 아주 미세한 혈관망인 담관 주위 혈관총(peribiliary plexus)을 손상시키면 문합 후 괴사하여 담즙이 유출되고, 결국 패혈증으로 환자는 사망한다. 대부분의 서전들은 이 혈관망을 완전히 살리지 못해 수술 후 합병증을 겪게 만든다.
진태의 시야에 사신의 장부가 담관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모세혈관들을 붉은 실선으로 촘촘히 띄웠다.
'여기다.'
진태는 포트 가위(Potts scissors)를 쥐었다. 그의 손 끝은 마치 정밀한 레이저 부품을 다루듯 미세하게 움직였다. 단 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가위질이 시작되었다.
서민수는 다시 참관실 유리창에 달라붙었다. 모니터에 확대된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저건... 담관 주위 혈관을 전부 살려가면서 박리하는 건가? 저 얇은 조직막 사이의 혈관을 눈으로 직접 보고 피해서 자르고 있다고?"
그것은 교과서에도 실리지 못한, 오직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완벽한 담관 박리'의 실체였다. 서민수는 절망에 가까운 경외감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자신이 그토록 오만하게 지적하려 했던 강진태의 '밑바닥'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마주한 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천재성의 절벽이었다.
"Suture(봉합)."
진태의 바늘이 담관의 단면을 부드럽게 관통했다. 한 땀, 두 땀. 실과 바늘이 지나간 자리는 기계로 꿰맨 듯 오차 없이 이어졌다.
이윽고, 수술대 위의 간이 원래의 붉고 건강한 빛깔을 되찾으며 담즙이 정상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했다.
[환자 잔여 수명: 48년 06개월]
눈앞의 장부 숫자가 마침내 녹색으로 편안하게 빛났다. 진태의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수술 종료합니다. 환자 중환자실로 이송해 주세요."
진태가 조용히 메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술실을 정리하는 간호사들의 시선에는 이전과 다른 깊은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참관실의 서민수는 불이 꺼진 수술실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인 채 참관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더 이상 도전자의 것이 아니었다.
수술실 밖,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복도.
진태가 수술모를 벗으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한채아가 옆으로 다가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패치 성능 확실하지? 그러니까 앞으론 내 말 잘 들어. 나 없으면 벌써 사신이랑 하이파이브하고 저승 가 있었을 테니까."
"덕분에 살았습니다."
진태가 의외로 순순히 답하자, 채아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머, 웬일로 고분고분하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그녀가 장난스레 대꾸하며 락커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복도 모퉁이 너머에서 구두 굽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먼지 하나 없는 최고급 맞춤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가슴팍에는 일반 의료진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VIP 전용 병동 '아르카디아'의 금빛 엠블럼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실장이었다.
그는 진태의 앞에 멈춰 서더니, 품격 있으면서도 뼈가 있는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강진태 교수님.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진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실장은 품 안에서 두꺼운 무광 검은색 봉투를 꺼내 진태에게 내밀었다. 봉투의 중앙에는 아르카디아의 황금빛 왁스 실이 강하게 압인되어 있었다.
"이사장님께서 직접 전하라고 하신 은밀한 제안입니다. 다음 주 예정된 대기업 후계자의 수술에 대한... 진짜 '조건'이 담겨 있습니다."
실장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갔다. 봉투를 받아 든 진태의 손끝에 묵직하고도 불길한 무게감이 전해졌다. 그 봉투 안에는 단순한 수술 일정이 아닌, 이사회의 추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