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중환자 전담 응급외과 센터의 유리문이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양옆으로 열렸다.
매캐한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스테이션 안으로 들이닥친 것은 세 명의 외지인들이었다. 감청색 단정함을 강조한 정장 차림, 가슴팍에 선명히 박힌 구청 보건소 위생과의 공무원증. 그리고 그들의 기세를 호위하듯 거만한 걸음걸이로 앞장선 인물은 외과 과장 권세윤이었다.
"강진태 선생. 그리고 한채아 선생."
권세윤이 하얀 의사 가운 주머니에서 지퍼백 하나를 꺼내 올려놓았다. 투명한 비닐 너머로 찌그러진 약물 상자와 붉은색 글씨가 인쇄된 특수 패치의 잔해가 선명하게 보였다.
"설명이 필요하겠지? 병원 이사회와 식약처의 공식 승인을 받지 않은 미인가 임상 약물. 그걸 수술실에서 무단으로 사용한 현장 증거다."
권세윤의 목소리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자들의 비열한 활기가 넘쳐났다. 그의 뒤에 선 보건소 합동 조사관 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서류철을 펼쳤다.
"명인대학교 병원 응급외과에서 비공식 루트로 수입된 국소 전도 차단 패치, 즉 베타 블로커 컴플렉스(Beta-Blocker Complex)를 무단 처방 및 투약했다는 고발이 접수되었습니다. 이는 의료법 제34조 위반이자, 마약류 및 임상시험용 의약품 관리 규정 위반에 해당합니다."
스테이션의 간호사들이 숨을 죽였다.
한채아는 입안에 물고 있던 껌을 짝 소리가 나게 씹으며 팔짱을 꼈다. 그녀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치켜들며 권세윤을 빤히 응시했다.
"권 과장님, 아침부터 쓰레기통 뒤지는 게 취미인 줄은 몰랐네요. 외과 과장 체면에 품위가 아주 대단하십니다?"
"한채아 선생! 말조심해! 이건 엄연한 불법 약물 유출 사건이야. 자네가 마취과 권한을 남용해서 아르카디아 특수 의학 연구소의 미승인 약물을 빼돌려 강진태에게 투여한 거, 모를 줄 알았나?"
권세윤이 손가락으로 진태를 가리켰다.
"수술 중에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부정맥을 억제하려고 이 약물을 쓴 거겠지. 강진태, 네놈의 그 기이한 수술 실력이라는 게 결국 이 불법 약물로 심장을 강제로 쥐어짜 내서 만든 사기극이었단 말이다!"
진태는 대꾸하지 않았다. 차트용 모니터를 응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권세윤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 사신의 생명 장부가 희미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잔여 수명을 실시간으로 갉아먹는 대가로 주어지는 절대적인 계량화의 시야. 어젯밤 대동맥 파열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썼던 여파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가슴팍 깊은 곳에서 엇박자로 요동치는 심방세동의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한채아가 건네준 특수 베타 블로커 패치 덕분에 간신히 심정지 위기는 넘겼지만, 육체는 여전히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였다.
"사기극이라."
진태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당혹감도 없었다. 그저 한겨울 얼어붙은 강바닥처럼 차갑고 건조할 뿐이었다.
"권 과장님 눈에는 환자 목숨 살려놓은 수술 결과가 약쟁이의 노름으로 보이시나 봅니다."
"핑계 대지 마라! 법과 원칙을 어긴 의사는 더 이상 메스를 잡을 자격이 없어. 보건소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너와 한채아는 의사 면허 정지는 물론이고, 형사 고발 처분까지 받게 될 거다!"
권세윤이 기세등등하게 외치자, 스테이션 한구석에 서 있던 서민수가 조용히 안경을 고쳐 썼다.
서민수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는 진태의 비정상적인 집도 속도와 어젯밤 수술실에서의 기적적인 생존율을 보며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어왔다. 정통적인 외과 수련 과정을 거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정확도였다.
'결국 약물의 힘이었나.'
서민수의 입술 끝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정의감과 규칙을 숭상하는 그에게 있어, 약물에 의존해 환자를 살리는 천재는 가짜에 불과했다. 교과서적인 완벽함과 철저한 수련을 통해 다진 자신의 실력이야말로 명인대 병원을 이끌어갈 진짜 의술이라는 확신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벼랑 끝에 몰린 강진태의 모습을 보며, 서민수는 묘한 해방감과 함께 자신이야말로 정석적인 진짜 천재라는 자부심을 강하게 느꼈다.
그때, 진태의 시선이 서민수의 손에 들린 두꺼운 서류철로 향했다.
'저건…….'
진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사신의 생명 장부가 미세하게 반응하며 서민수가 들고 있는 과거 아르카디아 VIP 의뢰 차트의 실루엣을 붉은색으로 매핑하기 시작했다.
장부의 붉은 궤적이 서민수가 담당했던 3년 전 수술 기록의 특정 페이지를 관통했다.
[괴사율 예측 오류: 상장간막동맥(SMA) 폐색 환자의 장관 절제 범위 설정 미스.] [실제 괴사 진행 경로와 수술 기록상의 절제 범위 불일치율 42%.]
진태의 입꼬리가 보이지 않게 비틀려 올라갔다. 서민수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정석적인 수술 이면의 치명적인 오진 증거였다. 서민수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들고 있는지도, 과거의 어떤 실수가 기록되어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오만한 눈빛으로 진태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태는 그 차트의 고유 번호를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이사회의 끄나풀들을 쳐내고 서민수의 자존심을 단번에 박살 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였다.
"강진태 선생, 조사에 협조하시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추가됩니다. 마취 약물 대장과 환자 처방 기록을 즉시 제출하십시오."
보건소 조사관이 강압적인 태도로 진태를 압박했다.
권세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조소했다. 이제 강진태는 끝이다. 미인가 약물 사용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순간, 그 어떤 천재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의료계에서 완전히 매장될 것이 분명했다. 윤태형 실장을 협박했던 그 오만함도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진태는 천천히 마우스를 쥐고 화면을 클릭했다.
"조사관님."
진태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저희 응급외과의 약물 처방 조작 시스템에 대해 조사하러 오신 거라면, 대상을 잘못 찾으셨습니다."
"뭐라고요?"
"진짜 약물 오남용과 시스템 조작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보여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진태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모니터 화면에 복잡한 수치와 영문 약어가 가득한 엑셀 시트가 나타났다. 명인대학교 병원 중앙 약제부의 실시간 재고 현황과 외과 과장 권세윤의 명의로 발급된 처방 내역서였다.
"이게 뭐지?"
조사관의 눈이 둥그레졌다.
"이건 권세윤 과장님이 지난 3년간 아르카디아 VIP 병동과 일반 병동을 오가며 처방한 마약류 및 특수 전도 차단제의 상세 내역입니다."
진태가 화면의 특정 구역을 확대했다. 붉은색으로 강조된 숫자들은 명백한 불일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일반 병동의 행려병자들이나 무연고 환자들의 차트에는 쓰지도 않은 고가의 수입 마취제와 베타 블로커가 대량으로 처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제 약물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요?"
진태가 고개를 돌려 권세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르카디아 VIP 병동의 개인 회장님들 사적 처방으로 들어갔더군요. 병원의 약물 처방 조작 시스템을 이용해, 건강보험 수가를 일반 환자들에게 허위 청구하고 실제 약물은 비공식 VIP 서비스로 유출한 겁니다. 장부 세탁이죠."
"이,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강진태, 네가 감히 누명을 씌우려고……!"
권세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누명인지 아닌지는 보건소 조사관님들이 더 잘 아시겠죠."
진태는 인쇄 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수십 장의 서류가 쏟아져 나왔다. 진태는 그것을 가지런히 모아 조사관의 품에 안겨주었다.
"여기 권 과장님이 직접 전자서명한 이중 장부 원본입니다. 아울러, 한채아 선생이 들여온 베타 블로커 패치는 이미 한 달 전 병원 임상시험윤리위원회(IRB)에 '아르카디아 연구소 공동 개발 약물'로 정식 등록되어 심의를 통과한 상태입니다. 기획조정실 윤태형 실장님이 직접 결재하신 건데…… 혹시 과장님은 그 사실도 모르고 쓰레기통을 뒤지신 겁니까?"
"뭐, 뭐라고……?"
권세윤의 턱이 덜덜 떨렸다. 윤태형 실장이 강진태의 협박에 못 이겨 뒤로 손을 써둔 사실을, 권세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사회 내부의 소통 부재와 권세윤의 과도한 열등감이 낳은 처참한 자멸이었다.
조사관들은 진태가 건넨 이중 장부 서류를 훑어보더니, 일제히 싸늘한 시선으로 권세윤을 돌아보았다.
"권 과장님. 이 문서에 적힌 처방 코드와 청구 내역 불일치에 대해 해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건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대규모 의료급여 편취 및 마약류 관리법 위반입니다."
"이, 이건 음해입니다! 조작된 자료예요! 윤 실장님! 실장님께 전화를……!"
권세윤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려다 손이 떨려 바닥에 떨어뜨렸다. 액정이 파란 빛을 내며 깨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조사관들은 가차 없이 권세윤의 팔을 붙잡았다.
"본관 행정실로 이동해서 정식으로 조사서를 작성하시죠."
"놓아라! 내가 외과 과장이다! 강진태, 이 교활한 놈이……!"
권세윤은 비명을 지르듯 악을 쓰며 조사관들에게 끌려나갔다. 그의 호화롭던 권위는 단 몇 분 만에 시커먼 바닥으로 추락했다. 응급실을 가득 채웠던 긴장감이 일순간에 해소되며, 스테이션 주변에는 깊은 침묵과 함께 진태를 향한 경외어린 시선만이 남았다.
한채아는 권세윤이 끌려나간 자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여간 머리 나쁜 인간들이 꼬투리 잡으려고 안달이라니까. 애초에 쥔 카드도 없으면서 덤비는 꼴 하고는."
그녀는 진태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낮게 속삭였다.
"패치는 이제 조심해서 써. 다음엔 진짜로 안 살려준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합니다."
진태가 무미건조하게 답하며 차트를 정리하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서민수였다.
서민수는 여전히 품에 안긴 VIP 의뢰 차트를 꽉 쥔 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진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권세윤이 보여준 비열함과는 차원이 다른,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적의와 경쟁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강진태."
서민수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권 과장의 얕은 수작은 멋지게 받아쳤군. 하지만 내 눈은 못 속여. 방금 전 네 서류 조작 폭로는 훌륭한 정치극이었지만, 네 실력에 대한 내 의구심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진태가 고개를 돌려 서민수를 응시했다.
"서 선생. 할 말이 남았습니까?"
"다음 주, 아르카디아 VIP 병동에 입원 예정인 거대 기업 후계자의 췌십이지장 절제술(Whipple's operation)이 있다. 이사회에서 이 수술의 공동 집도의를 지명할 예정이다."
서민수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숨결이 수술대의 메스처럼 날카롭게 와닿았다.
"거기서 증명해라. 약물 장난질이나 뒷조사 같은 야비한 수단 말고, 진짜 외과의의 메스로. 내가 직접 수술방에서 네 밑바닥을 폭로하고 널 이 병원에서 쫓아내 주지."
진태의 눈동자에 기이한 푸른 빛이 스쳤다. 사신의 생명 장부가 서민수의 전신을 붉은 선으로 매핑하며, 그의 심박수와 잔여 수명을 차갑게 계산해 내기 시작했다.
도발은 시작되었고, 진태의 메스는 이미 사신의 장부 위에 올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