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강철 바닥에 부딪힌 메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수술실의 밀폐된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강 교수님?!"
제1어시스트를 서던 서민수의 목소리에 경악이 묻어났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진 메스에서 강진태의 손끝으로, 이내 그의 얼굴로 빠르게 이동했다.
진태의 상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압박감은 둔탁한 둔기로 흉골을 내리치는 것처럼 무거웠다. 심장이 제 궤도를 잃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쿠궁, 쿵, 쿠구궁. 불규칙한 심박이 귓전을 때릴 때마다 눈앞의 세계가 조각나기 시작했다.
하나여야 할 무영등이 둘로, 셋으로 쪼개졌다. 환자의 절개된 대동맥 역시 세 갈래의 흐릿한 선으로 분열되어 허공을 부유했다. 지독한 복시(複視) 현상이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를 동시에 세 개나 열어젖힌 대가는 진태의 심박을 한계 모노폴리 상태로 몰고 갔다.
"강 교수님, 페이스 조절하셔야 합니다. 바이탈이…… 교수님 바이탈이 이상해요!"
서민수가 진태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손 치워."
진태의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비릿한 피맛이 올라왔다. 혀끝으로 붉은 액체를 밀어내며 진태는 쪼개진 시야를 하나로 모으려 애썼다. 하지만 눈꺼풀을 깜빡일수록 분열된 상은 더욱 멀어졌다.
대동맥 뒤편, 가장 난이도가 높은 후벽 봉합이 남아 있었다. 1밀리미터의 오차만으로도 인조혈관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갈 것이다. 환자의 잔여 수명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환자 3 (박태준): 잔여 수명 16년 8개월 -> 12시간 -> 3시간]
겨우 붙잡아 놓았던 생명의 끈이 모래성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
손끝의 감각마저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바늘을 쥔 지침기(Needle holder)가 허공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세 개로 보이는 바늘 중 진짜는 단 하나뿐이었다. 잘못 찔러 넣는 순간, 대동맥 초입이 찢어지며 통제 불능의 대량 출혈이 발생할 터였다.
그 순간, 진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분열된 시야 속에서, 오직 단 하나의 선만이 붉고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가 가리키는 절대적인 수술 경로. 그것은 뇌가 만들어내는 복시의 환영을 뚫고, 가장 완벽한 물리적 위치를 자로 잰 듯이 표시하고 있었다.
'저 선만 따라간다.'
진태는 이빨을 악물었다. 턱관절이 으스러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상관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세 개의 대동맥 중 붉은 유도선이 관통하는 진짜 표적을 향해 지침기를 뻗었다.
"강 교수! 미쳤어요? 그 상태로 바늘을 넣겠다고?"
유리창 너머 참관실에서 인터폰을 통해 권세윤의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 중단해! 서민수 선생, 집도 인계받아. 강진태 교수는 지금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야. 테이블 데스 내고 싶어?!"
권세윤의 독촉에 서민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민수는 진태의 떨리는 손과, 환자의 노출된 심장을 번갈아 보았다. 법과 원칙을 따진다면 지금 수술을 중단하고 집도의를 교체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서민수는 알고 있었다. 이 고난도의 혈관 재건술을 지금 이 방에서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는 인간은 강진태뿐이라는 것을.
"비켜, 서민수."
진태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쪼개진 붉은 안내선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 손이……."
"실 줘."
명령이었다.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의지가 수술실의 가라앉은 공기를 짓눌렀다. 서민수는 침을 삼키며 프롤린(Prolene) 봉합사를 진태의 손에 쥐여 주었다.
진태가 바늘을 대동맥 후벽으로 밀어 넣으려는 찰나, 심장이 완전히 정지하는 듯한 거대한 충격이 가슴을 꿰뚫었다.
"윽……!"
진태의 무릎이 꺾였다. 수술대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며 간신히 버텼지만, 시야는 이제 암흑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사신의 장부가 붉은 경고등을 미친 듯이 켜댔다. 심박수가 분당 180회를 돌파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심실세동으로 인한 심정지였다.
그때였다.
스윽.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손길이 진태의 목덜미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비켜 봐, 이 고집불통 인간아."
한채아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언제 다가왔는지 진태의 수술복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얇고 투명한 사각형의 패치가 빛났다.
"한 선생, 지금 뭐 하는……!"
서민수가 제지하려 했으나, 한채아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태의 오른쪽 목덜미, 경동맥이 고동치는 피부 위에 특수 패치를 사정없이 밀착시켰다.
착!
피부에 닿는 순간, 얼음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도의 차가움이 진태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읍……!"
진태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그것은 한채아가 진태의 심장 이상을 눈치채고 사적으로 준비해 두었던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였다. 일반적인 경구 투여나 정맥 주사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심장 전도계에 작용하는 초강력 베타 차단제 성분이 피부 장벽을 뚫고 혈관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쿵. 쿵. 쿵.
미친 듯이 날뛰던 심장의 폭주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터질 것 같던 가슴의 압박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분당 180회에 달하던 심박수가 90회, 이내 75회로 급전직하했다. 강제적인 심박 강하로 인해 뇌로 가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줄어들며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지만, 쪼개졌던 시야는 서서히 하나의 초점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살겠군."
진태가 낮게 읊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목덜미에 붙은 패치에서 차가운 약효가 계속해서 심장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살았으면 밥값을 해. 뒤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아주 신이 났으니까."
한채아가 마취기 앞으로 돌아가며 턱짓으로 참관실을 가리켰다.
유리창 너머, 권세윤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진태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며 수술실 문으로 내려오려던 그의 발걸음이 허공에 멈춰 섰다.
진태는 다시 지침기를 고쳐 잡았다. 시야는 투명하리만치 맑아져 있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가 제시하는 붉은 안내선은 이제 환자의 찢어진 대동맥 자리에 완벽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포셉."
진태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떨림이 없었다.
서민수가 신속하게 포셉을 건넸다.
사각.
첫 번째 바늘이 대동맥 후벽의 가장 얇은 경계를 뚫고 들어갔다. 오차는 0.1밀리미터 이하. 진태의 손놀림은 기계보다 정학했고, 메스를 쥐었을 때보다 더 날카로웠다.
사각. 사각.
바늘이 허공을 가르고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만이 수술실을 채웠다. 권세윤이 장비를 숨겨놓아 미세 현미경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진태의 손끝은 마치 혈관의 세포 하나하나를 직접 보고 만지는 것처럼 거침없었다.
"말도 안 돼……."
서민수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어려운 대동맥 후벽의 미세한 틈새를, 진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봉합해 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수준이 아니었다. 인체의 지도를 완벽하게 머릿속에 투영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경지였다.
"매듭짓는다. 타이(Tie)."
진태가 실끝을 모아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마지막 세 번의 매듭이 단단하게 묶였다.
"클램프 오픈."
진태의 지시에 서민수가 대동맥 상하부를 막고 있던 강철 클램프를 천천히 해제했다.
스으으윽.
새로운 인조혈관을 타고 붉은 혈류가 세차게 흘러내려 갔다. 봉합 부위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비치지 않고 완벽한 수밀(水密) 상태를 유지했다.
두근. 두근. 두근.
환자의 심장이 스스로의 힘으로 규칙적인 박동을 시작했다.
"BP 120에 80! 하트 레이트 72회, 정상 비트입니다!"
마취과 간호사의 목소리가 수술실 안을 울렸다.
동시에 진태의 시야 우측 하단에 떠 있던 사신의 생명 장부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검은 가죽 책의 형태를 한 장부의 표면이 점차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환자의 장기를 온전히 보존하고, 사신이 정한 데드라인을 완벽하게 넘어서서 생명을 구원한 대가였다.
[조건 충족: 다발성 외상 환자 3인 동시 구원 완료] [사신의 생명 장부 경험치 누적…… 승급(Level Up) 단계 진입] [잔여 수명 차감 페널티 일시적 유예 및 장부 기능 확장 준비 중]
붉은빛이 진태의 안구 속으로 스며들며, 가슴을 짓누르던 미세한 통증마저 깨끗하게 사라졌다. 몸을 지배하던 극도의 피로감이 씻겨 내려가고, 새로운 활력이 혈관을 타고 도는 것이 느껴졌다.
진태는 고개를 들어 참관실을 바라보았다.
권세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수술실 내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장비를 빼돌리고, 집도 불능 상태로 몰아가려 했던 모든 공작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심지어 강진태는 현미경도 없이, 그 극한의 신체 마비 상태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대동맥 재건술을 성공시켰다.
수술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권세윤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강 교수……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 아까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권세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허영심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그의 눈동자는 어떻게든 진태의 약점을 찾아내려 수술대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진태는 수술 장갑을 벗어 던지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권 과장님."
"……말씀하세요."
"환자 살리는 데 방해되는 쓰레기들은 치우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방심했습니다."
진태의 시선이 권세윤의 발끝을 향했다.
"다음부터 내 수술방에 들어올 때는 머리통 비우고 들어오세요. 시끄러우니까."
"뭐, 뭐라고요?!"
권세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의료진의 시선은 이미 진태를 향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히 누구도 진태의 독설에 토를 달지 못했다. 서민수조차 진태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묵묵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수술실 정리해."
진태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한채아 역시 진태의 뒤를 따르며 권세윤을 향해 껌을 짝 씹어 보였다. 수술실 안에는 패배감과 분노로 몸을 떠는 권세윤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으윽…… 강진태……!"
권세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강진태의 그 비정상적인 신체 변화와 갑작스러운 회복은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을 터였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기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세윤의 날카로운 눈이 수술대 주변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바닥에 스크랩된 거즈들, 핏물이 고인 흡인기 병, 그리고 마취기 주변의 약물 카트까지.
그의 시선이 수술실 구석에 놓인 의료용 폐기물 쓰레기통에 멈췄다.
뚜껑이 비스듬히 열린 쓰레기통 틈새로, 붉은색 글씨가 인쇄된 작은 포장지와 앰플 상자가 보였다. 권세윤은 주위를 슬쩍 살핀 뒤, 서둘러 다가가 쓰레기통 속 내용물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한채아가 진태의 목덜미에 붙였던 특수 패치의 빈 포장지와, 그 아래 찌그러져 있는 작은 약물 상자였다.
[미승인 임상 약물: 국소 전도 차단 패치 (Beta-Blocker Complex)] [제조처: 아르카디아 특수 의학 연구소]
상자 표면에는 명인대학교 병원 이사회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공식 승인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 병원 내에서 엄격히 통제되는 미인가 임상 약물이자, 마취과 조율자인 한채아가 사적으로 유출한 불법 약물임이 분명했다.
권세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찾았다, 강진태."
손에 쥔 약물 상자를 꽉 움켜쥐는 권세윤의 눈동자가 탐욕스러운 빛으로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