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태 교수!!!"
난폭하게 열린 수술실 대기실 문이 벽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문틀을 부술 듯이 움켜쥔 채 서 있는 인물은 기획조정실장 윤태형이었다. 평소의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포마드 헤어는 몇 가닥 내려앉아 있었고,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성나게 솟구쳐 있었다. 그의 뒤로는 검은 정장을 입은 병원 보안요원 서넛이 험악한 기세로 도열했다.
진태는 소독액이 묻은 라텍스 장갑을 쓰레기통에 툭 던져 넣었다. 찌걱거리는 마찰음이 고요한 복도에 조소처럼 울렸다.
"복도에서 고함치는 건 의료법상 정숙 유지 의무 위반일 텐데요, 윤 실장님."
진태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방금 전까지 사신의 장부와 목숨을 건 거래를 하고 나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태도는 미지근한 물처럼 평온했다.
"미친 새끼가 결국 일을 저질렀군."
윤태형이 성큼성큼 걸어와 진태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운 숨결에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이사장님의 허가도 없이, 임의로 VIP 환자의 가슴을 열어? 이건 명백한 무단 수술이자 살인 미수야! 당장 이 수술실에서 끌어내! 보안팀, 뭐 하고 있어? 이 자의 의사 면허와 병원 출입 권한을 즉시 정지시킨다!"
보안요원들이 진태의 양팔을 붙잡으려 위압적으로 다가섰다.
그 순간, 수술실 안쪽에서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며 한채아가 걸어 나왔. 그녀는 소독포를 뒤집어쓴 채 젖은 손을 털며 삐딱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머, 실장님. 목청이 아주 청아하시네. 가곡이라도 한 곡 뽑으시겠어요?"
"한 교수! 당신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마취과가 이 무단 집도에 동조한 죄도 가볍지 않아!"
"동조라니요?"
채아가 피식 웃으며 진태의 옆에 나란히 섰다.
"대동맥 박리로 당장 심장이 터져 나가기 직전인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고, 당직 외과의가 칼을 잡았어요. 마취과는 마취를 했고요. 이게 왜 무단 수술이죠? 아, 혹시 회장님 목숨보다 이사회의 결재 서류 도장이 더 중요하셨나 보네. 역시 비즈니스맨은 스케일이 달라."
"입 닥쳐!"
윤태형의 눈이 뒤집혔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색 직인이 찍힌 징계 결의서를 꺼내 진태의 가슴팍에 사정없이 내던졌다. 종이 모서리가 진태의 뺨을 살짝 긁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사회 긴급 결의안이다. 강진태, 너는 이 시간부로 모든 집도 권한을 박탈당한다. 오늘 저녁 6시에 열릴 징계위원회에서 네 면허를 영구 정지시키는 안건이 통과될 거다. 내 손으로 널 의사 면계에서 매장해 주지."
진태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고개를 약간 비틀며 윤태형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매장이라."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 전에 실장님이 먼저 묻힐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라구?"
"환자는 살았습니다. 대동맥 우회로 조성술은 완벽했고, 바이탈은 청년처럼 건강하죠. 이 병원의 젖줄인 대기업 회장을 살려놓은 의사를 징계한다니. 주주들이 참 좋아하겠습니다."
진태는 윤태형의 어깨를 툭 치며 스쳐 지나갔다. 차갑고 단단한 어깨의 감촉이 윤태형에게 기묘한 한기를 남겼다.
* * *
탈의실 앞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서민수가 소독약 냄새가 나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한채아를 가로막았다. 그의 단정한 안경테 너머로 차가운 이성이 빛나고 있었다.
"한 교수. 강진태 저 인간이랑 같이 미쳐가는 겁니까?"
채아는 캐비닛을 열어 개인 소지품을 챙기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서 교수. 질문 요지가 뭐야? 내가 미친 건지, 아니면 강진태가 잘나서 배가 아픈 건지?"
"장난할 상황이 아니야."
민수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방금 전 수술, 나도 참관실에서 똑똑히 봤어. 인공혈관 접합부의 바느질 속도와 각도, 그건 인간의 정밀함이 아니야. 무슨 약물이라도 한 것처럼 비정상적인 의술이라고. 저런 외줄 타기 같은 집도는 오래가지 못해. 반드시 무너진다. 시한부 사기극에 불과해."
"사기극?"
채아의 눈매가 매섭게 찢어졌다.
"그 사기극 덕분에 방금 사람 하나가 지옥 문턱에서 돌아왔어. 서민수 교수, 자칭 '원칙주의자'인 당신이 포기하고 장례식장 넘기려던 그 환자 말이야."
"의료는 정해진 규율과 프로토콜 안에서 움직여야 환자의 안전이 담보되는 겁니다! 강진태는 그 규칙을 파괴하고 있어. 저러다 수술실에서 환자 하나라도 죽는 날엔, 강진태뿐만 아니라 우리 응급외과 전체가 공중분해 된다고!"
"그럼 당신이 더 잘하든가."
채아가 캐비닛 문을 쾅 닫았다.
"규칙 타령하면서 환자 죽어 나가는 거 받아 적는 서기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진짜 의사 흉내 내는 사람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짖지 마. 시끄러우니까."
민수의 턱관절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꽉 움켜쥐었다. 과거 VIP 전용 병동 '아르카디아'에서 흘러나온, 윤태형 실장의 오진 묵인 정황이 담긴 비밀 차트였다.
그는 아직 이 카드를 꺼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멀어지는 채아의 등 뒤로 차가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 * *
진태는 교수실로 돌아와 책상에 엎드렸다.
"컥……!"
갑작스럽게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두근, 두두두두근. 불규칙한 부정맥이 가슴뼈를 안쪽에서 망치로 때리는 것 같았다.
동시에 시야가 둘로 갈라졌다. 모니터의 하얀 화면이 겹쳐 보이며 극심한 어지러움이 뇌를 흔들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
그 절대적인 계량화 능력을 활성화한 대가였다. 완벽한 수술 경로를 보여주는 대가로 사신은 진태의 심박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환자를 살리기 전에 자신의 심장이 먼저 멈출 터였다.
"하아, 하아……."
진태는 서랍을 열어 니트로글리세린 한 알을 꺼내 혀 밑에 밀어 넣었다. 쌉싸름한 약효가 퍼지며 간신히 호흡이 돌아왔다.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행정 직원이 들어왔.
"강 교수님, 이사회 소집입니다. 본관 12층 대회의실로 지금 즉시 이동하셔야 합니다. 윤 실장님이 직접 배석하셨습니다."
진태는 피식 웃었다. 올 것이 왔다.
그는 땀에 젖은 셔츠 깃을 대충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복시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시야의 가장자리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빛바랜 사신의 시야는, 오히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었다.
본관 12층 대회의실.
길고 무거운 오크통 테이블 양옆으로 병원의 핵심 보직자들과 이사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윤태형 실장이 거만한 자세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진태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회의실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강진태 교수. 앉으시오."
윤태형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오늘 이 자리는 병원의 규율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도박을 감행한 강진태 교수의 징계 및 면허 정지 건을 심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본인의 소명이 있습니까?"
진태는 의자를 당겨 앉는 대신, 테이블 끝에 기대어 서서 윤태형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겹쳐 보이는 붉은 시야 속에서, 윤태형의 신체 위로 기묘한 숫자가 매핑되기 시작했다.
[대상: 윤태형] [잔여 수명: 1년 2개월] [장기별 괴사율: 췌장 두부(Pancreas head) - 선암종 Stage 1B 진행 중. 괴사율 8%] [주요 위험 경로: 복강경 하 담관 침범 가능성 농후.]
진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윤태형 본인조차 아직 모르고 있는 비밀이었다. 췌장암. 그것도 가장 예후가 나쁘다는 췌장 두부의 선암. 1년 남짓 남은 수명이 그의 머리 위에 붉은 글씨로 깜빡이고 있었다.
"소명이라뇨."
진태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윤 실장님은 최근에 소화 불량이나 이유 없는 체중 감소를 겪지 않으셨습니까? 등 뒤쪽으로 뻐근한 통증이 방사된다거나."
윤태형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지금 본인의 징계 안건 심의 중에……."
"췌장 두부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더군요. 지금 당장 Whipple 수술(췌십이지장 절제술)을 잡지 않으면, 실장님이 그토록 갈망하는 차기 이사장 자리는 구경도 못 하고 상조회사 카탈로그나 보게 될 겁니다."
대회의실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이사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수군댔다.
"강진태! 어디서 그런 저주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당장 이 자를 끌어내!"
윤태형이 책상을 쾅 치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저주가 아니라 진단입니다."
진태는 품 안에서 USB 하나와 두꺼운 서류 뭉치 복사본을 꺼내 테이블 중앙으로 툭 던졌다. 서류 겉면에는 '아르카디아 VIP 약품 리베이트 및 장기 이식 대기자 명단 조작 내역'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윤태형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이…… 이건……."
"실장님이 제 면허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하시길래, 저도 제 밥줄을 지키기 위해 준비를 좀 했습니다."
진태가 테이블 위로 상체를 굽히며 윤태형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 의사 면허가 정지되는 순간, 이 서류와 USB는 보건복지부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로 동시 발송됩니다. 아르카디아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거죠. 명인대 병원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이사회는 해체되며, 실장님은 감방에서 췌장암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시게 될 겁니다."
"너…… 네까짓 놈이 감히 나를 협박해?!"
윤태형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류 봉투 틈새로 보이는 몇몇 이사회 고위직들의 차명 계좌 번호는 진짜였다. 진태가 어떻게 이 자료를 손에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터지는 순간 모두가 끝장이라는 사실만이 명백했다.
"협박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윤 실장님."
진태가 서류를 다시 거두어 품에 넣었다.
"제 집도 권한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응급외과에 대한 지원을 예전 수준으로 복구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주 월요일 아침 뉴스 헤드라인은 명인대 병원의 비리로 도배될 테니까."
회의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사들은 눈치를 보며 윤태형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윤태형은 주먹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다. 분노와 굴욕감이 그의 목을 조여왔지만, 눈앞의 강진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살기 어린 눈빛은 허세를 부리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된 미치광이의 눈이었다.
"……징계안은."
윤태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잠정 보류한다. 강 교수의 무단 수술 건은…… 긴급 구호 조치로 참작한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진태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뒤를 돌았다. 이사회의 거대한 권력이 한낱 외과의의 손에 들린 메스 끝에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통쾌한 전율이 대회의실의 무거운 공기를 깨뜨렸다.
* * *
대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 진태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긴장이 풀리자 다시금 심장이 덜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시야가 흐려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벽을 짚으며 겨우 걸음을 옮기는데, 주머니 속의 무선 호출기(삐삐)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동시에 병원 전체에 설치된 비상 방송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응급의학과 및 응급외과 전 의료진은 즉시 지하 1층 응급의료센터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코드 레드…….]
진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지하 1층 응급실 입구에 도달했을 때, 자동문이 열리며 들이닥친 풍경은 흡사 전쟁터와 같았다.
"비켜요! 비켜! 흉부 압박 유지해!"
"수혈 팩 더 가져와! O형 적혈구 제제 당장 10유닛 대기시켜!"
피비린내와 땀 냄새, 그리고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좁은 응급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채아가 이미 혈액이 낭자한 수술 가운을 입은 채 환자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고, 서민수 역시 이마에 땀을 흘리며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강 교수님!"
채아가 진태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영동고속도로에서 15중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했어요! 대형 버스가 전복되면서 중증 다발성 외상 환자만 지금 10명이 넘게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중 세 명은 심장 탐포나데(Cardiac Tamponade)와 대동맥 파열 의심 환자예요!"
진태의 시야가 다시 한번 붉게 물들었다.
응급실 간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머리 위로, 사신의 생명 장부가 무더기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환자 1: 잔여 수명 12분] [환자 2: 잔여 수명 18분] [환자 3: 잔여 수명 7분]
붉은색 숫자들이 기괴하게 깜빡이며 진태의 뇌를 압박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심장이 터질 듯한 부정맥을 일으키며 자지러졌다. 수많은 생명을 동시에 구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그 대가로 찾아올 사신의 징벌.
진태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사신이 그의 목덜미에 차가운 낫을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