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태! 멈추지 마! 어시스트 뭐 해, 석션 더 깊이 넣어!"
마취기 너머에서 한채아의 날카로운 음성이 수술실의 정적을 찢었다.
하지만 강진태의 시야는 이미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대기업 회장의 흉곽 위로, 사신의 생명 장부가 뿜어내는 검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경고: 예측 불가한 중증 대동맥 박리(Type A Dissection) 범위 급격히 확장.] [심낭 내 극심한 유착 발견. 절개 시 대동맥 전층 파열 위험성 극대화.] [현재 수술 성공률: 10%]
10퍼센트. 의학의 영역에서 이 숫자는 사망 선고와 다름없었다. 메스를 쥐고 있는 손가락 끝으로 끈적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이 상태로 흉골 절개용 톱을 밀어 넣는 순간, 고압의 동맥혈이 천장까지 치솟으며 환자는 즉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사신은 진태 자신의 남은 수명 수십 년을 흔적도 없이 회수해 갈 터였다.
"강진태 교수? 왜 손을 멈춥니까? 이러다 테이블 데스(Table Death)예요!"
어시스트를 서던 전공의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였다. 참관실 유리창 너머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태형 실장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사냥감이 덫에 걸린 것을 확인한 포식자의 미소였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진태는 이빨을 악물었다. 눈앞의 붉은 가이드라인이 깨진 유리 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와중에도, 그의 집요한 안구 운동은 장부의 구석진 곳을 탐색했다. 사신의 장부는 절대적인 파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반드시, 죽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단 하나의 바늘구멍 같은 경로가 존재할 것이다.
눈동자를 굴리며 장부의 우측 하단, 복잡하게 얽힌 혈관 지도를 강박적으로 훑었다. 그때, 척추 라인을 타고 내려가는 하행 대동맥 뒤편에서 실핏줄처럼 가느다랗게 박동하는 푸른색 선 하나가 포착되었다.
[대안 경로 발견: 미세 우회 비장 동맥(Collateral Splenic Artery).] [해당 혈관을 통한 역행성 감압 및 우회로 확보 시, 대동맥 내압 40% 감소 가능.]
"메스 바꿔. 11번으로."
진태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방금 전까지 눈동자를 흔들던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예? 11번이요? 지금 흉부를 열어야 하는데 배 쪽으로 내려가시겠다는 겁니까?" "시끄러우니까 입 닫고 톱 치워. 레트랙터 대."
진태는 주저 없이 환자의 상복부 경계선으로 메스를 가져갔다.
"이 미친……! 지금 심장마비 환자 두고 복부를 열겠다는 거야?"
참관실 마이크를 통해 윤태형 실장의 경악 섞인 고함이 수술실 스피커를 울렸다. 그러나 진태의 귀에는 오직 환자의 불규칙한 심박음과 장부의 경고음만이 들릴 뿐이었다.
서걱.
칼날이 피부와 피하지방을 가르고 복막 근처까지 파고들었다. 진태의 손끝은 기계보다 정교했다. 장부가 제시하는 푸른색 선을 따라, 핀셋과 가위가 보이지 않는 속도로 조직을 박리해 나갔다.
"리트랙터 더 당겨. 시야 확보해."
"하, 하지만 교수님, 이 깊이에서는 비장 동맥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보인다면 보이는 거야. 조용히 해."
진태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실제로 그의 눈에는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 사이로, 붉은 장기들 뒤편에서 박동하는 미세 우회 비장 동맥이 선명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지독한 집중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이윽고 부작용이 진태의 육체를 덮쳤다.
쿵! 쿵! 쿵!
가슴 밑바닥에서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당 180회를 넘나드는 부정맥이 그의 흉부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눈앞의 시야가 급격히 좁아지며 암전이 찾아오기 직전, 메스를 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안 돼. 여기서 흔들리면 끝장이다.'
억지로 숨을 참았으나, 밀려드는 산소 부족으로 뇌가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가다간 환자의 가슴을 열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심정지로 쓰러질 판이었다.
스윽.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다가왔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태의 오른쪽 목덜미에 무언가 눅눅하고 차가운 시트 같은 것이 거칠게 밀착되었다.
"으읍……!"
"가만히 있어, 이 미련한 놈아. 숨 쉬고."
걸걸하면서도 든든한 한채아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진태의 목덜미에 붙인 것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짙은 청색의 패치였다. 일반적인 약국이나 병원 약제실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묘한 허브 향과 강렬한 알코올 냄새가 섞인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였다.
패치가 피부에 가닿는 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극도의 냉기가 대동맥을 타고 뇌로 직행했다.
두근,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날뛰던 진태의 심박동이 마법처럼 차분한 박자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어지럽던 복시 현상이 걷히고, 갈라져 보이던 혈관의 가이드라인이 다시 단 하나의 명료한 선으로 합쳐졌다.
"……이게 뭡니까?"
진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뒈질 거면 수술실 밖에서 뒈져. 내 수술방에서 테이블 데스도 모자라 집도의 사망까지 겹치면 시말서 쓰기 귀찮으니까."
한채아는 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하며 껌을 질겅 씹었다.
"효과 죽이지? 그러니까 헛소리 말고 집중해. 저 영감탱이 바이탈 버틸 수 있는 시간 길어야 5분이다."
"5분이면 충분해."
치료 패치 덕분에 시야가 극도로 맑아졌다. 진태의 손놀림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미세 우회 비장 동맥의 외벽을 아주 미세한 틈새만 남겨두고 칼날로 쪼개듯 박리해 냈다. 일반적인 외과의라면 현미경을 대고 두 시간은 족히 걸릴 초고난도의 미세 박리였다. 하지만 진태는 단 1분의 망설임도 없이 혈관을 분리해 냈다.
"캐뉼라(Cannula) 준비해. 바이패스 연결한다."
"이, 이 얇은 혈관에 바이패스를 연결한다고요? 터집니다!" "안 터져. 내가 안 터뜨리니까."
진태는 장부가 지시하는 가장 질기고 두꺼운 혈관 벽의 모서리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곳에 캐뉼라 끝을 밀어 넣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정했다.
슈우욱―.
연결된 튜브를 통해 환자의 복부에서 정체되어 있던 고압의 혈류가 역행성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검붉게 변해 있던 상행 대동맥의 압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삐- 삐- 삐-
정신없이 울려 대던 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이 한 옥타브 낮아졌다.
[대동맥 내압 42% 감소.] [수술 성공률 상승: 10% → 65%]
"압력 떨어졌다! 지금이야, 흉골 열어!"
진태가 외침과 동시에 흉골 절개용 톱을 쥐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위이이이잉―!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환자의 흉골이 정중앙으로 갈라졌다. 압력이 낮아진 덕분에 우려했던 대동맥 파열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야를 가로막던 검붉은 혈종들을 석션으로 빠르게 빨아들이자, 마침내 만신창이가 된 환자의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낭 내부는 지독한 유착으로 인해 유백색의 결합 조직들이 심장 표면을 누에고치처럼 감싸고 있었다. 정상적인 수술법으로는 유착을 떼어내다 심장 근육을 찢어 먹기 십상인 최악의 상태였다.
"포셉(Forceps), 메스."
진태의 눈에 다시 한번 사신의 장부가 그려낸 정밀한 유착 박리 경로가 매핑되었다. 0.1밀리미터 단위로 박리해야 할 곳과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이 붉은 점과 선으로 나뉘어 반짝였다.
스윽. 스윽.
진태의 메스는 거침없었다. 유착 조직을 도려내는 손길은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을 깎아내는 것처럼 유려하고 거침이 없었다.
참관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윤태형 실장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돼…… 저 유착을 저 속도로 박리한다고? 심벽을 건드리지 않고?"
그의 곁에 서 있던 다른 흉부외과 과장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라면 최소 서너 시간은 끙끙대며 유착을 제거하다 결국 포기하고 우회 수술로 전환했을 터였다. 그러나 강진태는 단 15분 만에 심장을 감싸고 있던 유착 조직을 완벽하게 분리해 냈다.
"대동맥 인조혈관 치환술(Aortic Root Replacement) 준비해. 24밀리 카디악 그라프트(Graft)."
진태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찢어진 대동맥 부위를 잘라내고 인조혈관을 이식하는 과정은 수술의 하이라이트였다. 진태는 장부가 보여주는 바느질 가이드라인을 따라 실을 통과시켰다. 한 땀, 두 땀. 바늘이 심장 조직을 통과할 때마다 환자의 생명력이 복구되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마지막 매듭을 짓고, 인조혈관을 가로막고 있던 클램프를 서서히 해제했다.
"클램프 오프(Clamp off). 혈류 재개한다."
수술실 안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인조혈관을 타고 붉은 선혈이 힘차게 뿜어져 나갔다. 접합부 어디에서도 단 한 방울의 누출도 없었다. 완벽한 봉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근.
정지해 있던 심장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힘찬 박동을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정상적인 동성 맥박(Sinus Rhythm)이 모니터 화면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나타났다.
"하…… 바이탈 정상 범위로 복귀했습니다. 혈압 120에 80. 맥박 75회 유지 중입니다."
마취과 레지던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진태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신의 생명 장부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새로운 골드 텍스트를 뿜어냈다.
[집도 완료. 환자의 생체 징후 안정화.] [수술 성공률: 98%] [환자의 잔여 수명 갱신: 1시간 → 15년 4개월]
타앙!
머릿속에서 웅장한 쇠소리와 함께, 장부의 우측 하단에 붉은색 낙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첫 번째 구원 성공 - 단죄의 장부에 구원 스탬프가 기록됩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을 짓누르던 무거운 피로감과 심장의 뻐근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숨통이 트였다. 진태는 마스크 뒤로 차가운 실소를 흘렸다.
"수술 불가라고 뒤돌아서서 장례식장 예약하려던 분들, 다들 어디 가셨나?"
진태가 참관실 유리창 너머의 윤태형 실장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참관실의 의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정리해. 난 나간다."
진태는 메스를 트레이에 툭 던져두고 수술 가운을 벗어 던졌다.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와 소독액 냄새가 진동하는 복도로 들어선 순간, 등 뒤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수술실 외부 대기실 문이 난폭하게 부서지듯 열렸다.
"강진태 교수!!!"
핏발 선 눈을 한 윤태형 실장이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복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