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어깨 관절이 완전히 이탈하는 순간, 고막을 찢는 듯한 마찰음이 수술실의 무균 공기를 갈랐다.
우두둑!
어깨뼈가 살을 뚫고 솟구칠 듯한 기괴한 변형과 함께 강진태의 몸이 대리석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우측 어깨에서 시작된 작열통이 척수를 타고 뇌간으로 곧장 뻗어 올라갔다. 안구가 뒤집히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가파르게 암전되었다. 입술 사이로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못했다. 폐부가 굳어 버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의사가 오른팔을 못 쓰면…… 메스는 어떻게 쥐려나, 강진태 선생?”
윤태형의 목소리에는 승리감에 젖은 비열한 가래 끓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는 타액을 튀기며 바닥에 쓰러진 진태를 내려다보았다. 거구의 보안요원은 진태의 왼팔마저 꺾어 누르기 위해 군화 발로 바닥을 짓밟으며 다가왔다.
진태는 차가운 바닥에 뺨을 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부러진 뼈끝이 신경을 건드릴 때마다 전신이 경련했다. 사신의 능력을 과용한 대가로 심장은 이미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수천 개의 바늘이 동시에 찌르는 듯한 부정맥이 요동쳤다. 복시 현상까지 겹쳐 눈앞의 윤태형이 셋으로 쪼개져 보였다.
하지만 진태의 눈동자는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너머,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국무총리 대행의 가슴 위에 떠오른 붉은 글씨를 응시하고 있었다.
[잔여 수명: 34분 12초]
저 늙은 정치가의 심장 박동이 멈추는 순간, 진태 자신의 수명 역시 똑같이 깎여 나간다. 사신과의 계약은 자비가 없다. 살려내지 못하면 같이 죽는다.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규칙이 진태의 척추를 곧추세우게 만들었다.
“강 선생!”
한채아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진태는 이빨이 깨질 정도로 악물며 상체를 일으켰다. 왼팔로 바닥을 짚고,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어 수술실 한구석에 우뚝 솟은 견고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기둥 벽으로 향했다. 보안요원이 그의 뒷덜미를 잡으려 손을 뻗은 찰나였다.
진태는 온 무게를 실어 탈골된 오른쪽 어깨를 기둥 벽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그대로 처박았다.
쾅!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진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술실 내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빡! 하는 둔탁하고도 소름 끼치는 뼈 맞추는 소리가 밀폐된 공간을 울렸다. 기둥 모서리에 정통으로 부딪친 우측 견관절의 골두가 극심한 마찰열을 일으키며 관절와(Glenoid cavity) 안으로 강제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자가 정복(Self-reduction). 어설픈 각도로 맞췄다면 관절 순이 찢어지고 상완신경총이 마비되어 평생 오른손을 쓰지 못할 무모한 도박이었다.
그러나 진태의 머릿속에는 사신의 장부가 그려낸 완벽한 물리적 궤적이 이미 매핑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진태가 벽을 짚고 돌아섰다. 오른팔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손가락 끝에 감각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식은땀이 수술 가운을 축축하게 적셨다.
그때 한채아가 바람처럼 진태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얇고 투명한 실리콘 재질의 패치가 쥐어져 있었다. 2화에서 진태의 비정상적인 심음과 부정맥을 감지하고 그녀가 직접 조제해 두었던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였다.
“움직이지 마, 미친놈아!”
채아가 거친 손길로 진태의 뒷덜미 깃을 젖히고 경동맥 부근에 패치를 강하게 밀착시켰다.
순간, 얼음물 같은 차가운 약물이 피부 장벽을 뚫고 혈관으로 급속히 침투했다. 경동맥을 타고 들어간 항부정맥 성분이 요동치던 심장 전도계를 강제로 진정시켰다. 쿵쾅거리며 갈지자로 뛰던 맥박이 일정한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시야를 어지럽히던 복시 현상이 걷히고, 수술실 안의 사물들이 단 하나의 선명한 형체로 고정되었다.
“숨 쉬어, 강진태. 아직 쓸 만하니까 서 있어.”
채아의 걸걸한 목소리가 진태의 귓가를 때렸다.
“고마워.”
진태가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다시 메스를 쥐었다. 손끝의 떨림이 완전히 멈췄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당장 끌어내라고!”
윤태형이 광분하며 사설 보안요원들에게 손짓했다. 요원들이 삼단봉을 치켜들고 수술대 앞의 진태를 향해 돌진하려 했다.
그 순간, 흉부외과 전공의 서민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민수는 수술실 진입로의 에어샤워 이중 도어 제어반으로 달려가 붉은색 비상 잠금 버튼을 사정없이 내리눌렀다.
치이익! 하는 고압 공기 배출음과 함께 두꺼운 강화유리문이 완전히 폐쇄되었다.
“서민수! 너 지금 무슨 짓거리야!”
유리문 너머에서 윤태형이 문을 두들기며 비명을 질렀다.
서민수는 숨을 헐떡이며 제어반 앞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그의 뇌리에는 조금 전 진태가 차갑게 던졌던 말이 이명처럼 맴돌고 있었다. *‘이 차트를 봐라. 네가 저지른 오진이 이 환자의 가슴을 열게 만들었다. 의사로 남을 건가, 아니면 저들의 살인 도구로 썩을 건가.’*
진태가 들이밀었던 과거 VIP 의뢰 차트. 그것은 민수에게 단순한 협박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나태함과 권력에 대한 맹종이 빚어낸 치명적인 실수이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었다. 민수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윤 실장님. 이 수술실의 집도 권한은 집도의인 강진태 교수에게 있습니다. 병원 규정상, 수술 중 외부인의 무단 침입은 의료법 위반입니다. 보안요원들을 당장 퇴거시키십시오.”
민수의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목소리가 유리문 너머로 울려 퍼졌다.
“저 개새끼가 미쳤나! 서민수, 네 의사 면허를 날려버릴 줄 알아!”
“날리십시오.”
민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받아쳤다.
“하지만 지금 이 방의 문을 열면, 당신들은 장기 매매 및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될 겁니다. 제가 확보한 아르카디아 원본 데이터는 이미 외부 서버로 자동 전송되도록 설정해 두었습니다.”
윤태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 사이, 진태는 수술대 위로 몸을 숙였다. 그의 시야에 ‘사신의 생명 장부’가 거대한 홀로그램처럼 펼쳐졌다.
[경고: 기증 예정인 불법 이식 심장의 조직 부적합률 98.7%.] [이식 강행 시, 초급성 거부 반응(Hyperacute rejection)으로 3분 이내 심정지 및 뇌사 발생.] [대안 경로 탐색 완료.] [환자의 기존 심장을 보존하되, 심각하게 파손된 승모판막 및 대동맥판막의 동시 성형술(Double Valve Reconstruction) 집도 시 잔여 수명 12년 6개월 확보 가능.]
“인공심폐기 가동 상태 유지해.”
진태가 차갑게 지시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던 외과과장 권세윤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끼어들었다.
“강진태! 미쳤어? 판막 두 개를 동시에 성형한다고? 환자는 이미 심근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야! 체외 순환 시간을 더 늘리면 심장이 영구적으로 정지해!”
진태는 메스를 쥔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권세윤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섭씨 영하의 얼음송곳 같았다.
“권 과장님.”
“어, 어?”
“당신이 아르카디아 비리에 연루되어 이 가짜 심장을 들여오는 데 도장을 찍은 거, 모를 줄 알았습니까?”
권세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 수술이 실패하면, 당신은 단순한 수술 실패자가 아니라 불법 장기 이식으로 환자를 살해한 1급 살인마로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겁니다. 살고 싶습니까?”
“그, 그게 무슨……”
“살고 싶으면, 당장 그 거드름 피우는 손 치우고 어시스트 포지션으로 들어가세요.”
진태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지배력이 깃들어 있었다.
“어시스트…… 내가? 과장인 내가 전공의 놈도 아니고 왜!”
“이 수술방에서 환자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나니까.”
진태가 권세윤의 가슴팍을 메스 끝으로 툭툭 쳤다.
“기도 제어하고, 리트랙터(견인기) 잡으세요. 1mm라도 각도가 흔들리면 당신 손가락을 먼저 째버릴 테니까.”
권세윤은 침을 삼켰다. 진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는 진짜였다. 여기서 거부했다간 정말로 파멸할 것 같다는 공포가 그의 척추를 타고 내달렸다. 권세윤은 굴욕감에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조용히 진태의 맞은편 어시스트 자리에 서서 리트랙터를 잡았다.
수술실을 장악한 진태의 메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0프롤린(Prolene) 봉합사.”
진태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장부가 제시하는 붉은 가이드라인이 환자의 승모판막 주위로 정교하게 매핑되었다.
보통의 외과의라면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미세한 판막의 섬유화 부위가 진태의 눈에는 썩어 들어가는 검은 궤양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진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괴사된 판막엽을 절제해 냈다.
“가위.”
서민수가 밖에서 문을 지키는 동안, 한채아가 진태의 손놀림에 맞춰 마취 가스와 인공심폐기의 유량을 미세하게 조절했다.
“바이탈 흔들려! 혈압 70에 40! 더 빨라야 해, 진태야!”
채아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문제없어.”
진태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차분했다. 오른팔의 통증이 패치의 약효 덕분에 잠시 억눌려 있었지만, 관절 내부에서 미세한 출혈이 일어나며 욱신거리는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메스를 쥔 손끝은 단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서전의 메스가 대동맥판막의 기저부를 가르고 들어가, 인공 구조물을 덧대어 판막의 형태를 재건했다.
서민수는 문을 등진 채 그 광경을 목격하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저런 속도로…… 판막 두 개를 동시에 성형하면서 심근 보호액 주입 주기를 완벽하게 맞출 수 있지?'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의 손놀림에 가까웠다.
“판막 성형 완료. 대동맥 클램프 제거합니다.”
진태가 차갑게 선언했다.
클램프가 풀리고, 정지해 있던 환자의 심장으로 따뜻한 혈액이 다시 유입되기 시작했다.
수술실 안의 모든 시선이 바이탈 모니터로 향했다.
두근.
침묵을 깨고 모니터에 미세한 전기 신호가 잡혔다.
두근, 두근!
이내 정형화된 QRS 파형이 그리며 심박수가 75회로 고정되었다. 혈압 역시 110에 70으로 빠르게 상승하며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동시에, 진태의 시야에 떠 있던 기증 심장의 붉은 경고등이 사라지고, 환자의 머리 위에 새로운 숫자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잔여 수명: 14년 8개월]
완벽한 성공이었다.
수술실 내부의 긴장감이 일순간 완화되며, 한채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권세윤은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고, 서민수의 얼굴에는 경외감이 서렸다.
진태는 메스를 트레이에 내려놓았다. 댕강, 하는 쇠붙이 소리가 유난히 맑게 울렸다.
그가 이마의 땀을 닦으려 가운 소매를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수술실 입구의 두꺼운 강화유리문이 강력한 유압 장비에 의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폭발하듯 열렸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모두 제자리에서 손 떼!”
검은색 전술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윤태형이 사적으로 고용한 최종 무장 경비단 6명이 수술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시커먼 가스총과 황색 레이저 포인터가 장착된 테이저건이 들려 있었다.
경비단의 대장이 진태의 가슴팍을 향해 테이저건을 조준했다. 붉은색 레이저 타깃이 진태의 심장 정중앙에 맺혔다.
윤태형이 깨진 유리 조각을 밟으며 수술실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에는 광기와 살의가 가득 차 있었다.
“수술은 끝난 모양이군, 강진태 선생. 그럼 이제…… 조용히 사라져 줄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