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색 레이저 포인터의 조준점이 강진태의 왼쪽 가슴, 정확히 심장이 위치한 곳에 고정되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강화유리 파편이 수술실의 무영등 불빛을 받아 칼날처럼 번뜩였다. 공기 중에는 깨진 유리의 미세한 먼지와 소독약 냄새, 그리고 쇠붙이의 서늘한 기운이 뒤섞여 호흡을 턱턱 막히게 했다.

“손 떼라고 했을 텐데, 강진태 선생.”

윤태형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살의는 수술실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그의 뒤로 도열한 6명의 무장 경비단은 시커먼 테이저건과 가스총의 총구를 진태에게 겨눈 채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방수포 위로 떨어진 유리 조각을 짓밟는 군화 소리가 삐, 삐, 울리는 바이탈 모니터 소리와 날카롭게 대치했다.

하지만 메스를 내려놓은 진태의 손끝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이중 대동맥판막 성형술의 마지막을 장식할 4-0 프롤린(Prolene) 봉합 실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단 한 번의 매듭. 그것만 가볍게 당겨 묶으면 환자의 대동맥은 완벽하게 밀폐된다. 만약 지금 손을 놓는다면, 110mmHg로 솟구치기 시작한 혈압이 봉합되지 않은 미세한 틈새를 찢고 뿜어져 나와 환자는 30초 내에 술대 위에서 사망할 것이다.

“타이(Tie)가 끝나지 않았다.”

진태의 목소리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오른쪽 어깨의 탈골 통증이 패치의 약효를 뚫고 뼈를 깎는 듯한 자극으로 밀려왔지만, 그의 얼굴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경비대장의 손가락이 테이저건의 방아쇠를 지그시 눌렀다. 금방이라도 수만 볼트의 전류가 진태의 심장을 관통할 기세였다.

“건방진 새끼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쏴!”

윤태형의 거친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 거친 마찰음과 함께 누군가 진태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쏠 거면 나부터 쏘고 시작해, 이 기생충 같은 인간들아!”

한채아였다.

그녀의 걸걸한 목소리가 수술실 벽면에 부딪쳐 울렸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그녀의 작은 체구가 진태의 앞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경비대장의 레이저 포인터가 채아의 등덜미로 옮겨갔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양손으로 진태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강진태, 너 지금 심장 터지기 직전이야. 알고 있어?”

채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진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진태의 시야는 이미 두 겹, 세 겹으로 흐려지는 복시 현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망막 너머로 붉게 일렁이는 ‘사신의 생명 장부’가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페널티 활성화: 심실성 빈맥 발생 위험도 94%] [잔여 수명 차감 카운트다운 진입]

가슴 내부에서 무거운 쇠구슬이 굴러다니는 듯한 극심한 부정맥이 그의 숨통을 조였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다시 올라왔다. 각혈의 전조였다. 이대로 매듭을 짓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쓰러질 판국이었다.

그때, 채아의 손이 진태의 목덜미로 향했다.

스윽.

그녀의 손가락 끝에 들려 있던 얇고 투명한 패치 하나가 진태의 경동맥 부근에 강하게 밀착되었다.

2화에서부터 채아가 진태의 심음 이상을 감지하고 준비해 두었던, 미세 혈관 확장 및 심근 안정 성분이 극대화된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였다. 지난 수술들에서 진태의 급사를 막아주었던 그 유일한 생명줄이, 다시 한번 그의 피부 깊숙이 이식되듯 부착되었다.

“……!”

차가운 냉기가 목덜미를 타고 심장으로 순식간에 내리꽂혔다.

두근거림의 엇박자가 기적처럼 잦아들었다. 요동치던 심박수가 분당 140회에서 85회로 급격히 가라앉으며, 겹쳐 보이던 시야가 아침 안개가 걷히듯 명확해졌다. 흐릿하게 일렁이던 붉은 봉합 경로가 단 하나의 선명한 선으로 고정되었다.

“미쳤군. 다 같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윤태형이 경비단을 향해 손짓했다.

“끌어내. 저 계집년이랑 강진태 둘 다 지하로 처박아.”

“그 손 대지 마라.”

묵직한 저음이 수술실 입구 쪽에서 새어 나왔다.

서민수였다.

그는 수술실 문가에 우뚝 선 채, 안주머니에서 붉은색 가죽 표지가 씌워진 낡은 차트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윤태형의 시선이 그 차트로 향하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 선생, 지금 무슨 짓거리야?”

“이사장님. 기억하십니까? 3년 전, 아르카디아 VIP 병동에서 비밀리에 처리했던 대기업 부회장의 오진 차트입니다.”

서민수의 목소리는 융통성 없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단단하고 단호했다.

“당시 이사장님은 저에게 이 오진을 단순 심부전으로 덮으라 명령하셨고, 저는 병원의 안위를 위해 그 더러운 지시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여기, 제 오진 고백서와 함께 당시 이사회에서 오간 리베이트 내역이 담긴 원본 디스크가 들어있습니다.”

“서민수…… 너 이 자식이 감히!”

윤태형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서민수가 쥔 카드는 단순한 의료 사고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인대학교 병원 이사회가 아르카디아를 통해 어떻게 자금을 세탁하고, 권력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정경유착을 공고히 해왔는지를 증명하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서민수는 진태의 경이로운 의술을 목격하며, 자신이 지켜온 규율과 안락함이 얼마나 비겁한 족쇄였는지를 처절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파멸을 각오하고 윤태형의 목줄을 쥐었다.

“이 차트가 보건복지부와 언론에 넘어가는 즉시, 이사장님이 추진하시던 법인화 사업과 차기 이사장 승인은 완전히 백지화될 겁니다. 지금 당장 저 무장 인원들을 물리십시오.”

“이, 이 배은망덕한 놈들이……!”

윤태형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수술실 안에 질척하게 울렸다.

그의 시선이 서민수의 차트와 수술대 위의 환자, 그리고 진태에게로 바쁘게 오갔다. 하지만 진태는 이미 그들의 정치적 공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세계는 오직 수술대 위의 심장, 그리고 시야에 펼쳐진 ‘사신의 생명 장부’뿐이었다.

[구원 보너스 누적 게이지: 99%] [임계점 도달까지 잔여 수치: 1%] [현재 환자의 잔여 수명: 14년 8개월 (불안정)]

장부 우측 하단에 새겨진 황금빛 카운트 게이지가 마지막 1%를 두고 격렬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남의 목숨을 대가 없이 완벽하게 구원할 때, 사신에게 빼앗긴 자신의 수명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마지막 한 땀이다.’

진태는 호흡을 멈췄다.

그가 바늘을 쥔 지침기를 들어 올려 대동맥 외막의 마지막 마진(Margin)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가슴 정중앙을 무거운 송곳으로 뚫는 듯한 통증이 진태를 덮쳤다. 사신의 계약이 그의 생명을 강탈해 가려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쿵!

진태의 심장이 길을 잃고 멈춰 섰다.

“흡……!”

그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암전되며, 무영등의 빛이 차갑게 꺼져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삐이이이이이!

수술실의 바이탈 모니터가 끊어질 듯한 경고음을 내질렀다. 경비단도, 윤태형도, 서민수도 일순간 얼어붙었다.

하지만 멈춘 것은 환자의 심장이 아니었다.

강진태, 그의 심장이었다.

“강진태! 정신 차려! 눈 떠!”

채아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진태는 손끝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 심장이 멈춰 손가락이 마비되려는 찰나, 그는 자신의 영혼을 메스 끝에 주입하듯 손목을 꺾었다.

서걱.

바늘이 외막을 완벽하게 관통했다.

그는 남은 수명 전부를 매듭 한 번에 걸어 잠그듯, 프롤린 실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붉은색 봉합 경로가 황금색 빛으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장부 우측 하단의 게이지가 마침내 100%를 돌파했다.

[구원 보너스 누적 조건 달성.] [사신의 차감 수명 상쇄 프로세스 가동.]

웅- 하는 거대한 이명과 함께 진태의 멈췄던 심장이 폭발하듯 다시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터질 듯한 고동이 전신으로 피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술대 위 복지부 의원의 바이탈 모니터가 요동쳤다.

두근, 두근!

정형화된 QRS 파형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우며, 정지되어 있던 환자의 자발적인 파동 혈압이 80, 100, 마침내 120mmHg의 정상 범주로 힘차게 치솟았다.

“혈압 소생했습니다! 자발 순환 회복(ROSC) 확인!”

채아가 눈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기쁨에 찬 소리를 질렀다.

순간 수술실 내부에는 침묵이 흘렀다.

총구를 겨누고 있던 무장 경비단원들의 손끝이 느슨해졌다. 그들 역시 인간이었기에, 눈앞에서 펼쳐진 죽음에서 삶으로의 완벽한 회귀를 목격하고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윤태형은 넋이 나간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환자의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는 이제 완벽한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잔여 수명: 24년 6개월]

진태는 메스를 쟁반에 내려놓았다. 챙강,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윤태형의 패배를 알리는 종소리처럼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그는 천천히 윤태형을 비스듬히 응시했다.

“당신의 그 더러운 정치판에, 내 환자의 목숨을 판돈으로 올리지 마라.”

진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파괴력이 실려 있었다.

“서민수 선생의 차트, 그리고 내가 가진 이사장의 췌장암 데이터와 아르카디아 비리 USB. 이 세 가지가 내일 아침 보건복지부 특조위에 제출될 거다. 당신의 자리는 이제 수술실이 아니라, 차가운 철창 안이 되겠군.”

윤태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경비단원들은 이미 서민수가 쥔 차트의 무게감을 감지하고 조용히 총구를 바닥으로 내리고 있었다. 완벽한 굴복이었다.

성공적인 수술, 그리고 이사회를 향한 완벽한 반격.

수술실 내부의 공기가 마침내 안정을 찾는 듯했다. 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태의 팔을 잡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울컥.

진태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강진태?!”

채아의 비명소리가 다시 한번 수술실을 찢었다.

진태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사신의 생명 장부가 미친 듯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기괴한 글자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고: 사신과의 거래 파괴 징후 감지.] [구원 보너스가 계약의 한계를 초과하여 시스템의 질서를 훼손함.] [계약 조건 변경 심사 진입 — 생명 장부의 낙인이 소멸을 준비합니다.]

치이익- 하는 불에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태의 시야 우측 하단에 새겨진 장부의 문양이 검게 그을려 가기 시작했다.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과 함께 진태의 시야가 빠르게 암전되었다.

사신을 속인 대가가, 이제 그의 진짜 목숨을 거두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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