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하 3층 구금실의 무겁고 습한 공기 속으로 둔탁한 금속성 마찰음이 파고들었다.

철문 너머에서 다가오는 발걸음은 불규칙하면서도 묵직했다. 가죽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을 짓누르는 소리가 고막을 자극할 때마다, 진태의 시야 우측 하단에 매핑된 사신의 생명 장부가 붉은색 경고등을 미친 듯이 깜빡였다.

[경고: 극도의 물리적 위해 감지.] [사용자의 생존 확률: 42% -> 19%]

진태는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심장이 제멋대로 폭주하고 있었다. 분당 심박수가 이미 170회를 넘나들며 심실성 빈맥(Ventricular Tachycardia)의 전조 증상을 보였다. 눈앞의 사물들이 둘로, 셋으로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시야를 흐려 놓았다. 사신의 능력을 무리하게 연속 사용한 대가였다.

쿵-!

마침내 구금실의 쇠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틀을 꽉 채울 만큼 거구의 사내 세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신문지에 감싼 쇠파이프와 묵직한 가스 배관용 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살기등등한 기운이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 새끼가 강진태냐?”

맨 앞에 선 흉터 가득한 얼굴의 사내가 진태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쇠파이프 끝이 바닥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소음을 냈다.

“윤 실장님이 아주 정중한 부탁을 하셔서 말이야. 의사 새끼는 손가락만 부러뜨리면 아무것도 못 한다면서? 양손 뼈마디를 가루로 만들어 주지. 평생 메스 근처에도 못 가게.”

사내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진태의 겹쳐진 시야 속에서 사내들의 관절과 급소가 붉은색 선과 숫자로 매핑되기 시작했다. 장부가 제시하는 회피 경로가 눈앞에 펼쳐졌지만, 지금의 육체는 그 지시를 따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쳐 발가락 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대로 손가락이 으스러져 의사로서의 삶이 끝날 것인가.

진태는 이를 악물었다. 떨리는 오른손을 천천히 코트 안주머니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질기고 얇은 특수 소재의 패치였다.

‘이거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야. 네 멍청한 심장이 폭발하기 전에 붙여. 안 붙이면 다음 수술방엔 네 시체가 들어갈 테니까.’

한채아가 예전 수술실에서 진태의 가슴팍에 거칠게 붙여주며 쏘아붙였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그녀가 비상용으로 진태의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던 마지막 안전장치였다.

진태는 망설임 없이 패치의 보호 필름을 뜯어내고, 자신의 왼쪽 목덜미, 경동맥이 거세게 고동치는 부위에 강하게 밀착시켰다.

치이익-!

피부 장벽을 뚫고 강력한 항부정맥 약물인 아미오다론(Amiodarone) 성분이 혈관을 타고 다이렉트로 침투했다. 얼음물을 들이부은 듯한 극도의 청량감이 목덜미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두근거리며 폭주하던 심장의 동결절(SA node)이 강제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터질 것 같던 심박수가 150, 120, 이내 90회로 급격히 내려앉았다. 흐릿하게 겹치던 조폭들의 형상이 단 하나의 선명한 피사체로 고정되었다.

“쥐새끼처럼 주머니에서 뭘 꺼내나 했더니, 스티커나 붙이고 자빠졌네. 이 새끼가 미쳤나?”

흉터 사내가 실소를 터뜨리며 쇠파이프를 치켜들었다. 진태의 손가락을 겨냥해 사정없이 내리찍으려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앙-!

지하 구금실의 비상 철문이 굉음과 함께 뜯겨 나가듯 열렸다.

“검찰 수사관들입니다! 전부 동작 그만!” “카메라 들이대! 실시간으로 다 찍어!”

어둠을 뚫고 수십 명의 발소리와 함께 눈이 멀 것 같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져 들어왔다. 윤태형의 비리를 추적하던 검찰 압수수색팀과 방송국 기자들이 지하 3층 구금실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사내들은 갑작스러운 빛과 카메라 렌즈의 공세에 사색이 되어 무기를 떨어뜨렸다.

“이, 이게 뭐야……!”

진태는 목덜미의 패치를 손끝으로 가볍게 누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이 가라앉은 심장은 차갑고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사내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갔다. 플래시 불빛이 그의 하얀 의사 가운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

사흘 뒤. 명인대학교 병원 지하 1층, 중환자 전담 응급외과 외래실.

탁-!

붉은색 공인 직인이 찍힌 두꺼운 서류 봉투가 진태의 책상 위에 거칠게 던져졌다.

[의사 면허 효력 정지 고지서]

보건복지부 행정처분과의 정식 직인과 함께 ‘의료법 제66조 제1항에 의거, 강진태 귀하의 의사 면허 효력을 즉시 정지함’이라는 문구가 굵고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궁지에 몰린 윤태형과 병원 이사회가 자신들의 몰락을 막기 위해 마지막 권력줄을 동원해 때린 최후의 행정적 보복이었다. 면허가 정지된 의사가 메스를 잡는 순간, 그것은 살인 행위이자 무면허 의료 행위로 즉각 구속 사유가 된다. 수족을 묶어 아예 수술실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악랄한 계산이었다.

진태는 고지서를 대수롭지 않게 훑어본 뒤,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가볍게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환자들의 차트와 사신의 능력이 깃든 진료 장부를 품에 안은 채 외래실 의자에 굳건히 앉았다.

“환자가 저 복도에 줄을 서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메스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진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때, 외래실 문이 열리며 서민수가 들어섰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이전의 옹졸한 시기심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진태의 압도적인 실력과 그가 행해온 수술들의 숭고함을 목격한 이후, 서민수의 정체성은 완전히 뒤흔들려 있었다.

“강 선생.”

서민수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진태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섰다.

“내가 자네의 퍼스트 어시(First Assistant, 제1조수)를 맡겠네.”

진태는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서 선생이 내 어시스트를? 대학병원 정교수 타이틀이 이제 지겨워진 모양입니다.”

“비아냥거릴 시간 없네. 면허 정지 고지서가 발부된 이상 자네가 직접 메스를 잡으면 그 즉시 현행범으로 체포돼. 하지만 집도 서명란에 내 이름을 적고, 실제 수술방에서 자네가 구두로 오더를 내린다면 법망을 우회할 수 있어. 수술은 내가 집도하는 형식을 취하되, 내 손을 자네의 메스로 쓰란 말이네. 자네가 살려야 할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내 면허와 직위 따위는 아무래도 좋네.”

서민수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정석만을 고집하던 원칙주의자가 강진태라는 천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법의 테두리를 깨부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진태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서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서류철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이걸 보고도 나를 도울 마음이 생기는지 먼저 확인해 보십시오.”

그것은 과거 서민수가 아르카디아 VIP 환자를 진단하고 수술 불가를 선언했던 극비 의뢰 차트였다.

“서 선생이 과거에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진단서입니다. 하지만 이 차트의 심장 초음파 기록을 다시 보십시오. 자네는 단순 승모판 폐쇄부전(Mitral Regurgitation)으로 진단하고 약물 치료만 권장했지. 하지만 여기 미세한 음영 보입니까? 단순 역류가 아니라 심장 점액종(Myxoma)으로 인한 2차성 폐쇄였어. 자네의 그 한심한 오진 때문에 환자는 치료 시기를 놓치고 6개월 동안 고통받다 사망했지. 자신의 오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의사가 내 메스가 되겠다고요? 내 수술실은 단 0.1밀리미터의 오차도, 단 한 번의 오판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서민수는 떨리는 손으로 차트를 펼쳤다. 누렇게 바랜 심장 초음파 필름 구석, 정말 미세하게 뭉쳐 있는 점액종의 흔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의술이 사실은 비겁한 오진이었음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였다.

서민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학자로서, 의사로서의 자존심이 밑바닥까지 산산조각 나는 고통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서민수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더니, 이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자네 말이 맞다. 내가 틀렸어. 내 자만심이 환자를 죽이고 있었던 거야. 강 선생, 자네 말이 뼈저리게 맞네. 내 자존심은 이제 상관없어. 그러니 나를 자네의 메스로 써 주게. 사람을 살리는 진짜 의술이 무엇인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배우고 싶네. 기꺼이 자네 밑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보조를 서겠네.”

완벽한 굴복이자 전향이었다. 진태는 서민수의 굽혀진 어깨를 보며 조용히 차트를 덮었다.

“수술 준비나 해 두십시오. 곧 환자가 밀려올 테니까.”

서민수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외래실을 나간 후, 진태는 혼자 남은 방에서 ‘사신의 생명 장부’를 펼쳤다.

책장 위에 붉은색 잉크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번져나갔다. 장부의 우측 하단, 미세한 균열처럼 적혀 있던 구원 보너스 누적 조항이 마침내 선명한 활자로 매핑되기 시작했다.

[구원 보너스 누적 조건: 극악의 한계 상황에서 생존율 5% 미만의 환자를 구원하는 ‘위대한 구원’을 달성할 때마다, 계약자에게 가해진 부정맥 페널티를 영구 상쇄하는 ‘심장 회복권’이 1회 부여됨.]

진태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비틀려 올라갔다.

사신이 파놓은 일방적인 데스 매치인 줄 알았던 계약이었다. 하지만 그 룰 속에는 사신의 목줄을 쥘 수 있는 완벽한 역공의 열쇠가 숨겨져 있었다. 환자를 완벽하게 구원할 때마다, 자신의 꺼져가는 목숨 또한 되돌려 받는다.

그때, 외래실 문이 쾅 하고 거칠게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과 보건복지부 소속 행정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강진태 씨. 의사 면허 정지 처분을 무시하고 진료 행위를 지속한 혐의로 즉각 연행하겠습니다. 진료를 중단하고 따라나서십시오.”

법무팀 대리인이 강압적인 태도로 진태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진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댄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탁-!

그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외래실 뒷문이 열리며 한채아가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로 방송국 로고가 선명한 카메라 세 대와 수십 명의 현장 취재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홍수처럼 들이닥쳤다.

“지금 실시간 뉴스 라이브 송출 중입니다! 다들 비키세요!”

한채아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치며 카메라의 진입을 도왔다. 집행관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진태는 쓰레기통에 버렸던 고지서 대신, 품속에서 정식 법원 접수증 한 장을 꺼내 집행관의 가슴팍에 툭 던졌다.

“이건 오늘 아침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한 ‘면허 정지 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서’ 접수증입니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내리기 전까지 내 의사 면허는 임시적으로 완전히 유효합니다. 법적 효력이 정지된 행정명령을 핑계로, 응급 환자를 진료 중인 의사를 폭력적으로 연행하려 한다? 이 초법적인 현장이 지금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어디 계속해 보시지 동무들?”

진태의 비아냥 섞인 도발에 집행관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카메라 렌즈들이 그들의 명찰과 얼굴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했다.

“이, 일단 후퇴해……!”

법무팀 대리인이 사색이 되어 손짓했고, 집행관들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피해 도망치듯 외래실을 빠져나갔다. 기득권이 쳐놓은 법망을 완벽한 법리적 대처와 언론의 힘으로 역관광시킨 통쾌한 승리였다.

하지만 여운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기자들이 정돈되기도 전에,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서민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외래실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고, 손에는 아르카디아 VIP 병동의 극비 연락용 무전기가 쥐어져 있었다.

“강 선생! 큰일났네! 윤태형 실장 그 미친놈이…… 이번 검찰 압수수색과 아르카디아 비리 폭로를 통째로 무마하려고 마지막 파국적 카드를 꺼냈어!”

서민수가 다른 기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진태의 멱살을 잡듯 다급하게 귓가에 속삭였다.

“현직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금 급성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로 쓰러졌네! 잔여 수명이 몇 분 남지 않은 상태야. 그런데 윤태형이 검찰 수사를 전부 덮어주는 대가로 장관을 아르카디아 VIP 병동으로 은밀히 빼돌렸어! 장관의 수술을 아르카디아에서 성공시켜 자신들의 범죄를 완전히 뭉개버리고, 병원을 지키려 하네! 지금 장관이 아르카디아 전용 수술실로 들어갔단 말이네!”

진태의 눈동자가 깊고 차가운 심연처럼 가라앉았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에서, 사신의 생명 장부가 피처럼 붉은 글씨를 허공에 뿜어내며 기괴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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