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요원들의 두꺼운 손아귀가 강진태의 가운 깃과 양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억센 악력이 어깨관절을 파고들며 둔탁한 통증을 유발했다.
“이거 놓지 못해? 당장 치우라고, 이 개자식들아!”
한채아가 보안요원의 팔뚝을 손톱으로 긁어대며 악을 썼지만, 거구의 사내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윤태형 기획조정실장은 그 광경을 보며 안경테를 슬쩍 밀어 올렸다. 그의 입꼬리에 걸린 조소는 먹잇감을 완벽히 올가미에 가둔 사냥꾼의 그것이었다.
“강진태 선생, 상황 파악이 아직 안 되나 본데. 자네가 방금 저지른 짓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야. 병원의 핵심 자산을 훔쳐 사적으로 유용한 중범죄지. 이사회는 자네 같은 무법자를 더는 묵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윤태형이 붉은 직인이 찍힌 서류를 진태의 뺨에 툭툭 치며 속삭였다.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발버둥 쳐봐야 자네만 더 추해질 뿐이니까.”
진태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턱을 굳게 다문 채 숨을 들이켰다.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피 냄새가 역류하고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달궈진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타들어 갔다. 사신의 생명 장부를 한계 이상으로 가동한 대가였다. 분당 심박수가 150회를 넘나들며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시야가 좌우로 찢어지듯 갈라지는 복시(複視) 현상이 그를 덮쳤다. 윤태형의 얼굴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이며 극심한 현기증이 일었다.
‘제발, 조금만 더…….’
진태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딜 만져, 이 쓰레기들아! 비켜 봐!”
채아가 보안요원들의 틈바구니를 악착같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진태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흔들리는 눈동자, 목덜미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 그리고 불규칙하게 뛰는 쇄골 아래의 박동.
채아의 손이 신속하게 진태의 가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거친 손길 끝에 닿은 것은 차가운 살결과 요동치는 심박이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손바닥만 한 파란색 밀봉지를 찢었다.
착.
진태의 왼쪽 가슴 위, 심장과 가장 가까운 피부에 차가운 감촉의 패치가 밀착되었다.
한채아가 진태의 급사를 막기 위해 건넨 특수 부정맥 억제 패치였다.
“진태야, 정신 똑바로 차려. 여기서 쓰러지면 저 인간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야. 알았어?”
귓가를 때리는 채아의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패치에서 방출된 강력한 항부정맥 약물이 피부 장벽을 뚫고 미세혈관으로 급속히 침투했다. 터질 것처럼 조여들던 가슴의 압박감이 기적처럼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겹쳐 보이던 시야가 서서히 하나의 초점으로 맞춰졌다.
진태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심장 소리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이제 메스를 쥘 수 있을 만큼의 이성은 되찾았다.
“고맙다.”
진태가 짧게 읊조렸다. 채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향해 턱짓을 해 보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바로 그때, 복도 끝의 자동문이 열리며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서민수였다.
그는 수술 가운을 반쯤 벗어 던진 채, 헝클어진 머리로 진태와 윤태형 대치 전선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법과 규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칼을 휘두른 진태에 대한 분노,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가 보여준 압도적인 신의 손끝에 대한 경외감.
“강진태.”
서민수가 멈춰 서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국 이 사달을 내는군. 네가 아무리 천재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병원의 규칙을 깨부수고 무단으로 장비를 탈취해 집도한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범죄다. 응급외과를 지키고 싶다더니, 결국 네 오만이 응급외과 전체를 공중분해 시키는구나.”
윤태형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서 선생 말이 맞네. 강진태, 자네는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자격도 없어.”
진태는 피식 웃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났다.
“서민수.”
진태가 양팔을 구속당한 상태에서도 서민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너는 아직도 네가 정의롭고 정석적인 외과의라고 생각하나 보군.”
“뭐라구?”
“원칙주의자 코스프레는 거기까지 해라. 듣기 역겨우니까.”
진태가 턱짓으로 자신의 가운 오른쪽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기 꺼내 봐.”
서민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주저하다가 진태에게 다가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걸린 것은 빛바랜 노란색 종이 서류였다.
그것을 꺼내 펼쳐 든 순간, 서민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넓어진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명인대학교 병원 VIP 의뢰 차트 - 환자명: 오성그룹 이재현 / 집도의: 서민수]
그것은 과거 서민수가 아르카디아의 의뢰를 받아 집도했던 극비 수술의 차트였다. 단순한 수술 기록이 아니었다. 차트 곳곳에 붉은색 펜으로 서민수의 치명적인 판단 착오와 오진 가능성이 짚어져 있었다. 관상동맥 우회술 중 발생한 미세 천공을 발견하지 못해 환자를 종격동염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뻔했던, 서민수 일생 최대의 치부이자 은폐된 의료 사고의 명백한 증거였다.
“이, 이게…… 네가 어떻게 이걸…….”
서민수의 목소리가 젖은 낙엽처럼 떨렸다. 그의 자존심이, 정석이라는 이름 아래 쌓아 올린 그의 가식적인 모래성이 단 한 장의 종이로 인해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 환자, 네가 완벽하게 살렸다고 자부했지?”
진태가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렸다.
“내가 그 뒤처리하느라 밤새도록 재수술방에서 썩었던 건 기억 안 나나 보네. 네 오진 때문에 사람 심장이 찢어질 뻔했어, 서민수.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도 이사회의 똥꼬를 빨며 자리를 보전한 네가, 감히 내 앞에서 원칙을 논해?”
서민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손에 든 차트가 바르르 떨렸다. 윤태형이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찌푸린 얼굴로 소리쳤다.
“서 선생! 뭘 멍하니 서 있는 건가? 보안팀, 당장 저놈을 지하 구금실로 끌고 가!”
“놓으라고! 내 발로 간다.”
진태가 몸을 거칠게 비틀어 보안요원들의 손아귀를 뿌리쳤다. 특수 패치 덕분에 심장의 폭주가 가라앉자 육체의 근력이 온전히 돌아온 덕분이었다. 진태는 흩어진 가운 깃을 매만지며 윤태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안내해라. 그 쥐구멍 같은 곳이 어딘지 가보지.”
* * *
명인대학교 병원 지하 3층. 일반 직원들조차 출입이 금지된, 폐기물 처리장 뒤편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삭막한 콘크리트 방이 나타났다.
창문 하나 없는 밀실. 사방은 방음재로 둘러싸여 있었고, 천장 구석에는 CCTV 카메라가 붉은 불빛을 깜빡이며 진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철컥.
바깥에서 묵직한 쇠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완벽한 고립이었다.
하지만 진태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 한가운데 놓인 쇠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주머니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 끝에 닿은 것은 아주 작은 버튼 형태의 기기였다.
진태가 그것을 꺼내 들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스마트키처럼 생겼지만, 그것은 초소형 무선 네트워크 송신기이자 미리 수술실과 VIP 병동 곳곳에 숨겨둔 원격 라이브 스트리밍 카메라의 기폭 장치였다.
진태가 카메라를 향해 그것을 가볍게 흔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윤태형. 네가 날 여기 가두면 모든 게 덮어질 줄 알았겠지.”
같은 시각, 명인대학교 병원 로비.
평소라면 한산했을 로비의 회전문을 깨부수듯 열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카메라를 어깨에 멘 촬영기자들과 마이크를 쥔 취재기자들이었다.
“비켜주십시오! SBC 탐사보도팀입니다!”
“일간대한 사회부 기자입니다! 지금 즉시 병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합니다!”
그들의 선두에는 한채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보안요원들이 제지하기도 전에 기자들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진했다.
“여러분! 지금 이 병원 21층 VIP 병동 '아르카디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셔야 합니다! 돈 없는 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권력자들의 장기를 밀거래하고 불법 수술을 자행하는 현장입니다!”
채아의 앙칼진 목소리가 로비의 높은 천장을 타고 울려 퍼졌다. 보안요원들이 다급하게 가로막았지만, 이미 실시간 방송 카메라의 빨간 불빛들이 일제히 켜진 뒤였다.
그 순간, 기자들의 스마트폰과 로비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 화면이 동시에 번쩍이며 정체불명의 영상 신호를 수신하기 시작했다.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 아르카디아의 진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지하 밀실에 갇힌 강진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그가 미리 해킹하여 연동해 둔 아르카디아 내부 서버의 데이터베이스 화면이 홀로그램처럼 투사되고 있었다.
“명인대학교 병원 기획조정실장 윤태형.”
진태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표준 화질을 넘어 초고화질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사회의 쓰레기들아. 잘 들어라.”
진태가 화면을 향해 서류 한 뭉치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아르카디아 깊숙한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윤태형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비밀의 열쇠였다.
“이것은 VIP 전용 병동 '아르카디아' 소장 불법 의료 장기 원자 명부다.”
명부의 첫 페이지가 카메라 렌즈 바로 앞에 클로즈업되었다.
거기에는 기증자의 이름 대신 '공여체 1호', '공여체 2호'라는 비인간적인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수억 원에 달하는 거래 액수와 수혜자의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정재계의 거물들, 그리고 윤태형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들은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을 의도적으로 방치해 뇌사 상태로 만들거나, 연고가 없는 행려병자들을 납치하듯 데려와 장기를 적출했다.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 명인대학교 병원 이사회가 있다.”
진태의 폭로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장부의 페널티로 인한 통증을 꾹 누른 채, 마치 수술을 집도하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이사회의 환부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지금 내 등 뒤에 보이는 데이터는 불법 장기 적출이 이루어진 수술실의 실시간 로그 기록이다. 조작은 불가능하다. 모든 IP와 장비 고유 번호가 명인대 병원 아르카디아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어졌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폭발했고, 주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는 '명인대 장기밀매', '아르카디아의 진실', '강진태 의사'로 도배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병원의 즉각적인 압수수색을 요구하는 글들이 초 단위로 올라왔다.
기획조정실장실.
윤태형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광기로 가득 차 핏발이 서 있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청 고위 관계자들의 이름이 번갈아 가며 화면에 떴다. 윤태형은 전화를 받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던져 깨뜨려 버렸다.
“실장님! 지금 정문 앞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합니다!”
비서가 사색이 되어 문을 열고 소리쳤다.
윤태형의 통제력을 벗어난 완벽한 파멸의 징조였다. 단순한 병원 내의 알력 싸움이 아니었다. 강진태가 쏘아 올린 신호탄은 명인대학교 병원을 완전한 공적 수사 대상으로 격상시켰고, 병원을 비호하던 정경유착의 기득권 카르텔 전체를 전례 없는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완벽한 판 파괴였다. 가장 취약한 순간, 밀실에 갇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진태는 준비해 둔 단 한 수로 상대의 숨통을 정확히 끊어놓았다.
윤태형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쓸어내렸다. 모니터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고, 서류들이 공중에 휘날렸다.
“강진태…… 강진태……!!!”
그가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성이라는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는 개인 금고에서 낡은 대포폰 하나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수신음이 단 한 번 울린 뒤, 거칠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예, 의원님.
“지금 당장 지하 3층 구금실로 가라.”
윤태형의 목소리는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그 새끼 손가락을 다 부러뜨려. 양손 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두 번 다시 메스 같은 건 쥐지도 못하게 해라. 의사 면허고 나발이고 필요 없어. 아예 육체를 지워버려!”
- 알겠습니다. 처리하죠.
전화가 끊겼다.
지하 3층, 적막만이 흐르던 구금실의 철문 너머로 쿵, 쿵, 하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흘러드는 그림자가 기괴하게 늘어났다.
진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에서, 사신의 생명 장부가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이며 심상치 않은 숫자를 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