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아주 잘 뛰어왔군, 강진태 선생.”
외과 과장 권세윤이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이사회 직인이 찍힌 공문이 진태의 뺨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술은 불가능해. 방금 전 이사회 긴급 결의로, 이 시간부로 본관 지하 응급수술실 전체를 ‘설비 노후화 및 긴급 방역’을 이유로 영구 폐쇄 조치했다. 여기 공문 보이지?”
권세윤의 뒤편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원내 보안요원 대여섯 명이 단단한 벽처럼 버티고 섰다. 그들의 시선은 진태가 밀고 있는 이송용 베드 위, 인공호흡기에 간신히 호흡을 연명하고 있는 한채아의 남동생 한우진에게 머물렀다.
진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차가운 살기가 스쳤다.
“이 방 안의 모든 의료 장비의 전원은 차단되었고, 가스 라인도 잠겼어.” 권세윤이 공문으로 진태의 가슴팍을 툭툭 치며 조소했다. “가봐야 짜증만 날 거다. 환자를 살리고 싶으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 알아보시지? 물론 가는 길에 이 아이의 심장이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비켜.” 진태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얼어붙은 칼날처럼 권세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뭐? 이 자식이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비켜라, 권세윤.” 진태는 권세윤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송용 베드를 앞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육중한 베드의 금속 프레임이 권세윤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악!” 권세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보안요원들이 당황하여 진태에게 달려들려던 찰나, 진태가 곁에 있던 채아에게 짧게 명령했다.
“한채아, 베드 밀어!”
“오케이!” 채아가 이송용 베드의 앞부분을 잡고 맹렬하게 수술실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진태는 자신을 막아서는 보안요원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고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다른 한 명의 얼굴에는 베드에 걸려 있던 링거 폴대를 휘둘러 접근을 차단했다. 쇠파이프가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보안요원들이 주춤했다.
그 짧은 찰나의 공백을 타, 진태는 베드를 이끌고 수술실 문 안쪽으로 완전히 진입했다.
쾅!
두꺼운 수술실 철문이 거칠게 닫혔다. 진태는 망설임 없이 수동 잠금 레버를 끝까지 돌려 잠그고, 내부 보안용 빗장까지 걸어 내렸다.
쿵! 쿵! 쿵!
문밖에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권세윤의 악에 받친 비명이 방음용 실리콘 패드를 넘어 먹먹하게 울려 퍼졌다.
“강진태! 문 열어! 당장 열지 못해? 이건 무단 침입에 의료법 위반이야! 너 의사 면허 날아가고 싶어? 당장 열어!”
“짖어대기는.” 진태는 수술복 상의를 거칠게 찢듯이 벗어던지고 싱크대로 향했다. 소독액을 펌프질하는 그의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채아, 마취 준비해. 저 새끼들이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기 전에 가스 라인 확인하고 프로포폴 차트 올려.”
“이미 세팅 중이야.” 채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마취기를 능숙하게 조작하고 있었다. “가스 라인은 아직 살아 있어. 하지만 이사회 놈들이라면 금방 메인 밸브까지 잠글 거야. 서둘러야 해.”
진태가 솔로 손등을 강하게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베드 위에서 인공호흡 마스크에 의지한 채 누워 있는 한우진의 가슴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순간, 진태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망막 위에 균열이 가듯 붉은 선들이 뻗어 나가더니, 한우진의 신체 위로 구체적인 수치들이 매핑되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가 활성화된 것이다.
[환자 한우진 (19세)] [잔여 수명: 14분 12초] [장기 상태: 상행 대동맥 협착 및 내막 박리 진행 중. 괴사율 45%] [가장 안전한 절개 경로: Sternotomy Line (붉은색 점선 표시)]
쿵!
장부가 열림과 동시에 진태의 가슴속에서 날카로운 송곳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했다. 부정맥이었다. 콰르릉거리는 굉음과 함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분당 180회를 넘나드는 빈맥의 충격에 머리가 핑 돌았다. 시야가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덮쳐왔다.
‘윽…….’ 진태는 턱을 꽉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사신의 능력을 쓸 때마다 자신의 잔여 수명이 갉아 먹히는 페널티. 이번에는 한우진의 남은 수명이 워낙 짧아 진태가 감당해야 할 심박 페널티가 평소의 배 이상이었다.
“강진태! 너 얼굴색이 왜 그래? 또 부정맥이야?” 채아가 진태의 비틀거리는 몸짓을 포착하고 소리쳤다.
“조용히 하고…… 마취나 해.” 진태가 수술 장갑을 낚아채듯 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하, 진짜 고집불통 새끼…….” 채아는 욕설을 뱉으며 우진의 라인에 프로포폴과 로쿠로늄을 주입했다. “인덕션(마취 유도) 시작한다.”
그때였다. 우진의 생체 징후를 나타내던 모니터의 그래프가 급격하게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삐—————!
단조롭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수술실의 공기를 찢었다.
“어레스트(심정지)!” 채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취 약물이 들어가자마자 혈압이 무너졌어! 심장이 못 버텨!”
“비켜!” 진태는 멸균 포를 덮기도 전에 우진의 베드 위로 뛰어 올라갔다. 양손을 포개어 우진의 흉골 정중앙에 대고 온 체중을 실어 내리눌렀다.
두둑, 두둑.
우진의 흉골이 삐걱거리는 섬뜩한 감각이 진태의 손바닥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성에피네프린 1앰플 인젝션! 당장!” 진태가 소리쳤다. 흉부 압박을 가하는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진태 본인의 몸 상태도 한계에 달해 있었다. 눈앞의 붉은 스크린이 깜빡거리며 시야가 완전히 흐려졌다. 한우진의 가슴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어디를 눌러야 할지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손끝의 감각이 무뎌지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여기서 쓰러지면…… 이 아이는 죽는다.’ 진태는 이를 악물었지만, 육체의 붕괴는 의지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상체가 뒤로 크게 기우뚱했다.
그 순간, 목덜미에 차갑고 강한 자극이 전해졌다.
촥.
살을 에어내는 듯한 차가움과 함께, 강력한 약물이 피부 장벽을 뚫고 경동맥을 통해 심장으로 다이렉트로 흘러 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 차려, 강진태!” 채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진태의 목덜미에 붉은색 특수 패치를 붙인 채, 한 손으로는 우진의 정맥 라인에 에피네프린을 밀어 넣고 있었다.
“……패치?” 진태가 거친 숨을 내쉬며 물었다.
“네가 지난번에 심장 마비로 뒤질 뻔했을 때 내가 특별히 커스텀해 둔 부정맥 억제 패치야. 아미오다론이랑 베타블로커 고농축액이니까, 최소한 수술 끝날 때까지는 네 심장 강제로 뛰게 만들어 줄 거야. 그러니까…… 죽지 마, 이 새끼야.”
채아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그녀의 손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고농축 약물이 심장 전도계를 강제로 장악하자, 진태의 불규칙하던 심박이 거짓말처럼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두 개로 겹쳐 보이던 시야가 하나로 수렴되며, 한우진의 가슴팍 위에 그려진 사신의 붉은 가이드라인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ROSC(자발 순환 회복) 되었어! 심박 돌아온다!” 채아가 모니터를 보며 외쳤다.
“좋아. 지금 바로 오픈한다.” 진태는 베드에서 내려와 메스를 쥐었다. 그가 메스를 잡은 순간, 수술실 안의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서민수가 작성했던 과거 VIP 의뢰 차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차트 구석에 적혀 있던 서민수의 오진 기록. 상행 대동맥의 기형적 분지를 간과한 채 표준 수술법만을 고집하려 했던 그 멍청한 설계.
‘서민수, 네 오만이 이 아이를 죽일 뻔했다.’
진태는 메스 끝을 우진의 가슴 정중앙, 사신의 장부가 가리키는 정확한 붉은 점선 위에 올렸다.
서걱.
망설임 없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피부와 피하지방층이 갈라졌다. 선홍빛 피가 솟구쳤지만, 진태의 왼손에 들린 보비(전기 소전기)가 순식간에 혈관들을 지져대며 출혈을 최소화했다.
“흉골 톱(Sternal saw).” 진태가 손을 내밀었다. 소독 간호사가 톱을 쥐여주자마자 요란한 기계음이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지이이이이잉!
단단한 흉골이 반으로 갈라지며 뼈가 타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진태는 리트랙터(견인기)를 걸어 우진의 흉강을 활짝 열어젖혔다.
시야에 들어온 상행 대동맥은 이미 정상적인 크기의 두 배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고, 외벽은 검붉은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이었다.
[잔여 수명: 09분 35초] [대동맥 외벽 한계 압력 도달율: 98%]
“시간이 없다. 캐뉼레이션(인공심폐기 연결) 준비…….”
진태가 지시를 내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탁.
수술실을 밝히던 수십 개의 무영등이 동시에 꺼졌다. 동시에 인공호흡기의 모니터, 심폐기, 석션기 등 모든 전자 장비의 전원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다.
암전(暗電).
수술실은 순식간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수동으로 잠근 문밖에서 권세윤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미친…… 비상 전력까지 차단했어!” 채아가 어둠 속에서 경악 섞인 비명을 질렀다. “병원 전체 배전반이 아니라 지하 수술실 구역만 단전시킨 거야! 윤태형이랑 권세윤 이 개자식들이 결국……!”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여기서 수술은 끝이었다. 환자의 가슴을 열어둔 채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공심폐기도, 혈액을 빨아들이는 석션기도 작동하지 않는 어둠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소란 피우지 마, 한채아.” 진태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더 선명하게 울렸다.
“진태야, 아무것도 안 보여! 이상태로는 메스를 쥘 수도 없어!”
“아니.” 진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내 눈엔 아주 잘 보여.”
모든 빛이 사라진 칠흑의 공간. 오직 강진태의 눈에만, 세상 그 어떤 무영등보다 찬란하고 붉은 야광의 빛이 펼쳐져 있었다.
‘사신의 생명 장부’가 그려내는 붉은 기하학적 선들이 한우진의 찢어진 대동맥 판막과 봉합 경로를 어둠 속에 완벽한 3차원 홀로그램으로 구현해 내고 있었다.
[야광 가이드 모드 활성화] [주변 광량 부족으로 시각 경로 가이드가 200% 증폭됩니다.]
어둠은 진태에게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사신의 장부를 가장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되었다.
“프롤렌 4-0(봉합사), 그리고 허공에 포셉 줘.” 진태가 손을 뻗었다.
“진태야, 너 미쳤어? 이 어둠 속에서 감으로 꿰매겠다고?” 채아가 경악했다.
“감으로 하는 게 아냐. 똑똑히 보고 하는 거다.” 진태의 목소리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차 있었다. “한채아, 넌 내 손끝만 믿고 전등 대용으로 쓸 스마트폰 플래시나 켜. 그리고 인공호흡기 수동 앰부 배깅(Ambu bagging) 시작해. 환자 산소포화도 떨어지면 장부고 뭐고 끝장이야.”
채아는 진태의 기백에 압도당해 군말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약한 모바일 라이트가 우진의 열린 가슴팍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겨우 실루엣만 보일 정도로 어두운 광량이었다.
하지만 진태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슥.
진태의 손에 들린 니들 홀더가 허공을 갈랐다. 그의 손놀림은 어둠 속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밀했다.
사신의 붉은 선이 지시하는 정확한 침입점(Entry point)과 진출점(Exit point)을 향해 바늘이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대동맥 내막이 찢어져 헐거워진 부위를 펠트(Felt, 인조 솜)로 덧대어 보강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완벽하게 봉합해 나갔다.
사각, 사각, 사각.
어둠 속에서 실이 조직을 통과하는 미세한 마찰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옆에서 수동 앰부 백을 짜며 흐릿한 불빛을 비추고 있던 채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진태의 바늘끝은 소수점 밀리미터 단위의 오차도 없이, 심장의 가장 취약한 부위를 정확하게 빗겨 가며 봉합을 완성하고 있었다.
마치 대낮에 현미경을 보고 수술하는 것처럼 유려하고, 기계처럼 정교한 손놀림.
이것은 의술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사신과 춤을 추는 듯한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잔여 수명: 04분 12초] [대동맥 봉합률: 85%] [성공 보너스 누적 조건 분석 중……]
진태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부정맥 억제 패치 덕분에 심장은 버티고 있었지만, 극도의 집중력으로 인해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거의 다 끝났다.’
마지막 프롤렌 실을 묶기 위해 노트를 지으려던 바로 그 순간.
우진의 심장 하부, 서민수가 기형적 분지라고 오진하며 방치했던 측부 순환 혈관 부위가 급격한 혈압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부풀어 올랐다.
[경고: 미지의 측부 동맥 압력 한계 초과] [파열 위험률: 99%]
장부의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는 것과 동시에.
퍽!
어둠을 뚫고 불길한 파열음이 수술실을 울렸다.
동시에, 억눌려 있던 고압의 혈액이 분수처럼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익!
뜨겁고 끈적한 선홍빛 혈액이 진태의 얼굴과 안경, 그리고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으며 사방으로 튀었다.
모든 것이 붉은 피로 물든 절대 암흑 속에서, 우진의 혈압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