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실장님께서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송우진 기획조정실장의 직속 비서가 내민 붉은색 직인의 봉투. 그 표면에 선명하게 박힌 글자가 백강현의 시야를 찔렀다.
[불법 대리 수술 및 의료법 위반 혐의에 따른 병원 특별 징계위원회 소집 통보서]
갓 수술을 끝내고 나온 강현의 몸에서는 여전히 소독약 냄새와 미끈한 피비린내가 섞여 풍기고 있었다.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진 오른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손가락 마비 진행률 95퍼센트.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지만, 강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얼음장처럼 차가운 침묵만이 복도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다음 주 월요일 오전 9시입니다.”
비서는 강현의 반응을 살피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기조실장님께서 아주 흥미로운 자료들을 많이 준비해 두셨더군요. 늦지 않게 대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요.”
강현은 비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비서의 시선이 강현의 굳어 있는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비웃음이 섞인 콧소리를 남기고 비서가 돌아섰다. 구두 굽 소리가 대리석 복도에 날카롭게 울려 퍼지다 사라질 때까지, 강현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사박.
강현은 통보서가 든 봉투를 아무렇게나 구겨 의사 가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쓰레기를 처분하는 것보다도 무심한 손길이었다.
* * *
이튿날 아침, 한국대병원은 거대한 선동의 도가니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야간 대진의 따위가 정규 써전들 머리 위에 올라타나?” “인턴, 레지던트 애들 기강도 안 잡히는데, 저런 무면허 수준의 대리 집도를 방치하면 우리 외과 정체성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송우진 기획조정실장의 치밀한 물밑 작업은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외과 과장 유상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임의(펠로우)들과 전공의들을 교묘히 선동했다. 병원 로비와 주치의실, 심지어 학회 게시판에까지 백강현의 '무단 집도'와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오후 2시, 대학병원 인사처는 송우진의 주도하에 작성된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백강현 임상교수의 수술 집도 자격 임시 박탈 가처분 청구]
징계위원회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강현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두겠다는 행정적 거세 시도였다. 명분은 그럴싸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법적 분쟁 소지가 있는 의료진의 메스를 일시적으로 회수한다는 것.
“이건 완전히 매장하겠다는 소리잖아요!”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 안쪽의 개인 대기실. 한채은이 들고 온 태블릿 PC 화면에는 인사처의 청구서 사본이 띄워져 있었다. 평소 냉철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분노로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송 실장이 작정하고 행정 가이드라인 47조 3항을 뒤틀어 압박하고 있어요. 외과 전임의들 서명까지 다 받아냈더군요. 백 교수님을 병원에서 완전히 고립시키겠다는 심산입니다.”
채은은 테이블 위에 가죽 바인더 하나를 쾅 내려놓았다.
“이거 보세요. 제가 아는 의료 소송 전문 로펌 ‘율촌’의 파트너 변호사들 연락처하고 대응 시나리오예요. 지금 바로 맞소송 준비해야 합니다. 가만히 계시면 저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서 손 한번 못 써보고 쫓겨나요!”
강현은 채은이 내민 서류들을 흘긋 보았을 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머그잔의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백 교수님!”
채은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그녀의 시선이 강현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강현의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그 손…… 마비 증세, 아직 안 풀린 거 맞죠? 그런데도 이렇게 태평하게 계실 겁니까? 징계위에서 저들이 신체적 결함까지 문제 삼으면 그땐 정말 끝이에요.”
“한 선생.”
강현이 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낮고, 고요하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싸움은 상대가 칼을 휘두를 때 같이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닙니다.”
“예?”
“그들이 휘두르는 칼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그 칼끝이 제풀에 어디를 베는지 지켜보는 게 먼저지.”
강현은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해명 보도자료나 반박 대자보 같은 건 일절 내지 마십시오. 병원 인트라넷에도 조용히 함구하세요. 임 선생에게도 입단속 시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저들은 교수님이 혐의를 인정했다고 생각하고 더 날뛸 텐데요?”
“날뛰게 놔둡니다.”
강현의 눈동자에 기이할 정도로 차가운 빛이 서렸다.
“원래 짐승을 잡을 때는 덫을 깊이 파놓고, 짐승이 흥분해서 제 발로 기어들어 올 때까지 숨을 죽이는 법입니다. 지금은 조용히 해야 할 때입니다.”
채은은 강현의 확신에 찬 눈빛을 마주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침묵은 굴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감을 조준하는 저격수의 무서운 정적이었다.
* * *
그날 밤, 사위가 완전히 고요해진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개인 연구실.
강현은 홀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가늘게 뜬 그의 눈앞으로 푸르스름한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보유 구조 포인트: 850 SP] [오른손 마비 진행률: 95%] [※ 경고: 마비 진행률이 100%에 도달할 경우, 우측 상지 말초 신경의 되돌릴 수 없는 영구적 괴사가 진행됩니다.]
850포인트. 지난 수술에서 우심방 파열 환자를 극적으로 살려내며 획득한 포인트 덕분에 가쁜 숨은 돌렸으나, 여전히 마비 수치는 턱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강현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징하는 미세한 이명과 함께 가벼운 뇌압 상승이 느껴졌다. 등가교환의 대가. 시스템을 연산할 때마다 뇌 신경이 받는 부하는 확실히 가중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의 시선은 시스템 경고창이 아닌,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두 개의 해부학적 데이터 대조표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나는 3년 전, 강현에게 의료 사고 누명을 씌우고 그를 나락으로 보냈던 사망 환자의 부검 감정서 및 해부학 기록물 사본이었다. 2화에서 강현이 유상일의 개인 비공개 아카이브를 뒤져 확보했던 비밀 자료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방금 전 강현이 하이브리드 수술실에서 맨손으로 살려낸 31세 무명 환자의 실시간 3D CT 데이터였다.
핏. 핏.
강현이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두 환자의 우상대정맥(SVC)과 우심방(Right Atrium) 연결 부위가 붉은색 선으로 겹쳐졌다.
“역시.”
강현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두 환자의 심장 후벽에는 동일한 기형이 존재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우상대정맥과 우심방 사이를 관통하여 흐르는 2밀리미터 두께의 미세한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
3년 전 유상일은 이 변이 부동맥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단순한 우심방 열상으로 판단하고 메스를 댔다가, 이 숨겨진 부동맥을 건드려 대량 활동성 출혈(Active bleeding)을 유발했다. 환자는 수술대 위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유상일은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당시 퍼스트 어시스트였던 백강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러나 강현은 방금 전 수술에서 똑같은 변이를 가진 환자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시스템의 실시간 리스크 가시화 덕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상일의 과거 실패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머릿속에 각인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유상일의 과거 미기록 변이 동맥 데이터 분석 완료.] [의학적 인과관계 입증률: 99.8%]
강현은 차분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대학병원 행정 가이드라인 제52조(응급의료의 면책 및 특례). ‘통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벗어난 극도의 기형 변이 환자로서, 즉각적인 응급 처치가 없을 시 사망이 확실시되는 경우, 집도의의 자격 요건 및 행정 절차적 제한은 일시적으로 면제된다.’
송우진과 유상일이 강현을 옭아매기 위해 가져온 ‘불법 대리 수술’ 프레임. 하지만 강현이 준비한 이 대조표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판도는 완전히 뒤집힌다. 강현의 수술은 불법이 아닌 ‘기형 변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유일무이한 면책 대상 집도’가 되며, 동시에 유상일이 3년 전 동일한 변이 환자를 죽여놓고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강현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법의학적 증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들이 행정 가이드라인이라는 밧줄로 강현의 목을 조르려 할 때, 강현은 그 밧줄을 가져다 유상일과 송우진의 목에 감을 교수대를 제작하고 있었다.
“덤벼봐라, 송우진.”
강현은 완성된 PDF 파일과 대조 분석 문서를 보안 드라이브에 저장했다.
* * *
주말 내내 병원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백강현은 언론의 취재 요청도, 병원 홍보팀의 확인 전화도 모두 무시했다. 철저한 무대응. 강현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유상일과 송우진 측은 오히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백강현 그 자식, 아무런 반박도 안 합니까?”
기조실장실에서 유상일이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변호사를 선임했다거나, 인사처에 이의 신청서를 냈다는 보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수술실 대기실에 처박혀서 나오지를 않는답니다.”
송우진은 의자에 앉아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미소 지었지만, 그의 미간에도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폭풍 전의 고요인가, 아니면 정말로 포기한 건가.”
“포기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 독종 같은 놈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초조해하지 말게, 유 과장.”
송우진이 차분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이미 인사처와 징계위 위원들의 과반수를 포섭했네. 월요일 오전 9시, 그가 징계위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게임은 끝이야. 아무리 뛰어난 써전이라도 메스를 쥘 수 없는 써전은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송우진의 계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변수가 빠져 있었다. 백강현은 그들이 파놓은 경기장 안에서 싸울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 * *
일요일 밤 11시 45분.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의 조명은 모두 꺼져 있었고, 오직 모니터의 희미한 대기 전력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강현은 수술실 구석의 간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그때, 고요한 수술실의 정적을 깨고 강현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징-. 징-.
강현은 눈을 뜨고 전화를 확인했다. 임민준이었다.
“어, 임 선생.”
- “교, 교수님! 지금 큰일 났습니다!”
전화기 너머 임민준의 목소리는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사이렌 소리, 그리고 거친 바람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 “지금 사설 앰뷸런스 기사분한테 직접 연락을 받았습니다! 영종대교 부근에서 15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중에 한국대병원으로 이송 중인 환자가 있습니다!”
강현은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환자 상태는?”
- “관통상입니다! 트럭 적재함에서 떨어진 철근이 환자의 우측 흉벽을 그대로 관통해서…… 심장과 대혈관을 직접 타격한 것 같습니다! 현장 구급대원 말로는 활동성 출혈이 극심해서 바이탈이 이미 무너지고 있답니다. 수축기 혈압이 50 이하로 떨어졌답니다!”
혈압 50. 언제 심정지(Cardiac Arrest)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초응급 상태였다.
- “게다가…… 게다가 그 환자 말입니다……”
임민준의 목소리가 공포로 덜덜 떨렸다.
- “그 환자, 지금 송우진 기조실장의 외아들인 송민우 군이랍니다! 송 실장이 사설 앰뷸런스 측에 압력을 넣어서 무조건 우리 한국대병원 하이브리드 수술실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수술실로 올라오고 있어요!”
강현의 눈앞에 번쩍하며 거대한 시스템 퀘스트 패널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솟구쳤다.
[※ 돌발 재난 퀘스트 발생!] [환자: 송민우 (24세, 남성)] [진단: 우측 흉벽 관통상으로 인한 상대정맥(SVC) 및 우심방 열상, 심장 탐포네이드(Cardiac Tamponade)] [수술 난이도: SSS] [실시간 생존율: 12%] [※ 경고: 본 수술 집도 실패 시, 등가교환 법칙에 따라 집도자의 오른손 마비 수치가 즉각 100%에 도달하며, 써전으로서의 생명이 영구히 종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강현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났다.
송우진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심장을 찢고 들어간 철근. 내일 아침 자신을 파멸시키려 징계위원회를 준비하던 적장의 아들이, 지금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메스 끝만을 바라보며 달려오고 있었다.
강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오른손 손가락 끝에 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임 선생.”
강현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어둠을 차갑게 갈랐다.
“수술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