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위험! 마비 마지노선 95% 도달!] [시스템 연산 과부하! 오른손 영구 마비 수치 적용 5초 전!]

삐이이이—!

고막을 찢을 듯한 경고음이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밀폐된 공기를 얼려버렸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굳어 들어갔다. 관절 마디마디에 시멘트가 흘러들어 굳어버린 것처럼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라텍스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환자의 우심방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얇은 물풍선 같았다.

압박 강도가 0.1뉴턴(N)만 초과해도 우심방 내막의 미세 교감 신경 압박선이 완전히 붕괴한다. 환자의 심장은 영구 정지하고, 강현의 오른손 또한 외과의로서의 생명을 잃는다.

척수에서부터 시작된 극심한 뇌압 상승이 후두부를 강타했다. 좌측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타들어 가며 흐려졌다. 이명이 두개골 내부를 징처럼 울려댔다.

시간이 없다. 남은 시간은 3초.

강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망막 위에 떠오른 시스템 패널을 똑바로 응시했다.

[보유 포인트: 340 SP] [신경 임시 해제 버튼을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소모 포인트: 200 SP / 유지 시간: 180초)]

‘집행.’

강현이 속으로 명령을 내리자마자 뇌 신경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일시적으로 걷혔다.

우두둑!

기괴한 뼈 소리와 함께 굳어 있던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뜨거운 피가 도는 감각이 돌아왔다. 마비 수치가 일시적으로 억제되는 순간이었다.

“메스 잡습니다. 임 선생, 썩션 바짝 대고 시야 끝까지 유지해.”

강현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방금 전까지 손가락이 마비되어 가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냉정함이었다.

“예, 예! 교수님!”

임민준이 다급하게 흡인기(Suction) 팁을 우심방 후벽 밀착부로 밀어 넣었다. 검붉은 혈액이 관을 타고 빠르게 빨려 들어갔지만, 찢어진 틈새에서 솟구치는 출혈 속도가 더 빨랐다.

BPM 45, 38, 30...

모니터의 심박수 그래프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이 오기 직전의 정체기였다.

“심정지 옵니다! 에피네프린(Epinephrine) 투여할까요?”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외침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약물로는 못 잡습니다. 심근 자체가 압력을 못 버텨요. 직접 들어갑니다.”

강현은 주저 없이 왼손을 환자의 종격동(Mediastinum)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뜨겁고 미끈거리는 환자의 심장 뒷부분이 손바닥 전체에 닿았다.

오른손으로는 4-0 프롤린(Prolene) 실을 쥔 지침기(Needle holder)를 잡았다.

맨손 수동 마사지(Open cardiac massage)와 미세 봉합을 동시에 진행하는 극단의 집도 방식이었다.

“지금부터 심장을 수동으로 뛰게 만듭니다. 임 선생, 내가 압박을 풀고 수축기를 유도하는 그 0.5초의 타이밍에 정확히 매듭(Knot)을 당겨야 합니다. 박자 놓치면 우심방 찢어집니다.”

“0.5초요? 그, 그걸 어떻게…….”

임민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내 손끝을 봐. 손가락이 펴질 때 당기는 겁니다.”

강현의 왼손이 환자의 심장을 부드럽게 쥐어짰다.

스퀴즈(Squeeze).

심장 내부의 피가 강제로 뿜어져 나가며 바이탈 모니터의 수치가 인위적으로 요동쳤다.

릴리즈(Release).

강현의 왼손이 힘을 빼는 찰나, 오른손의 지침기가 번개처럼 우심방 후벽의 찢어진 막을 파고들었다.

서걱.

바늘이 얇은 심장 벽을 통과하는 순간, 강현이 나지막이 뱉었다.

“지금.”

임민준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신경이 강현의 오른손 끝에 극도로 동기화되어 있었다. 강현의 지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임민준의 핀셋이 프롤린 실의 끝을 낚아채 정교하게 잡아당겼다.

척!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찢어진 우심방 후벽이 1밀리미터 밀착되었다.

“다음.”

스퀴즈, 릴리즈.

서걱.

“지금.”

척!

두 사람의 호흡은 마치 하나의 정밀한 기계 기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수술실 내부에는 모니터의 경고음과 살을 가르는 금속성 마찰음, 그리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패킹 필름(Packing film) 준비해.”

강현이 다음 봉합을 준비하며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임민준의 손이 이미 외과용 패킹 필름을 집어 올리고 있었다. 환자의 흉부 압박으로 인한 척추 분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지지체였다.

“여기 있습니다, 교수님.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임민준이 강현의 다음 움직임을 한 발 앞서 예측하고 기구를 건넸다. 겁 많고 소심하던 전공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강현의 압도적인 리듬감이 임민준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시스템 경고: 신경 임시 해제 잔여 시간 60초.]

시간이 촉박했다. 강현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려 마스크를 적셨다.

그때, 대기 중이던 인공폐 우회기(CPB, Cardiopulmonary bypass) 장치 쪽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울렸다. 장비의 가동 상태를 점검하던 임민준이 강현의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교수님... 방금 이 인공폐 우회기 장비 세팅하면서 확인한 건데요.”

강현은 심장을 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눈만 살짝 굴려 임민준을 바라보았다.

“이 장비, 하이브리드 수술실 개소할 때 들어온 구형 백업 서버 드라이브랑 다이렉트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12층 구석방에 있는 그 서버요.”

임민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거기... 교수님의 3년 전 마지막 수술 로그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송우진 기조실장이 원격으로 인공폐 우회기를 강제 정지시켰던 그 타임라인 기록 말입니다. 지우지 못한 원본 로그가 백업 폴더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쿠궁.

강현의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3년 전, 멀쩡히 살릴 수 있었던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사망했던 그 음모의 실체. 송우진이 자신의 과실을 덮기 위해 기계를 조작하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던 증거가 바로 이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낡은 서버 안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송우진... 네놈이 숨겨둔 꼬리가 여기 있었군.’

강현은 이 말을 뼈에 새기듯 가슴 깊이 명심했다. 지금은 흔들릴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환자를 살려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우심방 후벽 봉합률 85% 돌파.] [추가 위험 요인 감지: 우상대정맥 하부 미세 출혈 지속.]

여전히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우심방 후벽을 봉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미세하게 붉은 액체가 새어 나와 시야를 가렸다.

보통의 의사라면 우심방 자체의 결손으로 생각하고 그 주변을 계속해서 꿰맸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의 망막 위에 떠오른 시스템의 입체 해부학적 그래픽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부학적 변이 발견!] [우상대정맥(SVC)과 우심방(RA) 사이를 관통하는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 확인.] [두께: 2.1mm. 현재 미세 외상으로 인한 파열 상태.]

강현의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 변이, 낯설지 않았다.

3년 전, 유상일이 집도하다 사망에 이르게 했던 그 환자의 해부학적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유상일은 이 미세한 부동맥 변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클램핑했다가 대량 출혈을 일으켜 환자를 죽였다. 그리고 그 누명을 고스란히 백강현에게 씌웠던 것이다.

‘유상일, 네놈의 무지가 남긴 기록물이 결국 오늘 이 환자를 살리는 단서가 되는구나.’

강현은 유상일의 과거 수술 아카이브에서 발견했던 미기록 변이 기록물의 해부학적 구조를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냈다.

“15도 각도 오른편, 우측 폐동맥 지맥(Right pulmonary artery branch) 뒤쪽이야. 임 선생, 거기를 견인해.”

“예? 폐동맥 뒤쪽이요? 거기는 정상 혈관 외에는 없을 텐데요…….”

“변이가 있어. 유상일 교수가 3년 전에 놓쳤던 바로 그 변이 동맥이다.”

강현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임민준이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폐동맥 지맥을 옆으로 밀어냈다.

과연 그곳이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하기 힘든, 2밀리미터 두께의 기형 부동맥이 우심방 후벽을 관통하며 검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실크 4-0(Silk 4-0) 가져와.”

강현은 주저 없이 기형 부동맥의 상하부를 실로 교차 차단(Cross-clamping & ligation)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바늘이 공중을 가르고, 실이 교차하며 매듭이 지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우아하고 정교하게 이어졌다.

스윽. 팟!

마지막 실을 끊어내는 순간, 거짓말처럼 우심방 주변을 적시던 붉은 피가 가라앉았다.

[띵! 돌발 퀘스트 완료!] [기형 부동맥 완벽 차단 성공.] [환자 생존율: 12.4% -> 89.2% 급상승!] [누적 포인트 150 SP 획득.] [오른손 마비 진행률: 95% -> 40%로 급격히 완화.]

삐- 삐- 삐- 삐-

불규칙하게 울리던 모니터의 심전도 음이 이내 규칙적이고 건강한 리듬으로 바뀌었다.

BPM 75. 혈압 115/75 mmHg.

완벽한 정상 바이탈이었다.

“...심장이 뜁니다.”

마취과 의사의 멍한 목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인공폐 우회기 기계가 본격적으로 돌기도 전에, 오직 집도의의 맨손 수동 마사지와 정교하기 짝이 없는 가위질, 그리고 해부학적 변이를 꿰뚫어 본 천재적인 진단만으로 정지해 가던 심장을 되살려낸 것이다.

수술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중압감이 일순간에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지켜보던 간호사들과 임민준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강현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방금 전까지 마비로 굳어가던 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이(Tie) 끝났습니다. 세척(Irrigation)하고 흉골 닫습니다. 임 선생이 마무리해.”

강현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메스를 내려놓고 수술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교수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 위치에 변이 동맥이 있을 걸 아셨습니까?”

임민준이 감격에 찬 눈빛으로 물었지만, 강현은 대답 대신 가볍게 턱짓을 해 보였을 뿐이다.

“환자 살았으니 됐다. 정리해.”

수술실 문이 열리고 강현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등 뒤로 환자의 안정적인 바이탈 사인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고 있었다.

지옥 같던 3시간의 사투가 끝났다.

강현은 탈진할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서관 12층 복도로 나섰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묵직했다. 수술 가운의 끈을 풀고,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지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백강현 교수님.”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 모퉁이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정한 수트 차림에 목걸이 사원증을 메고 있는 사내. 송우진 기획조정실장의 직속 비서였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도톰한 등기 우편 봉투가 들려 있었다.

비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강현의 코앞으로 우편물을 들이밀었다.

“기조실장님께서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강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우편물 전면에 박힌 굵은 고딕체의 글자가 그의 시야에 꽂혔다.

[불법 대리 수술 및 의료법 위반 혐의에 따른 병원 특별 징계위원회 소집 통보서]

비서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다음 주 월요일 오전 9시입니다. 기조실장님께서 아주 흥미로운 자료들을 많이 준비해 두셨더군요. 늦지 않게 대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강현의 오른손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수술실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진짜 음모의 칼날이 드디어 목덜미를 겨누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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