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르는 주말 깊은 밤이었다.

한국대병원 대학본부 본관 징계위원회 심사를 단 몇 시간 앞둔 시점.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이 위치한 서관 12층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비상구의 초록색 유도등만이 바닥에 길고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깨고 강현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찢어지는 듯한 진동음을 토해냈다.

징-. 징-.

수술실 핫라인 무전과 동시에 연결된 임민준의 번호였다. 강현이 액정을 밀어 올리자마자, 스피커 너머로 찢어지는 듯한 사이렌 소리와 다급한 숨소리가 뒤섞여 쏟아졌다.

- “교, 교수님! 지금 사설 앰뷸런스 안입니다! 타원 세 군데서 전부 수술 불가하다고 거부당하고 길거리에 방치되기 직전인 환자를 태웠습니다! 자발성 뇌간 대출혈(Spontaneous Brainstem Hemorrhage) 환자입니다! 지금 당장 감압하지 않으면 어레스트(Arrest) 납니다!”

강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환자 바이탈은?”

- “BPM 140, 혈압 210에 110, 산소포화도 82%까지 떨어졌습니다! 뇌압(ICP)이 극도로 상승해서 동공 반사도 이미 소실 단계입니다! 송 실장이 내린 수술 정지 명령 때문에 응급실 접수처에서 입고를 막고 있습니다! 교수님, 어떡합니까!”

수술 정지 명령. 송우진 기조실장이 징계위를 앞두고 강현의 손발을 묶기 위해 내려둔 합법적 족쇄였다. 하지만 강현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관 전용 엘리베이터로 올려. 내가 내려간다.”

강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하이브리드 수술실 입구로 향했다.

서관 로비 1층. 육중한 유리문 앞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붉은색 경광등을 번쩍이는 사설 구급차에서 내린 구급 침대가 정문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려 했지만, 감청색 유니폼을 입은 병원 경비팀 네 명이 그 앞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었다.

“비켜요! 사람 죽는다고요! 비키란 말입니다!”

임민준이 구급 침대의 머리맡을 붙잡은 채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환자의 얼굴 위로 툭툭 떨어졌다.

경비 조장이 차가운 얼굴로 임민준의 어깨를 밀쳐냈다.

“임 선생인 줄은 압니다만, 기조실 행정 명령입니다. 백강현 교수 팀은 현재 모든 집도 및 환자 수용이 일시 정지된 상태입니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 조치하세요.”

“다른 병원 세 군데서 거부당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여기서 나가면 길바닥에서 뇌가 터져 죽어요!”

“저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물러나세요.”

경비원들이 힘으로 구급 침대를 바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쇠바퀴가 타일 바닥을 긁으며 요란한 마찰음을 냈다. 임민준의 얼굴이 분노와 절망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경비 조장의 멱살을 잡듯 다가섰다.

“이봐요! 인사 위원님들, 월급 많이 받으실 텐데 교도소 사식비도 좀 후원해 주시라 하시죠! 살 수 있는 환자 문전박대해서 죽여 놓고, 당신들이 법정에서 무사할 것 같아? 비켜!”

임민준이 온몸의 체중을 실어 경비원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쿵 하는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경비 조장이 뒤로 비틀거렸다. 그 틈을 타 임민준은 구급 침대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철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고, 대리석 바닥을 가로지르는 휠체어 바퀴 소리가 로비 전체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강현이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이 구급 침대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환자에게 닿았다.

[환자: 유길선 (58세, 남성)] [진단: 자발성 뇌간 및 뇌실 내 출혈(Brainstem & IVH), 급성 수두증(Acute Hydrocephalus)] [실시간 생존율: 18%] [※ 경고: 뇌압(ICP) 임계치 초과. 5분 이내 뇌실 외 배액술(EVD) 미집행 시 뇌간 압박으로 인한 즉사 확정.]

망막 위로 붉게 점멸하는 시스템 패널의 경고등이 강현의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임 선생, 환자 바로 12층으로 올려.”

강현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고, 그 안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경비원들이 다시 저지하려 다가왔지만, 강현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 앞을 막아섰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경비원들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비켜라.”

단 세 글자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서슬 퍼런 경고에 경비원들은 침을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하자마자, 구급 침대는 하이브리드 수술실 내부로 거칠게 밀려 들어갔다.

수술실 내부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보통의 수술이라면 대기하고 있어야 할 마취과 의사도, 어시스트 간호사도 단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송우진과 유상일의 보복이 두려워 지시를 받고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운 것이 명백했다.

“교, 교수님…… 마취과가 없습니다. 순환 간호사도요. 이 상태로 수술을……?”

임민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우리가 한다.”

강현은 이미 초록색 수술복 위에 멸균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임 선생은 백만 유지해. 수동으로 앰부 배깅(Ambu bagging) 하면서 환자 머리 고정해.”

“예, 예!”

임민준이 신속하게 환자의 머리맡으로 가 산소 마스크를 밀착시키고 앰부 백을 쥐어짰다.

습-, 후-. 습-, 후-.

환자의 불규칙한 호흡음과 가쁜 가래 끓는 소리가 정막한 수술실을 채웠다.

강현은 트레이 위에 놓인 수술 기구들을 신속하게 스캔했다. 수술실 벽면에 설치된 바이탈 모니터의 수치들이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BPM 145, 혈압 215/120, ICP 35 mmHg.

정상 뇌압인 15 mmHg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였다. 이대로 두면 뇌간이 밑으로 밀려 내려가 호흡 중추가 마비된다. 남은 시간은 채 3분도 없었다.

강현은 오른손으로 천자용 긴급 드릴(Cranial Drill)을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 순간,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찌릿한 마비감이 덮쳐왔다.

[※ 오른손 마비 진행률: 95%] [※ 시스템 경고: 연산 부하 상승으로 인한 뇌압 동기화 진행 중. 현재 천자 성공 정밀도: 65%]

눈앞의 시스템 패널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수치를 떨어뜨렸다. 65%. 이 상태로 드릴을 밀어 넣었다가는 뇌실이 아닌 정상 대뇌 반구를 관통해 환자를 즉사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손가락의 감각은 이미 굳어 들어가 손끝의 미세한 진동조차 제어하기 힘든 상태였다.

‘65%라…….’

강현은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뇌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이명이 귓가를 때렸고,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안구 뒤쪽에서 묵직한 압박감이 전해지며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강현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기록이 있었다.

3년 전, 유상일이 집도하다 사망 사고를 내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던 그 환자의 의학 아카이브. 강현은 며칠 전 유상일의 과거 수술 컴퓨터 로그를 뒤지다 발견했던 특이한 해부학적 변이 기록물을 떠올렸다.

당시 유상일은 우심방 후벽의 변이 부동맥(Anomalous artery)을 인지하지 못해 혈관을 찢어 놓았다. 하지만 강현이 주목한 것은 그 변이가 단독 변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환자의 해부학적 변이 기록물 하단에는 두개 내 혈관 주행의 대칭성 기형 변이가 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침대 위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 환자의 두상과 안면부 골격 구조, 그리고 지표면으로 드러난 측두동맥의 주행 방향이 3년 전 그 환자의 기형 패턴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하고 있었다.

‘우측 전두엽 관상 봉합선(Coronal suture)에서 외측으로 2.5센티미터 이동한 지점.’

일반적인 뇌실 천자 위치인 코흐 지점(Kocher's point)을 그대로 적용했다가는 변이된 대뇌피질 혈관을 관통해 대량 출혈을 유발할 것이 뻔했다. 유상일의 3년 전 사고 기록물에 남아 있던 혈관 변이 주행 공식을 대입해야만 했다.

강현은 드릴을 쥔 오른손의 각도를 미세하게 3도 안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진입 깊이를 원래 프로토콜보다 5밀리미터 얕은 4.5센티미터로 재설정했다.

그 순간, 눈앞의 시스템 패널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 해부학적 변이 공식 적용 완료.] [※ 천자 성공 정밀도: 65% -> 98% 상승!] [※ 구조 포인트 소소(150 point) -> 오른손 마비 수치 일시 완화(95% -> 40%)]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묶고 있던 쇠사슬 같은 마비감이 스르륵 풀려나갔다. 손끝의 감각이 살아나며 미세한 혈류의 정밀한 느낌이 되돌아왔다.

“임 선생, 머리 꽉 잡아.”

강현의 낮고 묵직한 명령에 임민준은 침을 삼키며 환자의 이마를 양손으로 고정했다.

위이이이잉-.

수술실의 고요를 찢고 드릴의 고주파 회전음이 울려 퍼졌다. 강현은 환자의 우측 전두부, 머리카락을 밀어낸 두피 위로 지표를 잡고 드릴 끝을 수직으로 내리눌렀다.

서걱. 서걱.

두개골 외판을 뚫고 들어가는 드릴의 진동이 강현의 손끝을 타고 뇌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뇌막을 찢고 대뇌 피질을 손상시킬 수 있는 극도의 정밀 작업이었다.

강현의 눈은 오직 드릴 끝과 환자의 바이탈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도, 흥분도 없었다.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만이 남은 제3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손끝을 통제하고 있었다.

툭.

두개골 내판을 뚫고 뇌경막(Dura mater) 직전에서 드릴이 멈췄다. 완벽한 깊이였다.

“메스.”

강현은 스스로 메스를 집어 들고 뇌경막을 미세하게 절개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뇌실 외 배액관(EVD catheter)을 뇌실 내부로 정교하게 삽입하여 고여 있는 피와 뇌척수액을 뽑아내야 했다. 1밀리미터의 오차로도 뇌간의 핵심 신경망을 건드릴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과정이었다.

강현은 얇고 유연한 도관을 잡았다. 그의 오른손 끝은 단 0.1밀리미터의 떨림도 없이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도관이 뇌 조직을 뚫고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1센티미터, 2센티미터, 3센티미터…….

환자의 뇌압이 극에 달해 있어 도관을 타고 역류하는 압력이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현은 미세한 저항감을 느끼며 도관의 방향을 유상일의 변이 공식에 맞춰 아주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수술실 벽면 전체를 감싸고 있던 모니터의 불빛과 천장의 무영등이 동시에 깜빡였다.

화아악-.

순간적인 전압 강하와 함께 수술실 내부의 기계들이 기괴한 경고음을 내뿜었다.

“어? 교수님! 바이탈 모니터가……!”

임민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뚝.

무겁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술실 벽면의 특수 제어 전원판 메인 차단기가 완전히 내려앉았다.

동시에 천장의 백색 무영등과 바이탈 모니터, 드릴의 전원 표시등까지 모조리 꺼져 버렸다.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밤의 수술실.

완벽한 암흑이 두 사람과 환자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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