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서관 12층 하이브리드방입니까?! 지금 응급실 난리 났습니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에서 12중 추돌 연쇄 대형 참사 발생! 환자 대거 유입 중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 수술실의 무균 공기를 찢발겼다. 임민준의 손이 사정없이 흔들렸고, 수화기 틈새로 흘러나온 음성은 붉은색 경보등만큼이나 붉고 선명했다.

“그중 가슴 압착 손상(Crush injury)을 입은 30대 남성 환자가 이송 중입니다! 이송 중 심정지(Cardiac arrest) 1회 발생, CPR로 간신히 바이탈 살려놨지만 우심방 외상성 파열(Traumatic Right Atrial Rupture)이 강력히 의심됩니다! 현재 활동성 대량 출혈(Active massive bleeding) 진행 중! 혈압 60에 40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5분 뒤 도착합니다! 수술 준비 되십니까?!”

우심방 파열. 심장이 찢겨 나가 흉강 내부가 피바다로 변하는 극악의 외상. 생존율은 단 5% 미만이었다.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의 지휘권을 송우진 실장으로부터 넘겨받은 바로 당일 밤이었다. 첫 전장을 인계받자마자 떨어진 것은 재앙에 가까운 호출이었다.

강현의 망막 위로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붉은 호가창이 펼쳐졌다.

[돌발 재난 퀘스트 발생!] [환자: 무명 (31세, 남성)] [진단명: Traumatic Right Atrial Rupture (우심방 외상성 파열)] [실시간 생존율: 4.2% (매 초당 0.5%씩 하락 중)] [수술 난이도: SS] [경고: 집도 실패 시 오른손 마비 수치 50% 영구 누적 상승 (즉시 써전 생명 종말)]

4.2%. 숫자는 정직하게 죽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현의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굳어 들어갔다. 과거 외상 후 스트레스와 물리적 신경 손상이 만들어낸 지독한 족쇄가 다시 목을 조여 왔다.

“라인 잡고, 대량 수혈 프로토콜(MTP) 즉시 가동해. O형 적혈구 제제랑 신선동결혈장(FFP) 각각 10유닛씩 수술실로 바로 올리라고 응급실에 전해.”

강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폭풍의 눈처럼 고요한 음성이 임민준의 떨림을 억눌렀다.

“네, 네! 즉시 전하겠습니다!”

임민준이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사이, 강현은 수술 장비 세팅을 위해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우심방 파열 수술에서 심장을 일시적으로 고정하고 혈관을 차단할 특수 지혈 클램프(Satinsky vascular clamp)가 필요했다.

철재 캐비닛 앞. 강현의 손끝이 손잡이에 닿았을 때, 묵직한 이물감이 전해졌다.

굳게 닫힌 유리문 손잡이 사이로 두꺼운 쇠사슬과 황동색 자물쇠가 단단히 걸려 있었다. 자물쇠 표면에는 외과 과장 유상일의 개인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게…… 왜 잠겨 있지?”

수화기를 내려놓은 임민준이 다가오다 턱을 떨구었다.

“유 과장님 캐비닛입니다. 특수 지혈 기구들은 전부 외과 과장 승인 없이는 불출 불가능하다고…… 오늘 오후에 행정 명령을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열쇠는 유 과장님이 직접 챙기셨고요.”

비열한 보복이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지휘권을 강현에게 넘겨주게 되자, 유상일은 합법적인 행정 가이드라인을 무기 삼아 수술 장비 자체를 원천 봉쇄해 버린 것이다. 기구가 없으면 수술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환자가 테이블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라는, 아주 치졸하고도 확실한 살인 모의였다.

임민준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진짜 저 영감탱이 쩨쩨의 끝판왕이네요! 차라리 제가 락피커라도 배워올까요? 쇠지렛대라도 들고 와서 부술까요, 교수님?”

고압박 상황에서 튀어나온 뼈 있는 농담이었다. 임민준의 눈에는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강현은 자물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쇠지렛대로 캐비닛을 강제로 부수는 순간, 유상일과 송우진은 ‘병원 기물 파손 및 무단 장비 도용’을 구실로 강현의 의사 면허를 정지시킬 터였다. 법과 행정이라는 족쇄를 쥔 적들은 언제나 명분을 노린다.

“부술 필요 없다.”

강현이 몸을 돌렸다.

“네? 하지만 사틴스키 클램프가 없으면 심장을 물어줄 수가 없는데요? 무조건 출혈로 테이블 데스(Table death)입니다!”

“대체할 것은 차고 넘쳐.”

강현의 시선이 수술실 한구석에 방치된 수술도구 트레이로 향했다. 그곳에는 구형 정형외과용 철사 견인 장치(Wire retractor)와 일반적인 흉부 개흉기(Finochietto retractor)가 놓여 있었다.

“임민준.”

“예, 예!”

“수술실 행정 규정 제47조 3항 기억하나? ‘응급 재난 상황 시 집도의는 대체 가능한 임의 기구를 변형 및 사용하여 환자의 생명을 보존할 권한을 가진다.’ 유상일이 법을 좋아하니, 우리는 규칙대로 간다.”

강현은 플레이어(Pliers)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구형 철사 견인 장치의 양 끝을 정교한 각도로 구부리기 시작했다. 서전의 손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고 묵직한 힘이었다. 철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휘어지더니, 이내 심장 벽을 부드럽게 감싸 안을 수 있는 곡선형 압착기로 재탄생했다.

“이걸로…… 심장 벽을 임시 클램핑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임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 용도보다 탄성이 좋아 심근 손상을 줄일 수 있지. 준비해.”

*쾅!*

수술실 자동문이 거칠게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이동식 베드가 들이닥쳤다.

“환자 들어옵니다! 바이탈 흔들립니다!”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베드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환자의 가슴 격벽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눌려 있었다. 거무죽죽한 피가 가슴 전체를 적시고 있었고, 모니터의 수치들은 그야말로 파멸적이었다.

[BPM: 142, BP: 52/31, SpO2: 78%] [실시간 생존율: 2.1%]

“기도 유지 확인하고, 대량 수혈 시작해! 셸버(Cell saver, 자가수혈기) 돌려!”

강현이 베드 옆으로 붙으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베타딘(소독약) 올려! 포셉(Focep), 메스(Scalpel)!”

강현이 손을 뻗자, 수술 간호사가 10번 메스를 쥐여주었다.

정중흉골절개술(Median sternotomy)을 시행할 여유조차 없었다. 우심방 파열은 단 1분의 지체도 허용하지 않는다. 강현은 환자의 왼쪽 4번째 갈비뼈 사이를 따라 가로로 길게 찢어 들어가는 전외측 토라코토미(Anterolateral thoracotomy, 전외측 개흉술)를 선택했다.

서걱, 서걱.

두꺼운 피부와 피하지방, 그리고 늑간근이 단숨에 갈라졌다. 시야를 가로막는 근육층을 헤집고 들어가자, 이내 터져 나온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강현의 페이스 쉴드를 적셨다.

“썩션(Suction, 흡인기)! 더 깊게!”

임민준이 다급하게 흡인기를 밀어 넣었지만, 솟구치는 피의 양이 더 많았다.

[위험! 심폐 정지 확률 91% 돌파!] [시스템 경고: 극심한 우심방 내압 상승 및 활동성 출혈 감지!]

강현의 귓가에 찢어지는 듯한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뇌 신경 과부하의 전조였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굳어가는 한기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마비 증세였다.

‘아직은 안 돼.’

강현은 이빨을 악물었다. 어금니가 부딪치며 으스러지는 소리가 뇌리에 박혔다. 그는 손가락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다.

강현의 망막 위로 환자의 심장 구조가 3D 그래픽처럼 가시화되어 떠올랐다. 찢어진 우심방의 위치가 붉은색 균열선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스템의 가시화 화면에 기이한 형태의 혈관 분지가 포착되었다.

우심방의 후벽을 타고 흐르는 비정상적인 동맥궁. 일반적인 인간의 해부학 구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우상대정맥과 우심방 사이를 기형적으로 관통하는 ‘부동맥(Anomalous artery)’이었다.

강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 구조는…….’

기억의 심연 속에서 낡은 데이터가 수면 위로 솟구쳤다.

3년 전. 유상일 과장이 집도하다가 환자를 테이블 데스로 만들고 강현에게 누명을 씌웠던 그 사건. 당시 유상일은 단순 판막 수술 중 원인 불명의 대량 출혈을 일으켰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강현이 최근 유상일의 과거 수술 아카이브를 뒤지며 찾아냈던, 미기록 변이 기록물 속의 해부학적 변이와 완전히 일치하는 형태였다.

당시 유상일은 이 특이 변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무조건 메스를 들이밀었다가 동맥을 끊어 먹었고, 결국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치명적인 실수를 숨기기 위해 강현에게 누명을 씌워 쫓아냈던 것이다.

“이 환자…… 유상일이 죽였던 그 환자와 같은 변이를 가지고 있어.”

강현의 혼잣말에 임민준이 썩션을 잡은 채 멍하니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심방 우측 후벽에 약 2밀리미터 두께의 부동맥이 주행하고 있어. 일반적인 위치로 우심방을 박리하거나 클램프를 물리면, 이 부동맥이 찢어지면서 손쓸 수 없는 대량 출혈이 발생한다. 유상일이 3년 전에 저지른 실수가 바로 이거였어.”

강현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3년 전 유상일이 무지로 인해 저지른 살인. 그 비밀의 열쇠가 지금 이 환자의 몸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 과오를 답습하지 않을 유일한 열쇠를 쥐고 있었다.

“민준아, 일반적인 위치로 들어가지 않는다. 우심방 우측 격벽을 뒤쪽으로 우회해서 박리한다. 내가 변이 동맥을 먼저 확보할 테니, 너는 내가 가리키는 지점을 정확히 압박해.”

“하, 하지만 거기는 시야가 전혀 안 나오는데요? 손가락 감각만으로 하셔야 합니다!”

“상관없어.”

강현의 오른손이 핏빛 흉강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뇌를 찌르고 들어왔다.

[경고: 뇌압 상승 수치 88% 돌파.] [오른손 마비 진행률 75%…… 80%……]

손가락 끝의 감각이 점차 무뎌졌다. 얼음물에 손을 담근 것처럼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머릿속에 각인된 3년 전의 기록물과 시스템이 보여주는 주식 호가창 같은 수치들을 결합해 나갔다.

손가락 끝에 닿는 미세한 박동. 그것은 일반적인 우심방의 수축동작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흐르는 변이 동맥의 떨림이었다.

“찾았다.”

강현의 검지 손가락 끝이 변이 동맥의 기시부를 정확히 눌렀다.

“민준, 지금이다. 메디컬 테이프로 여기 고정하고, 내가 만든 변형 견인기로 우심방 전벽을 물어.”

임민준이 마른침을 삼키며 강현이 지시한 위치에 변형된 철사 견인 장치를 밀어 넣었다.

*철컥.*

강현이 직접 구부려 만든 야전용 기구가 우심방의 찢어진 틈새 바로 위쪽을 완벽하게 압착했다. 솟구치던 핏줄기가 기적처럼 잦아들었다.

“어……? 피가 잡힙니다! 바이탈 올라갑니다!”

마취과 의사의 경탄 섞인 비명이 터졌다.

[BP: 85/55, SpO2: 91%] [실시간 생존율: 12.4% -> 28.5% 상승!]

지옥 같던 수술실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유상일이 걸어 잠근 캐비닛과 그의 무지가 만들어낸 3년 전의 유령을, 강현은 단 한 번의 임기응변과 기억의 복원으로 깨부수고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돌발 변수 발생!] [우심방 내막의 추가 미세 균열 감지.] [심폐 정지 위험도 급증!]

강현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썩션으로 피를 빨아들이는 순간, 우심방의 압착부 바로 아래쪽에서 다시 한 번 검붉은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교수님! 뒤쪽입니다! 뒤쪽 벽이 찢어지고 있습니다!”

임민준의 비명이 수술실을 흔들었다.

우심방의 조직은 종이처럼 얇았다. 외상으로 인한 압박이 가해진 상태에서 일시적인 압박을 가하자, 약해진 후벽의 미세 교감 신경망과 혈관들이 동시에 터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두면 심장은 순식간에 수축력을 잃고 멈춘다.

강현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뇌압이 한계치에 도달하며 좌측 시야가 흐려졌다.

[위험! 마비 마지노선 95% 도달!] [시스템 연산 과부하! 오른손 영구 마비 수치 적용 5초 전!]

“손가락이…….”

강현의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완전히 일직선으로 굳어 버렸다. 메스를 쥔 손끝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환자의 심장은 제멋대로 요동치며 피를 뿜어내고 있었고, 시스템의 경고음은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댔다.

강현은 굳어버린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환자의 심장을 직접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비되어 가는 오른손 끝을 심장의 찢어진 후벽 틈새로 밀어 넣었다. 오직 두 손의 악력과 감각만으로, 찢어진 우심방을 통째로 틀어쥐어 지혈하려는 무모한 시도였다.

“교수님! 손가락이 굳으신 겁니까?! 교수님!”

임민준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강현의 손끝이 심장의 더운 박동과 찢어진 틈새의 경계를 파고들었다. 손가락을 조여 압박을 가하려는 찰나.

[띵! 띵! 띵! 띵!]

경고음의 빈도가 극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심방 추가 미세 교감 신경 압박선 급박 흔들림 감지!] [마비 마지노선 95% 도달!] [경고: 압박 강도가 0.1N만 초과해도 환자의 심장은 영구 정지하며, 집도자의 오른손은 즉시 영구 마비됩니다.]

손끝에 전해지는 심장의 미세한 떨림이 멈추기 직전이었다. 강현은 숨을 멈췄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생명과 파멸을 가르는 마지막 도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