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완벽히 정리된 회복실 안으로, 기획조정실장이자 3년 전 음모의 최종 수괴였던 송우진의 검은 구두 발자국 소리가 깊게 울려 들어온다.

*딸깍, 뚜벅, 뚜벅.*

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낮게 깔린 기계음 사이를 찢고 들어왔다. 회복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 위에 무겁고 짙은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 냄새가 얹어졌다. 송우진은 반듯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칼 아래로 가느다란 눈매를 접어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그의 태도는 이 공간의 완벽한 지배자처럼 당당했다.

“수술이 아주 훌륭하게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백강현 선생.”

송우진이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자의 여유와 함께, 뱀처럼 차가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강현은 등을 돌린 채 손을 씻고 있던 싱크대에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젖은 손을 종이타월로 닦아내는 손길에는 티끌만 한 흐트러짐도 없었다. 한채은은 송우진의 등장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꼿꼿이 세우며 강현의 옆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실장님께서 직접 회복실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한채은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송우진은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오직 강현만을 응시했다.

“백강현 선생의 복귀전인데, 당연히 격려하러 와야지. 하지만 말이야.”

송우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환자의 바이탈 모니터 앞에 섰다.

BPM 72, BP 120/80, SpO2 99%.

극도로 안정적인 녹색 곡선들이 모니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송우진이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툭툭 건드렸다. 플라스틱 마찰음이 건조하게 울렸다.

“이 환자, 집도 권한이 없는 대진의 신분으로 칼을 댄 거더군. 병원 징계위원회와 보건복지부 행정 가이드라인을 아주 가볍게 무시했어. 유상일 과장의 정당한 집도권을 찬탈하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를 저지른 셈이지.”

송우진은 등 뒤의 법무팀 직원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직원이 가죽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어 회복실 카트 위에 툭 내려놓았다.

“의료법 제66조, 그리고 본원 인사 규정 제32조 위반. 무면허에 준하는 임의 집도 및 의료 기관 신뢰 실추. 백 선생, 자네가 3년 전에 어떻게 이 병원을 나갔는지 잊은 모양인데.”

송우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송곳처럼 강현을 찔러왔다.

“이번에는 단순한 면허 정지로 끝나지 않을 거야.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이 들어가면, 자네가 가진 그 반쪽짜리 의사 면허는 영원히 박탈된다. 조용히 꼬리 내리고 야반도주하듯 물러서게. 오늘 밤 안으로 사직서 쓰고 나간다면, 유 과장 건은 적당히 병원 내부 과실로 묻어줄 용의가 있으니까.”

협박은 정교했고, 명분은 합법의 탈을 쓰고 있었다. 송우진의 등 뒤에 버티고 선 두 명의 법무팀 변호사들은 이미 사냥감을 가둔 덫을 확인한 사냥개처럼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 붉은색 시스템 경고등 대신, 송우진의 머리 위에 뜬 가상의 텍스트가 명멸하고 있었다.

[적대 대상: 송우진 (기획조정실장)] [정치적 위기도: 82%] [약점 노출 확률: 94%]

강현은 주머니에서 개인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액정을 가볍게 두드려 하나의 PDF 문서를 화면에 띄웠다. 태블릿의 차가운 블루라이트가 강현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추었다.

“유상일 과장의 집도권을 찬탈했다는 표현은 사실 관계가 다릅니다, 송 실장님.”

강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감정의 고저가 전혀 없는, 마치 기계가 뱉어내는 낭독음 같았다.

“유 과장은 3년 전, 대동맥 동맥류(Aortic Aneurysm) 수술 중 환자의 복강동맥(Celiac trunk)에서 기인하는 특이한 해부학적 변이(Anatomical variation)를 인지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박리(Dissection)를 시도하다 복강 내 대량 출혈을 유발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과실을 덮기 위해 차트를 조작했고, 그 사고의 책임을 당시 펠로우였던 저에게 덮어씌웠죠.”

송우진의 눈썹 끝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그게 오늘 수술과 무슨 상관이지? 과거의 일을 들춰내서 물타기를 하겠다는 건가?”

“상관이 아주 많습니다.”

강현이 태블릿을 송우진의 코앞으로 내밀었다. 화면에는 3년 전 유상일이 집도했던 환자의 수술 아카이브 원본 로그와, 방금 강현이 집도한 환자의 실시간 해부학적 3D 렌더링 이미지가 대조되어 있었다.

“오늘 환자 역시 유 과장과 동일한 복강동맥 변이 환자였습니다. 유 과장은 수술 시작 10분 만에 변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동맥벽을 찢을 뻔했죠. 제가 집도권을 넘겨받지 않았다면, 이 환자는 3년 전 그 환자처럼 테이블 데스(Table death)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유 과장의 과실을 입증하는 당시의 미기록 변이 기록물 원본입니다.”

송우진의 눈동자가 태블릿 화면의 붉은색 대조선들을 바쁘게 훑었다. 그의 호흡이 아주 미세하게 가빠지는 것을 강현은 놓치지 않았다.

“이건… 원내 보안 규정 위반으로 유출된 자료다. 법적 효력이 없어.”

“법적 효력은 법정에서 따지면 됩니다.”

강현이 태블릿 화면을 아래로 쓸어내렸다. 다음 페이지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송우진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법무팀의 비공개 합의금 지출 결재 내역서가 떠 있었다.

“3년 전 유 과장의 과실을 덮기 위해 기획조정실에서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한 5억 원의 ‘비공개 위로금’ 지출 결의서입니다. 기획조정실장의 직인과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군요. 병원 공금을 유용해 개인의 범죄적 과실을 은폐한 배임 혐의. 이것도 병원 규정으로 덮을 수 있겠습니까?”

회복실 안의 공기가 완벽하게 얼어붙었다.

송우진의 등 뒤에 서 있던 법무팀 직원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순식간에 씻겨 내려갔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송우진의 이마에 얇은 핏대가 돋아났다. 늘 온화하게 휘어져 있던 그의 입꼬리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백강현…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하는 거냐?”

“협박이 아니라 제안을 하는 겁니다.”

강현은 태블릿을 거두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송우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보건복지부의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 중, ‘중증 외상 및 특수 외상 외과 병상 가동률 및 생존율’ 지표가 현재 한국대병원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송우진의 호흡이 턱 멈췄다.

“올해 평가에서 한국대병원 외상 외과는 유상일 과장의 무능과 기피로 인해 생존율 최하위 등급을 기록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연간 300억 규모의 국가 지원금이 끊기는 것은 물론, 상급종합병원 탈락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송 실장님이 추진하시는 대기업 영리화 사업의 투자 유치도 물거품이 되겠죠.”

강현은 한 발자국 더 송우진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한 뼘 남짓이었다. 강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그 썩어빠진 지표를 정상 수치로 끌어올려 줄 유일한 카드가 바로 저입니다. 유상일 같은 쓰레기 써전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숫자죠.”

“네 녀석이 뭔데 그 지표를 바꾼다는 거지?”

“저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립니다. 어떤 상태의 환자가 들어오든, 제 수술실 안에서는 살아서 나갑니다. 그것만큼 확실한 통계가 있습니까?”

강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망막 위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 메시지: 대상의 심리적 저항선 붕괴 진행 중.] [송우진의 협상 수용 확률: 89%] [구조 포인트 누적 가동률 상승.]

송우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운 주머니 속에서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백강현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대기업 스폰서 유치와 상급종합병원 자격 유지는 그의 목숨줄과도 같았다. 백강현이 제시한 3년 전 배임 자료가 언론에 터지는 순간, 그의 원료원장 찬탈 계획은 영원히 종말을 고할 터였다.

송우진은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일그러진 얼굴을 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잔혹하게 이글거렸다.

“원하는 게 뭐냐.”

갈라진 목소리가 송우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

강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곳을 저의 독점 전용 수술실로 지정해 주십시오. 과장이나 기조실의 결재 없이, 제가 판단한 응급 환자는 즉시 그 수술실로 입실시켜 집도할 수 있는 전권(全權)을 요구합니다. 장비와 인력의 주도권 역시 저에게 단독 인도하십시오.”

“미쳤군. 하이브리드 수술실은 병원의 가장 비싼 장비들이 집약된 곳이다. 그걸 일개 대진의 따위에게 통째로 넘기라고?”

“넘기지 않으시면, 내일 아침 기획조정실의 배임 내역서가 보건복지부와 언론사에 동시 송출될 겁니다. 선택하십시오, 송 실장님. 병원을 통째로 흔들지, 아니면 먼지 쌓인 수술방 하나를 내주고 자리를 보존할지.”

정교하고 빈틈없는 팩트 폭격 앞에서 송우진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했다. 그의 이성이 차가운 계산기를 두드렸다. 백강현을 일단 병원 안에 묶어두고 이용한 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쳐내는 것이 이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좋다.”

송우진이 이빨을 사리물며 뒤돌아섰다.

“법무팀.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한시적 단독 사용 및 권한 위임장에 결재 올려.”

그는 비서가 내민 태블릿 결재창에 거칠게 정전기 펜을 그었다. 전자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강현의 망막에 푸른빛의 시스템 알림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퀘스트 완료: 전장 복권(戰場復權)] [보상: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수술실 통제권 획득.] [누적 구조 포인트: 1,500 SP 적립.] [오른손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 마비 수치: 45% -> 30%로 경감.]

손끝으로 짜릿한 온기가 흘러들었다. 굳어 있던 약지와 새끼손가락의 미세 신경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부드럽게 풀리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송우진은 뱀이 허물을 벗듯 다시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강현을 노려보았다.

“칼자루를 쥐어줬으니, 지켜보지. 만에 하나 단 한 명의 환자라도 자네 손에서 죽어나간다면, 그 즉시 자네 손가락뿐만 아니라 목줄까지 끊어놓을 테니까.”

송우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복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구두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회복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해내셨군요, 백 교수님.”

한채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강현에 대한 경외심을 넘어선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강현은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가락의 가동 범위를 확인했다. 완벽했다. 이제 하이브리드 수술실이라는 완벽한 요새를 손에 넣었다. 카르텔의 방해 없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생긴 것이다.

* * *

그날 밤 11시 45분.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

어두컴컴한 수술실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자, 거대한 C-arm 장비와 실시간 혈관 조영 장비들이 차가운 기계음을 내며 깨어났다. 천장의 무영등이 백색의 빛을 뿌리며 수술대 위를 비추었다.

강현은 수술실 중앙에 서서 메스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임민준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교수님, 정말로 저희가 이 수술실을 독점적으로 쓰게 된 겁니까? 유 과장님이 알면 난리가 날 텐데요…”

소심한 임민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유상일은 이제 신경 쓸 필요 없다. 여기는 이제 우리의 전장이다.”

강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때였다.

수술실 벽면에 설치된 빨간색 응급 핫라인 전화기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수술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임민준이 다급하게 수화기를 낚아챘다. 수화기 너머로 응급의학과 스태프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서관 12층 하이브리드방입니까?! 지금 응급실 난리 났습니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에서 12중 추돌 연쇄 대형 참사 발생! 환자 대거 유입 중입니다!

임민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 그중 가슴 압착 손상(Crush injury)을 입은 30대 남성 환자가 이송 중입니다! 이송 중 심정지(Cardiac arrest) 1회 발생, CPR로 간신히 바이탈 살려놨지만 우심방 외상성 파열(Traumatic Right Atrial Rupture)이 강력히 의심됩니다! 현재 활동성 대량 출혈(Active massive bleeding) 진행 중! 혈압 60에 40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5분 뒤 도착합니다! 수술 준비 되십니까?!

우심방 파열. 심장이 찢어져 피가 가슴속으로 쏟아지는, 생존율이 5%도 되지 않는 최악의 외상 환자였다.

임민준이 떨리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강현의 시야 전체가 붉은색 시스템 경고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돌발 재난 퀘스트 발생!] [환자: 무명 (31세, 남성)] [진단명: Traumatic Right Atrial Rupture (우심방 외상성 파열)] [실시간 생존율: 4.2% (매 초당 0.5%씩 하락 중)] [수술 난이도: SS] [경고: 집도 실패 시 오른손 마비 수치 50% 영구 누적 상승 (즉시 써전 생명 종말)]

환자의 생존율 4.2%. 그리고 실패 시 자신의 외과의 생명을 통째로 앗아갈 파멸적인 디메리트.

강현의 오른손 약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수술실 문밖에서 급박하게 달려오는 베드의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복도를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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