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이 정교하게 십이지장 부위를 도려내려는 메스를 쥐자마자, 모니터에서 미지의 혈압 급락 비상 경보가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대기를 찢었다.
*삐- 삐- 삐- 삐비비비비비비-*
“V-fib(심실세동)입니다! 어레스트(Cardiac Arrest)!”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비명이 수술실 폐쇄 회로를 흔들었다. 모니터에 그려지던 규칙적인 파형이 불규칙한 톱날 모양으로 사정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맥박 수치는 표시등에서 사라졌고, 혈압을 나타내는 숫자는 매 초마다 앞자리를 바꾸며 곤두박질쳤다.
50, 42, 30.
“디피브릴레이터(Defibrillator) 준비해! 당장 제세동기 가져와!”
유상일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수술대 뒤편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수술포 위로 툭툭 떨어졌다. 환자의 가슴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의 심정지. 흉강과 복강이 모두 노출된 이 붉은 구덩이 속에서 심장이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백 교수! 당장 클램프 풀어! 대동맥을 그렇게 오래 묶어두니까 심장이 후부하를 못 버티고 뻗은 거잖아!”
유상일이 강현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강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쥔 메스 끝은 십이지장 하부의 가동경계선에 가만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망막 위로 푸른색과 붉은색의 시스템 텍스트가 맹렬하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경고: 환자 생존율 3% -> 1%] [누적 뇌 신경 부하: 78%] [경고: 대처 실패 시 오른손 약지 및 새끼손가락 마비 수치 영구 누적 (+40%)]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이명이 고막을 후벼팠다. 눈앞의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검게 타들어 가듯 일시적 암점이 깜빡였다. 등가교환의 대가. 연산 장치가 풀가동되면서 발생하는 뇌압 상승의 징후였다. 코끝으로 비릿한 피 내음이 훅 끼쳤다.
강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뜬 채, 붉게 물든 복강 내부의 미세한 박리 단면들을 응시했다.
‘아니야.’
단순한 대동맥 클램핑으로 인한 후부하 증가가 아니다. 환자의 심장은 심근경색이나 만성 심부전의 징후가 이 정도로 급격한 V-fib을 일으킬 만큼 약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원인이 내부의 압력을 비정상적으로 비틀고 있었다.
강현의 시선이 하행 대동맥의 뒤편, 후복막강(Retroperitoneum)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미세하게 뿜어져 나오는 암적색의 혈류. 그것은 대동맥 본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십이지장 후벽을 타고 흐르는, 기이할 정도로 구불구불하게 발달한 이상 혈관망이었다.
머릿속의 아카이브가 번개처럼 맞춰졌다.
2화에서 보았던 유상일의 과거 수술 기록물. 3년 전, 유상일이 이 환자의 하행 대동맥 우회로 조성술(Aortobifemoral bypass)을 집도했을 당시의 누락된 데이터가 강현의 뇌리에서 선명한 3D 가시 영상으로 복원되었다.
“민준아. 썩션(Suction) 더 깊게 들어가.”
강현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주변의 대혼란 속에서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예, 예? 하지만 지금 어레스트가……!”
임민준이 겁에 질려 바이폴라를 든 손을 파르르 떨었다.
“썩션 대 대동맥 후벽 우측 2센티미터 지점으로 밀어 넣어. 시야 확보해.”
강현은 수술 가운 소매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낼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고개를 살짝 흔들어 시야를 가리는 땀방울을 털어냈다.
그의 망막에 시스템의 경고창이 다시 한번 붉게 점멸했다.
[분석 완료: 유상일의 과거 수술 과실로 인한 요동맥(Lumbar artery) 손상 및 비정상적 측한 혈류 누출 관찰.] [해부학적 기형 분지 발견: 제3, 제4 요동맥이 변형된 형태로 대동맥 후벽에 유착됨.]
역시나 그랬다.
3년 전, 유상일은 이 환자의 후복막을 박리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요동맥 기시부를 무리하게 뜯어내다 손상시켰고, 이를 제대로 결찰(Ligation)하지 않은 채 지혈제와 메쉬로 대충 덮어 숨겼던 것이다.
그 결과 환자의 몸 안에서는 수년에 걸쳐 비정상적인 동맥 기형 분지(Retroperitoneal vascular malformation)가 자라났다. 평소에는 완만한 압력으로 유지되던 이 시한폭탄이, 오늘 강현이 대동맥을 클램핑하자마자 급격히 솟구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한꺼번에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역류된 혈류가 관상동맥을 때렸고, 심장은 비명을 지르며 멈췄다.
“유 과장님.”
강현이 메스를 비스듬히 눕히며 차갑게 유상일을 응시했다.
“뭐, 뭘 봐! 당장 심장 마사지 안 해? 제세동 패들 가져오라니까!”
유상일이 악을 썼다.
“3년 전 이 환자, 하행 대동맥 우회로 조성술 집도하셨을 때 후복막강 어떻게 박리하셨습니까.”
“그,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 환자가 죽어가는데 3년 전 수술 타령을 왜 해!”
유상일의 눈동자가 좌우로 격하게 흔들렸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이미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당시 기록지에는 ‘특이 소견 없음’으로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환자의 제3, 제4 요동맥 기시부가 완전히 뜯겨 나가 대동맥 후벽과 십이지장 후벽 사이에 기형적인 혈관 뭉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과장님이 결찰을 누락하고 지혈제로 덮어버린 그 과실 흔적 말입니다.”
강현의 조용한 목소리가 수술실 안의 에어컨 소음을 뚫고 스태프들의 귀에 꽂혔다.
수술실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동결되었다.
어시스트를 서던 한채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는 강현이 가리키는 복강 깊은 곳, 십이지장 후벽 너머의 검붉은 조직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곳에는 일반적인 해부학 가이드북에서는 볼 수 없는, 기형적으로 팽창된 혈관 다발이 괴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너…… 너 지금 무슨 유언비어를……!”
유상일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민준아, 라이트 이쪽으로 더 비춰.”
강현은 유상일의 발악을 깨끗이 무시했다. 그는 오른손의 감각에 집중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 들어오는 마비 증세가 다시 밀려왔다. 시스템의 연산 부하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뇌 신경 압박율: 85%] [남은 포인트: 450]
‘포인트 150 소모. 오른손 신경 일시 복구 기동.’
*스스슥.*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 끝으로 짜릿한 전류가 흐르며 굳어 있던 관절이 부드럽게 풀렸다. 강현은 메스를 내려놓고, 끝이 미세하게 휜 무형의 박리 겸자(Dissecting forceps)를 쥐었다.
“지금 제세동기를 치면 이 기형 혈관이 먼저 터집니다. 그럼 후복막강 전체가 피바다가 되고 환자는 그 자리에서 테이블 데스(Table death)입니다.”
강현의 손끝이 대동맥 후벽의 좁은 틈새로 파고들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이었다. 오직 망막에 투영된 시스템의 붉은 혈류 흐름도와, 2화에서 외워둔 유상일의 수술 변이 공식을 조합한 정밀한 촉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뇌수술 수준의 초미세 작업.
“말도 안 돼…… 저 깊은 곳을 맹검으로 박리하겠다고?”
한채은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도 이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1밀리미터만 비껴가도 대동맥 후벽이 찢어진다.
하지만 강현의 손끝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걱.*
기형 혈관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섬유화 조직이 잘려 나갔다. 그 순간, 틈새로 뿜어져 나오던 검붉은 피가 강현의 수술용 장갑을 적셨다.
“바이폴라.”
강현의 명령에 임민준이 신속하게 기구를 건넸다.
강현은 기형 동맥의 기시부, 즉 유상일이 3년 전에 찢어놓고 가버린 바로 그 상처의 뿌리를 정확히 찾아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동맥의 단면이 겸자 끝에 걸려들었다.
“이것이 과장님이 남겨둔 3년 전의 ‘진짜’ 수술 흔적입니다.”
강현이 유상일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분노도, 흥분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사실의 나열일 뿐이었다.
“당시 요동맥 손상을 인지했음에도 대동맥 벽을 무리하게 봉합하려다 바늘이 후벽을 관통했고, 그로 인해 생긴 미세 누출이 수년에 걸쳐 이 기형 동맥을 키운 겁니다. 맞습니까?”
“나, 나는…… 그건 당시에 완벽하게 지혈이 되었고……!”
유상일이 말을 더듬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수술실 구석의 벽에 그의 등이 쿵 하고 부딪혔다.
수술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이 모든 대화와 수술 필드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녹화하고 있었다. 유상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3년 전 자신의 치명적인 과실과 이를 은폐하기 위해 차트를 조작했던 사실이, 지금 백강현이라는 괴물 같은 써전의 손끝에 의해 온 천하에 발가벗겨지고 있었다.
“한 선생. 기형 분지 기시부 고정해.”
강현의 지시에 한채은이 정신을 차리고 겸자를 뻗었다. 그녀의 정교한 어시스트가 더해지자, 강현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바이폴라의 고주파 전류가 기형 혈관의 뿌리를 태우며 완벽하게 소작(Cauterization)해 들어갔다.
*치이익-*
단백질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대동맥 후벽으로 역류하던 비정상적인 혈류가 마침내 완전히 차단되었다.
동시에 강현의 망막 위로 기적 같은 푸른색 스펙트럼이 폭발하듯 펼쳐졌다.
[알림: 미공개 대동맥 우회 동맥 기형 타파 성공!] [환자 생존율: 12% -> 79%] [구조 포인트 300 획득!] [오른손 마비 수치 완화: -5%]
“지금입니다. 마취과, 제세동 200줄(Joule) 차징.”
강현이 한 걸음 물러서며 외쳤다.
“차징 완료! 모두 물러서세요! 샷(Shot)!”
마취과 의사가 제세동 패들을 환자의 흉부에 대고 전류를 흘려보냈다. 환자의 몸이 덜컥하며 튀어 올랐다.
*쿵.*
순간, 요동치던 모니터의 톱날 파형이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깨끗하고 규칙적인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싸이누스 리듬(Sinus rhythm) 돌아왔습니다! 혈압 반등합니다! BP 110/70! 맥박수 82회 정상!”
마취과 의사의 환호성이 수술실의 팽팽하던 정적을 깨뜨렸다.
“살았다…….”
임민준이 다리가 풀린 듯 수술대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그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채은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멈춘 심장을 직접 마사지하지 않고, 오직 해부학적 변이 원인을 찾아내 차단함으로써 심정을 해결했다. 이것은 단순한 외과 의사의 영역을 넘어선, 신의 영역에 가까운 진단과 집도였다.
강현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다시 메스를 쥐었다.
“시간 지체됐어. 십이지장 가동술 마무리하고 복벽 닫는다. 민준아, 실 잡아.”
“예! 예, 교수님!”
임민준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수술실 구석에 주저앉아 있던 유상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자신을 경멸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3년 전의 은폐된 진실이 백강현의 메스 끝에서 완벽하게 해부되었다. 유상일의 외과 의사로서의 커리어는 오늘 이 수술실에서 완전히 종말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십이지장 부위를 봉합하고 복벽을 닫아 나갔다.
그의 오른손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정교하게 움직였다.
***
두 시간 뒤.
수술실의 붉은 ‘수술 중’ 표시등이 꺼졌다.
환자는 안정적인 바이탈 사인을 유지한 채 회복실(PACU)로 이송되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환자의 호흡은 일정했고, 모니터에 표시된 생존율은 이미 95%를 상회하고 있었다.
강현은 회복실 한편에서 수술 장갑을 벗어 폐기함에 던져넣었다.
손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떨어졌다. 뇌압 상승으로 인한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시야를 가리던 암점도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백 교수님.”
어느새 다가온 한채은이 캔 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유 과장의 과거 수술 기록을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까?”
강현은 커피를 받아 쥐었지만 따지는 않았다. 차가운 캔의 감각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억해 둔 것뿐입니다.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늘 일로 유 과장은 더 이상 병원에서 버티지 못할 겁니다. 수술실 CCTV 녹화본은 이미 원내 서버에 자동 저장되었고, 마취과 스태프들 눈이 몇 개인데 그 과실을 덮겠어요.”
한채은의 말대로였다. 유상일은 스스로 판 무덤에 갇혔다. 백강현을 무너뜨리기 위해 억지로 밀어붙인 수술이, 도리어 자신의 3년 전 치명적인 의료 과실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단두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강현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유상일은 그저 꼬리에 불과했다. 3년 전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손가락을 망가뜨린 거대한 한국대병원 카르텔의 배후. 그 정점에 서 있는 자는 따로 있었다.
그때였다.
*딸깍.*
회복실의 두꺼운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안으로, 극도로 절제된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뚜벅.*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매끄러운 검은색 수제 구두. 티 없이 빳빳하게 다려진 의사 가운을 걸친 사내.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기획조정실장 송우진이 회복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두 명의 법무팀 직원이 무거운 서류 가방을 든 채 조용히 뒤따랐다.
송우진의 시선이 회복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한 번 훑은 뒤, 이내 강현의 차가운 눈동자에 와서 닿았다.
“수술이 아주 훌륭하게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백강현 선생.”
송우진이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자의 여유와 함께, 뱀처럼 차가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