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급격한 뇌압 상승으로 10초 내 일시적 양안 실명 모드 진입.] [10…… 9…… 8……]
망막을 짓누르는 붉은색 카운트다운이 시야의 가장자리를 피처럼 붉게 물들였다. 귓가에서는 고압 증기기관이 폭발하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안구 뒷부분의 모세혈관들이 터져 나가는 박동성 통증에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교, 교수님? 눈에서 피가……!”
임민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아득한 심해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먹먹했다.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기압조차 뇌 속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7…… 6…… 5……]
눈앞의 수술 시야가 사방에서 밀려드는 먹구름에 침식당하듯 빠르게 지워져 갔다. 찢어진 복부 대동맥(Abdominal aorta)의 붉은 틈새와 그 주변을 고정하고 있는 차가운 금속 클램프의 형체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기 일보 직전이었다.
‘보이지 않는다면.’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맞부딪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뇌간을 울렸다. 오른손 끝에 닿아 있는 바늘홀더(Needle holder)와 왼손의 포셉(Forceps). 두 기구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손끝으로 본다.’
과거 천재라 불리던 시절, 수천 번, 수만 번을 반복했던 감각이었다. 대동맥벽(Aortic wall)의 두께는 고작 2밀리미터 안팎. 외막(Adventitia)에서 내막(Intima)을 관통해 반대편 혈관벽으로 바늘이 빠져나갈 때의 저항감은 손끝에 완전히 각인되어 있었다.
[4…… 3…… 2……]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빛 한 점 없는 완벽한 암전(Blackout). 이제 그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칠흑 같은 어둠과 기구 끝에서 전해지는 장력(Tension)뿐이었다.
“프롤린(Prolene) 4-0, 간격 1.5밀리미터.”
강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수술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강현의 오른손 손목이 부드럽게 회전했다. 바늘홀더 끝에 물린 굽은 바늘이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혈관벽을 파고들었다.
스윽.
바늘끝이 혈관의 외막을 뚫고 지나가는 끈적한 저항감이 손가락 끝 세포를 타고 척수를 지나 뇌로 정교하게 전달되었다. 0.1그램 단위의 손끝 압력 변화마저 시스템의 데이터처럼 뇌 속에서 수치화되었다.
‘여기서 45도 우측으로 꺾어서 상향.’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바늘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내막을 관통했다.
“포셉.”
강현이 왼손을 내밀자, 넋이 나간 채 그를 바라보던 임민준이 본능적으로 포셉을 든 손을 뻗어 빠져나온 바늘끝을 부드럽게 물어 올려 주었다.
바스큘라 아나스토모시스(Vascular anastomosis, 혈관 문합). 그것도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대동맥의 역방향 봉합(Retrograde suturing)이 시각적 보조 없이 오직 촉각과 근육 기억(Muscle memory)만으로 정교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타이(Tie).”
강현의 손가락이 실을 감아쥐고 미끄러졌다. 첫 번째 매듭이 혈관벽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매듭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해지며 찢어진 대동맥의 틈새를 빈틈없이 메웠다.
탄탄하게 조여드는 실의 장력이 손끝을 타고 안도감으로 변해갈 때쯤, 머릿속을 짓누르던 거대한 뇌압이 서서히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뇌압 지수: 85% -> 42%] [안구 내 압력 수치 안정화.] [일시적 실명 모드가 해제됩니다.]
커튼이 걷히듯 암흑이 걷히고 차가운 수술실의 무영등 불빛이 강현의 눈동자로 쏟아져 들어왔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던 시야가 빠르게 선명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피 한 방울 비치지 않는, 완벽하게 봉합된 복부 대동맥의 단면이었다. 마치 기계가 자수를 놓은 듯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푸른색 프롤린 실들이 혈관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클램프 오프(Clamp off).”
강현의 지시에 임민준이 떨리는 손으로 대동맥을 조이고 있던 클램프를 서서히 풀었다. 차단되었던 혈류가 거세게 밀려들며 혈관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단 한 곳에서도 피가 새지 않았다. 완벽한 무결점의 봉합이었다.
삐- 삐- 삐- 삐-.
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이 마침내 부드러운 박동음으로 바뀌었다.
[BPM: 82] [BP: 115/75 mmHg] [SpO2: 99%]
“……살았습니다.”
임민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과 강현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정말로 살려내셨습니다, 교수님.”
그 순간, 수술실 유리창 너머 참관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구두 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채은이었다. 그녀는 수술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마스크 위로 드러난 젖은 눈빛으로 강현을 응시했다. 그 눈동자에는 경외를 넘어선 일종의 전율이 서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감각만으로 혈관을 기워내던 강현의 손짓을 그녀는 참관실에서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무언가였다.
“백강현.”
하지만 감격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수술실 자동문이 거칠게 열리며 어두운 안색의 사내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외과 과장 유상일이었다. 그의 뒤로는 건장한 체격의 병원 보안요원 대여섯 명이 따라붙어 있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거리야!”
유상일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청결한 공기를 찢고 포효했다. 그의 얼굴은 질투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면허 대진의 놈이 감히 과장의 허락도 없이 수술실을 무단 점거하고 메스를 잡아? 이건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자 불법 침입이다!”
유상일은 강현이 완벽하게 살려놓은 환자의 바이탈 모니터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자신을 무시하고 기적을 행해버린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치워버려야 한다는 광기만이 가득했다.
“당장 이 자를 끌어내! 그리고 원내 보안팀은 경찰에 신고해라. 무단 의료 행위 및 병원 시설 무단 침입죄로 현행범 체포하도록!”
보안요원들이 험악한 기세로 강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임민준이 겁에 질려 강현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유상일의 살기 어린 눈빛에 짓눌려 주춤했다.
정작 당사자인 강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흘러내린 눈가의 핏자국을 수술 가운 소매로 덤덤하게 닦아낼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유상일 과장님.”
강현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차분해서 오히려 수술실 안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환자가 살았습니다. rAAA(복부대동맥류 파열) 환자가 말입니다. 과장님이 가망 없다며 영안실로 보내려던 그 환자가.”
“시끄러! 네까짓 대진의 놈이 환자를 살렸든 죽였든, 법적 권한이 없는 자의 시술은 그 자체가 범죄야! 한국대병원에서 네놈의 의사 생명은 오늘로 완전히 끝이다.”
유상일이 손가락질을 하며 악을 썼다. 그때, 강현의 곁에 서 있던 한채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빳빳한 서류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 의사 생명, 누가 끝낸다는 거죠?”
한채은의 서늘한 목소리에 유상일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한 교수! 당신 지금 미쳤어? 이 불법 행위자를 옹호하겠다는 건가? 당신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싶어?”
“뇌물이든 청탁이든, 유 과장님이 좋아하는 행정적 절차는 참 편리하죠.”
한채은은 조소 어린 미소를 지으며 서류 봉투에서 한 장의 문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유상일의 가슴팍에 세차게 내던지듯 집어던졌다.
착!
하얀 종이가 유상일의 가운을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유상일이 본능적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이게…… 뭐지?”
“읽어보시죠. 한글은 읽으실 줄 아실 테니.”
한채은이 팔짱을 끼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유상일의 시선이 종이 상단에 인쇄된 굵은 활자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한국대학교병원 임상연구소 초빙 연구 교수 임용 계약서]
그 아래에는 기획조정실장의 직인과 함께 법무팀의 검인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계약 시작일은 바로 ‘오늘’ 자정부터였다.
“이, 이게 어떻게…… 송 실장님이 이런 계약을 해줄 리가 없어!”
유상일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송우진 실장님이 서명하신 게 맞습니다.”
한채은이 한 발짝 다가서며 유상일을 내려다보았다.
“rAAA 환자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병원이 입을 이미지 타격, 그리고 백강현 선생이 가진 미국 특허 기술의 가치. 법무팀과 기획조정실에서 주식 호가 계산하듯 정밀하게 손익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물입니다. 유 과장님 한 사람의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병원이 수백억 원짜리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유상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손에 쥔 계약서를 찢어발길 듯이 움켜잡았다. 종이가 구겨지는 거친 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초빙 연구 교수는 진료 및 수술 권한을 합법적으로 부여받는다. 즉, 백강현이 방금 행한 수술은 소급 적용되어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는 ‘정당한 의료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환자를 방치하려 했던 유상일 자신만이 행정적, 도덕적 책임을 뒤집어쓰게 생긴 형국이었다.
“백…… 강현……!”
유상일이 이빨을 갈며 강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입술이 겉잡을 수 없이 바르르 떨렸다.
완벽한 판정승이었다. 강현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자신을 옭아매려던 유상일의 합법적 올가미를 더 거대한 합법적 방패로 단숨에 부숴버렸다.
그때였다.
정적을 깨고 강현의 시야에 기이한 빛의 연산이 다시 시작되었다.
[알림: 환자의 체내 잔류 수치 분석 중……] [위험: 인접 장기(Adjacent organ) 내 숨겨진 미세 병변 감지.]
삐이이이이-.
갑자기 들려오는 경고음에 강현의 눈동자가 좁혀졌다. 환자의 바이탈은 아직 정상이었지만, 시스템의 화면에는 불길한 붉은색 경고등이 조용히, 그리고 아주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경고: 십이지장 후벽(Duodenum posterior wall)에 지연성 파열(Delayed rupture) 징후 발생.] [예상 파열까지 남은 시간: 120초.]
강현의 손끝이 다시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 아직, 이 수술실을 나갈 수 없었다.
[위험: 십이지장 후벽(Duodenum posterior wall) 지연성 파열 임박.] [환자 생존율: 48% -> 22%] [경고: 방치 시 췌담즙 유출로 인한 급성 복막염 및 패혈성 쇼크 이행 확률 94%.] [잔여 시간: 112초.]
망막을 가득 채운 주황색 경고등이 빠른 속도로 점멸했다. 동시에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찌릿한 전기 자극과 함께 둔탁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등가교환의 법칙. 환자의 생존율이 깎여 나감과 동시에 강현의 손가락 마비 수치가 연동되어 상승하려 하고 있었다.
강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는 손가락을 가볍게 쥐었다 펴며 감각을 유지하려 애썼다.
“임 선생, 흡인기(Suction) 준비해.”
“예? 아, 예!”
임민준이 엉겁결에 흡인기 팁을 수술 시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유상일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뭐 하는 짓거리야! 대동맥 지혈 끝났으면 당장 복벽 닫고 나와! 초빙 교수가 아니라 총장 할아버지가 와도 과장의 수술 종료 명령을 거부할 권한은 없어!”
유상일이 강현의 앞을 가로막으려 발을 내딛는 순간, 강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핏발이 선 강현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친 유상일이 자신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멈춰 섰다.
인간의 온기가 거세된, 오직 사냥감을 노려보는 맹수 같은 눈빛이었다.
“후복막 열어서 십이지장 뒤쪽 확인합니다.”
강현의 목소리는 미풍조차 일지 않는 호수처럼 고요했다.
“미쳤어? 십이지장은 건드리지도 않았어! 교통사고 충격으로 대동맥만 터진 환자야. 멀쩡한 후복막(Retroperitonium)을 왜 열겠다는 거야? 이건 명백한 과잉 진료이자 의료 과실 유도야!”
“둔상(Blunt trauma) 환자입니다.”
강현이 메스를 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조용히 읊조렸다.
“핸들바 손상(Handlebar injury)으로 인한 감속 충격은 대동맥뿐만 아니라 척추 바로 앞을 지나는 십이지장 후벽에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현재 후복막 쪽에 미세한 담즙성 변색(Bile-stained discoloration)이 관찰됩니다. 유 과장님 눈에는 이게 안 보입니까?”
“뭐, 뭐……?”
유상일의 시선이 강현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대동맥 좌측, 십이지장 C-loop의 뒤편 구석진 곳이었다. 무영등 불빛 아래에서 극히 미세하게 황갈색 빛을 띠는 액체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하기 힘든, 1밀리미터 미만의 미세한 여출이었다.
[잔여 시간: 68초.] [오른손 마비 수치: 35% -> 42% 상승 중.]
손가락 끝의 감각이 빠르게 무뎌지고 있었다. 약지가 굳어 들어가며 바늘홀더를 쥐는 악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코허 가동술(Kocher maneuver) 시행한다. 가위(Metzenbaum scissors).”
강현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십이지장 우측의 후복막을 절개하고, 십이지장과 췌장 두부를 후복막벽에서 전방으로 박리해 들어갔다. 극도로 정교하고 빠른 가위질이었다.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대정맥(Inferior vena cava)이나 췌장관을 건드려 대량 출혈과 췌장액 유출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술기였다.
서걱, 서걱.
“아, 안 돼…… 저 자식이 미쳐서 장기를 다 찢어놓고 있어! 당장 끌어내!”
유상일이 보안요원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한채은이 그들의 앞을 차갑게 가로막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 수술 중인 써전의 손을 건드려 환자가 사망하면, 원내 규정이 아니라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적용될 겁니다. 그 책임, 유 과장님이 지실 겁니까?”
“한채은 당신……!”
그들의 대치가 무색하게, 강현의 손끝은 이미 십이지장 후벽의 깊은 바닥에 도달해 있었다.
[잔여 시간: 15초.] [위험 수치 최고조.]
강현이 십이지장 후벽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툭.
“……!”
숨겨져 있던 십이지장 후벽의 장막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찢어지며, 시커먼 담즙과 소화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미세 동맥에서 붉은 혈류가 솟구쳤다.
[BPM: 82 -> 105] [BP: 115/75 -> 90/55 mmHg] [위험: 십이지장 후벽 천공 및 후복막 대량 출혈 발생!]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멀쩡한 장기를 건드려서 천공을 만들었잖아!”
유상일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강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뿜어져 나오는 피와 소화액 너머, 십이지장 후벽 깊숙한 곳의 해부학적 구조에 고정되어 있었다.
망막 위로 시스템의 푸른색 분석 데이터가 어지럽게 나열되었다.
[알림: 출혈점 분석 중……] [특이 사항 감지: 환자의 복강 내 복강동맥(Celiac trunk) 분지 구조 변이 확인.] [경고: 일반적인 해부학적 구조와 상이함. 우측 부간동맥(Anomalous right hepatic artery)이 십이지장 후벽을 비정상적으로 관통하여 주행 중.]
강현의 호흡이 멈추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신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극히 드문 동맥의 해부학적 기형이었다. 이 변이를 모른 채 일반적인 방식으로 조작했다가는 십이지장뿐만 아니라 간으로 가는 혈류까지 완전히 차단되어 환자는 즉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변이…… 어디서 본 적이 있어.’
강현의 뇌리 속에 벼락같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 유상일의 수술 아카이브를 분석하던 중 발견했던, 3년 전 의료 사고 환자의 미기록 변이 기록물. 그 수술방에서 유상일이 완벽하게 실패하고 은폐했던 바로 그 기형적인 혈관 주행 경로와 소름 끼치도록 일치하고 있었다.
유상일의 과거 의료 사고를 증명할 열쇠가, 지금 이 환자의 뱃속에 고스란히 들어차 있었다.
강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상일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려 올라갔다.
“유 과장님.”
강현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차가운 정적을 뚫고 유상일의 귓전에 박혔다.
“이 환자의 혈관 구조…… 3년 전 과장님이 집도하셨던 그 환자와 똑같군요.”
그 순간, 유상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벽하게 가셔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