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목을 옥죄는 유상일의 손아귀는 끈적하고 축축했다.
악에 받친 외과 과장의 숨결이 강현의 뺨을 때렸다.
“이 손 놓으십시오.”
강현의 목소리는 낮고 평이했다. 소생실을 메운 모니터의 경고음 속에서도 그의 음성은 칼날처럼 곧게 뻗어나갔다.
“놓으라고? 네놈이 미쳤구나. 감히 대진의 따위가 내 구역에서 칼을 대? 이건 무면허 의료 행위다! 당장 메스 내려놓지 못해!”
유상일의 손가락끝에 힘이 더 들어갔다. 강현의 손목 피부가 하얗게 질려갔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마비의 전조였다. 시스템이 부여한 임시 복구 시간의 모래시계는 가차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남은 복구 시간: 03분 42초]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강현은 왼손을 뻗었다. 그의 왼손 검지와 중지가 유상일의 오른쪽 손목 안쪽, 요골 신경과 정중 신경이 교차하는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단순한 완력이 아니었다. 해부학적 구조를 완벽히 꿰뚫고 있는 외과의의 정밀한 압박이었다.
“윽!”
유상일이 단말마 같은 신음을 뱉으며 손가락을 풀었다. 신경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강렬한 통증에 유상일은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쥐며 뒤로 주춤거렸다.
강현은 그의 반응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오른손에 쥔 메스를 고쳐 잡으며, 차갑게 굳어버린 시선으로 유상일을 응시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응급환자에게 제공하는 응급의료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감면한다. 또한 한국대병원 격리 수술실 운영 세칙 제9조.”
강현의 입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행정 조항들을 뱉어냈다.
“주치의 혹은 담당 과장의 부재나 의학적 판단 지연으로 환자의 생명이 위독할 경우, 현장에 있는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료진은 긴급 우회 동의 절차를 통해 즉각적인 집도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 환자의 생존율은 5% 미만. 과장님의 대기 지시는 의학적 방치이자, 형법상 부작위 범죄에 해당합니다.”
“이, 이 교활한 놈이……!”
“소송을 원하신다면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다만, 그전에 이 환자가 사망할 경우 과장님이 짊어지셔야 할 형사적 책임의 크기부터 계산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유상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법률과 규정을 완벽하게 들이밀며 자신을 옭아매는 대진의의 기세에 압도된 탓이었다. 수술실 내의 간호사들과 인턴 임민준 역시 숨을 죽인 채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은 더는 유상일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석션, 대기.”
강현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서늘한 메스 끝이 환자의 명치 아래, 검상돌기(Xiphoid process) 바로 밑부분에 닿았다. 시스템이 망막에 그려 넣은 가상의 가이드라인은 정확히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었다.
스윽.
피부가 갈라지고 황색의 피하지방층이 드러났다. 출혈이 뿜어져 나오기 전, 강현의 손길은 이미 복막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민준아, 리트랙터 잡아.”
“아, 예! 예, 교수님!”
얼어붙어 있던 임민준이 급히 다가와 상처 부위를 벌렸다.
복막을 절개하는 순간, 검붉은 선혈이 분출했다. 복강 내부에 가득 차 있던 고압의 혈액이 대기를 만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강현의 수술 가운과 페이스 쉴드가 순식간에 붉은 얼룩으로 물들었다.
비명 같은 경보음이 소생실을 흔들었다.
[BPM: 142] [BP: 42/18 mmHg] [SpO2: 78%]
“석션! 더 깊이 넣어!”
강현의 외침과 함께 임민준이 흡인기 팁을 복강 깊숙이 밀어 넣었다. 쿨럭거리며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쏟아지는 혈액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수술 시야가 완전히 붉은 장막에 가려졌다. 육안으로는 대동맥의 위치는커녕 해부학적 구조물조차 구분하기 힘든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강현의 눈은 달랐다.
그의 망막 위로 입체적인 3D 혈관 지도가 겹쳐졌다. 붉은 피바다 속에서 유독 밝은 빛을 내며 맥동하는 거대한 줄기. 복부 대동맥(Abdominal aorta)이었다. 그리고 그 뒤쪽, 후복막 공간(Retroperitoneal space)에서 뿜어져 나오는 치명적인 균열이 선명하게 표시되고 있었다.
‘여기다.’
강현은 거침없이 손을 밀어 넣었다. 장기들을 옆으로 밀쳐내고, 대동맥 초입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스템의 경고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위험: 예상치 못한 혈관 주행 감지.] [수술 난이도 상승: 82% -> 89%]
강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손끝에 닿는 감각이 이상했다.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라면 대동맥 후벽에서 나와 척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허리동맥(Lumbar artery)의 기점이, 정상보다 약 2센티미터 위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게다가 혈관의 벽이 비정상적으로 얇고 구부러진 형태였다.
‘허리동맥의 해부학적 변이(Lumbar artery variation).’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기억이 스쳤다.
3년 전, 유상일이 집도하다가 테이블 데스(Table death)로 끝내고 조용히 묻어버렸던 판막 질환 환자의 차트. 당시 유상일은 단순 출혈로 사인(死因)을 기록했으나, 강현은 누락된 수술 기록의 미세한 파편에서 이 특이한 변이형 동맥의 궤적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유상일은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칼끝이 무엇을 건드렸는지조차 모른 채 환자를 죽였고, 그 과실을 덮기 위해 차트를 누락시켰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환자 역시 정확히 동일한 혈관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과장님.”
강현이 피가 끓어넘치는 복강 내부에 손을 고정시킨 채, 뒤에 서 있는 유상일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3년 전 하선우 환자 수술 당시, 후복막 접근 시 발생한 출혈의 원인을 끝내 찾지 못하셨던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뭐?”
유상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 환자는 허리동맥의 기점이 L2가 아닌 L1 상부에서 분지되는 극히 드문 변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3년 전 환자 역시 마찬가지였겠지요. 일반적인 가이드라인대로 블라인드 클램핑을 시도했다가는, 이 변이된 허리동맥을 찢어발겨 통제 불능의 대량 출혈을 유발하게 됩니다.”
“네가…… 네가 그걸 어떻게……!”
유상일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것은 단순한 경악이 아니었다. 자신이 깊숙이 묻어두었던 치부이자, 의사로서의 치명적인 무지가 백일하에 드러난 자의 공포였다.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변이된 혈관의 경로를 머릿속으로 완벽히 재구성했다. 시스템의 가이드라인이 수정된 궤적을 그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남은 복구 시간: 02분 10초]
시간이 없다. 손가락의 감각이 완벽할 때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수술실 입구의 유리창 너머.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채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대학병원 내부의 썩은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흐름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백강현의 움직임은 그녀가 아는 ‘손가락을 잃은 외과의’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속도가 나오지?’
한채은은 손을 뻗어 유리창을 짚었다.
피비린내 나는 복강 속에서, 강현의 오른손은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정교한 어류처럼 부드럽고도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마비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각도로 굽혀지며, 대동맥 초입을 정확히 박리(Dissection)해 나갔다.
보통의 서전이라면 몇 번이고 주저했을 어둠 속의 칼질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손끝의 촉각과 비정상적인 직관만으로 혈관을 찾아 들어가는 그 모습은, 경외감을 넘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클램프(Clamp).”
강현의 나직한 요구에 간호사가 재빨리 육중한 대동맥 클램프를 건넸다.
강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경고: 시스템 연산 부하 증가.] [뇌압 지수: 72%] [이명 강도: 중(Medium)]
삐이이이이ㅡ.
귓가를 찌르는 고주파의 이명이 뇌를 흔들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감각과 함께 눈앞의 시야가 일순 붉게 번졌다.
강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턱관절에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입안에서 고인 침을 삼키며, 그는 오른손에 쥔 클램프를 붉은 선혈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흔들리지 마라.’
자신의 뇌가 타들어 가더라도, 손끝만큼은 신의 영역에 머물러야 했다.
철컥.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는 묵직한 마찰음이 소생실에 울렸다.
정확히 변이된 허리동맥의 기점을 피해, 복부 대동맥의 상부를 완벽하게 차단(Clamping)하는 소리였다.
그 순간.
커어억, 하며 요란하게 피를 빨아들이던 석션 팁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복강을 가득 채우며 솟구치던 검붉은 피의 분출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수술실을 지배하던 극도의 혼란과 소음이 일순간에 정적으로 가라앉았다.
모두가 넋을 잃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BPM: 112 -> 98] [BP: 42/18 -> 85/50 mmHg] [SpO2: 92%]
바닥을 치던 혈압이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생명의 신호가 돌아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유상일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이제 공포를 넘어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단 2분이었다. 절개부터 대동맥 완벽 차단까지 걸린 시간은 미처 3분이 되지 않았다. 상급 종합병원의 그 어떤 베테랑 교수도 이 악조건 속에서 이토록 신속하고 완벽하게 클램핑을 성공해 낼 수는 없었다.
그것도 손가락이 마비되어 쫓겨났던 대진의의 손끝에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임민준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
“교, 교수님…… 지혈되었습니다! 혈압이 올라갑니다!”
강현은 요동치는 숨을 고르며 망막의 수치를 확인했다.
[환자 생존율: 15% -> 48%] [구조 포인트 획득: +500 SP] [오른손 마비 수치: 일시적 0% 유지]
겨우 한숨 돌린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찢어진 대동맥 벽을 봉합하는 가장 정밀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프롤린(Prolene) 4-0.”
강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승리에 도취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가 바늘홀더(Needle holder)를 쥐고 미세한 혈관 벽으로 손을 가져가려던 바로 그때였다.
쿵.
머릿속에서 거대한 망치가 내리치는 듯한 충격이 발생했다.
“아윽……!”
강현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흐르고 말았다.
[경고: 시스템 연산 최고조 도달.] [뇌압 지수: 85%] [안구 내 압력 수치 한계 돌파.]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안구 뒷부분의 모세혈관들이 터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양눈을 덮쳤다. 강현의 흰자위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교수님? 눈에서 피가……!”
임민준의 비명 같은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귓가에는 기차 경적 같은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고, 망막 위의 시스템 화면이 붉은색 경고등으로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위험: 등가교환 법칙에 따른 뇌 신경 과부하 발생.] [경고: 급격한 뇌압 상승으로 10초 내 일시적 양안 실명 모드 진입.] [10…… 9…… 8……]
눈앞의 수술 시야가 검은 장막에 침식당하듯 빠르게 어두워져 갔다. 반쯤 열린 대동맥의 붉은 틈새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