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귀를 찢는 하울링이 타원형 회의실의 높은 천장을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상일이 내리친 단상의 여진이 마이크를 타고 기괴한 진동으로 증폭되었다. "오늘부로 네놈의 의사 면허를 영구히 말소시키고, 다시는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주마!"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튀어나올 듯 백강현을 노려보았다. 단상을 짚은 그의 손끝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백강현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검은 눈동자가 유상일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강현의 왼쪽 시야 구퉁이에는 여전히 짙은 먹구름 같은 암점이 드리워져 있었다. 두개 내압 ICP 22mmHg. 뇌척수액이 뇌실을 압박하는 둔중한 박동이 관자놀이를 타고 전해졌지만, 강현의 표정은 석상처럼 단단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이미 감각을 잃은 채 굳어 있었지만, 그는 그 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어 숨겼다.

"백강현 선생."

징계위원장석에 앉은 기획조정실장 송우진이 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유상일의 광기 어린 고함과 대조적으로 극도로 차분하고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뼈를 깎아내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유상일 과장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전력이 완전히 차단된 비상 상황에서, 본부의 정식 승인도 없이 임의로 환자에게 메스를 댄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자 병원 행정 규정 제47조 3항 위반입니다. 게다가 예비 전력조차 확보되지 않은 암흑 속에서 뇌간 출혈 환자의 뇌실 천자(Ventricular puncture)를 감행했다니요. 이건 의술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실패했다면 환자는 그 자리에서 뇌탈출(Brain herniation)로 즉사했을 겁니다."

송우진의 얇은 입술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

"병원 평가 위원회와 법무팀의 검토 결과는 이미 끝났습니다. 백 선생의 집도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 혹은 살인 미수 혐의로 형사 고발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이에 대해 본인의 소명을 듣겠습니다. 대답해 보십시오."

질문이 떨어졌다. 회의실 안의 모든 눈동자가 강현에게 집중되었다.

징계위원들이 저마다 서류를 뒤척이며 비난 어린 속삭임을 주고받았다. 형사 고발, 면허 취소, 영구 제명이라는 단어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그들은 강현이 비굴하게 변명하거나, 혹은 유상일처럼 이성을 잃고 날뛰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째깍, 째깍.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정적을 찢었다.

10초. 20초. 30초.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실의 공기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저 등을 곧게 편 채, 자신을 심문하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뜯어볼 뿐이었다. 그의 무거운 침묵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었다. 상대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키는 기묘한 압박감이었다.

"백강현 선생? 질문을 듣지 못했습니까?"

한 징계위원이 신경질적으로 펜을 굴리며 재촉했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강현의 시선은 이제 송우진의 미간으로 향했다. 송우진의 입꼬리가 아 주 미세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1분.

"지금 징계위원회를 무시하는 겁니까? 이 자리가 장난 같아요?!"

유상일이 다시 참지 못하고 삿대질을 해댔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고요의 무게는 오히려 공격하는 자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텅 빈 허공에 부딪쳐 메아리치는 불쾌함. 그것은 발언권을 쥔 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종류의 고문이었다.

2분.

강현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릿속의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조용히 명멸하고 있었다.

[오른손 마비 진행률: 95%] [경고: 뇌 신경 부하 임계치 도달. 무리한 시스템 연산 시 영구적 마비 위험.]

손가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저림 속에서도, 강현은 철저하게 평정을 유지했다. 침묵은 적들의 조급함을 먹고 자라는 가장 확실한 덫이었다.

"대답을 안 하겠다는 거군."

유상일이 핏대를 세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붉은빛으로 터질 듯했다.

"하긴, 무슨 변명을 하겠어! 네놈은 3년 전에도 그랬지.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심방 후벽을 찢어 발겨 죽여 놓고는, 시스템 핑계를 대며 도망쳤잖아! 그 쓰레기 같은 버릇이 어디 가겠어? 이번에도 정전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영웅놀이를 하려 한 거지? 어?!"

유상일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침묵을 깨부수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밑천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 뇌간 출혈 환자도 마찬가지야! 네놈이 멋대로 손대지 않았다면, 우리가 매뉴얼대로 안전하게 조치했을 거다! 수술실에 응고 인자 약제조차 제대로 세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메스부터 들이대는 게 써전이 할 짓이냐? 어?!"

그 순간, 강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유상일은 눈치채지 못했다. 흥분에 겨워 쏟아낸 자신의 말속에 지독한 올가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응고 인자 약제라뇨?"

강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3분 만에 터져 나온 그의 목소리는 낮고, 지나치게 선명하여 회의실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유 과장님. 방금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뭐, 뭐가 흥미로워!"

"수술실에 응고 인자 약제가 세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유상일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그, 그야 비상 정전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모든 약제 공급이 차단되었을 것이고..."

"아닙니다."

강현이 품 안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화면에는 노란색 경고등이 켜진 약제실 출고 로그와 수술실 장비 가동 기록이 실시간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이브리드 특수 수술실의 비상 발전기 구동 로그입니다. 전력이 차단된 직후, 수술실 내부의 구형 백업 서버는 작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구형 백업 서버 드라이브 안에는 3년 전 사고 원본 로그뿐만 아니라, 이번 정전 당시의 약제 카트 개폐 기록도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강현의 손가락이 화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전이 발생하기 정확히 5분 전. 약제실 관리자 계정으로 '피브리노겐(Fibrinogen)'과 '프로트롬빈 복합체(PCC)' 등 핵심 응고 인자 약제들의 출고가 '시스템 오류'를 이유로 강제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취소 명령을 내린 것은 외과 과장실의 IP였습니다."

"이, 이건...!"

유상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셔갔다.

"당신은 정전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혹은 정전 상황을 이용해 환자가 수술실에서 사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고의로 응고 인자 약제 공급을 차단한 겁니다. 수술 중 대량 출혈이 발생했을 때, 응고 인자가 없다면 환자는 손쓸 틈도 없이 DIC(전신성 혈관내 응고장애)로 사망하니까요."

강현의 목소리는 법관의 판결문처럼 냉혹했다.

"3년 전에도 똑같았습니다."

강현의 시선이 유상일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3년 전 사망한 환자 강태윤 씨. 유상일 과장님은 그 환자의 우심방 후벽에 아주 특이한 해부학적 변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수술 전에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우상대정맥(SVC)과 우심방 사이를 관통하는 2밀리미터 두께의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 변이."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다 못해 깨져나갈 듯 팽팽해졌다.

"당신은 그 변이 혈관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메스를 대어 대량 출혈을 일으켰고, 당황한 나머지 Satinsky clamp를 잘못 채워 환자의 우심방을 완전히 파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당시 대진의로 들어가 있던 제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죠."

"위, 위조야! 날조라고!"

유상일이 비명을 지르며 송우진을 바라보았다.

"실장님! 저 사기꾼 놈의 입을 막으십시오! 저건 다 가짜입니다! 3년 전 기록은 이미 병원 전산망에서 영구 삭제 처리되었습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소리였다. '영구 삭제 처리되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삭제해야 할 '진실'이 존재했음을 자백하는 꼴이었다.

송우진의 눈빛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그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 개인 태블릿을 빠르게 두드렸다. 손끝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유상일 과장, 당장 입 닫으십시오. 더 이상의 발언은 본인과 병원 모두를 파멸로 이끕니다. 침묵을 지키고 법무팀의 대응을 기다리세요.]

메시지를 연달아 전송했지만, 흥분으로 가득 찬 유상일은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오직 강현을 찢어 죽일 듯한 기세로 단상을 들이받고 있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실장님."

강현이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주머니에서 작은 무선 스위치 단추를 꺼냈다.

그것은 하이브리드 12층 특수 수술실 내부 구형 백업 서버와 연결된 독립형 전송 스위치였다. 3년 전 사고 원본 로그와, 유상일이 은폐하려 했던 강태윤 환자의 심장 후벽 부동맥 변이 이미지 원본이 담긴 데이터가 이 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으로 즉시 송출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당신들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그 합법적인 족쇄는, 처음부터 이 진실의 데이터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녹슨 쇠사슬에 불과했습니다."

강현이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스위치 단추를 꾹 눌렀다.

회의실 정면에 설치된 150인치 대형 LED 스크린이 일순간 점멸하더니, 푸른빛의 데이터 로그 파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었다. 3년 전 수술실 내부의 바이탈 모니터링 원본 그래프, 그리고 유상일의 관리자 ID로 집도 기록을 강제 삭제한 시간대별 IP 로그,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가 화면 가득 떠올랐다.

[우심방 후벽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 존재 확인 - 집도자 유상일 인지 기록]

그리고 이어서 흘러나온 것은 서늘한 음성이었다.

- "응고 인자 카트는 일단 대기시켜. 백강현이가 집도 끝낸 다음에 넘겨줘도 안 늦어. 알아들었어?"

유상일의 목소리였다. 11화 전 정전 사태 당시, 수술 간호사에게 의도적으로 약제 누락을 지시하는 통화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회의실 전체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이, 이거 꺼! 당장 끄라고!"

유상일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대형 스크린 아래의 콘센트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품위는 이미 바닥에 팽개쳐진 지 오래였다. 비이성적인 촌극을 벌이며 전선 코드를 뽑으려 허둥지둥하는 그의 뒷모습은 추하기 짝이 없었다.

백강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무선 마이크의 구동 스위치를 올렸다.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는 마찰음이 나며,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거대하게 회의실을 지배했다.

"유상일 과장님."

강현의 목소리에 유상일의 몸이 굳었다.

"코드를 뽑아도 소용없습니다. 이 회의실의 모든 시스템은 이미 외부 서버와 동기화되어 실시간으로 복제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강현이 서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송우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모든 것을 묵인하고 승인한 분이 누구인지, 이제 밝힐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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