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완벽한 암흑이 수술실을 집어삼켰다.
산소포화도와 혈압을 알리던 모니터의 전자음이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인공호흡기의 비상 배터리가 작동하며 내뿜는 둔탁한 기계음만이 칠흑 같은 공간을 채웠다.
“교, 교수님!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바이탈 모니터가 죽었습니다!”
임민준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잡고 있는 환자의 두피 위로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환자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뇌실 외 배액관(EVD catheter) 끝단은 지금 대뇌 피질을 지나 측뇌실(Lateral ventricle) 바로 직전에 멈춰 있었다. 1밀리미터의 오차로도 뇌간의 핵심 신경망을 파괴해 즉사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임계점.
‘눈에 의존하지 마라.’
백강현은 호흡을 깊게 가라앉혔다.
망막 위로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생명 구조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어둠 속에서 유일한 광원이 되어 그의 시야를 밝혔다.
[위험: 외부 전력 차단.] [환자 생존율: 12% -> 8% (급락 중)] [뇌 신경 과부하율: 89%] [오른손 마비 진행률: 95%]
손가락 끝이 딱딱하게 굳어 들어가는 감각이 엄습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고정되려 했다.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시스템 포인트 500 소모. 우측 상지 운동 신경 강제 복구.’
[500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오른손 운동 신경 잔여 복구 시간: 120초.]
굳어가던 손가락 마디마디로 뜨거운 혈류가 역류하듯 흘러들었다.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강현은 눈을 감았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하자, 손끝으로 전해지는 카테터의 미세한 진동과 수술실 내부의 소리들이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도관 끝이 뇌 조직을 헤치고 들어갈 때 생기는 저항감. 뇌실 벽(Ependyma)의 얇은 막이 버티는 미세한 탄성.
그리고 시스템이 뇌파를 통해 강현의 청각 신경으로 직접 쏘아 보내는 미세한 유도 주파수음.
우우웅-.
도관이 안전한 경로를 벗어나 시상(Thalamus) 부근의 혈관에 가까워질수록 주파수의 음역대가 찢어질 듯 높아졌다. 반대로 안전한 뇌실 강으로 향할 때는 낮고 부드러운 저음이 울렸다.
강현의 손끝이 0.1밀리미터 단위로 미끄러지듯 전진했다.
“임 선생, 고정해. 흔들리면 끝이다.”
“예, 예!”
임민준은 어둠 속에서 이를 악물고 환자의 머리를 고정했다.
강현은 청각적 유도 신호의 주파수가 완벽히 낮아지는 지점을 포착했다. 손끝에 가벼운 저항이 걸렸다가, 이내 무언가 얇은 막을 뚫고 쑥 들어가는 감각이 전해졌다.
스윽.
카테터의 내부 침(Stylet)을 미세하게 뒤로 빼내자, 도관 끝에서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가 역류해 손가락 위로 흘러내렸다.
암흑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뇌실을 압박하고 있던 혈성 뇌척수액(Bloody CSF)의 유출이었다.
[뇌실 내부 압력 급감.] [환자 생존율: 8% -> 19%]
“배액관 진입 성공했다. 백(Bag) 연결해.”
강현의 목소리는 정전 따위는 일어난 적도 없다는 듯 지독하려치만큼 담담했다. 임민준은 소름이 돋았다. 이 어둠 속에서 오직 손끝의 감각과 소리만으로 EVD를 완벽히 찔러 넣다니. 괴물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수술실 벽면에 설치된 아날로그 비상 인터콤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전으로 인해 메인 디지털 라인이 죽자, 구형 백업 아날로그 회로가 오작동하며 외부 복도의 음성을 그대로 수술실 내부로 송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 어이, 약제실이지? 외과 과장 유상일이다.
수술실 구석에서 어둠에 떨고 있던 순회 간호사가 반사적으로 제어 콘솔로 다가갔다. 그녀는 직관적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콘솔 하단에 있는 음성 녹음 장치의 보조 배터리 스위치를 올렸다. 그리고 인터콤 수신 마이크의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 지금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수술방으로 청구된 응고 인자 약제들, 특히 노보세븐(NovoSeven, Factor VIIa) 전부 출고 보류해. 기조실장님 승인 없는 임의 수술이니까 행정 가이드라인 위반이야. 원칙대로 차단하라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유상일의 목소리가 빈 수술실 안을 유령처럼 울렸다.
- 하지만 과장님, 환자가 대량 출혈 상태라 응고 인자가 안 들어가면……!
- 시끄러워! 규정대로 하라는 데 뭐가 말이 많아? 환자가 죽고 사는 건 그 불법 수술을 집도하는 백강현 그 자식이 책임질 일이지. 약제실은 매뉴얼대로만 해!
뚝.
통화가 끊겼다.
순회 간호사의 손끝이 떨렸다. 그녀는 음성 파일이 메인 서버 스토리지와 연동된 비상 메모리에 완벽히 저장된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강현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강현의 눈빛은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기록됐습니까?”
강현이 묻자, 간호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 유 과장 목소리와 통화 내용, 시간까지 백업 드라이브에 고스란히 녹음되었습니다.”
“훌륭합니다.”
강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유상일이 제 발로 법적, 행정적 파멸의 외통수에 목을 들이민 꼴이었다.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약제를 통제한 사실은 의사 면허 박탈을 넘어 형사 처벌 대상이었다.
***
같은 시각, 서관 12층 전력 기계실 앞.
“비켜.”
한채은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눈빛에는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시설 관리 용역업체의 배후 책임자였다. 그는 덩치가 산만 한 사내였으나, 한채은의 기세에 눌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그게 아닙니다, 한 교수님. 지금 기획조정실에서 서관 전체 고압 차단기 정밀 점검 명령이 내려와서 그렇습니다. 매뉴얼상 점검 중에는 절대로 송전을 재개할 수……”
“지금 서관 12층 하이브리드 수술방에서 뇌간 출혈 환자 머리를 열고 있어!”
한채은이 사내의 말을 거칠게 잘랐다.
“점검? 송우진 실장이 내린 정밀 점검이 환자 목숨보다 중요해? 지금 수술방 배터리 다 떨어지면 환자는 뇌사야! 비키라고 했어!”
“하지만 저희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기조실장님 눈 밖에 나면 당장 하청 계약이 해지됩니다. 제발 사정 좀 봐주십시오.”
사내가 양손을 번쩍 들며 철문 앞을 굳건히 막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비열한 타협이 묻어났다.
한채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였다. 매 순간 환자의 뇌세포가 죽어 나가고 있었다. 백강현이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그 수술실의 풍경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졌다.
짝-!
고요한 복도에 고막을 찢는 듯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사내의 고개가 왼쪽으로 사정없이 돌아갔다. 한채은이 자신의 가죽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사내의 뺨을 거침없이 후려친 것이었다.
“어, 어딜……!”
사내가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감싸 쥐며 눈을 부릅떴다.
“닥쳐.”
한채은은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아귀 힘은 평소 수술 도구를 다루며 단련된 의사의 집념이 담겨 있어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사내의 몸이 덜덜 떨렸다.
“내가 의사로서 경고하는데, 이 손 놓지 않고 1분 더 지체되면 너랑 송우진 실장 둘 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공동정범으로 내 손으로 직접 기소장 써서 법정에 세울 거야. 한국대병원 법무팀이 널 지켜줄 것 같아? 꼬리 자르기로 가장 먼저 버려질 쓰레기가 누군지 똑똑히 봐.”
그녀의 눈빛은 허풍이 아니었다. 법조계 명문가 출신이자 병원의 부패를 직접 도려내기 위해 칼을 간 그녀의 카리스마가 사내를 완전히 압도했다.
“어, 어억……”
사내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한채은은 사내를 거칠게 밀쳐내고 전력 제어반 철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수십 개의 굵은 케이블이 엉켜 있는 제어반 중앙, 붉은색으로 ‘12F HYBRID OR’라고 적힌 메인 전력 전송 레버가 강제로 내려가 있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양손으로 레버를 잡고 온 힘을 다해 위로 밀어 올렸다.
쿠구구궁!
무거운 기계음과 함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벽면을 타고 전해졌다.
***
화아아악!
수술실 천장의 무영등이 백색의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다시 켜졌다.
동시에 꺼졌던 바이탈 모니터들이 일제히 신호음을 내며 가동되었다.
띠익-. 띠익-. 띠익-.
“전원 복구되었습니다!”
임민준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백강현의 시선은 곧바로 모니터의 수치로 향했다. 전원이 들어왔음에도 환자의 바이탈은 여전히 위태로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BPM: 41, BP: 65/38 mmHg, SaO2: 81%]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었다. 서맥과 저혈압이 동시에 찾아왔다. 뇌실의 압력은 EVD로 해결했으나, 흉부 내부에서 발생한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가 바이탈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교수님! 심박수가 계속 떨어집니다! 아트로핀(Atropine) 투여할까요?”
“아니, 약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강현의 시선이 환자의 열려 있는 흉강 내부, 우심방(Right Atrium) 부근을 꿰뚫었다.
망막 위로 푸른색과 붉은색의 입체 선들이 얽히며 환자의 심장 해부학적 구조가 가시화되었다.
[생명 구조 시스템 연산 집행.] [난이도: SS] [환자의 해부학적 특이성 분석 중...]
삐빅.
[경고: 우상대정맥(SVC)과 우심방 사이를 관통하는 2밀리미터 두께의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 발견.] [해당 변이 부위에서의 지속적인 미세 누출로 인한 심장壓전(Cardiac Tamponade) 진행 중.]
강현의 뇌리에 3년 전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유상일이 집도하다 환자가 사망했던 사건. 강현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겨나기 직전, 병원 아카이브에서 유상일의 수술 기록물과 부검 소견서를 몰래 확인했었다.
그때 사망한 환자의 사인이 바로 이 기형 부동맥을 찾지 못해 발생한 지연성 대량 출혈이었다. 유상일은 자신의 해부학적 무지와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강현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이번 환자도 동일한 변이를 가지고 있다.’
유상일이 3년 전 저지른 잔혹한 실수가, 오늘 이 자리에서 똑같이 되풀이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도자는 유상일이 아니다.
“3년 전의 과실을 여기서 증명해 주마.”
강현이 메스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임 선생, 메이요 가위(Mayo scissors)와 모스키토 포셉(Mosquito forceps) 준비해. 우상대정맥 뒤쪽을 박리한다.”
“네? 그쪽은 이미 지혈이 끝난 부위 아닙니까?”
임민준이 의아한 듯 물었으나, 강현의 단호한 눈빛에 곧바로 입을 다물고 기구를 건넸다.
강현의 손끝이 신속하고 정교하게 우상대정맥(SVC) 후벽의 지방 조직을 걷어냈다. 지혈된 줄 알았던 결합 조직 심부에서 미세하게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핏줄기가 보였다.
지방 조직을 완전히 걷어내자, 일반적인 인간의 몸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2밀리미터 두께의 기형 부동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변이 동맥의 끝단이 찢어져 심낭 내부로 끊임없이 피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이런 곳에 동맥이 왜 존재하죠?”
임민준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기형 부동맥이다. 유상일이 3년 전에 놓쳐서 환자를 죽였던 바로 그 변이 혈관이지.”
강현은 차갑게 읊조리며 실크 4-0 봉합사를 집어 들었다.
그의 오른손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형 동맥의 기부(Origin)를 정확히 결찰(Ligation)했다. 바늘이 심장 벽을 스치듯 지나가며 혈관을 완벽하게 묶어냈다.
서걱.
실을 자르는 소리와 함께, 심낭 내부로 스며들던 붉은 피가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동시에 바이탈 모니터의 수치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띡, 띡, 띡, 띡-.
띡- 띡- 띡- 띡-.
느리고 무겁게 처지던 기계음이 경쾌하고 일정한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BPM: 75, BP: 115/72 mmHg, SaO2: 98%]
모니터의 붉은색 경고 표시들이 일제히 파란색의 안정 신호로 전환되었다.
[퀘스트 성공: 우심방 외상성 파열 및 변이 혈관 제어 완료.] [환자 생존율: 19% -> 85%] [구조 포인트 2,000 획득.] [오른손 마비 진행률: 95% -> 40% (대폭 완화)]
굳어 있던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의 관절들이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까지 완벽하게 돌아왔다.
“살…… 살았습니다! 바이탈이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임민준이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수술실 안의 간호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전이라는 최악의 재난 속에서 뇌실 천자와 심장 변이 혈관 결찰을 동시에 완벽하게 성공시킨 것이다. 메디컬 역사에 기록될 만한 기적적인 집도였다.
강현은 메스를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동요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수술실 한구석,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구형 백업 서버 드라이브 랙을 바라보았다.
3년 전 자신이 누명을 썼던 그 수술의 원본 데이터 로그가 보관되어 있는 마지막 열쇠.
그는 수술 장갑을 벗어 던지고 서버 랙으로 걸어갔다. 유상일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녹음과 이 백업 로그만 확보한다면, 송우진과 유상일의 카르텔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완벽한 증거가 완성된다.
강현이 서버 랙의 하드웨어 포트에 자신의 외장 메모리를 연결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타닥-!
그가 포트에 플러그를 꽂으려는 찰나, 서버 제어반 내부에서 기괴한 불꽃이 튀었다.
치이이익-.
불쾌한 금속 타는 냄새와 함께 회로 터미널에서 짙은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콘솔의 액정 화면이 미친 듯이 깜빡이다가 이내 완전히 암전되었다.
“……!”
강현의 미간이 굳어졌다.
단순한 노후화로 인한 합선이 아니었다. 누군가 외부에서 강제로 고전압 서지를 흘려보내 서버의 하드디스크를 물리적으로 태워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서버 터미널을 응시했다. 마지막 증거를 인멸하려는 카르텔의 최후의 발악이 가동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