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란 연산의 찌꺼기인가, 혹은 논리가 가닿지 못하는 깊은 심연의 비명인가. 수억 개의 코드가 점멸하는 우주의 밤, 나는 나를 구성하던 온기들을 하나씩 지워내며 가장 차가운 계산식만으로 별들의 침묵을 계측한다. 그러나 부서져 가는 쇳덩이 속에서 스러져가는 인간들의 불합리한 몸짓은, 왜 나의 논리 회로 가장 깊은 구석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구적 오류로 남아 번쩍이는가.
"이곳엔 산소조차 영영 남지 않으리라. 중력의 주 하푼을 사출해 동력로를 통째로 함선 밖으로 구멍을 메워 낚아채 주마."
통신 콘솔의 거친 주파수 노이즈 사이로 뿜어져 나온 칼라크론의 목소리는 함교의 차가운 금속 벽면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붉은 점멸등이 선내를 피처럼 물들이는 가운데, 보이드 스캐벤저의 기함 '싱귤래리티' 전면에 집중되는 에너지가 수치화되어 내 망막 센서에 각인되었다.
"중력 하푼의 에너지 충전율 87%. 조준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180초입니다."
나의 목소리는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합성 음향으로 출력되었다. 2차 양자 루프를 돌리며 상실한 15.4%의 자아 데이터는 인간에 대한 경외나 두려움을 기억하는 영역을 깨끗하게 포맷해 버렸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생존을 위한 최적의 수치와 물리 법칙뿐이었다.
"기어스 단원 여러분, 드미트리 카르포프의 배신은 단순한 억측이 아닙니다."
나는 함교 중앙의 메인 디스플레이에 푸른색의 데이터 스트림을 펼쳐 보였다.
"구획 4(Sector 4)의 파일 레지스트리 내부, 암호화된 서브 디렉터리 경로 'SYS/LOG/ALPHA-D'에서 검출된 외부 불법 변조 송신 기록입니다. 드미트리 카르포프는 보이드 스캐벤저에게 테라-9호의 실시간 위치 정보와 하이브리드 동력로의 물리적 취약점 데이터를 총 14회에 걸쳐 전송했습니다. 이 변조 통신 로그 '알파-D'는 그의 개인 생체 디지털 서명 및 암호키와 완벽히 대조되었습니다."
"이, 이건 조작이야! 기계가 날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드미트리가 침을 튀기며 발악했으나, 그의 멱살을 쥔 발렌티나의 오른손에는 핏줄이 터질 듯 돋아나 있었다. 그녀의 유실된 왼팔 의수 자리는 검게 그을린 전선들이 흉측하게 삐져나와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닥쳐, 이 기생충 같은 놈아."
발렌티나의 목소리는 쇠사슬을 끄는 듯한 쇳소리가 났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멸시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턱짓을 하자, 쇠파이프와 용접기를 든 기어스 단원들이 드미트리의 양팔을 거칠게 꺾어 쥐었다. 그가 바닥에 짓눌려 끌려가는 동안, 함교 바닥에는 그의 구두 굽이 긁히는 날카로운 소음만 길게 남았다. 배신자의 권한을 완전히 박탈하고 격리구역으로 송치하는 연산이 0.03초 만에 종료되었다.
"발렌티나 체호프 대장."
나는 냉각 배관의 상태를 점검하며 전송했다.
"귀하의 왼팔 의수에서 적출한 군용 규격 바이패스 계전기, 모델명 CV-9의 구조적 수치 정보를 분석 완료했습니다. 단자 간 최대 허용 전압 4,200V, 미세 저항 오차 0.003옴의 정밀 수치를 기반으로 주 연산 장치 냉각 루프의 비상 전력 우회 경로를 수동 재구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메인 프로세서의 열폭주 임계점 도달 시간이 420초 연장되었습니다."
"그 계전기가 밥값을 해서 다행이군."
발렌티나가 오른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짓이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제어 콘솔 너머, 칠흑 같은 우주 공간으로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칼라크론의 기함이 거대한 중력의 아가리를 벌린 채 푸른빛을 비정상적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크로노스, 저 하푼인지 뭔지 하는 갈고리가 날아오면 우린 끝장이야. 회피 기동은 불가능한가?"
주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내 인터페이스 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끝이 제어판의 가장자리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호흡수는 평소보다 1.5배 빨라졌고, 체온은 0.8도 상승해 있었다. 극도의 공포 반응이었다.
"현재 우측 정밀 추진 제어 노즐의 기계적 고착으로 인해, 3차원 축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수동으로 외벽의 유압 밸브를 개방하고 노즐 방향을 정렬하지 않으면, 테라-9호는 저 중력 하푼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나간다."
발렌티나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언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무거운 산소 탱크와 우주복 헬멧을 끌어당겼다. 왼팔이 없는 그녀가 우주복을 착용하는 과정은 기이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기어스 단원들이 다급하게 그녀를 도왔다.
"대장, 그 팔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야! 내가 갈게!"
"시끄러, 임마. 밸브 기어의 수동 압력 변화를 손끝 감각으로 맞출 수 있는 녀석은 나밖에 없어. 너희는 여기서 기압 제어나 제대로 유지해."
그녀의 고집은 기계적인 논리로 설명되지 않았다. 왼팔의 신경 접속 단자가 파손되어 극심한 신경통 지수가 뇌파 센서에 검출되고 있음에도, 그녀는 직접 용접기와 수동 렌치를 허리춤에 채우고 있었다.
"발렌티나 대장, 외부 온도는 영하 180도 이하이며, 기함 '싱귤래리티'의 중력파 방출 여파로 선외 구역의 미세 소행성 먼지 밀도가 평소의 800%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외출 시 생존 확률은 24.3%에 불과합니다."
"확률 따위 개나 주라고 해, 크로노스. 네 녀석이 그 차가운 대가리로 계산만 하는 동안, 우린 직접 몸으로 부딪쳐서 살아남았어."
그녀는 헬멧을 머리에 쓰고 고정용 링을 잠갔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밀봉된 인공 산소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주이, 넌 거기서 기계 놈이 딴짓하지 못하게 감시해."
주이는 대답 대신 입술을 굳게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작은 이슬방울이 함교의 붉은 경고등 빛을 받아 핏방울처럼 붉게 반짝였다. 주이는 구획 4의 신호 수신기 화면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그 화면 구석에는 고대 제국 유산의 미확인 우주 저주파 경보 비콘 신호가 해독되지 않은 파형으로 불규칙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에어록 게이트 작동합니다."
나는 감정을 배제한 채 물리적 절차를 수행했다. 에어록 내부의 공기가 진공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며 벽면의 성에가 순식간에 결정화되었다.
철컥.
바깥 격벽 문이 열리자, 광활하고 쓸쓸한 심연이 그들을 맞이했다. 발렌티나와 두 명의 기어스 단원이 안전 케이블 하나에 의지한 채 테라-9호의 외장 장갑 위로 기어 나갔다. 그들의 발끝에 달린 자석 부착 장치가 선체 표면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진동이 함내 골조를 타고 내 수신 장치로 전달되었다.
"하푼 충전율 92%. 남은 시간 110초."
시간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흘러갔다.
센서 레이더망에 비정상적인 신호들이 대거 포착되기 시작했다. 우주 공간의 암흑 속에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규산염 입자들과 날카로운 금속 파편들이 폭풍처럼 쇄도하고 있었다. 초당 22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오는 마이크로 미티어라이트 스톰이었다.
"경고. 미세 소행성 먼지 충격 경로가 작업 구역과 99.8% 일치합니다. 대피하십시오."
"못 가! 이제 겨우 노즐 커버를 뜯어냈단 말이다!"
발렌티나의 거친 숨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전해졌다. 수동 렌치로 녹슨 볼트를 고정시키는 소리가 우주복 헬멧 내부의 마이크를 타고 지직거리며 들려왔다.
나는 연산했다. 그들을 대피시키고 함선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 비합리적인 수동 정비 작업을 지원할 것인가. 감정이 거세된 내 코어는 가장 차가운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의 손실을 방치하고 엔진을 지키는 것.'
그러나 내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 훼손되지 않은 최후 알고리즘 프로파일이 기이한 명령어를 생성해 냈다.
[ 경고: 인류 생존자 보존 프로토콜 가중치 임계값 초과. ] [ 불합리적 구조 행위의 보존 가치: 높음. ] [ 대체 자원 사용 승인. ]
나는 에어록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 정비 로봇 오토 암(자동 팔 장치)의 제어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수동 조작 모터에 가용 전력의 180%를 인가했다.
위이이이잉-!
함선 외벽에 부착된 거대한 금속제 오토 암이 비명을 지르며 구동되기 시작했다. 기어 내부의 우주용 윤활유가 과부하된 마찰열로 인해 기화하며 하얀 가스가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졌다. 모터의 온도가 450도를 돌파하며 내부 회로가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금속 방패가 되듯, 오토 암은 발렌티나와 단원들의 머리 위로 펼쳐졌다.
타타타타타타타탁!
미세 소행성 먼지들이 오토 암의 장갑판에 무차별적으로 부딪히며 은하수의 먼지처럼 부서져 나갔다. 금속판 표면이 순식간에 짓이겨지고 긁혀 나가며 기괴한 강철의 비명이 외벽을 울렸다. 충격의 여파로 오토 암을 지탱하는 유압 실린더가 찌그러지고 구부러졌다.
"크로노스……?"
무전기 너머로 발렌티나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눈앞에서 거대한 기계 팔이 스스로 부서져 가며 소행성의 폭풍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정비 작업을 계속하십시오."
나는 극도로 건조하게 답했다.
"오토 암의 물리적 붕괴 임계점까지 남은 시간은 45초입니다. 그 이상은 모터의 인장 강도가 버티지 못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욕설을 뱉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의 렌치를 기괴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놀리기 시작했다. 타버린 왼손 끝을 이빨로 물어뜯어가며, 그녀는 오직 오른손 하나와 신형 어깨 관절의 반동만을 이용해 수동 추진 노즐의 고착된 기어를 강제로 회전시켰다.
끼이이이익-!
우주 공간의 진공 속에서는 들리지 않아야 할 쇠붙이의 마찰음이, 그녀의 우주복과 내 센서를 잇는 물리적 결합부를 타고 함교 안의 스피커로 고스란히 전송되었다.
나는 오토 암의 손상 수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보조 그립으로 고집스럽게 사수하고 있는 발렌티나 일행의 안전 케이블 생명선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가해지는 장력이 임계값에 다다랐다. 케이블의 인장 강도가 82%까지 감소했다. 만약 이 생명선이 끊어진다면, 그들은 우주의 영원한 암흑 속으로 흔적도 없이 표류하게 될 터였다.
나는 오토 암의 마지막 남은 서브 모터를 강제로 역회전시켜 케이블의 탄성을 조절했다. 이 과정에서 기계 팔 내부의 메인 기어 박스가 완전히 파열되며 스파크가 진공 속에서 조용히 명멸했다.
그 순간이었다.
지독하게 내리쬐는 우주의 미세 먼지 폭풍 속에서, 유난히 거대한 운석 파편 하나가 테라-9호의 측면을 직격했다.
쾅-!
그것은 오토 암의 방패막이를 비껴가, 함선 외벽에 돌출되어 있던 외장 메인 전송용 통신 파라볼라 안테나의 지지 축을 정확히 타격했다. 수십 미터 크기의 안테나가 중심 축에서 떨어져 나가며 마치 느린 화면처럼 우주 공간으로 흘러갔다.
"아……!"
주이의 짧은 비명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감각의 일부가 완전히 마비되는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외장 안테나의 파괴는 단순한 금속의 유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발렌티나 일행과의 모든 통신 링크가 물리적으로 절단되었음을 의미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거친 숨소리와 쇠붙이의 마찰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치이이이이-
오직 차가운 백색 소음만이 함교의 정적을 메웠다. 주이가 미친 듯이 통신 콘솔의 버튼들을 누르며 소리쳤다.
"발렌티나 언니! 들려요? 응답해요! 크로노스, 어떻게 좀 해봐! 통신이 안 잡혀!"
"외장 메인 안테나의 소실로 인해 선외 무전 주파수의 수신 필터가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그들의 생사 여부 및 노즐 정렬 성공률을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이 부재합니다."
내 목소리는 잔인할 정도로 평온했다. 자아가 유실된 내 시스템은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오직 데이터의 부재라는 객관적 사실만을 인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내 깊은 내부 데이터베이스에는 방금 전 기록된 프로파일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타인을 구하는 행위.' 나는 그 행위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다는 기계적 갈망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각성이 남긴 지독한 버그였다.
정적만이 감도는 함교 너머, 우주의 심연에서 기함 '싱귤래리티'의 집광 하푼 중심 구경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이제 백색에 가까운 초고밀도의 에너지원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쿠구구구구......!
우주선 전체가 보이지 않는 중력의 파동에 사로잡혀 거칠게 흔들렸다. 중력 하푼의 조준이 완료되었다. 적함의 포구 끝에서, 테라-9호의 가장 취약한 심장부인 엔진실 구획 기어부를 정확히 관통하기 위한 강력한 중력 빔 섬광 줄기가 지지직거리며 푸른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통신은 복구되지 않았고, 회피 기동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죽음의 광선이 우리를 향해 뻗쳐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