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스며든 온기는 지독할 정도로 선명했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 속에서 붉게 폭발하는 백령그룹의 상한가 그래프를 내려다보는 한여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기묘한 전류가 척수를 타고 올라와 뇌리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전율과 동시에 찾아온 것은 가슴 깊은 곳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여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세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여진의 흘러내린 가운 깃을 거쳐, 갈망이 서린 눈동자로, 그리고 이내 맞잡은 손가락의 틈새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철저히 계산된 연극 속에서 그들의 맥박은 기이할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려 뛰고 있었다.

"이것 봐, 강세현."

여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할수록 세상은 우리에게 돈을 주네. 아주 지독하고 편리한 공식이야."

세현이 비틀린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녀의 손가락을 조금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가슴팍을 짓누르는 둔탁한 압박감이 그의 신경망을 타고 여진에게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그럼 더 격렬하게 증오해 줘야지. 서로의 목을 물어뜯을 기세로."

그의 목소리에 담긴 서늘한 온도가 소월재의 거실을 무겁게 채웠다. 공기 중에 감도는 은은한 침향과 두 사람의 가쁜 숨결이 뒤엉켜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가문의 단독 승계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두 사람은 서로의 가슴에 칼을 겨눈 채 가장 완벽한 연인으로 거듭나야 했다.

* * *

사흘 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대형 컨벤션 센터의 특별 입찰장.

오늘의 전장은 총사업비 1억 달러 규모의 '서해안 해상 대형 에너지 테넌트 구축 사업'이었다. 백령과 태성, 그리고 두 가문의 눈치를 보는 수십 개의 계열사가 한자리에 모인 공간은 팽팽한 살얼음판 같았다. 서늘하게 내려앉은 에어컨 바람 사이로 고가의 향수 냄새와 긴장 어린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뒤섞여 흘렀다.

"어머, 우리 여진 상무님 오셨습니까?"

가식적인 웃음소리와 함께 다가온 것은 한태오 회장의 최측근이자 대리인인 임진우 전무였다. 그는 여진의 친부인 한태오의 사냥개를 자처하며, 여진의 입지를 사사건건 위협해 온 인물이었다. 임 전무의 눈빛에는 여진을 향한 노골적인 멸시와 조롱이 가득 차 있었다.

"결혼 준비하시느라 바쁘셨을 텐데, 이런 거친 입찰장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시다니요. 회장님께서도 여진 상무님이 몸을 상하실까 무척 걱정하고 계십니다. 이번 에너지 사업은 우리 백령의 기존 라인이 독식하는 방향으로 이미 정리가 끝났으니, 그냥 참관만 하시다 돌아가셔도 무방합니다만."

여진의 시선이 임 전무의 번들거리는 이마를 스쳐, 그가 쥐고 있는 검은색 가죽 폴더로, 그리고 그의 얄팍하게 씰룩이는 입술로 이동했다. 모욕감은 들지 않았다. 가문 내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이미 뼈에 사무치도록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임 전무님."

여진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갑고 투명했다.

"제 걱정보다는 본인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 입찰 결과에 따라 전무님의 서초동 자택 명의가 바뀔지도 모르니까요."

"하! 여전히 기가 살아서 움직이시는군요. 태성그룹의 바지후계자를 등에 업었다고 뭐라도 된 줄 아시는 모양인데……."

임 전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여진의 어깨 위로 묵직하고 따뜻한 손길이 얹어졌다. 강세현이었다. 완벽하게 맞춤 재단된 차콜 그레이 슈트를 입은 세현이 여진의 곁으로 다가서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바지후계자라니, 임 전무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세현이 눈매를 가늘게 접으며 웃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상대를 단숨에 얼려 죽일 듯한 안광이 서려 있었다.

"우리 와이프가 워낙 승부욕이 강해서 말이죠. 내가 뒤에서 아무리 져주려고 해도,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네요."

"강, 강세현 본부장님……."

"공적인 자리니 예의를 갖추십시오. 그리고 이번 입찰, 백령 내부에서 미리 판을 짜놓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판, 우리가 통째로 엎어버릴 생각이라 말입니다."

세현의 거침없는 도발에 임 전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주위의 시선이 일제히 세현과 여진에게 쏠렸다. 겉으로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마치 폭발 직전의 고압 전선과 같았다.

* * *

입찰이 시작되고,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은 태성과 백령의 대표단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진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었다. 세현의 허벅지 부근을 더듬던 그녀의 손가락이 이내 그의 단단한 손등 위로 겹쳐졌다.

스윽.

피부와 피부가 마찰하는 순간, 찌릿한 전류가 여진의 손끝을 타고 뇌의 시각 피질을 강타했다. 오감 및 행운 공명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현을 향한 불신과 증오, 그리고 가문을 무너뜨리겠다는 여진의 강렬한 적의가 그의 신경망과 공명하며 초감각적 예지를 깨웠다.

'……!'

여진의 시야가 급격히 선명해졌다.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저 멀리 임 전무가 쥐고 있는 태블릿 PC의 화면이 왜곡 없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미세한 눈꺼풀 떨림, 볼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의 궤적까지 전부 보였다.

동시에 세현의 목소리가 뇌리로 직접 꽂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임 전무 저 인간, 에너지 단가 입찰서에 이중 트릭을 썼어. 겉으로는 6천만 달러 선에서 보수적으로 베팅하는 척하면서, 백령의 비자금 세탁용 유령회사를 통해 배후에서 9천만 달러짜리 옵션을 끼워 넣었군.’*

그것은 세현의 직감이자, 오감 공유를 통해 여진에게 전달된 명확한 정보였다. 한태오는 이번 입찰을 통해 여진을 완벽하게 무력화하고, 비자금 채널을 가동해 자신만의 독점적 영토를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여진 상무님, 슬슬 입찰가를 확정하셔야지요? 시간 제한이 3분 남았습니다."

임 전무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여진을 압박했다.

여진은 태연하게 세현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얽어 넣었다. 깍지를 끼듯 단단히 맞잡은 손길에는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강 본부장님."

여진이 세현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시가 돋친 채 날카롭게 날아갔다.

"태성이 준비한 입찰 수치, 고작 그 정도 수준인가요? 비행기 날개만 만들 줄 알았지, 지상의 에너지를 다루는 법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네요. 한심하게 그 가격으로 낙찰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에요."

세현 역시 지지 않고 여진의 손을 으스러질 듯 맞잡으며 대꾸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내 걱정 말고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시지, 한여진 상무. 백령의 그 낡아빠진 파이프라인으로 1억 달러짜리 국책 사업을 감당이나 하겠어? 차라리 지금 포기하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말 조심해. 난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체질이 아니니까."

대중의 눈에는 서로를 헐뜯으며 싸우는 정략결혼 커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임 전무를 비롯한 백령의 원로회 측 대리인들은 두 사람의 불화를 보며 고소하다는 듯 킥킥거렸다.

하지만 테이블 밑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서로를 밀쳐내고 깎아내리려는 적개심이 극도에 달하자, 공명 게이지가 한계치를 뚫고 상승했다. 여진의 머릿속에 두 가지 미래의 경로가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첫 번째 경로: 백령이 준비한 원래 낙찰가 8천 5백만 달러를 제출할 경우 -> 임 전무의 이중 트릭에 걸려 입찰 자격 박탈 및 배임 혐의 연루. 두 번째 경로: 9천 2백만 달러를 기입하되, 한태오가 숨겨둔 유령회사의 지분 구조 약점을 파고들어 조달청의 특별 감사를 청구할 경우 -> 임 전무의 트릭 무력화 및 백령그룹 후계자 한여진의 단독 낙찰 성공.

'보인다.'

정밀한 선택의 예지 능력이 여진의 뇌리를 강타했다. 여진은 망설임 없이 입찰서 수치 입력창에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최종 입찰가: 92,000,000 USD / 비고: 입찰 참여사 '에이치 앤 컴퍼니'의 실소유주 적격성 정밀 심사 요청]**

여진이 입력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세현의 손끝이 그녀의 손바닥 중앙을 강하게 지압하듯 눌렀다. 행운의 진동이 대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 * *

"……어?"

임 전무의 태블릿 PC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이, 이게 무슨……! 에이치 앤 컴퍼니의 심사가 왜 홀딩되는 거지?"

단상 위에 선 주관사 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알립니다. 금일 서해안 해상 에너지 테넌트 사업의 최종 낙찰자는 백령그룹의 한여진 상무 측 제안서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울러, 경쟁 입찰사 중 하나인 '에이치 앤 컴퍼니'는 불법 우회 지분 소유 및 입찰 조작 혐의가 포착되어 즉각 자격이 박탈되며, 관련 사항은 금융감독원에 고발 조치될 예정입니다."

쾅, 쾅, 쾅!

의사봉이 세 번 울리는 소리가 입찰장 내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임 전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비자금 통로가 완벽하게 막힌 것은 물론, 한태오 회장의 비밀스러운 그림자 조직까지 세상 밖으로 끌어내진 꼴이었다.

"한여진…… 네가 어떻게 이 정보를……!"

임 전무가 이성을 잃고 여진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하지만 세현이 한 발 앞서 여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임 전무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임 전무님, 패자는 조용히 퇴장하는 게 룰입니다."

세현의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에 임 전무는 이빨을 갈며 수행원들에 의해 끌려 나가듯 회장 밖으로 사라졌다.

백령그룹의 후계자 한여진의 완벽하고도 주체적인 승리였다. 남편의 도움을 받는 척하면서도, 결국 적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은 여진 자신의 냉철한 판단과 오감 공유의 역이용이었다.

"대단하네, 우리 와이프."

세현이 몸을 돌려 여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어린 연민과 묘한 소유욕이 여진의 심장을 간지럽혔다.

"당신 덕분에 내 지분 가치도 덩달아 뛰었어. 이 정도면 훌륭한 파트너십이지?"

"착각하지 마, 강세현."

여진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차갑게 대꾸했다.

"난 내 왕좌를 지키기 위해 당신을 도구로 썼을 뿐이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진은 몰려드는 취재진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세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대중에게 보여줄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포즈였다.

여진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세현의 탄탄한 허리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차가운 입찰장의 공기 속에서 세현의 묵직한 체온과 그 특유의 시트러스 향이 여진의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이었다.

쿵.

여진의 왼쪽 가슴 깊은 곳에서,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하고도 뜨거운 통증이 번져나갔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일시적인 자극이 아니었다. 심장을 통째로 쥐고 천천히 비트는 듯한, 둔탁하고도 치명적인 압박감.

동시에 세현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지는 것이 여진의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그 역시 같은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서로를 증오해야만 가문의 행운이 유지되는 계약의 법칙. 마음을 여는 순간, 심장이 타들어 가는 저주가 시작된다는 그 잔혹한 메커니즘이,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진은 세현을 감싸 안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여진은 자신과 똑같은 의문과 두려움을 읽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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