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최종 승인 버튼 위로 미끄러진 손가락이 멈추고, 태블릿 화면에 푸른색 완료 표시가 명멸했다.

그 직시였다.

쿵.

가슴뼈 안쪽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꿰뚫는 듯한 통증과 함께, 귓가를 때리던 강세현의 심장 박동 신호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맥박수 제로. 오감 공명을 타고 들어오는 그의 생명 반응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감각은, 마치 영하 40도의 얼음물에 온몸이 처박히는 것 같은 생리적 공포를 동반했다. 세현의 심장이 정지했다는 직방 통보가 뇌리를 강타한 순간, 여진의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한 줌 흘러내렸다.

피비린내가 혀끝을 마비시켰다.

피할 틈도 없었다. 서쪽 방의 깨진 유리창 너머로 들이닥친 검은 수트의 자객들이 소음기가 장착된 총구를 여진의 이마를 향해 겨누었다. 탕, 둔탁한 파열음이 방 안의 정적을 찢었다.

여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오감 공명이 극한에 달해 시야가 타인의 시선과 중첩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아니라 세현의 눈으로 자신을 저격하려는 자객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0.1초의 찰나, 탄환이 여진의 뺨을 스치며 뒤편의 대리석 기둥을 박살 냈다.

"쥐새끼들이 감히 누굴 겨누는 거야."

여진이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유리 파편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냈다.

그녀의 시선이 먼저 문틈의 좁은 간극을 향했다. 이어 굳게 닫힌 강철문 고리로 이동하더니, 마지막으로 바닥에 흩어진 놋쇠 장식으로 고정되었다. 시선의 3단계 이동이 끝남과 동시에, 여진은 바닥의 장식을 발로 차올려 손귀에 쥐었다.

세현의 구급 신호가 뇌 속에서 비명처럼 울리고 있었다. 저편, 소월재 내부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밀 지하실. 그곳에서 세현은 홀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가고 있었다.

여진은 망설임 없이 복도로 내달렸다. 가로막는 자객의 안면을 향해 놋쇠 장식을 가차 없이 휘둘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비틀거리는 사이, 여진은 세현의 방과 연결된 비밀 통로의 육중한 철문 앞에 도달했다.

철문은 원로원의 격리 프로토콜에 의해 완전히 잠겨 있었다.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는 강철의 장벽.

하지만 여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깨진 손톱에서 흐르는 피를 철문의 틈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놋쇠 장식을 문틈의 좁은 간극에 쑤셔 넣고, 온 체중을 실어 비틀었다.

콰아아앙!

기계 장치가 비명을 지르며 불꽃을 튀겼다. 사지를 찢는 듯한 마찰음이 고막을 찔렀으나, 여진의 얼굴에는 미소마저 걸려 있었다. 문고리가 완전히 파손되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의 어깨뼈가 탈구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여진은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고 그 고통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이깟 쇳덩이 따위로 날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나."

통로를 지나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끝, 어둠 속에 쓰러진 세현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태성과 백령의 고대 계약서 원본이 들려 있었다. 세현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그의 가슴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여진은 세현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가슴에 귀를 대었다. 미세한 온기조차 사라져 가는 살결에서, 지독하게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그것은 지난 며칠간 그녀를 괴롭히고, 동시에 구원했던 세현 특유의 시더우드 향취였다.

그녀는 세현의 품에서 계약서 원본을 빼앗아 들었다.

원본의 뒷면. 그곳에는 일반적인 조명 아래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원로원 밀실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바로 그 계약서의 숨겨진 예외 조항적 문양이었다.

여진은 자신의 피 묻은 손가락으로 그 문양의 궤적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깨달음이 스쳤다. 백령과 태성의 후계자가 사랑에 빠지면 심장이 붕괴한다는 그 잔혹한 저주. 그것은 가문의 번영을 위한 억제 장치가 아니었다. 원로원이라는 기생충들이 두 가문의 후계자가 힘을 합쳐 자신들의 지배력을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심어둔 거대한 기만책이었다.

"세현아, 일어나."

여진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건 저주가 아니야. 설계 오류지."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세현의 침실 서랍에서 발견했던, 푸른빛이 도는 감각 과부하 완화제였다. 세현이 자신의 통증을 숨기고 여진 앞에서 강한 척하기 위해 매일같이 삼켜야 했던 그 독한 약물.

여진은 망설임 없이 약병을 열어 자신의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싸늘한 약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공명으로 전해지던 세현의 죽음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차단되었다. 그러나 여진은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약물의 성분이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을 억제하는 순간, 오히려 역으로 공명의 주파수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랑은 자멸의 불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존재의 파동이 완벽하게 일치할 때 발생하는, 독창적 동화의 근원이었다.

계약서 뒷면의 문양이 여진의 피와 반응하며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숨겨져 있던 최종 줄문이 그녀의 뇌리에 선명하게 해독되어 박혔다.

[두 후계자의 의지가 하나로 합치되어 동반 각성할 시, 가문의 예속은 영구히 해제되며, 기생하는 자들의 지분은 소멸한다.]

"찾았어."

여진의 입가에 차가운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세현의 차가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약물로 벼려낸 차가운 이성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뜨거운 감정이 입맞춤을 통해 세현의 체내로 흘러 들어갔다.

동시에 소월재의 벽면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벽면 가득 장식되어 있던 고대 마법 도청 및 생체 감시 마진들이 붉은 불꽃을 일으키며 타올랐다. 한태오가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심장 박동을 제어하기 위해 심어두었던 잔인한 족쇄들이었다.

치이이익!

도청 마진들이 역류하는 공명 주파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백령의 본가에서 이를 모니터링하고 있을 한태오의 귀에, 고막을 찢는 듯한 고주파의 비명이 전해질 터였다.

"당신들의 감옥은 여기까지야, 아버지."

여진은 세현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 세현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천천히 열리며 여진을 담았다. 그의 시선이 여진의 핏기 없는 입술에 머물렀다가, 이내 그녀의 단호한 눈빛으로 옮겨갔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

"……독한 여자."

세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

"내 허락도 없이 내 약을 먹다니."

"살고 싶으면 입 다물고 내 파동에 맞춰. 지금부터 이 거지 같은 사슬을 끊어버릴 테니까."

여진이 세현의 손을 이끌어 계약서 원본의 붉은 문양 위에 겹쳐 얹었다. 두 사람의 피가 섞여 문양의 중심부로 흘러들었다.

두근!

세현의 심장이 폭발적인 힘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단순한 생존의 박동이 아니었다. 소월재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거대한 제어 시스템을 역으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동이었다.

공명 계약에 억눌려 있던 소월재의 정맥 제어 장치가 두 사람의 혈흔적 인장을 직접 승인했다.

쿠구구구궁!

지하 벽면이 갈라지며, 소월재를 감싸고 있던 보이지 않는 거대 구조물들이 차례로 무력화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로원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지배의 탑이, 단 두 사람의 합치된 의지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어깨가 빠질 듯한 고통과 심장을 옥죄는 반사 통증이 여진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진통 속에서도, 여진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세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더 크게 웃었다.

"이 정도 아픔으로 날 꿇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당신들은 날 너무 과소평가한 거야."

그녀의 당찬 패기와 지배력이 소월재의 공기를 완벽하게 압도했다.

세현 역시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쥐며 일어섰다. 그의 눈빛에는 지독한 소유욕과 함께, 자신을 구원한 이 오만한 여자에 대한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가자, 여진아. 우리의 판돈을 돌려받을 시간이야."

그들의 발밑에서 시작된 찬란한 해체의 빛무리가 소월재의 사방 벽면으로 번져 나갔다.

바스스 식어 내리는 빛의 입자들 사이로, 소월재를 감싸고 있던 물리적 공간의 왜곡이 걷히기 시작했다.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격자 봉인이 먼지처럼 흩어지며, 벽 너머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공간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소월재의 지하와 직접 연결된, 양가 원로원의 공동 주주총회가 열리는 그랜드 아레나의 거대한 문턱이었다.

웅성거리는 수백 명의 목소리와 눈부신 조명이 갈라진 문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로들의 탐욕스러운 얼굴들이 저편에서 보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여진은 세현의 손을 잡은 채 어둠 속에서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랜드 아레나의 육중한 문턱을 넘어선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지하의 습한 냉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백 개의 할로겐 조명이 뿜어내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였다. 사방을 가득 채운 주주들과 원로원 인사들의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고막을 찔렀다. 공기 중에는 긴장감으로 탈수된 듯한 마른 가죽 냄새와 타버린 전선 특유의 오존 향이 무겁게 뒤섞여 있었다.

단상 위에 서서 단독 승계를 선언하려던 강선우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그의 입술이 볼품없이 벌어지더니,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어…… 어떻게……."

선우의 시선이 비틀거렸다. 그의 눈길은 먼저 여진의 찢어진 옷자락 끝에 맺힌 핏방울에 닿았다가, 이내 세현의 단단하게 굳은 어깨로 치켜 올라갔고, 최종적으로 두 사람이 잘라낼 수 없는 사슬처럼 단단히 맞잡고 있는 손에 고정되었다. 비열한 승리감으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VIP 석의 중앙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한태오였다. 백령그룹의 절대 자비 없는 지배자이자 여진의 아버지는 자신의 귓가를 움켜쥔 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의 귀에 꽂혀 있던 초소형 수신기에서 붉은 스파크와 함께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월재 벽면에 은밀히 박아두었던 고대 마법 도청 장치와 생체 감시 마진들이 여진의 공명 주파수 역류로 인해 일제히 폭발하면서, 그 수신기를 통해 한태오의 고막과 뇌 신경을 직접 타격한 것이었다.

한태오의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울컥 흘러내렸다. 여진은 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귀가 많이 아프신 모양입니다, 아버지."

여진의 목소리는 아레나 전체를 메아리치며 얼어붙게 만들었다.

"타인의 심장 소리를 훔쳐 듣는 도둑질치고는 대가가 꽤 가혹하지요."

"이, 미친년이……!"

한태오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어 올려 여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린 것은 분노가 아닌, 난생처음 마주하는 절대적인 공포였다. 자신의 통제 아래 평생 도구로만 살아야 했던 딸이, 이제는 가문의 구습 자체를 찢어발기기 위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강선우가 단상 마이크를 움켜쥐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경호원들 뭐 해! 저 미친 자들을 당장 끌어내! 공명 계약은 이미 파기되었어! 저 둘의 맥박 신호가 끊긴 걸 우리 눈으로 확인했다고!"

"그 신호라면, 이걸 말하는 건가?"

세현이 비웃음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대리석 바닥으로 툭 던져진 약병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굴러가 강선우의 구두 앞코를 툭 쳤다.

"감각 과부하 완화제. 원로원 너희들이 우리가 서로를 향한 적의를 유지하도록 통제할 때 쓰던 억제제지."

세현의 눈길이 선우의 창백한 이마에 닿았다가, 단상 위의 모니터로 이동하더니, 마지막으로 원로원 의장들의 일그러진 얼굴들을 차례로 관통했다.

"우리가 진짜 서로를 죽일 듯 미워한다고 믿었나? 불쌍하게도. 이 약은 말이야, 복용하는 순간 감각의 결을 미세하게 비틀어서 너희의 조잡한 부하 측정기를 속이는 데 아주 탁월한 도구였거든. 너희가 '증오의 수치'라고 부르며 좋아 날뛰던 그 그래프는, 사실 우리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공명 주파수를 가공하고 조율한 결과물에 불과해."

"말도 안 돼……! 그 고대의 서약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리가 없어!"

원로원 의장 중 가장 연로한 자가 지팡이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닥쳐."

여진이 가차 없이 그의 말을 잘라냈다. 그녀는 들고 있던 고대 계약서 원본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진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뒷면의 기하학적 문양을 완전히 적시자, 원본 전체가 스스로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불꽃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가문을 옭아매던 수백 년의 어둠을 걷어내는 차갑고도 순수한 해방의 빛이었다.

"너희들이 숨겨둔 예외 조항적 문양. 진정한 목숨을 건 희생의 공명이 이루어질 때, 이 불평등한 계약은 파괴되고 가문의 지분은 후계자들에게 영구 귀속된다."

여진이 핏자국이 선명한 태블릿 화면을 단상 중앙의 메인 콘솔에 연결했다.

최종 승인 날인의 완성. 그리고 계약서 뒷면의 해독문이 시스템에 직접 이식되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그랜드 아레나의 대형 전광판들이 일제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화면 가득 표기되어 있던 원로원 소유의 주식 지분율 그래프가 급격하게 폭락하기 시작했다. 90%, 70%, 30%…… 그리고 마침내 0%를 향해 수직 낙하했다.

"내 주식이! 내 지분이 사라지고 있어!"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멈춰라, 한여진!"

원로들이 비명을 지르며 콘솔로 달려들려 했지만, 이미 아레나 전체의 보안 장치들이 역으로 활성화되어 그들의 접근을 막아섰다. 소월재에서 여진이 장악한 정맥 제어 권한이, 이곳 그랜드 아레나의 메인 서버까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끝났습니다."

여진이 단상을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이제 백령과 태성의 지배자는 당신들이 아닙니다. 우리지."

그녀의 당당하고 오만한 선언에 아레나 전체가 깊은 침묵에 잠겼다.

그때였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던 한태오가 갑자기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으하하하하!"

그의 목소리는 피비린내와 함께 섞여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한태오는 겨우 몸을 일으켜 여진을 바라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정말 다 안다고 생각하느냐, 여진아? 그 고대 계약이 단순한 종이 쪼가리일 것 같으냐!"

그의 시선이 여진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머물렀다가, 그녀의 손목을 타고 올라가는 미세한 푸른 핏줄을 향하더니, 마침내 공중에 떠 있는 계약서의 중심부로 꽂혔다.

"그 계약은 양가의 시조들이 피로 맺은 영혼의 제약이다. 봉인을 해제한 대가는…… 그동안 가문이 누려왔던 수백 년의 부가 축적한 '업보'와 '저주의 무게'를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공중에 떠 있던 계약서 원본이 일순간 칠흑 같은 흑색으로 물들었다.

차가운 해방의 푸른 빛은 순식간에 소멸하고,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검은 안개가 여진의 손목을 사슬처럼 감싸 쥐었다.

턱.

여진의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이 아레나 전체에 물리적인 파동으로 퍼져 나갔다.

"아윽……!"

여진의 무릎이 꺾였다. 그동안 공명 계약을 유지하며 축적되었던 모든 통증과, 가문의 선대들이 치러야 했던 저주의 반사 작용이 한꺼번에 그녀의 심장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모니터에 표시된 그녀의 심박수 그래프가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위험 수치까지 치솟았다.

"여진아!"

세현이 다급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지만, 검은 안개는 세현의 손길마저 거부하며 두 사람 사이를 강제로 갈라놓으려 요동쳤다.

여진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그랜드 아레나의 천장 돔이 서서히 열리며, 원로원이 숨겨두었던 마지막 비장의 무기인 '최종 감금조'의 병력이 쇠사슬을 내리누르며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여진과 세현을 영구히 지하 시설에 가두기 위한 특수 구속구가 들려 있었다.

과연 여진은 이 마지막 저주의 사슬마저 끊어내고 완벽한 해방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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