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뜯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이성은 칼날처럼 잔인하게 번뜩였다.
쿵, 쿵, 쿵.
가쁘게 널뛰는 세현의 신체 박동이 여진의 흉곽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제 것인지 그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호흡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그 지독한 혼란의 한가운데서, 여진의 뇌리에 소월재 지하실 깊은 벽면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고대 원판의 미장 구조가 홀연히 떠올랐다.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 그 중심을 관통하는 붉은 보석의 궤적. 그것은 단순한 가문의 장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생명력과 행운을 빨아들여 원로원의 중추로 송신하는 거대한 흡수 장치이자, 자신들을 옭아맨 쇠사슬의 물리적 실체였다.
“정신 차려, 강세현.”
여진은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핏방울이 배어 나왔지만, 그녀는 세현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체온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고, 살갗 아래로 흐르는 맥박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위태로웠다. 세현의 시선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의 짙은 눈동자가 여진의 뺨을 스치고, 갈라진 입술을 지나, 마침내 그녀의 굳건한 눈동자에 멈춰 섰다. 3단계로 느리게 꺾이는 그의 시선 끝에는 깊은 절망과 함께 기묘한 열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통째로 뽑혀 나가는 기분이야. 여진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흔들리지 마. 이건 경고일 뿐이야.”
여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소월재의 공기는 이미 그들의 아늑한 요새가 아니었다. 눅눅한 먼지 냄새와 함께 가문의 엄격한 규율이 뿜어내는 서늘한 압박감이 지하실의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지하실 입구의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원로원의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을 찍는 소리가 불길한 박자로 고막을 때렸다. 맨 앞에 선 집행관이 감정 없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공명 주파수의 심각한 왜곡 및 계약 위반 혐의가 포착되었습니다. 두 분 후계자께서는 심판소 출두 전까지 상호 격리 조치됩니다.”
“격리라고?”
세현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했지만, 집행관들의 억센 손길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여진은 반항하지 않았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집행관들의 손에 이끌려 차가운 계단을 올랐다.
그들이 향한 곳은 소월재의 양 끝방이었다. 동쪽 끝의 여진의 침실, 그리고 서쪽 끝의 세현의 침실.
철컥, 철컥.
두 개의 두꺼운 목재 문이 동시에 잠기는 소리가 소월재의 긴 복도를 타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 완벽한 전원 격리였다.
* * *
방 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외부와의 통신은 완전히 차단되었고, 창문 너머로는 원로원의 감시원들이 정원을 순찰하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여진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가만히 벽을 바라보았다. 물리적 거리는 소월재의 양 끝이었지만, 공명 계약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월재 특유의 증폭 작용으로 인해 벽 너머 세현의 미세한 떨림이 그녀의 척추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세현아.’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사랑이라는 금기를 건드릴 때마다 찾아오는 심장 붕괴의 전초 증상이었다. 여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억눌렀다. 지금은 아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때, 벽면 장식 틈새로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가늘게 뜬 여진은 벽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덩굴무늬 장식으로 시선을 옮겼다. 4화에 발견했던, 아버지 한태오가 심어둔 고대마법 도청 및 생체 감시 마진이었다.
그 장치는 여전히 작동하며 두 사람의 호흡을 훔쳐 듣고 있었다. 여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항상 완벽을 기한다고 생각하시지.’
그녀는 주머니 속을 더듬었다. 지난번 세현의 방에서 가져온 갈색 약병이 손끝에 걸렸다. 세현이 감각 과부하를 막기 위해 복용하던 완화제였다. 여진은 약병의 뚜껑을 열고 푸른빛이 도는 액체를 바닥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액체를 묻혀 벽면의 감시 마진 위에 천천히 덧칠했다.
치이익-.
불꽃이 튀는 소리와 함께 감시 마진의 붉은 빛이 일순간 푸르게 변했다. 감각 완화제의 성분이 고대마법의 흐름을 왜곡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차단이 아니었다. 주파수를 역류시켜 도청을 시도하는 한태오의 감각 계통에 극심한 노이즈와 통증을 돌려주는 ‘역류 피드백 루프’의 완성이었다.
서울 중심가의 펜트하우스에서 소월재를 감시하고 있을 한태오가 지금쯤 귀를 찢는 듯한 이명과 두통에 시달리고 있을 터였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통쾌함이 여진의 전신을 감쌌다. 아버지가 보낸 감시의 눈을,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던 장치의 틈새를 이용해 찔러버린 것이다.
동시에, 서쪽 끝방에 갇힌 세현의 의식이 여진의 뇌파와 동조하기 시작했다.
- 여진아, 들려?
머릿속을 울리는 세현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를 싹 지운 채 낮고 진중했다.
- 들려. 네 맥박이 너무 빨라, 세현아.
- 네가 내 걱정을 하니까 그렇지. 벽 너머로 네 숨소리가 손바닥에 닿는 것처럼 생생해. 마치 바로 옆에 누워 있는 것처럼.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하게 겹쳐 있었다. 살벌한 벽 너머로 비명조차 차단된 고독한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을 이정표 삼아 어둠 속을 헤엄쳤다.
지이잉-.
갑자기 소월재 전체의 전등이 일제히 꺼졌다. 암전이었다.
동시에 거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고대 모래시계가 붉은 인을 뿜어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기괴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소월재에 주입된 고대의 억제 제약 결계망이 독자적으로 전력을 차단하며, 후계 승계 탈락 기준 시간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것이다.
남은 시간은 72시간. 모래가 모두 내려앉으면 그들은 독점 승계권을 박탈당하고 평생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다.
- 어둠이 깔렸군. 쥐새끼들이 정원에 깔렸어.
세현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 총 열두 명. 보폭과 호흡 주기를 보니 원로원 직속 집행관들이야. 3분 주기로 소월재 외곽을 돌고 있어.
여진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 서쪽 모퉁이의 센서등은 15초 동안 꺼져. 순찰조의 시야가 교차하는 유일한 사각지대야.
- 맞아. 그리고 남쪽 테라스 아래의 배수관 쪽은 경비가 허술해. 그들의 심장 박동이 그곳을 지날 때 가장 차분해지거든. 긴장이 풀렸다는 뜻이지.
두 사람은 방에 갇힌 채, 오직 소리와 맥박의 공유만으로 소월재 전체의 정밀한 경비 순서 지도를 머릿속에 공용으로 그려나갔다. 완벽한 호흡이었다. 가문의 원로들은 그들을 떼어놓으면 무력해질 것이라 믿었겠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육체가 완벽하게 나뉘었음에도 두 사람은 더 강력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 준비는 끝났어. 이제 탈출 경로를 확보해야 해.
세현의 전언에 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감각 공유의 깊이를 더 깊게 끌어올렸다. 세현의 신경계와 완전히 동조하는 감각.
세현의 시야가 여진의 머릿속에 흑백 화면처럼 겹쳐졌다. 세현은 자신의 침실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더듬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 닿는 차가운 대리석의 질감, 먼지의 냄새, 그리고 미세한 요철이 여진의 손바닥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건……?’
세현의 손가락이 침대 밑 구석, 평소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바닥의 음각을 쓸어내렸다.
여진의 의식 끝자락에 기묘한 문양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바닥의 흠집이 아니었다. 6화에서 원로원 밀실 서고의 계약 원본 뒷면에서 보았던, 가문의 구습과 저주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예외 조항적 문양과 완벽히 일치하는 형태였다.
가문 규정 전복을 보증하는 숨겨진 면책 영문 장식.
그것이 왜 세현의 침실 바닥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여진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진실의 문고리를 잡은 듯한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 세현아, 그 문양 아래를 더 깊게 눌러봐.
그녀의 속삭임과 동시에, 세현의 손끝이 문양의 중심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쿠구구구-.
침대 밑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어둠 속에서 새로운 심연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지하실의 눅눅한 이끼 냄새 대신, 수십 년간 밀봉되어 있던 마른 종이와 바스러진 가죽의 메마른 내음이 바닥의 균열을 타고 흘러나왔다. 소월재가 품고 있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이 마침내 그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세현의 손가락이 어둠 속에서 차갑고 단단한 육각 철제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그의 감각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던 여진의 손끝에도 쇳가루의 껄끄러운 감촉과 소름 끼치는 한기가 동시에 몰아쳤다.
- 찾았어.
머릿속을 울리는 세현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긴박함은 여진의 심장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 꺼내. 지체할 시간 없어.
여진은 마음속으로 쏘아붙이며 침실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복도에서 느껴지는 집행관들의 발소리가 불규칙하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들의 무거운 구두굽 소리, 거칠어지는 호흡, 그리고 장비를 만지작거리는 금속성 마찰음이 공명 능력을 통해 여진의 귓가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3분 주기의 사각지대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세현이 바닥의 틈새에서 묵직한 철제 궤를 들어 올린 순간, 거실에 놓인 고대 모래시계의 붉은 모래가 폭포처럼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침실 벽면에 붙은 전등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겼다. 결계의 제약이 한층 더 옥죄어 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문고리를 바라보았다가, 벽면의 흐릿한 도청 마진으로 시선을 옮긴 뒤, 마침내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쥔 떨리는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세 단계로 꺾인 시선의 종착지에는 지독한 통증만이 남아 있었다.
- 상자에 강력한 봉인이 걸려 있어. 양가의 피가 동시에 닿아야만 열리는 구조야.
세현의 다급한 전언이 뇌리를 때렸다.
- 우리는 지금 공명 상태야. 내 피에 섞인 네 감각의 잔상이 열쇠가 될 수 있어. 세현아, 망설이지 마.
여진의 단호한 촉구에 세현은 주저 없이 궤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자신의 손가락을 그었다.
아방-.
여진의 검지끝에서도 살이 베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붉은 피가 육각 궤의 중앙 인장에 스며들자,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철제 뚜껑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승리의 희열을 만끽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쿠웅!
여진이 갇힌 침실의 문이 거칠게 덜컹거렸다. 외부의 잠금장치를 강제로 조작하는 집행관들의 서늘한 기척이 문틈을 타고 밀려왔다.
“한여진 후계자. 규율 위반 행위가 감지되었습니다. 즉시 내부 수색을 실시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었다. 세현이 상자 안의 내용물을 완전히 확인하고 대피할 때까지, 어떻게든 이들의 발을 묶어야 했다.
여진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벽면의 도청 마진을 응시했다. 감각 완화제 액체로 푸르게 물든 그 장치는 여전히 그녀의 미세한 생체 신호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머릿속으로 세현의 다정한 눈빛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던 그의 무모함을 강제로 떠올렸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열망이 금기를 건드리는 순간, 심장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계약 반사 통증이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아으윽……!”
여진은 비명 대신 신음을 삼키며 그 비정상적인 생체 폭주 에너지를 벽면의 도청 마진으로 고스란히 밀어 넣었다. 완화제의 간섭으로 왜곡된 공명 주파수가 거대한 역류 피드백 루프를 형성했다.
파지직!
벽면의 마진이 청색 불꽃을 뿜으며 완전히 타버림과 동시에, 소월재 외부의 통제 장치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무전기를 귀에 대고 있던 집행관들이 고주파의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들의 이명과 고통이 공명을 통해 전해졌지만, 여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 지금이야, 세현아. 확인해.
그녀의 처절한 목소리에 응하듯, 세현의 시야가 여진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공유되었다.
상자 안에서 꺼내진 것은 낡은 가죽 종이였다. 세현의 손끝이 종이의 표면을 쓸어내리자, 붉은색 마법 인장 아래 숨겨져 있던 고대 계약의 예외 조항이 마침내 두 사람의 눈앞에 드러났다.
[두 가문의 피로 맺어진 사슬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계약자가 서로를 향해 완벽한 파멸의 감정을 품는 동시에, 그 심장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단, 저주가 파괴되는 순간, 한쪽 가문의 모든 승계권과 자산은 생존한 다른 쪽에게 무조건 귀속된다.]
여진의 숨이 턱 막혔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서로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사랑해야 하지만, 그 결과로 얻는 것은 한쪽 가문의 완벽한 파멸과 다른 한쪽의 독점 승계였다. 그것은 백령을 집어삼키고 태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여진의 갈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조항인 동시에, 세현을 완벽한 나락으로 떨어뜨려야만 가질 수 있는 잔혹한 승리였다.
‘결국…… 내가 너를 짓밟아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뜻인가.’
잔인한 진실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진의 방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매캐한 화약 연기와 타버린 오존 냄새 사이로, 구두 가죽의 서늘한 광택이 드러났다.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은 쓰러진 집행관들을 비웃듯 차가운 시선으로 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빈틈없이 빗어 넘긴 머리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수트,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눈매.
그녀의 아버지이자, 백령그룹의 절대 지배자인 한태오였다.
“결국 쥐새끼들이 둥지를 털었구나.”
한태오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여진의 위로 무겁게 드리워졌다.
그와 동시에, 서쪽 방에 있던 세현의 감각을 공유하던 여진의 목덜미에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닿았다. 강선우가 보낸 태성 원로원의 자객들이 세현의 방을 덮친 것이다.
사방이 꽉 막힌 외통수였다. 여진은 피가 배어 나오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버지를 향해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