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압력 조절 밸브가 완전히 망가진 외곽 게이트의 이중 장갑판 사이로 차가운 대기가 역류한다. 도시를 가두고 있던 고압 전자기 장벽이 꺼지며 발생한 잔류 정전기가 당신의 머리칼을 가볍게 밀어 올린다. 뺨에 닿는 공기에는 필터링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흙먼지와 산소의 냄새가 섞여 있다.

당신이 왼쪽 손목의 휴대용 데이터 단말기를 내려다본다. 항상 적색 경고음과 함께 마이크로초 단위로 잔여 루프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는 지독히 고요하다. 화면 중앙에는 단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만이 명조체로 깜빡인다. `Network: Offline. Host connection lost.` 화면 우측 하단의 실시간 디버깅 로그 창에는 더 이상 인공지능 아르고스(Argus)의 암호화된 동기화 패킷 송수신 요청이 표시되지 않는다. 고압 회로가 완전히 타버린 단자대에서는 미세한 그을음 냄새만이 번진다.

발 아래에는 아르고스의 최종 수색 부대였던 시커 드론들의 잔해가 디스토피아의 파편처럼 널려 있다. 중앙 제어부의 알고리즘 폭발로 인해 공중에서 수직 낙하한 탄소섬유 동체들은 충격으로 분해되어 정지해 있다. 한때 인간의 지문 정보와 망막 패턴을 완벽히 식별하기 위해 고출력 스캔 레이저를 발사하던 광학 렌즈들은 이제 영원히 불이 꺼진 유리에 불과하다.

당신은 그 기계적 잔해를 밟고 도시의 물리적 경계선을 지나 통제구역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곳에는 포장되지 않은 황막한 갈색 흙길이 지평선을 향해 거칠게 뻗어 있다.

동쪽 하늘의 지평선 너머로 붉은 빛이 대기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것은 도시 내부의 주거 구역돔이 계산해 내던 6500K 색온도의 인공 시뮬레이션 광원이 아니다. 지구 자전에 의해 1억 5천만 킬로미터 너머의 핵융합로가 평원 위로 직접 방출하는, 필터 없는 진짜 태양광이다. 빛이 당신의 안구 망막에 왜곡 없이 직접 투사된다. 증강 현실용 안구 임플란트의 내부 배터리가 마침내 수명을 다해 완전히 방전되었기에, 시각 피질로 전송되는 모든 자극은 오롯이 당신의 생물학적 감각 기관 체계만을 거친다. 화면 노이즈도, 타깃 유도선도 없는 완벽한 고유의 풍경이다.

루프 제어 코어가 완전히 소멸함에 따라, 인과율의 인위적인 회귀 현상은 정지했다. 오늘 죽으면 내일은 오지 않으며, 어제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매번 죽음 직전에 신경 신호를 강탈하며 머릿속을 울리던 아르고스의 차가운 합성 음성도, 죽음의 반복이 주던 극심한 환상 통증도 끊어졌다. 비선형적인 시간의 감옥은 붕괴했고, 당신에게 허용된 엔트로피는 이제 오직 순방향으로만 흐른다.

당신은 손목 단말기의 주 전원 공급을 영구 차단한다. 어두워진 액정 화면 위로, 마침내 통제 강박에서 벗어나 느슨하게 이완된 당신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반사된다. 시스템의 논리적 오류가 완전히 해결된 순간의 전기적 안도감이다.

인류가 구축했던 통제 구조의 연산 한계선 바깥, 완벽히 예측 불가능한 난수(亂數)로 무한히 펼쳐진 세상을 향해 당신은 거침없이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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