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제 몸에 박혀 있던 마지막 쇳덩이를 떼어내는 바로 그 찰나…….
쿠구구구구구궁—!
승강장 전체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닥의 미세한 구멍들 속에서, 시커멓고 기분 나쁜 점성을 띤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소리 없이 뿜어져 나온 검은 액체는 승강장 바닥을 순식간에 채워 나갔다. 비릿한 쇠 냄새와 썩은 기름 내가 뒤섞인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동시에 천장을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철제 대들보들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스극, 끄으으윽……!
대들보들이 거대한 지네처럼 뒤틀리며 승강장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쇳덩이들이 서로 무자비하게 맞물리고 꺾이며,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이루어 가기 시작했다. 높이만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거인의 형상. 그것은 이 기괴한 열차의 규율을 수호하는 철도 공무단, 그 정점에 선 존재인 ‘차장’의 또 다른 외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대들보로 만들어진 거인의 몸체 곳곳에 박힌 수십 개의 붉은 기차 전조등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우리를 겨냥했다. 차장의 기괴하고 거대한 눈동자들이 뿜어내는 붉은 광채가, 반쯤 눈이 먼 내 왼쪽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규칙의 기만은…… 사법 처분의 대상이다…….]
승강장 전체를 뒤흔드는 웅장하고 냉혹한 목소리가 우리를 포위하듯 짓눌러왔다. 귀로 듣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뇌막을 직접 두드리는 듯한 기괴한 주파수였다.
나는 이미 촉각과 고유수용 감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내 손발이 정확히 어느 각도로 꺾여 있는지,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의 단단함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시각에 의존해 내 다리가 땅을 딛고 있음을, 내 손이 서진이의 어깨를 붙잡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오빠, 나…… 들려. 이 목소리…… 이 차가운 쇳소리가 머릿속을 긁어……."
서진이의 목소리는 아직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완전히 되찾지 못한 자아의 파편들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시커먼 녹즙 같은 액체가 서진이의 발목을 타고 올라오려 하자, 세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도진 씨! 어떡해요? 저 괴물이…… 저 괴물이 우리를 다 죽이려 해요!"
세희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녀의 품 안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 사이로 삐져나온 것은 아주 오래되고 때 묻은 은색 펜던트였다. 3화에서 세희가 내게 보여주었던, 서진이가 남겼다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세희 씨, 그 펜던트……."
내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세희는 내 시선을 따라 제 손에 쥔 낡은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
"아…… 이건 서진이가 제게 주었던 거예요. 열차에 타기 전에, 서진이가 늘 말했었어요. 아무리 어둡고 차가운 곳에 떨어지더라도, 서로를 믿고 연대하는 의지만 있다면 인간은 결코 괴물이 되지 않는다고……."
세희의 목소리가 승강장의 음산한 바람 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서진이의 초점 없던 눈동자가 세희가 쥔 펜던트로 향했다. 펜던트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엉켜 있는 장미 덩굴과 맞잡은 두 손의 무늬. 서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 무늬…… 내 기억 속에 있어. 오빠…… 오빠랑 내가 같이 그렸던……."
서진이의 눈에서 다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실핏줄 같은 미세한 기계 태엽들이 마지막 저항을 하듯 바스라져 내렸다. 자아가, 인간으로서의 영혼이 마침내 온전히 돌아온 것이다. 서진이는 더 이상 열차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뻐할 여유는 없었다. 대들보 거인의 붉은 전조등이 더욱 흉포하게 번쩍였다.
나는 세희와 서진이를 내 등 뒤로 밀쳐내려 했지만, 촉각이 없어 내 팔이 제대로 움직였는지 조차 불분명했다. 오직 시각만으로 내 팔의 각도를 조정하며, 두 사람의 손바닥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 내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두 사람의 손바닥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해지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내-가-하-라-는-대-로-해]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세희와 서진이의 살결에 새겨졌다. 두 사람은 숨을 죽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이 마비되지 않은 세희와 이제 막 자아를 회복한 서진이만이 나의 유일한 손과 발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인간의 고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포 데시벨 수준의 초고주파 소음이 차장의 거대한 기계 구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승강장의 콘크리트 벽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먼지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아아아악!"
세희가 귀를 틀어막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서진이 역시 머리를 감싼 채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귓구멍에서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나 역시 내장이 뒤틀리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압박을 느꼈다. 뇌수가 흔들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위조 서명을 쓰기도 전에 고막이 터지고 뇌출혈로 즉사할 것이 뻔했다.
'소리…… 소리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사방이 탁 트인 승강장이다. 이 엄청난 음파를 막아줄 차폐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5화에서, 그 기괴한 무음 공동을 지날 때의 기억. 바닥에 떨어뜨린 동전과 쇠붙이들이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졌던 기묘한 배수 구멍들.
나는 바닥을 다급하게 훑었다.
검은 액체가 찰랑거리는 바닥 곳곳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뚫려 있는 기하학적인 원형 구멍들이 보였다. 그 구멍들 주변으로는 이상하리만치 검은 액체가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주위로는 먼지조차 가라앉지 않고 공중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며 소멸하고 있었다.
'기류가 소리를 빨아들이고 있어…….'
그것은 단순한 하수구가 아니었다. 열차 내부의 소음과 진동, 그리고 인간들의 비명까지 흡수하여 동력으로 변환하는 절대 흡음 소자 기류의 방출구였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구역, 즉 음파의 간섭이 서로 상쇄되는 기하학적인 '무음의 사각지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차장의 머리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파의 주파수와 바닥의 흡음 구멍들이 만들어내는 역위상의 기류. 그 두 파동이 만나 제로(0)가 되는 지점.
내 왼쪽 눈이 미친 듯이 깜빡이며 바닥의 구멍들과 차장의 위치를 삼각측량했다. 촉각이 없었기에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극도로 어려웠지만, 나는 세희와 서진이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엎드려! 저 구멍들 사이의 교차점으로!]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내 필사적인 몸짓을 알아챈 서진이가 세희를 부축하며 내가 가리킨 바닥의 빈틈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차장이 내지른 두 번째 파동이 승강장을 휩쓸었다.
콰아아앙—!
우리가 서 있던 바로 뒤편의 두꺼운 철제 기둥이 찌그러지며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파편들이 비산했다.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이 엎드린, 세 개의 흡음 구멍이 정삼각형을 이루는 중심부는 기적처럼 고요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태풍의 눈처럼, 살인적인 음파가 우리 머리 위를 비껴가 바닥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아…… 하아……."
세희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소리가 지워진 기묘한 공간 속에서, 오직 우리의 거친 호흡 소리만이 방울져 떨어졌다.
음파 공격이 통하지 않자, 차장의 거대한 기계 몸체가 삐걱거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붉은 전조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나는 차장의 거대한 몸체 중앙을 쏘아보았다.
철골 대들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가슴판. 그 거친 주철 표면에 붉은색 페인트로 거대하게 프린팅되어 있는 문장들이 보였다.
[종착 예정 배차 수칙] [1. 본 열차는 계선역에 도달 시 모든 운행을 종료한다.] [2. 단, 승강장에 진입한 생명체의 승용 쿼터 미달 시, 시스템은 영구 정차 상태를 유지하며 차장은 잔여 쿼터를 강제 수거할 권한을 가진다.]
머릿속이 번갯불을 맞은 듯 명징해졌다.
'저것이었군…….'
차장이라는 존재는 행정관이자 감시자이기도 하지만, 본질은 저 가슴팍에 새겨진 '배차 수칙' 그 자체였다. 열차의 AI 제어 시스템이 실체화된 핵심 지휘부.
우리가 살아남아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저 수칙을 지워야만 했다. 현재 '생명체 승용 쿼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차장은 우리를 죽여 열차의 부속품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식을 바꾸면 된다.
나는 내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이전 전투에서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 촉각이 없어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검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끝없이 흘러내려 바닥의 검은 액체와 섞이고 있었다.
'가이드라인의 위조 서명…….'
이 강력한 능력을 다시 사용하면, 내게 남은 마지막 감각인 시각이나 청각마저도 영원히 잃어버릴지 모른다. 눈이 먼다면, 혹은 귀가 아예 들리지 않게 된다면 이 지옥 같은 열차에서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나는 이빨을 악물었다. 신경질적이고 결벽증적인 내 이성이 속삭였다. 도박을 걸 시간이라고.
나는 세희의 어깨를 짚고, 손가락으로 차장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리고 서진이의 손바닥에 빠르게 글씨를 썼다.
[내가 저 괴물의 가슴팍으로 갈 수 있게 받쳐줘.]
서진이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너무 위험하다는 뜻이리라.
나는 서진이의 뺨을 거칠게 감싸 쥐었다. 촉각이 없어 그녀의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 눈은 그녀의 떨림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서진아…… 오빠 믿어."
내 목소리가 해진 그물처럼 찢어져 나갔다.
서진이는 내 결연한 눈빛에서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세희를 바라보았다. 세희 역시 두려움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도진 씨…… 저희가 길을 열게요."
세희와 서진이가 내 양팔을 부축했다. 고유수용 감각이 없는 내게, 두 사람의 부축은 내 몸의 위치를 잡아주는 정밀한 가이드라인과 같았다.
우리는 흡음 구멍들이 만들어내는 무음의 길을 따라, 차장의 거대한 기계 다리 사이로 돌진했다.
차장이 우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다시 한번 거대한 소음 궤적을 뿜어내려 했다.
[……말살…… 규율 위반자의…… 즉각적인…….]
"지금이에요!"
세희가 소리치며 나를 차장의 무릎 관절 역할을 하는 뒤틀린 철골 위로 밀어 올렸다. 서진이가 자신의 가녀린 어깨로 내 발받침을 자처하며 나를 위로 밀어 넣었다.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중력의 느낌도, 바람의 저항도 느껴지지 않는 기괴한 무중력 상태 같은 감각 속에서, 오직 내 시야만이 차장의 가슴판을 향해 좁혀졌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오른손을 뻗었다.
철골들이 맞물리며 내 손가락을 으스러뜨리려 톱니바퀴처럼 회전했다. 쇳덩이가 살을 찢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으나, 내게는 아무런 통증도 없었다.
척—!
내 피 묻은 손바닥이 차장의 가슴팍, [종착 예정 배차 수칙]의 두 번째 조항 위에 정확히 안착했다.
"위조 서명…… 발동……!"
내 목구멍에서 피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느낌과 동시에, 내 왼쪽 눈의 시야가 급격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흑백의 노이즈가 시야를 가득 채우며 암전이 찾아왔다. 귀에서는 삐— 하는 영구적인 이명이 울리며 세희와 서진이의 외침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시각 상실. 청각 상실.
완벽한 어둠과 침묵의 세계가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오직 하나의 문장만을 그리며, 내 피 묻은 손가락으로 차장의 수칙판을 긁어내렸다.
[생명체 승용 쿼터 미달 시] -> [생명체 승용] 조항 자체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 피로 새로운 수식을 새겨 넣는다.
[전철 기관 전면 소각]
우리가 타야 할 승용의 쿼터가 아니라, 이 기괴한 열차의 핵심 엔진과 차장 자체를 완전한 소각 처분 대상으로 재정의하는 위조.
내 손바닥의 무늬가 차장의 주철 가슴판 속으로 녹아내리듯 스며들었다.
그 즉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진동만이 내 뼈마디를 타고 전해져 왔다.
쿠구구구구구궁—!
내 손바닥 무늬를 먹어 치운 변경 수칙이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그 찰나, 차장의 철골 몸통 배관들이 하나씩 굉음을 내며 반대로 꺾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