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실습장. 솔직히 이 사기적인 봄날 날씨에 야외 수업을 들으면서 낮잠 한 판 때리지 않는 것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 분명하다. 당신은 구석진 잔디밭에 누워 적당한 그늘을 찾아 눈을 감으려던 참이다.
하지만 세상은 왜 이렇게 당신을 가만두지 못해 안달일까.
콰아아앙!
"끄악! 마, 마황수가 날뜁니다! 제어 장치가 파괴됐어요!" "모두 대피해! 이건 학부생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귀를 찢는 비명과 함께 철창이 박살 나며 거대한 그림자가 실습장을 덮친다. 붉은 안개를 뿜어내며 날뛰는 6급 마황수 '블랙 바실리스크'. 놈의 뱀 같은 붉은 눈과 마주친 동기들은 마치 기절이라도 할 듯 새파랗게 질려 비명을 지른다. 평소 고고한 척을 다 하던 아카데미의 엘리트 전사 바르토마저 검자루를 잡은 손을 벌벌 떨며 도망치기 바쁘다.
"오, 오라버니! 도망쳐요! 저건 재앙이에요!" 옆에서 과도하게 상황에 몰입해 주는 한 학년 후배 세리아가 지팡이를 짚고 대지에 엎드리며 처절하게 외친다. 이 친구는 다 좋은데 가끔 장르를 착각하고 과몰입을 한단 말이지.
재앙은 무슨 재앙. 당신이 보기엔 그저 귀를 쪼아대는 시끄러운 동네 똥개 한 마리가 난동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심지어 놈이 날뛰면서 일으킨 흙먼지가 당신이 점찍어둔 명당 잔디밭을 사정없이 더럽히고 있었다. 아, 내 꿀맛 같은 낮잠 시간이 이렇게 날아가다니. 정말이지 몹시 짜증이 솟구친다.
"쯧, 시끄럽기는."
당신은 하품을 쩍 해대며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주 무심하게, 귀찮은 파리를 쫓아내듯 오른손 검지를 엄지 위에 포개었다.
딱!
가벼운 손가락 튕기기 한 번. 하지만 그 작은 손짓 끝에서 쏘아 보내진 것은, 전직 대마법사의 정교한 계산으로 압축된 초고밀도 파괴의 응집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고 투명한 마력탄 한 발이 허공을 갈랐다.
콰작!
마치 단단한 얼음판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울부짖던 바실리스크의 심장부가 하얗게 관통당했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가장 단단하다는 마황수의 마력 핵이 단 한 발의 기초 마법에 완벽하게 분쇄된 것이다. 푸스스스……. 방금 전까지 실습장을 지옥으로 만들 기세였던 마수가, 당신의 손가락질 한 번에 가벼운 백색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뿌려진다.
주변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방금 뭘 본 거지?" 바르토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먼지가 된 마수의 흔적을 바라본다. 세리아 역시 당신을 무슨 전설의 구도자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우러러보고 있다. 또 숨겨진 절대고수 취급을 받게 생겼다. 나는 진짜로 조용히 자고 싶었을 뿐인데!
그때, 마수가 묶여 있던 강철 사슬의 끝자락이 당신의 눈에 들어왔다. 절단면이 수상하다. 이건 마수가 힘으로 끊은 게 아니라, 누군가 정교한 흑마법으로 녹여둔 흔적이다. 즉, 누군가 고의로 이 아카데미에 마수를 풀어놓았다는 뜻.
귀찮은 음모의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몸은 이미 따뜻한 기숙사 침대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