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학장실의 소파는 지나치게 푹신해서 사람을 타락시키기 딱 좋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전혀 편치 않다. 맞은편에 앉은 학장, 오스왈드 폰 에르히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당신의 낙제 학점 처리부를 찢어발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가차 없이, 마치 원수의 기말고사 성적표를 찢듯 벅벅 찢어발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종이쪼가리가 자네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니! 맙소사, 무영창 블링크로 번개 검격을 피하는 괴물이 왜 이런 구석탱이에서 썩고 있었단 말인가! 이건 국가적 손실이자 마법계의 대참사야!"

오스왈드 학장은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아대며 호들갑을 떤다. 그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화려한 실크 레이스 손수건이 공중에서 펄럭인다. 대마법사 시절의 기억으로 대충 숨만 쉬며 살아가려던 당신은 그저 멍하니 그 부지런한 손짓을 바라볼 뿐이다.

'아니, 나는 그냥 소매치기 피하듯이 가볍게 허리를 숙였을 뿐인데요. 블링크는커녕 마력 한 톨 안 썼다고.'

하지만 이미 세상은 당신을 '힘을 숨긴 은둔 고수'로 확정 지은 상태다. 오해란 정말 무서운 법이다. 한 번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는 어느새 당신의 평화로운 백수 계획을 깔아뭉갤 만큼 거대해져 있다.

오스왈드는 찢어버린 서류 파편을 허공에 날려 보내며, 마치 세상을 구원할 대현자라도 마주한 듯 엄숙한 표정으로 당신에게 상체를 쓱 들이민다. 그의 안경 너머로 노회한 정치가 특유의 번뜩이는 안광이 스친다.

"그래서 자네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려 하네. 낙제 취소는 당연한 일이고, 자네에게 아카데미 개교 이래 최초로 '명예 특별 연구원' 자리를 수여하겠네. 수업 참여 면제, 개인 연구실 지원, 게다가 품위 유지비까지 아낌없이 주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 조건은 너무나 파격적이다. 당신의 전생 엔진이 오작동 수준으로 위험 신호를 울려대기 시작한다.

명예 특별 연구원이라니. 겉보기엔 숨 막히게 달콤한 꿀보직 같지만, 이건 오스왈드 학장 파벌의 직속 최측근으로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지금 아카데미는 혁신을 부르짖는 '학장파'와 황실의 비호를 받는 '보수 귀족파'가 밥그릇 싸움으로 피 터지게 싸우는 중이니까.

여기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당신이 꿈꾸던 '아무것도 안 하고 평화롭게 가늘고 길게 살기'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것이 뻔하다. 반대로 거절하자니 학장의 심기를 건드려 아카데미에서 쫓겨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가? 자네의 그 위대한 지혜를, 이 늙은이와 함께 아카데미의 세대교체를 위해 써보지 않겠나?"

오스왈드가 달콤한 독배를 내밀며 인자하게 미소 짓는다. 그의 레이스 손수건이 마치 어서 덥석 물라는 듯 살랑인다. 당신의 목덜미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평화로운 백수 생활을 지키기 위한, 인생 최대의 귀찮은 선택이 눈앞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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