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집에 가고 싶다. 이 생각 하나만큼은 대륙을 멸망시킨 마왕이 부활해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도 꺾을 수 없다.

도서관 지하에서 넙죽 엎드린 검은 옷의 총잡이 무리를 대충 흐뭇한 미소와 함께 무시하고 빠져나왔을 때만 해도, 드디어 퇴근길 골목에 진입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건 기숙사로 향하는 안락한 통로가 아니라,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수상쩍은 지하실이었다.

"이 빌어먹을 아카데미는 지하를 무슨 미로처럼 파 놓은 거야? 건축법 위반으로 신고하고 싶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이는 구식 돌바닥 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대마법사 시절의 그 화려한 이공간 전이 마법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평범한 비상구 하나만 내어달라고 속으로 기도를 올리던 찰나였다.

앞에서 웅웅거리는 불길한 마력의 진동과 함께, 연극 대사 연습이라도 하는 듯한 오글거리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오오, 심연의 군주여... 육신을 잃고 떠도는 위대한 파멸의 파편이시여..."

슬그머니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붉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연금술사 무리가 거대한 마법진을 둘러싸고 열성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단 한가운데에는 불길한 검은 이계의 파편이 공중에 둥둥 떠올라 기괴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딱 보니 마왕의 잔재를 소환하려는 영양가 없는 의식이었다.

저들의 눈물겨운 어둠의 종교적 열정은 존중하지만, 퇴근길 앞을 가로막는 소음 공해와 무단 점거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게다가 저 소환진의 기하학적 공식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대마법사의 안목으로 보기에, 저건 마왕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단체로 폭사하기 위해 급발진 페달을 밟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저기다가 변형 룬을 저렇게 대충 배치하면 어쩌자는 거야? 연금술 기초 전공 책은 라면 받침대로 썼나?'

눈앞의 끔찍한 막장 식을 보고 있자니 눈이 썩는 느낌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강력한 귀가 본능과, 멍청한 마법 공식을 향한 전직 대마법사의 직업적 혐오감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깊고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내 영혼은 대마법사였고, 내 깊은 빡침이 담긴 한숨 속에 실린 고순도 마력이 무의식중에 공기 중으로 흩뿌려진 것이다.

*스스스슥!*

바람을 타고 흘러간 내 한숨 한 자락이 마법진의 가장자리에 닿은 순간, 경이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마치 삐걱거리던 녹슨 톱니바퀴 사이에 초고성능 윤활유를 들이부은 격이랄까. 나의 압도적인 명품 마력이 마법진의 지저분한 공식들을 멋대로 비틀고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삐뚤빼뚤하던 룬 문자들이 순식간에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정원을 그리며 정렬되고, 마공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겨지던 고위 마력 순환로가 제멋대로 뚫려버렸다.

"아, 아니?! 식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럴 수가! 마법진이 스스로 진화하고 있어! 어떤 위대한 법칙의 수호자가 우리의 소환을 방해하는 것이냐!"

소환을 주도하던 수석 연금술사가 거품을 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멀뚱히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리고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의 잔향(은 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 빡친 기운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소환 의식 따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한숨 한 번으로 비틀어버리는 초월적인 절대강자 그 자체였으리라.

"당, 당신은... 도대체...!"

마법진의 빛이 폭주하듯 밝아지며 지하실 전체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대로 두면 마왕의 파편이 정화되거나, 혹은 상상도 못한 모습으로 강제 강림해 버릴 판이다.

당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