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죽어라, 루인!"

말이 씨가 된다더니, 바르토 녀석의 칼끝에서 진짜로 퍼런 번개가 파지직거린다. 명문가 자제랍시고 검에 마력을 두르는 꼴이 제법 그럴싸하다. 하지만 대마법사였던 내 눈에는 그저 굼뜨기 짝이 없는 달팽이의 재롱잔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탓에 식곤증이 몰려오던 참이었다.

"허어어엄……."

나는 밀려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었다. 동시에 찌릿한 전류를 품은 바르토의 검날이 내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만원 지하철에서 극성맞은 소매치기의 손길을 본능적으로 피하듯,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안일한 회피 기동이었다.

콰아아앙!

내 뒤에 있던 대리석 기둥이 번개 맞은 대추나무마냥 시커멓게 그을렸다. 와, 저거 변상하려면 골치 좀 아프겠는데? 내 소유도 아닌 아카데미 기물이니 알 바 아니지만.

"어, 어라? 내 비기 '뇌전참'이…… 빗나갔다고?"

바르토가 멍청한 표정으로 검을 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의 특징은 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삼류 악당 같은 멍청한 감탄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 바로 뒤에서 이 대결을 관전하던 동급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의 눈빛이 방금 전 마력 측정석 폭발 때보다 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방금 봤어? 마력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블링크(Blink)다! 그것도 기동음도, 영창도, 예비 동작도 없는 완벽한 무영창 공간 전이 마법이야!" "미친, 전설 속의 9서클 대마법사나 쓴다는 무영창 블링크를 저 낙제생이 하품하면서 썼다고?!"

……아니, 얘들아. 제발 진정해 봐. 방금 그건 그냥 목 디스크 예방용 스트레칭이었어. 하품하다가 목뼈 좀 맞춘 거라고. 마력은 개뿔, 내 몸뚱이는 지금 마력 한 톨도 쓰지 않았다고 핏대를 세우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내 정직한 항변 따위는 거대한 착각의 해일 속으로 순식간에 휩쓸려 내려갔다.

"역시 루인 님은 힘을 숨기고 계셨던 거야!" "괴물 같은 녀석! 우릴 지금까지 속인 거군!"

바르토의 추종자들마저 검을 떨어뜨린 채 나를 경외와 공포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바르토 역시 얼굴을 붉으락푸르르락 하며 부르르 떨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감히 나를 기만하다니!"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서 있다가는 당장 전교생이 몰려와 나를 '지상 최강의 숨겨진 지배자' 취급하며 사인회를 요청할 기세다. 나는 아찔해지는 두통을 느끼며 이 아수라장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다. 무조건 조용히, 아카데미의 평범한 낙제생인 척 묻어가며 꿀 빠는 백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원대한 계획이란 말이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오해의 불씨를 꺼뜨리기 위해, 나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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