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마력 측정석을 완벽하게 박살 내버린 건 명백한 행정적 사고이자 본인의 과실이 맞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마력 조절 장치 하나쯤은 터뜨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아카데미 놈들이 내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 침을 꿀꺽 삼키며 경외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다간 ‘숨겨진 괴물 천재’라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타이틀을 달고 온갖 귀찮은 일에 휘말릴 터. 나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중간고사 필기시험에 영혼을 갈아 넣기로 했다. 낙제생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완벽한 빵점을 맞고 묻히겠다는 눈물겨운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험지 마지막 장에 적힌 보너스 문제가 화근이었다.

[학계 불멸의 난제: 4층 구조 고대 마법진의 역방향 순환 공식식을 증명하시오. (배점 없음. 풀면 졸업 시까지 전액 장학금)]

문제를 본 순간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건 500년 전 내 밑에서 청소나 하던 꼬맹이 조수가 술을 진탕 퍼마시고 갈겨쓴 낙서가 아닌가. 덧셈 뺄셈마저 틀려 처참하게 꼬여 있는 공식을 보고 있자니 발작적인 오답 노트 본능이 꿈틀거렸다.

‘아니, 이걸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풀어놨어? 중간에 미지수 대입만 제대로 했어도 두 줄이면 끝날 걸.’

참다못한 나는 깃펜을 들어 낙서 수준의 공식 위에 직관적인 사선 세 줄을 긋고, 단 네 줄의 마법 수식으로 완벽한 해답을 적어 내렸다. 풀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어차피 배점이 없는 보너스 문제니 교수들도 대충 장난으로 넘기겠거니 했다.

그것이 내 일생일대의 오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자네가…… 자네가 이걸 풀었단 말인가?”

아카데미 수석 교수이자, 고대 언어학의 최고 권위자인 제라드 교수의 집무실. 제라드는 평소의 깐깐한 호랑이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돋보기를 세 개나 겹쳐 쓴 채 내 답안지를 붙잡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심지어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이, 이 획의 꺾임! 그리고 고대 제국의 정통 단축 작법……! 수백 년 동안 그 어떤 대마법사도 손대지 못한 이단아 카이렌의 공식을 단 네 줄로 완벽히 정립하다니! 자네는 대체 정체가 뭔가? 잃어버린 고대어 해독 가문의 숨겨진 후계자인가?!”

‘아뇨, 그냥 제 조수가 멍청해서 고쳐준 건데요.’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입을 다물자, 제라드 교수는 그것조차 깊은 학문의 깊이를 숨기려는 대가의 침묵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부디 내 무례를 용서하게, 거장(巨匠)이여. 자네 같은 인재를 낙제생이라 부르며 방치했다니, 이 아카데미의 교육 체계는 완전히 썩었어! 당장 정식 학회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자네를 특별 연구원으로 추대하겠네!”

망했다. 학회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24시간 철야 연구와 논문 지옥이 나를 기다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황실의 주목까지 받게 되면 내 조용하고 게으른 아카데미 라이프는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어떻게든 이 미친 학술 열기 속에서 살아남아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이 눈먼 학자 늙은이들의 추적을 따돌릴 기가 막힌 묘책을 떠올려야 할 때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